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놋기둥과 놋바닥
왕상 7:13-26
13 솔로몬 왕이 사람을 보내어 히람을 두로에서 데려오니
14 그는 납달리 지파 과부의 아들이요 그의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니 놋쇠 대장장이라 이 히람은 모든 놋 일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구비한 자이더니 솔로몬 왕에게 와서 그 모든 공사를 하니라
15 그가 놋기둥 둘을 만들었으니 그 높이는 각각 십팔 규빗이라 각각 십이 규빗 되는 줄을 두를 만하며
16 또 놋을 녹여 부어서 기둥 머리를 만들어 기둥 꼭대기에 두었으니 한쪽 머리의 높이도 다섯 규빗이요 다른쪽 머리의 높이도 다섯 규빗이며
17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를 위하여 바둑판 모양으로 얽은 그물과 사슬 모양으로 땋은 것을 만들었으니 이 머리에 일곱이요 저 머리에 일곱이라
18 기둥을 이렇게 만들었고 또 두 줄 석류를 한 그물 위에 둘러 만들어서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에 두르게 하였고 다른 기둥 머리에도 그렇게 하였으며
19 주랑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의 네 규빗은 백합화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20 이 두 기둥 머리에 있는 그물 곁 곧 그 머리의 공 같이 둥근 곳으로 돌아가며 각기 석류 이백 개가 줄을 지었더라
21 이 두 기둥을 성전의 주랑 앞에 세우되 오른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1)야긴이라 하고 왼쪽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
22 그 두 기둥 꼭대기에는 백합화 형상이 있더라 두 기둥의 공사가 끝나니라
23 또 바다를 부어 만들었으니 그 직경이 십 규빗이요 그 모양이 둥글며 그 높이는 다섯 규빗이요 주위는 삼십 규빗 줄을 두를 만하며
24 그 가장자리 아래에는 돌아가며 박이 있는데 매 규빗에 열 개씩 있어서 바다 주위에 둘렸으니 그 박은 바다를 부어 만들 때에 두 줄로 부어 만들었으며
25 그 바다를 소 열두 마리가 받쳤으니 셋은 북쪽을 향하였고 셋은 서쪽을 향하였고 셋은 남쪽을 향하였고 셋은 동쪽을 향하였으며 바다를 그 위에 놓았고 소의 뒤는 다 안으로 두었으며
26 바다의 두께는 한 손 너비만 하고 그것의 가는 백합화의 양식으로 잔 가와 같이 만들었으니 그 바다에는 이천 밧을 담겠더라
왕상 7:13-26 / [주물공 히람] 솔로몬왕은 베니게의 두로에서 히람이라는 주물공을 데려왔다. 14) 그는 납달리 지파의 어떤 과부가 두로 사람과 재혼하여 낳은 주물공이었다. 본래 그의 아버지는 놋세공 기술이 뛰어난 사람이었는데 히람 역시 아버지의 손재주를 이어받은 훌륭한 기술자였다. 이런 히람이 솔로몬왕의 초청으로 와서 성전에 필요한 온갖 물건을 놋쇠로 만들었다. 15) [성전 앞의 놋기둥 두개] 히람은 놋쇠를 녹여 성전 앞에 세울 기둥 두 개를 만들었다. 각각 높이는 8미터였고, 둘레는 5.5미터였다. 원통 모양의 기둥 속은 텅 비었고, 기둥 놋쇠의 두께는 손바닥 폭만큼으로 약 8센티미터였다. 16) 두 기둥의 꼭대기에는 높이가 각각 2.3미터나 되는 기둥머리를 놋쇠로 만들어 장식해 놓았다. 이것의 둘레는 5.4미터나 되는 것으로 역시 속이 비도록 놋물을 부어 만들어서 기둥 꼭대기에 올려놓은 것이었다. 17) 기둥머리에는 구리철사를 그물 모양으로 얽어 만든 사슬을 달아 늘어뜨렸는데 기둥머리마다 일곱 개씩 달아놓았다. 18) 그리고 사슬 그물마다 놋으로 만든 석류들을 두 줄씩 매달아 놓았다. 두 기둥머리의 그물에 똑같이 놋쇠 석류로 장식해 놓았다. 이것은 석류씨가 많은 것처럼 풍년이 들고 자녀가 번창하기를 비는 상징이었다. 