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집게 예언 17] ㅡ 언론은 절대 바뀌지 않더라!
제가 한국 언론의 황폐화를 지적한 지 벌써 2년 반이란 시간이 흘렀네요. 그런데 저의 기대는 마침내 허물어지고 마는군요. 한국 언론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습니다. 이 번 '조국 사태'를 들여다 보면서 "역시나!"라는 한숨만 나왔습니다. 쓰레기같은 언론들만 전면에 나서고 참 언론들마저도 침묵하거나 심지어는 변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jtbc나 sbs 그리고 경향신문에게서는 배신감도 들더군요. 조중동이 여전히 우리의 언론 환경을 더럽히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한국 언론은 이미 죽었던 거구나!"라는 진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나마 희망의 작은 불씨들을 한겨레나 오마이뉴스, 그리고 몇몇 언론들에게서 잠시 엿볼 수 있어 다행이긴 합니다. "기레기"라는 통절한 지적에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른바 쓰레기 언론인들을 보면 절로 구역질이 나옵니다. 그래서 촛불혁명의 불꽃은 꺼질 수가 없는 것 아닐까요?
한국 언론에 대해서 2년여 전에 썼던 저의 글을 다시 복기해 보려 합니다.
kjm _ 2019.10.1
* [언론의 역할]
낙서장 2017/05/21 22:03.51
글을 쓰다보면 글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차근차근 짚어가며 써내려가기 어렵다.
그래서 다 쓰고 나면 맞춤법이 틀린 경우도 나오고 어휘 사용이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도 생긴다.
문맥이 어긋나거나 뒤바뀔 수 있고 범례를 잘못 드는 경우도 생긴다.
그리고 문장 전체가 마음에 안 들어 수정보다는 폐기에 적합한 글도 생긴다.
글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글 내용의 참신함과 글 흐름의 매끄러움, 전하는 메시지의 정확한 전달 등을 보게 되지 문법구조를 세세히 뜯어보는 것은 아니다.
즉 글의 형식 보다는 내용의 충실함에서 우선을 둔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각 언론들은 본말을 뒤집어 말초적인 데에만 집착한다. 내용은 뒷전이다. 다분히 형식주의로 매몰되어가는 추세다.
NLL사건이 그랬고, 북한인권결의안 문제도 그랬다.
전체 맥락은 아예 제쳐두고 지엽말단적 문구 해석에 몰입하곤 했다.
진위를 가리기보다는 여론의 분위기를 편향적으로 끌고 가려는 순수하지 못한 의도가 읽힌다.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음은 언론의 역할과 기능이 크게 고장나 있음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언론의 존재 이유와 의미에 대한 본질적 물음이다.
자기 분수를 넘어서서 정치적 의도를 실어 국민을 호도하려는 작태, 그것도 아무런 반성 없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이 못되고도 사악한 행태는 반드시 적폐로 규정해서 청산해야만 할 것이다.
언론의 정치화, 권력화 획책은 이제 비로소 부셔버려야 할 때다.
썩은 언론들은 모두 서서히 도태될테지만 차후에 있을 구태의 반복의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그리고 부단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세우기 위해서는 일벌백계가 아닌 백벌백계로 처리해야 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언론에 국한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염두에 두면서 언론을 말했다.
새 정부가 나아가는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따라서 이 정부를 지지하려 함이라면, 뒤에서 박수만치면서 무엇을 기대한다느니 어떤걸 바란다느니 무엇을 명심하라느니 하면서 어설픈 가르침의 선생질을 하지 마시고, 스스로가 '지뢰 제거반'이 되어서 앞장서서 새 정부가 앞으로 걷게될 그 길을 선구자가 되어서 걸어가 몸소 겪으면서 선제적으로 위험신호를 보내고 가능할 것같은 비젼들을 제시하면서 새정부의 시행착오를 비약적으로 줄여주는 게 결국 옳지 않은가?
이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고 온 국민이 바라는 참언론의 모습이겠다.
새시대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것은 문재인 개인의 업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대들의 뚜렷한 발자취로도 모두의 뇌리에 각인되고 역사의 장면 장면을 써내려 가는 것이다.
위험 신호를 먼저 발견해서 알리고 때로는 육탄으로 방어하면서 더불어 함께 가자.
방관자의 논리는 이제 쓰레기통 속으로 던져버리고 아예 무시하자.
그리고 촛불혁명에 '기자혁명' 나아가서는 '언론혁명'을 더해주자.
