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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7주일 욕심 많은 거인과 소년
옛날 옛적에 아주 몸집이 큰 사람, 거인이 살았어요. 그런데 그 거인은 욕심쟁이였어요. 그 거인은 아주 넓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성과 같은 큰 집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큰 집에 자기 혼자 살았어요. 그런데 거인은 도깨비 친구에게 놀러가서 그 집과 정원은 오랫동안 비어 있었어요.
아이들은 오후가 되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 비어있는 거인의 집 정원에 가서 놀았어요. 아이들은 모두 거기서 노는 것을 아주 즐거워했지요. 거인의 정원은 크고 아름답고, 또 푸르고 부드러운 잔디가 양탄자처럼 깔려 있었기 때문에 놀다가 넘어져도 다치지 않아서 정말 아이들이 놀기에는 그만이었지요.
그리고 정원에는 복숭아나무가 스무 그루 있었는데 봄이 되면 분홍빛과 흰빛 꽃이 활짝 피고 여름이면 복숭아가 주렁주렁 열렸지요. 물론 아이들은 마음대로 따 먹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신났겠어요? 새들은 나무 위에서 어찌나 즐겁게 지저귀는지 아이들은 놀다 말고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하였어요.
아이들은 서로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어요.
“정말 이 정원에만 오면 즐거워!”
그런데 어느 날 거인이 돌아왔어요. 7년 동안 친구랑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렸기 때문에 이제 더 할 말이 없어져서 자기의 성으로 돌아오기로 한 거랍니다. 자기 성에 도착해 보니 아이들이 놀고 있었어요.
거인이 좋아했을까요? 아니지요. 그는 욕심쟁이라고 했잖아요. 그는 소리를 질렀어요.
“이 녀석들, 너희들 여기서 무엇을 하는 거니?”
거인이 무섭게 소리 지르니까 아이들은 놀라서 그만 모두 도망가고 말았어요.
“이 정원은 내 정원이야. 그것쯤은 누구라도 알 텐데. 이제 내가 돌아왔으니, 아무도 여기에 들어와서 놀지 못해.”
거인은 자기 정원 둘레에다 높은 담을 쌓고 다음과 같이 써 붙였어요.
“경고하는데, 내 정원에 들어오는 사람은 아주 큰 벌을 받을 것임.”
정말 욕심쟁이 거인이지요?
아주 좋은 놀이터를 잃은 불쌍한 아이들은 길에서 놀아 보았지만 길은 먼지투성이에다 돌이 잔뜩 박혀서 잘 놀 수가 없었어요. 학교가 파하면 아이들은 높은 담 주위를 빙빙 돌다가 담 안에 있는 아름다운 정원에 대해서 얘기했어요.
“우리는 저 안에서 참 즐겁게 놀았었는데, 그렇지? 복숭아는 얼마나 맛있었는지 몰라.”
아이들은 서로 바라보면서 한숨을 지었어요.
드디어 봄이 되자 온 세상은 예쁜 꽃이 피고 새들은 노래를 불렀어요. 그러나 욕심쟁이 거인의 정원만은 아직도 겨울 그대로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이들이 놀러 오지 않으니까 새들은 노래하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예요. 또 나무들도 꽃을 피우는 것을 잊고 있었어요. 꼭 한 번 예쁜 꽃이 잔디 위로 얼굴을 내밀었지만 담에 써 붙인 푯말을 보자 고개를 움츠리고 땅속으로 들어가 깊은 잠에 빠졌어요.
그러나 이곳을 좋아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누굴까요?
바로 눈과 서리였습니다.
“아, 봄이 이 정원을 잊어버렸는가 봐. 그러면 우리는 일 년 내내 여기서 살 수 있겠네. 좋구나.”
눈은 자기의 하얀 망토를 펴서 잔디 위를 덮었고, 서리는 모든 나무들을 은빛으로 칠했습니다. 눈과 서리는 북풍을 초대해서 함께 지내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북풍은 털옷을 몸에 감고 와서 하루 종일 정원 주위를 씽씽 거리며 돌아다니더니 결국 굴뚝을 쓰러뜨렸습니다. 북풍이 말했습니다.
“여기는 정말 멋진 곳인데. 우리 우박도 오라고 부르자.”
그래서 우박이 이곳에 왔습니다. 우박은 매일 세 시간씩 성의 지붕 위로 후두두둑 쏟아져서 나중에는 기왓장이 거의 다 깨져 버렸습니다. 회색 옷을 입은 우박은 얼음같이 찬 숨을 내쉬며 있는 힘을 다해서 정원 안을 재빠르게 뛰어다녔습니다. 이렇게 겨울의 친구들, 눈, 서리, 우박만 신났어요.
욕심쟁이 거인은 창문 앞에 앉아서 차갑고 하얀 정원을 내다보며 말했습니다.