19) 이 두 기둥머리의 모양은 나리의 꽃봉오리 같았고 그 높이가 1.8미터나 되었다. 20) 석류가 매달린 자리는 기둥머리의 배처럼 불쑥 튀어나온 곳으로서 한 기둥머리에 200개씩 빙 돌아가며 달려 있었다. 21) 솔로몬이 이 두 기둥을 세운 곳은 바로 성전의 문간방 앞이었다. 솔로몬은 오른편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 이름을 야긴이라고 붙였다. 야긴은 `여호와께서 세우신다!'라는 뜻이다. 그는 또 왼편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 이름을 보아스라고 붙였다. 보아스는 `능력이 그분에게 있다.!'라는 뜻이다. 이 두 이름은 성전을 세워 주시고 지켜 주시는 분이 여호와이심을 나타낸다. 22) 성전 앞의 두 기둥이 이렇게 완성되었다. 23) [큰 놋쇠 물통] 히람은 또 구리를 녹여 부어서 거대한 물통을 만들었다. 사발 모양의 이 물통은 바다같이 많은 물을 담는다는 뜻에서 `놋바다'라고 불렸다. 이 놋바다의 벽두께는 손바닥너비인 8센티미터 정도였고, 이 두께를 뺀 놋바다 자체의 지름만도 4.5미터나 되고, 외벽의 둘레는 13.5미터요, 높이는 2.3미터였다. 24) 그 가장자리 아래에는 바깥으로 돌아가면서 두 줄로 호리병나무가 장식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물통과 함께 놋쇠를 부어서 만든 정교한 장식이었다. 이 호리병은 4.5센티미터마다에 하나씩 장식되어 있어서 두 줄 모두를 합하면 600개의 호리병이 되었다. 25) 이 놋바다는 열두 마리의 놋소 위에 얹혀 있었는데 놋소들은 세 마리씩 짝을 지어 고개를 들고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꼬리는 모두 안을 향하고 있었다. 26) 이 놋바다의 가장자리는 잔의 테나 나리의 꽃잎처럼 바깥으로 둥글게 굽어져 있었다. 놋쇠 두께가 8센티미터쯤 되는 이 통에 드는 물은 약 4만 4천 리터였다.
솔로몬은 궁전 건축을 마친 후 성전의 기구들을 제작하기 위하여 두로 왕 후람이 선발하여 보낸(대하 2:11-14) 히람을 고용하여 성전에 필요한 기구들을 만들도록 합니다.
놋쇠 장인 히람(13-14) 성전 건물 안 곧 성소와 지성소에 사용되는 기구들은 모두 금으로 만들어졌지만, 바깥, 곧 안뜰에 위치한 모든 기구들은 놋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놋은 광야에서 높이 들려졌던 놋뱀(민 21:9)처럼 죄악된 인간과 함께 하시고, 인간이 갖고 있는 고통과 슬픔을 몸소 체휼하신 그리스도의 성품을 상징하는 것입니다(히 4:15). 이 일을 위하여 당시 장인으로 놋쇠를 다루는 일에 뛰어난 지혜와 전문 기술을 가지고 있는 히람(대하 2:13; 4:11)을 성전 기둥을 만드는 최고의 적임자로 세워서 만들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는 것은 나라와 민족의 차별 없이 혈통과 신분을 초월하여 무슨 일이든 준비된 자를 들어 사용하십니다.
놋기둥(15-22) 히람은 주랑 우편에 야긴과 보아스로 불리는 두 놋기둥을 만들었습니다. 이 놋기둥들은 각각 높이가 18규빗, 둘레가 12규빗, 꼭대기에는 각각 높이가 5규빗이 되는 한 기둥머리를 석류로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성전 입구에 세워진 이 두 기둥은 단순한 기둥이 아니라, 광야 성막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표현된 것처럼(출 40:34-38)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신 신약의 교회와 성도들도 언제나 하나님께서 늘 보호하시고 지켜주시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음부의 권세가 그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마 16:18; 요일 5:18).
