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My Life 28
나는 쉐프다
서울고 총동창회 뉴스레터 19호(2018. 8. 09)
이병용(47회. 42세, 라망드쉐프대표)
꿈 많던 20대 청년시절 처음 걸어간 곳은 프로그래머의 길이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밤잠 설치며 엉덩이에 땀띠가 나도록 죽어라 일했지만 얼마 가지 못해 적성이 아니라는 생각을 끝내 떨쳐버리지 못하고 새로운 일을 찾아야 했습니다.
평소 몸으로 움직이는 걸
좋아해 새롭게 시작한 일은 수공예품 및 귀금속, 액세서리 등을 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작은 작업실에서 낮에는 제품을 만들고 오후에는 촬영하고 밤에는 홈페이지 제작하고 수정하는
등 일에 빠졌습니다. 이렇게 친구와 같이 수공예품 전문 공방을 운영하며 20대 중반 4년을 보냈습니다. 매일
매일 예쁜 제품을 만들고, 사진 찍고, 편집하고……하지만 경영은 쉽지 않았습니다. 판매가 생각만큼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죠.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느끼며 결국 그 시절도 제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새로운 돌파구를 다시 찾아야 했습니다.
뭐든지 만드는 걸 좋아하는 제가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난 곳은 바로 요리사의 길이었습니다. 종로 ‘쏘렌토’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손이 베이고 데고 물집에 습진에 시달리며 처음으로 3D라고 하는 요리의 길로 들어선 것이죠. 하지만 좀 더 넓은 세상에서 공부를 해야겠다 싶어 2005년 저는 일본유학을 떠납니다. 두려움도 없이 일단 가자며 저지르듯이 떠난 것입니다.
일본
레스토랑에서 하루 15~16시간
일하며 노하우 쌓아
일본에서의 첫 직장은 시부야에 있던 ‘한풍’이라는 한식집이었습니다. 일본어도 모르는 상황이라 일단 일은 배우고 보자며 시작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일본어 학교생활도 조금 적응되어가자 일본인들만 있는 업장에 들어가야겠다 마음먹고 간 곳이 긴자에 있는 '아즈마'라는 레스토랑. 그 레스토랑이 70년된 곳이라는데 정말 놀랐습니다. 일본어를 잘못 알아듣고, 말도 잘 못해서 무언가 나에게 말을 하고 요구를 하는데 잘은 모르겠고 일단 주어진 일을 최대한 하자라는 생각으로 무조건 대답만하고 묵묵히 일을 하면서 3년이란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래된 가게이다 보니 구석구석 세월의 낡은 흔적들이 여기저기 많았습니다. 저는 틈날 때마다 그 가게 주방을 빛나게 쓸고 닦았습니다. 사장님과 셰프님들이 모두 저를 인정해주기 시작했고 그 후로부터 조리를 할 수 있었고 결국 3년이란 시간 동안 세컨드 셰프까지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에비스에 있는 ‘조엘로부숑’이라는 프렌치 레스토랑을 알고부터는 프렌치 요리에 빠지게 되었고 세계3대요리학교라 일컫는 ‘핫토리 영양전문학교’에도 들어갔습니다.
1년6개월을 다니며 롯뽕기에 있는 ‘3fffmiyamoto’ 정통프렌치코스요리를, 신주쿠에 있는 ‘리스토란테카노비아노’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도 일했습니다. 이후 이케부쿠로 선샤인시티59층에 있는 ‘Auxamis59(오자미59)’ 레스토랑에서 다시 프렌치 요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9시에 출근 새벽1시에 퇴근하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또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하면서 쉬는 날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근무를 하며 하루도 안 쉬고 3개월을 꼬박 15~16시간을 일하며 배운 경험들은 지금까지도 저의 노하우가 되고 있습니다. 전세계 8개국 유명 셰프들 20명이 참가한 요리관련 세미나에서 세계의 내로라하는 요리사들의 스텝으로 다양한 경험을 한 것도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2011년 비자도 갱신하고, 새로운 일본회사에 취업을 하고 집도 이사 가려고 계약도 한 상태였는데 일본대지진이 발생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사실 싱글이었다면 남아 있으려 했으나 결혼을 해서 6개월된 아기도 있던 상황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입니다. 7년만에 귀국을 합니다.
역삼동 레스토랑 명물로 만들고파……창업 브랜드로 키워 나갈 것
압구정동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일하다가 강남역에 카페 레스토랑을 오픈 하였습니다. 일단 한국에 왔으니 가장 유명한 지역에서 근무를 해보자 생각하며 압구정을 거처, 강남역, 청담동에 철판전문 이자카야를 오픈 시키고, 그 다음엔 이태원에 총400석 1층부터4층 루프트 탑까지 있는 대형 업장을 오픈 시키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우리나라의 요식업과 일본의 요식업을 비교해 갈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태원에서의 경험은 정말 잊을 수 없습니다. 이태원 축제 때 이제껏 처음 참가한 업장이 부스판매로 3위안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는 데 저희가 그 기록을 경신했던 겁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총2일간 진행한 축제기간 동안 2일치로 준비한 소시지 2,000명분이 토요일 당일 2시쯤에 동나서 소시지를 구하러 다녀야 할 상황이 되었고 그날 하루에만 4~5,000명분을 판매하고, 다음날 일요일에는 4,000인분 판매로 역대 최고의 매출을 올렸으니 저에겐 큰 기록 중에 하나였습니다.
3년간의 서울 이곳 저곳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2014년12월 역삼동 뱅뱅사거리 안쪽에 “LaMaindeChef(라망드쉐프)”를 오픈 하였습니다. 그 동안 쌓은 저만의 노하우와 다양한 레시피, 콘텐츠로 지금까지 성업 중에 있습니다. 누구나 편안하게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공간, 아지트 같은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고 요리의 기반은 프렌치와 이탈리안을 기본으로 일식과 한식재료를 접목시킨 퓨전양식을 선보이기로 하고 시작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첫째는 지금 현 위치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레스토랑이 되는 것, 둘째 해외에 2호점 오픈, 셋째 은퇴하는 수많은 아버지들이나
중년의 가장, 청년창업자 누구나 쉽게 창업할 수 있는 브랜드로 키워나가는 것입니다. 이 바람은 누군 가에겐 소박할 수도 있지만, 다른 누군 가에겐 꿈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꿈 같은 이야기로 끝나지 않도록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노력해 보려 합니다. 저는 이 순간도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외쳐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