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직후 발령된 우크라이나의 (국민) 총동원령은 계엄령과 함께 내년 2월 14일까지 연장돼 있다. 그 이후에도 전쟁이 끝나지 않는 한, 또 3개월간 연장될 게 확실하다.
달라지는 것은 60세 이하의 남성들을 최전선으로 동원하는 방식. 현재와 같은 시스템으로는 최전선의 병력 부족을 메꿀 수 없다고 판단한 우크라이나 정부는 최근(25일) 의회에 동원에 관한 법률안 개정안을 제출했다. 현지 언론들은 새 법안이 동원 대상을 크게 늘리고, 동원 방법도 단순화, 강제화했으며, 위반시 불이익을 일상생활 전반에 미치도록 엄격하게 규정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한마디로 서방에서 거센 비판을 받았던 '러시아 동원 관계법'보다 더 '악랄한 법'이라고 했다.
당연히(?) 우크라이나 보통 남성들은 새 동원법이 의회를 통과하기 전에 이를 피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역시, 해외로 출국이다. 이미 출국이 금지된 만 60세 이하 남성들은 관련 당국에 뇌물을 주고서라도 출국 허가를 받아내거나,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는 조직에 돈을 주는 방식으로 해외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사회문제화가 된 지도 오래다.
현지 언론이 주목하는 것은 소위 유명인사들의 편법 탈출이다.
인도주의 물품을 운송하는 트럭 운전사로 해외로 나가 행방이 묘연한 카츠바 전 의원/사진출처:스트라나.ua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27일 해외 도피 인사를 추적하는 'NGL media'를 인용, 최소한 3명의 전직 최고라다(의회) 의원이 지난해 자원봉사자 등으로 위장해 해외로 나갔다가 귀국하지 않았고 보도했다. 지난해 7월 6일 인도주의적 물품을 운송하는 화물트럭 운전사로 위장해 해외로 탈출한 세르게이 카츠바('지역'당 소속)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우리 우크라이나'당 소속의 알렉산드르 트레챠코프는 지난해 4월 19일에, '지역'당 출신의 알렉산드르 자트 전의원은 같은 해 6월 27일 해외로 나간 뒤 행방이 묘연하다.
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는 2023년 초부터 2,100명의 우크라이나 공무원이 법적 근거 없이 해외 여행을 시도했다고 보고한 바 있다.
포로셴코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해외출국을 시도하다 국경경비대측과 입씨름을 벌이는 모습/사진출처:텔레그램
가장 최근에는 남부 헤르손에서 인도주의적 물품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로 떠난 자원봉사자 10명이 귀국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헤르손 지역 군사행정청의 알렉산드르 프로쿠딘 청장은 지난 23일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통합 우크라이나'(Единая Украина)와 '아드잘리크'(Аджалык) (봉사) 단체 대표들에게 출국 허가를 내줬다"며 "그들은 해외에서 인도적 지원 물품도 확보하고, 진행 상황을 영상으로 보고하곤 했는데, 두 번째 출국후 우크라이나로 돌아오지 않아 출국 허가를 취소하고 관련 기관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이날 우크라이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전쟁 승리'의 나팔수로 활동해온 TV 채널 24의 진행자인 알렉세이 페치(Алексей Печий)기자다. 그는 지난 14~15일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담 취재차 갔다가 주저앉았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태도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유럽에 남겠다"며 "여기서 '우크라이나 홍보'에 기여하기로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해외 취재를 떠나기 전부터 국내를 탈출할 결정을 내렸다는 증언들이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결국 유럽으로 도피한 우크라이나 전쟁 승리의 '나팔수' 격인 알렉세이 페치의 페이스북 해명 글(위)과 그의 영상들/캡처
그는 TV채널과 유튜브 등에서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러시아를 공격하는 소위 '국뽕' 뉴스를 만들어온 대표적인 언론인이었다. "러시아인들이 헤르손 지역의 동쪽 강둑에서 도망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군대가 크림반도에 진입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남부전선에서 러시아 방어선을 돌파했다",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이미 도망갔다", "이스라엘이 메르카바 탱크를 우크라이나로 옮기고 있다"는 것 등이 그가 만든 가짜 뉴스다.
지난 봄에는, 우크라이나 드론이 크렘린을 공격한 후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개전 초기에는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체포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개전 후 유럽으로 도피한 양심적인(?) 러시아인들을 비판하면서 EU측에 러시아의 전쟁 반대파를 받아들이지 말라고 촉구했다. "좋은 러시아인은 이제 없다. 그들은 다가오는 우크라이나의 승리에 탑승하려고 노력하는 얄팍한 사람들"이라고 직격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의 가슴을 '뻥' 뚤리게 만든 그의 영상 시작은 늘 이랬다. "자유롭고 점령되지 않은 모든 우크라이나인에게 인사드립니다!". 그의 인기는 한동안 하늘을 찔렀다.
그런 그가 유럽에 눌러앉기로 했으니, 그의 찐팬들이 받는 상처가 만만치 않다. 현지의 한 전문가는 "그의 전황 분석을 보고 듣는 걸 그토록 좋아했던 사람들이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며 "그의 '찐'팬들은 계속 그를 믿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우려했다.
해외로 나갔다가 귀국하지 않는 우크라이나인들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개전 이후 해외 근무를 마친 우크라이나 외교관의 거의 절반이 귀국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해외에서 경기를 마친 뒤 귀국을 포기한 선수들의 명단에도 200여명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