놋바다(23-26) 성전에 사용된 놋기명 중에 성막의 물두멍에 해당되는 놋바다는 놋을 부어 만든 대야 같은 것입니다. 그 규모는 직경 10규빗, 높이 5규빗, 둘레 30규빗이 되는 둥근 모양의 물탱크로 그 넓이가 크기 때문에 놋바다로 불렀습니다. 이 놋바다는 동서남북으로 세 마리씩 바깥쪽을 바라보고 있는 12마리의 놋소위에 올려 진 것으로 두께가 한손 넓이만하고 물의 용량은 2,000밧(44㎘)이 됩니다. 그리고 이 놋바다는 성전의 남동쪽에 배치시켜 제사장들이 자신의 몸을 씻는데 사용하였는데(39; 대하 4:6), 이것은 하나님께 봉사하는 자들이 불결한 몸으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에는 반드시 씻는 과정(죄 씻음)이 있어야 하며, 그 작업을 할 수 있는 놋바다는 십자가에서 대속의 사건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적용: 하나님께서는 히람처럼 출신성분에 상관없이 준비된 자를 사용하십니다. 당신은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어떤 것으로 준비되어 있습니까?
사람의 인생마저 괴롭히는 ‘고질병’에 점 하나 찍으면 ‘고칠병’이 됩니다. 연약하고 작은 마음(心)에 굳건하고 당당한 신념의 막대기 하나만 꽂으면 무엇이든 반드시(必)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시도해 보지도 않고 불가능(Impossible)하다고 여기는 일이라도 점 하나를 찍으면 ‘나는 할 수 있습니다.’(I'm possible)가 됩니다. 부정적인 것에 찍는 긍정의 점은 다른 곳이 아닌 당신의 마음에 있습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그 하나의 획은 바로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불가능한 것도 한 순간에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 설 교 >
야긴과 보아스
열왕기상 7:13-22 / 박상희 목사
사람들은 좋은 일이 있거나 기념할 일이 있으면 무엇인가를 만듭니다. 옛날에 나라에 충성하고, 큰 공을 세우면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남편을 잘 섬기면 열녀비를 새웠고, 부모에게 효도를 잘해도 효자비를 세웠습니다. 요즘은 주로 기념물, 모누먼트를 세웁니다. 한국의 올림픽 공원에 가면 88년에 열렸던 서울 올림픽을 기념하여 기념탑을 세워 놓았습니다. 미국에도 그런 기념물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에는 무슨 메모리알 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건물, 공원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기념물들은 과거의 일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고, 그 일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를 깨닫게 해 주지요. 성경에도 비슷한 일들이 나타납니다. 사무엘의 시대에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전쟁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블레셋을 물리치지요. 그래서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을 세우고 에벤에셀이라고 부릅니다. 에벤에셀은 '도움의 돌' 이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 라는 사실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입니다. 그렇다고 꼭 좋은 일만 기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리고성 싸움에서 이긴 이스라엘은 아이성 싸움에서 크게 집니다. 바로 아간이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금과 은, 그리고 외투를 훔쳤는데, 이 한사람의 잘못 때문에 이스라엘은 진 것입니다. 그래서 아간은 끌려나와 돌에 맞아 죽습니다. 그 시체 위에는 돌 무더기가 크게 쌓였고, 그곳을 아골골짜기라고 불렀다는 내용이 여호수아 7장에 나타납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인가를 세우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도 비슷한 일이 나옵니다. 솔로몬왕은 하나님의 성전과 자신의 궁전을 짓습니다. 성전은 원래 아버지 다윗이 지으려고 했었으나, 하나님이 허락치 않아서 아들 솔로몬이 짓게 되었지요. 7년에 걸쳐 성전이 지어지고, 궁전을 짓는데는 13년이 걸렷습니다. 