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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선명한 꿈을 가지라 (사131)
찬송 : 260장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본문 : 사62장 1-5절
인생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비전 즉 꿈이다. 꿈은 삶의 새로운 도약을 이루게 한다. 하나님은 멸망해 가는 이스라엘을 향해 이사야 선지자에게 놀라운 꿈을 심어 주셨다. 오늘 본문에는 이런 이사야 선지자의 가슴에 심어주신 하나님의 꿈이 영롱하게 보인다. 3절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또한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는 구절이 두 번의 반복으로 나오고 있다.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그들의 의가 회복되고 공의와 영광을 온 이방나라 속에 드러날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이제 이름을 바꾸라고 하신다. 4절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존재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하신다. 이는 예수안에 있는 변화를 일컫는 말이라 생각된다. 헵시바의 뜻은 ‘나의 기쁨이 너에게 있다.’이다. 즉 너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또한 ‘쁄라’란 ‘결혼한 여자’란 뜻인데 대개 땅을 여성명사로 사용하는 것으로 본다면 이것은 이제까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황무지에서 이제는 결혼한 즉 열매를 맺는 땅, 축복의 땅이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꿈꾸고 있다. 이스라엘이 ‘헵시바와 쁄라’로 불리게 될 것이라고... 그는 이 꿈을 꾸고 있다.
그러나 오늘 아침 나를 감동시키는 구절은 이런 꿈을 꾸는 이사야의 모습이다. 1절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주신 이스라엘의 회복을 향한 아름다운 꿈을 꾸는 자로 머문 것이 아니라 이렇게 그 꿈을 이루기까지 잠잠하지 아니하며 쉬지 아니하며 열심히 이 꿈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구원을 향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무튼 오늘 아침 이런 이사야의 모습이 큰 울림을 가지고 내게 다가온다.
내게 묵상의 재료로 두 가지를 전해 주고 있다.
하나는 꿈이다. 헵시바와 쁄라의 꿈을 가지고 있는가 이다. 내게 주신 사명의 자리 작은 교회가 헵시바처럼 쁄라처럼 될 것을 확신가운데 보고 있는가라고 묻고 계신다. 작은교회 사역자가 헵시바로 불리울 것이며, 작은 교회가 쁄라라 불리울 것이라고 나는 이사야 처럼 확신하는가?
그렇다. 비전의 사람들은 바로 이 사실을 확신가운데 품고 그리고 선포하며 달려가는 특징이 있다. 내게 전해준 이 땅의 침체된 교회와 사역자들을 향해 ‘헵시바와 쁄라’란 이미지는 큰 감동이다. 주여, 이 종이 이 비전을 가슴에 영롱하게 품는 이 아침이 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사실 그동안 나는 이 꿈을 꾸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주님앞에 자백할 수 밖에 없다. 늘 불안하고 두렵고 떨면서 과연 될까 의심하는 자로만 서 있지 않았는가? 주여, 이 종을 용서하소서. 오늘부터 이 선명한 이미지를 담고 꿈꾸며 달리게 하소서.
아울러 이사야 선지자처럼 잠잠하지 아니하며 쉬지 아니하고 이 놀라운 일을 위하여 달리고 있는가를 물으신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이 두 가지 질문지를 앞에 놓고 나를 본다. 무엇이라고 쓸 수 있는가? 그 어느 것 하나에도 정확한 답을 쓸 수 없는 모습이 오늘 내 모습이 아닌가?
주님, 이 종에게 이 사역의 확신을 이사야처럼 허락하소서. 이 작은 교회와 사역자들을 향하여 헵시바라 쁄라라 담대히 외치는 자가 되게 하소서. 늘 불안하고 의심하고 있는 내 모습을 아시는 주님이 오늘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나를 가르치신다. 주여, 내 꿈을 새롭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이 종이 두려워 잠잠하고, 힘겨워 쉬려고 하는 마음을 아시고 다시 일으켜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가슴에 담습니다. 이 종으로 이사야처럼 주님의 꿈을 향해 잠잠하지 않고, 쉬지 않고 달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