K / 2026.3.22
** <참고>
<조국의 시간> 해부22..!! (p.203-207)
ㅡ kjm / 2021.7.7
전격 기소된 정경심 교수
1. 코끼리에 관해서
장님 여럿이서 코끼리를 만지고 더듬어서 살핀 다음, 토론과 논쟁을 거쳐서 종합에 이른 코끼리에 대한 결론은 과연 코끼리였을까?
코끼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그 세상의 진실을 가리키고, 장님은 불확실한 우리의 지식 세계(관념 세계)를 상징한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서 알고자 한다. 당연하지 않은가? 알아야 면장을 하지 않겠는가.
※ 원래는, “알아야 면면장(免面牆)을 한다”로, 알지 못하면 담벼락을 마주 대한 것처럼 답답한 상태일 수밖에 없으니, 그런 상태를 면하려면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논어>에서 공자가 한 얘기.
상식으로 알든, 신념으로 알든, 과학으로 알든, 알아야 하는 게 우리의 숙명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현재에 와선 그나마 가장 확실하게 알려준다고 믿는 과학은, 관찰과 실험과 논리로 무장했습니다.
그런데 실험과 논리도 관찰 없이는 실행이 불가능합니다. 과학의 출발이 관찰이란 겁니다.
그 관찰의 불확실성을 나타낸 것이 위의 코끼리와 장님의 비유입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우리는 관찰(observe)을 버릴 수 없기에, 열심히 팩트 체크를 하고 있습니다. 관찰의 대상이 바로 팩트(fact)이기 때문이죠.
2. 두 개의 관찰과 순서의 의미
"비가 왔다"와 "땅이 젖었다"라는 두 개의 관찰(판단)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순서를 정합니다. '올바른 순서'를!
1) "비가 와서 땅이 젖었다"는 타당한(valid) 순서의 논리입니다.
2) "땅이 젖어서 비가 왔다"는 부당한(invalid) 순서(추리)입니다.
올바른 순서가 아니면, '인과의 역전'이 일어납니다. 즉, 원인이 결과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아니라, 결과로서 원인을 설명하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 인과역전의 오류(reversal of cause and effect)에 관한 사례 둘.
1) 경찰이 관찰해 온 바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과격하고 폭력적인 쟁의 투쟁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전민련의 인사가 있었다. 따라서 경찰은 전민련이야말로 과격하고 폭력적인 노동자 시위의 진원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불법적인 노동쟁의를 없애기 위해서는 전민련을 해체하고 그 주요인물들을 모두 구속해야만 한다.
2) "안경 쓴 거지 없다"는 말이 있지 않니. 그러니 너도 호주머니에서 먼지만 날리는 신세를 면하려거든 안경을 구해봐라.
3. 표창장 하나에 대한 서로 다른 두 개의 기소
1) 첫 번째 기소 (2019.09.06 24시경)
'시간의 역류'에 의한 인과적 역전(reversal)의 사건들
1> 9월 6일 22:50
"처가 기소되는데 이런 분이 법무부장관이 되겠나. 상식적으로 생각하자." (여상규 법사위원장)
2>
"정경심 교수 연구실에서 표창장 파일이 나왔다"는 SBS [단독] 보도 (9월 7일)
표창장 파일이 들어 있던 강사휴게실 PC를 임의제출 형식으로 검찰이 확보. (9월 11일) (p.204)
2) 두 번째 기소
표창장 위조의 수단과 방법만 바꿔서, 또 다른 기소. (9월 7일 SBS보도 이후)
3) 이후의 결과
첫 번째 기소, "무죄"!
두 번째 기소, 입시비리 혐의에 대한 1심 유죄!
검사 7년 구형, 판사 4년 실형 및 법정구속(괘씸죄)
(2020.12.23 임정엽 김선희 권성수)
현재 2심 진행 중으로, 무려 7개월 째 구속 상태에서 진행 중!
4. 추가적 문제 요인들
1) 표창장이 '재발급'되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위조'라고 주장한 동양대 관계자.
2) SBS의 '예언적' 기사보도.
3) 기소도 되기 전에 기소를 기정사실로 언급한 여상규(선지자?).
4) 헌법으로 보장된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를 방해하고 저지한 검찰의 직권남용과 권한남용의 죄와 처벌.
5) 국회청문회 과정을 무효화, 무력화시킨 검찰의 직권남용과 권한남용에 대한 죄와 처벌.
※ 4)와 5)에 있어서, 청문회 당일에 있었던 1차 기소가 무죄로 판명났으므로, 죄가 성립됨!
6) "검찰의 수사는 그 시기 방법 의도에서 모두 정치적이었다." (정연주, p.206)
7) 검찰의 이런 전대미문의 정치적 판단과 정치적 행위는 단순히 지탄의 대상으로만 끝내서는 안 될 일! 당연한 처벌과 응징이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