사람들은 성전은 7년, 왕궁은 13년이 걸렸으니, 성전보다 자신이 살 궁전을 짓는데 더 신경을 쓴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성전건축에 너무나 많은 힘을 기우렸기 때문에 궁전을 지을 때에는 인적, 물적 자원이 부족하여 긴 시간이 걸린 것이고, 궁전은 성전에 비해 여러 가지 쓸 용도가 많이 때문에 공사가 어려웠고, 오랜 세월이 걸린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성전과 궁전 건축이 끝남으로 이스라엘은 진정한 신정국가로써 그 모습을 갖추게 되지요. 성전건축이 거의 마무리되자 솔로몬왕은 두로지방에서 히람이라는 사람을 불러 옵니다. 그는 놋을 다루는데 지혜와 총명과 재능이 있는 사람으로 성전의 여러 장식과 성전의 기구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가 제일 처음 한 일이 본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바로 성전의 낭실, 낭실은 현관을 말하는데, 그 앞에 두 개의 놋기둥을 세운 것입니다. 높이가 18큐빗, 둘레가 12큐빗이라고 1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큐빗은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까지의 거리를 말하는 것으로 약 45cm로, 17인치입니다. 그러므로 높이는 8m, 90야드, 둘레는 5m, 60야드가 되는 셈이지요. 얼핏 생각하면 기둥은 길고 높은 것이 보통인데, 이 기둥은 높지도 않고, 굵은 모양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둥은 지붕을 받치는 기둥이 아니고, 낭실 앞에 세운 기념물로 보는 것이 올바를 것같습니다. 성전건축을 하고, 왜 두 개의 놋기둥을 세웠을까요? 그 이유는 놋기둥의 이름에서 찾아집니다. 놋기둥에는 야긴 '그가 세우신다' 와 보아스 '그에게 능력이 있다' 라는 이름이 붙혀졌습니다. 그 의미를 한번 알아보지요.
먼저 야긴 '그가 세우신다' 라는 뜻을 알아보지요. 말 그대로 성전을 하나님께서 세우신다 라는 뜻이 됩니다. 성경에 보면 세운다 라는 말이 자주 나타나는데, 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에 대해서 말씀할 때 쓰여지는 말입니다. 열왕기상 2장 24절 "나를 세워 내 부친 다윗의 위에 오르게 하시고 허락하신 말씀대로 나를 위하여 집을 세우신 여호와의 사심을 가르켜 맹세하오니" 라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솔로몬왕을 세워 주신 것을 말씀하듯, 솔로몬은 자신이 지은 성전이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의미로 야긴이라는 놋기둥을 세운 것입니다. 물론 성전은 사람들이 세웠지요. 아버지 다윗왕은 성전을 짓기 위해 수많은 금과 은, 레바논의 백향목을 준비했고,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수고로 성전이 세워졌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없이 전혀 불가능한 것입니다. 시편 127편 1절 상반절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라는 말씀과 같이 사람이 아무리 애쓰고 노력을 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이스라엘왕국, 하나님의 성전은 건축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성전건축을 마치고, 놋기둥을 세우고 야긴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야긴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그들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졌다고 말하기 보다는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이루었다고 착각에 빠집니다. 자신들을 자랑합니다. 노아의 후손들 중 일부가 시날 평지에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탑을 쌓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건축을 하는 좋은 기술을 가졌습니다. 기껏 돌로나 집을 지을 그 때에 벽돌을 만들줄 알았으며, 진흙대신에 역청을 쓸줄도 알았습니다. 그들은 그 기술로 자신들의 이름을 내려고 탑을 높이 쌓기 시작합니다. 바벨의 탑을 세운 것입니다. 그 탑이 온전히 세워지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말이 달라졌고 더 이상 탑을 쌓을 수 없게 됩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살게 되지요.