“어째서 봄이 이렇게 늦게 오는지 알 수가 없네. 어서 날씨가 따뜻해졌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봄도 여름도 이 정원에는 오지 않았어요. 가을이 되자 집집마다 정원에는 황금 열매가 열렸지만 거인의 정원에만은 아무 열매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봄도 여름도 안 왔는데, 가을이 올 리가 없지요.
가을이 말했습니다.
“저 사람은 너무 욕심쟁이야. 저 집은 가지 않을 거야.”
거인의 정원 안은 항상 북풍과 우박과 서리와 눈이 나무 사이를 돌아다니는 겨울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거인은 잠이 깬 채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어디선가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들려 왔어요. 거인의 귀에 그 음악 소리가 어찌나 즐겁게 들리던지 거인은 틀림없이 임금의 악대가 지나가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것은 거인의 창 밖에서 작은 방울새가 지저귀고 있는 소리였습니다. 하지만 거인은 자기의 정원에서 새의 노랫소리를 들어 본 지가 너무 오래 되어서 그 새소리가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음악 소리 같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머리 위에서 춤추던 우박이 그치고, 북풍도 우르릉거리던 소리를 멈추고, 열린 창문으로도 향긋한 향내가 풍겨 왔습니다.
“마침내 봄이 왔군.”하고 말하면서 거인은 침대에서 내려와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거인이 본 것은 무엇일까요?
거인은 정말 아름다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벽이 뚫어진 작은 구멍으로 아이들이 기어들어와 나뭇가지마다 앉아 있었습니다. 눈에 띄는 가지마다 작은 애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무들은 아이들이 다시 돌아온 것이 너무 기뻐서 꽃을 피워 아이들의 머리 위에서 부드럽게 한들거렸습니다. 새들은 기뻐서 날아다니며 지저귀고 꽃들은 잔디 위로 얼굴을 내밀고 웃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아름다운 광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원 한쪽 구석은 아직도 겨울이었어요. 그 구석에는 작은 사내아이가 서 있었어요. 그 사내아이는 너무 키가 작아서 나뭇가지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나무 주위를 빙빙 돌면서 엉엉 울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 가엾은 나무는 아직도 서리와 눈으로 덮여 있고 북풍은 그 나무 위에서 우르릉거리며 불고 있었습니다.
“올라와, 꼬마야.”라고 말하며 나무는 힘껏 자기 가지를 낮춰 주었지만 사내아이는 너무나 작아서 그 나무에 올라갈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거인이 이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이 모습을 보고 있는 동안에 거인의 딱딱하게 굳어 있던 마음은 마치 봄눈 녹듯이 녹고 부드러워 솜처럼 되었어요.
“아, 나는 지금까지 너무나 욕심쟁이였어. 이제야 왜 이곳에는 봄이 안 왔는지 알았어. 내가 저 가엾은 어린 꼬마를 나무 위에 올려놓아 주어야지. 그리고 담을 헐어버리고 내 정원을 언제까지나 아이들의 놀이터로 만들어줘야지.”
거인은 이제까지 자기가 한 짓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정말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거인은 아래층으로 내려와 앞문을 아주 살짝 열고 정원으로 나왔어요.
그러나 아이들은 거인을 보자 놀라서 모두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자 정원은 다시 겨울이 되었지요. 그런데 눈에 눈물이 괴어 거인이 오는 것을 미처 보지 못한 작은 소년만이 아직 그곳에 남아 있었어요. 거인은 소년의 뒤로 가만히 가서 아이를 부드럽게 안아 나무 위로 올려주었어요. 그러자 나무는 금세 꽃을 피우고, 새들이 나무 위에 와서 지저귀었습니다.
작은 소년은 두 팔을 뻗어 거인의 목에 매달려 입을 맞추었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거인이 이제는 무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다시 정원으로 들어왔지요. 아이들과 함께 봄도 다시 왔고요.
거인이 말했습니다.
“아이들아, 이제 이 정원은 너희 것이야.”
거인은 큰 도끼를 가져다가 담을 헐어 버렸습니다. 정오가 되자 시장을 가던 사람들은 예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주 아름다운 정원에서 거인이 아이들과 노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놀다가 저녁이 되자 인사를 하려고 거인에게 갔어요.
거인이 아이들에게 물었어요.
“그런데 얘들아, 작은 꼬마는 어디 있지? 내가 나무 위에 올려 준 아이 말이야.”
거인은 자기에게 입을 맞춘 작은 소년이 제일 좋았습니다.
아이들이 대답했어요.
“우리는 몰라요. 그 아이는 가버렸나 봐요.”
거인은 말했어요.
“너희들 그 아이를 보거든 내일은 꼭 오라고 일러 다오.”
그러나 아이들은 그 작은 소년이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고 또 예전에는 한 번도 본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거인은 몹시 서운했습니다. 매일 오후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은 이 정원에 와서 거인과 함께 놀았습니다. 그러나 거인이 사랑하는 작은 소년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거인은 모든 아이들에게 아주 친절했지만 맨 처음의 친구인 작은 소년이 늘 보고 싶어서 그 소년 얘기를 자주 했습니다.
