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에트하난
지식의 통합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항상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모쉐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해방된 시점부터의 역사를 계속해서 되짚어 보며, 그들에게 토라를 받아들이고 충실히 따를 것을 거듭 간청합니다
그 선함과 지혜를 강조합니다. 모쉐는 백성들에게 토라를 주신 유일하신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신이나 세력도 숭배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이어 모쉐는 십계명을 다시 한번 상기시킵니다. 우리가 ‘쉐마’의 첫 번째 단락으로 알고 있는 이 구절은, 모쉐 자신이 더 이상 그들을 인도하거나 가르칠 수 없게 될 땅에 들어간 후에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라고 백성들에게 권면하는 모쉐의 말씀의 일부를 이루고 있습니다.
“오늘 이 사실을 명심하고 마음에 새기라. 아도나이가 하늘 위와 땅 아래의 하나님이시니, 그분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 (신명기 4:39)
모쉐는 백성들에게 해방과 계시의 경험을 잊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긴 설교를 전하며, 이스라엘 땅에 들어가면 우상 숭배에 빠질 수도 있다고 경고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어 특별한 백성으로 삼으신 것처럼, 다시 그들을 받아주실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모쉐는 백성들에게 시나이 산에서 토라가 주어진 일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항상 마음에 새기라고 촉구합니다.
모쉐의 설교에서 핵심은 꽤 명료해 보입니다. 바로 ‘그 땅에 정착한 후에도 너희를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의 구절은 기본적인 요점을 강조하기 위해 불필요한 표현을 덧붙인 단순한 수사적 기법일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이 사실을 알라”와 “마음에 새기라”는 말 사이에 실질적인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이 두 표현은 기본적으로 같은 의미, 즉 하나님의 존재와 권위, 그리고 가르침에 대한 꾸준한 인식을 뜻할 수 있습니다.
다음 구절인 “하늘 위와 땅 아래” 역시 서로를 보완하며 강화하는 이미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성경 수사학과 시학 전문가들은 이를 “병렬법”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두 개의 병렬적이거나 유사한 이미지가 수사적 요점을 강화하지만, 그 자체로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의미를 지니지는 않는다는 개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반면, 전통적인 랍비 성경 주석가들은 종종 더 폭넓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본문을 해석하기를 좋아하며, 겉보기에는 불필요해 보이는 각 단어에서 새롭고 추가적인 의미를 찾아내곤 합니다.
따라서 19세기 무사르(윤리적 수양) 가르침의 거장인 살란트의 랍비 이스라엘 리프킨[일반적으로 R. 이스라엘 살란터로 알려져 있음]은 “오늘 이 사실을 알라”와 “마음에 새기라”를 하나의 과정 속 두 가지 다른 단계로 봅니다:
“단순히 “알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숭고한 지식은 네 마음 깊은 곳에 새겨져야 하며, 그래야만 네 의지와 미덕이 모두 네가 아는 바에 따라 작용할 수 있다. 이 과업이야말로 유대인의 모든 신앙 생활을 구성한다. [무언가를] “아는 것”과 “마음에 새기는 것” 사이에는 지식과 무지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큰 간극이 있다.“
(”이투레이 토“)에서 히브리어로 인용됨; 이 번역은 영어판 『웰스프링스 오브 토라』를 수정하여 작성함)
R. 살란터는 여기서 중요한 구분을 제시합니다. 즉, 우리가 지적으로만 알고 있는 것은 실제로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 있으며, 행동의 변화는 마음과 가슴, 영혼이 더 통합된 ‘알음’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쁜 습관을 가진 사람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머릿속으로는 자신의 습관이 자멸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변화하고자 하는 열망을 감정적으로 진정으로 내면화하기 전까지는 그 습관을 멈출 수 없습니다. R. 살란터는 영적 삶에 대해서도 같은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떤 것을 순전히 추상적이거나 지적으로 알 수 있지만, 진정한 도전은 언제나 우리의 영적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더 깊고 전체적인 영성입니다. 단순히 무언가를 믿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높은 진정성을 가지고 행동하며, 자신의 이상에 따라 자연스럽게 처신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위대한 설교자이자 민권 운동 지도자인 마틴 루터 킹 박사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입으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삶으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장 위험한 무신론은 이론적 무신론이 아니라 실천적 무신론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입으로만 하나님을 찬양할 뿐, 삶으로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한밤중의 노크: 마틴 루터 킹의 위대한 설교들』, 15쪽)
저는 특히 킹 박사의 “실천적 무신론”이라는 개념에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이는 제게 R. 살란트가 말하는 바와 매우 유사해 보입니다. 즉, 종교적 지식이 좋은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종교적인 삶을 사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19세기 여러 랍비들에게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는 잘 알려진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그 내용은 자신이 탈무드를 여러 번 읽었다고 자랑하는 한 남자에 관한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좋소,” 랍비가 그 남자에게 대답합니다. “하지만 탈무드가 당신을 몇 번이나 훑어보았소(but how many times has the Talmud been through you)?”
이성, 마음, 영혼의 온전함과 통합을 추구하는 것 — 이것이 바로 유대인의 “온전한 예배”입니다.
By Rabbi Neal J. Loevinger (rabbi of Temple Beth-El in Poughkeepsie, 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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