“아, 그 아이가 정말 보고 싶구나!” 하고 거인은 말하곤 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거인은 아주 늙고 약해져서 아이들과 더 이상 놀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큰 안락의자에 앉아서 자기의 정원에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아름다운 꽃이 참 많구나. 하지만 어떤 꽃보다도 아름다운 것은 아이들이야.” 하고 말했습니다.
어느 겨울날 아침 거인은 옷을 입으면서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거인은 이제 겨울도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거인은 겨울에는 봄이 잠을 자고 꽃들이 쉬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거인은 이상해서 눈을 비비고 밖을 보고 또 보고 있습니다. 정말 이상한 광경이었습니다. 정원 저쪽 구석의 나무에 예쁘고 하얀 꽃이 만발했습니다. 그리고 황금색 나뭇가지에는 은빛 과일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데 그 밑에는 그가 보고 싶어 하던 작은 소년이 서 있었습니다.
거인은 너무 기뻐서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와 정원으로 뛰어나갔습니다. 거인은 급히 잔디를 지나서 아이에게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러나 아주 가까이 다가갔을 때 거인은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누가 감히 너에게 이런 상처를 입혔니?”
거인이 놀라고 화가 난 것은 소년의 양쪽 손바닥에는 못 자국이 두 개 나있었고, 그의 발에도 못 자국이 두 개 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거인이 소리쳤어요.
“도대체 너를 이렇게 만든 사람이 누구니? 내게 말해 봐라. 내가 그 녀석을 혼내 주겠다.”
작은 소년은 대답했어요.
“안 돼요! 그럴 필요가 없어요. 이것은 사랑의 상처예요.”
“너는 누구니?”
거인은 퍼뜩 이상한 놀라움에 사로잡혀 작은 소년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자 소년은 거인을 향해 웃으면서 말했어요.
“당신은 전에 나를 당신의 정원에서 놀게 해 주었지요. 이제 오늘 당신은 나와 함께 내 정원으로 가게 될 거예요. 내 정원은 천국이랍니다.”
다음날 오후에 아이들이 정원으로 와보니 늙은 거인은 하얀 꽃이 가득히 핀 나무 밑에 누워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얼굴은 아주 행복하고 평화로운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들, 손과 발에 상처가 나 있던 소년이 누구였을까요?
그래요. 맞아요. 예수님이지요.
예수님이 오늘 복음에서 어떤 말씀을 하셨어요? 여러분들 친구가 여러분들의 오른뺨을 때리면, 여러분들은 왼쪽 뺨을 때리라고 하셨지요?
아니라고요? 그러면 어떻게 하라고 하셨어요? 다른 뺨도 친구가 때리도록 돌려주라고 하셨지요. 여러분들,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참 어렵지요. 그렇게 하는 것은 정말 바보라는 생각이 들지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보고 모두 바보가 되라는 거예요.
바보가 뭔지 아는 사람? 바라볼수록 보고 싶은 사람!
예수님께서 원수는 물리치고,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하셨지요?
아니라고요? 그러면 뭐라고 하셨어요?
예,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어요. 이것도 정말 어렵지요. 그리고 정말 그렇게 한다면 너무 바보 같은 느낌이 들지요.
여러분들, 고 김수환 추기경 할아버지 아시지요? 김 추기경 할아버지께서 당신의 자화상을 마치 소년처럼 그리고, 제목을 뭐라고 다셨는지 알아요?
“바보.”
김수환 추기경 할아버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바보'가 되신 분입니다. 그런데 김수환 추기경 할아버지가 정말 바보였을까요?
맞아요. 정말 바보였어요. 어리석다는 의미의 바보가 아니라 '바라볼 수록 보고 싶은 사람'라는 의미에서 정말 바보였어요.
신부님은 김수환 추기경 할아버지의 사진을 가지고 있고, 가끔 바라보는데, 정말 바라볼수록 보고 싶어요. 이미 돌아가셨으니까, 실제로는 볼 수 없지만, 마음속으로 보곤 해요. 그리고 다짐해요. 나도 김수환 추기경님처럼 바보가 되리라고.
여러분들도 모두 서로 서로에게 바보, ‘바라볼수록 보고 싶은 사람’이 되기를 바랍시다.
첫댓글 와! 정말 재미있네요....ㅎㅎㅎ. 복사꽃이 만발한 정원!
마음 속으로 그리워하고 감사하는 분들이 많아지니, 저도 이제 철이드나 봅니다. 잘 계시지요? 덕분에 저도 잘 있어요.
북풍.우박.서리.눈이 신나서 돌아다닐때 눈썰매를 타고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들이 있었다면 그것 또한 천국이었을텐데...
서리가 모든 것을 은빛으로 칠했다는 문장에서 은빛가루를 묻혀 만든 성탄카드가 생각나면서 한편의 동화처럼
잼나게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