요즘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광우병 소식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소에게 풀이나 곡식을 먹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욕심을 내어 보다 빨리, 보다 크게 자라게 하려고 소가 먹어서는 안될 고기를 먹였습니다. 전혀 쓸데 없는 죽은 병아리, 가축의 내장 같은 것으로 사료를 만들어 소에게 먹인 것입니다. 소는 빨리 잘 자랐습니다. 그러나 소가 미쳐 버렸습니다. 그냥 쓰러져 죽어 버립니다. 또한 그 병이 사람에게 옮겨집니다. 사람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사람이 저지른 죄 때문에 생긴 일이니 사람들이 벌을 받아야 합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대로 살아야 함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시지 않으면 모든 것은 헛된 것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일을 자신이 한 것이라고 자신이 하나님 대신에 영광을 받으려고 합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사울왕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택해 주셔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고, 모든 것을 자신의 마음대로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왕으로, 이스라엘 왕국을 견고하게 세워주심을 깨닫지 않고 모든 것이 자기가 잘나서 된 것 같이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니 망하는 일밖에 남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우리 자신도, 우리의 가정도, 우리의 교회도, 우리 나라도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할 일은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찬양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보아스 '그에게 능력이 있다' 라는 뜻을 알아보지요. 야긴은 하나님이 세우셨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라는 고백과 찬양의 뜻이 있지만, 보아스는 솔로몬의 신앙과 기원이 들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성전이 영원토록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견고하게 보호해 달라는 간절한 기원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성전이 누구의 힘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겠습니까? 솔로몬왕의 힘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의 능력입니까?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로 되는 일이 아니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켜주십시오 라는 바램으로 솔로몬은 보아스라는 놋기둥을 세운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간절히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할 때에는 그들이 평안했고, 번성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평안해지면 자신들의 능력이나 우상의 힘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하나님의 능력 밖으로 쫒겨 납니다. 고통과 환란을 당합니다. 그러기에 호세아 선지자는 호세아서 10장 1절에서 "이스라엘은 열매를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아름다울수록 주상을 아름답게하도다" 라고 이스라엘에 평강과 번영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어리석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사사시대에도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나라가 편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우상을 섬깁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벌을 내리십니다. 이방민족에게 고통을 당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사사를 보내주시고 이스라엘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옵니다. 그러면 그들은 다시 죄에 빠집니다. 이렇게 역사는 계속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어느 학교에서 선생님이 어린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만일 내가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을 때, 누구와 엘리베이터 안에 있기를 제일 원하느냐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답이 나오겠지요. 어느 소녀가 이런 답을 합니다. "나는 엘리베이터 기술자와 같이 있으면 좋겠어요" 정답이지요. 따지고 보면 우리가 사는 이 땅덩어리도 엘리베이터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 땅덩어리 안에 같혀 있는 것이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달려가는 이 위험한 지구, 엘리베이터와 다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은 누구와 같이 있고 싶습니까? 돈이면 되겠습니까? 아니면 힘이면 되겠습니까? 그런 것으로는 안되지요. 오직 한분 하나님, 그분만이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것이 그의 힘때문이었습니까? 아니면 그가 무서운 무기를 가졌기 때문이었습니까?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 믿고 나갔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강한 여리고성을 무슨 능력을 무너뜨릴 수 있었겠습니까? 잘 훈련이 된 군대가 있었습니까? 아주 특별한 전술이 있었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으로 그 강한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그 사실을 믿은 솔로몬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지켜주옵소서 라고 보아스를 세운 것입니다.
솔로몬은 성전 앞에 야긴과 보아스를 세웠습니다. 어느 신학자는 두 개의 놋기둥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상징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하여 광야 땅에 들어 갑니다. 낮에는 뜨거운 사막의 열기와 햇빛을 참을 수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셨습니다. 밤에는 사막의 날씨가 춥고, 어두움이 깔립니다.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불기둥으로 지켜 주셨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것이고, 야긴과 보아스도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것이라는 주장 그럴듯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더욱 확실한 설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살아 게셔서 온 우주를 주관하십니다. 바로 그 사실에 대한 믿음이 야긴과 보아스인 것입니다. 야긴 '그가 세우신다' 라는 말은 하나님이 온 우주를 창조하셨다 라는 뜻이고, 보아스 '그에게 능력이 있다' 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온 우주가 운행된다 라는 뜻입니다. 다시말하면 야긴과 보아스는 하나님의 창조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다는 신앙의 표현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3절 "나는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라는 말씀과 같이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것임을 고백하는 야긴과 보아스인 것입니다. 솔로몬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드나들면서 야긴과 보아스를 볼 때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세우셨다 라는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왕국을 영원토록 지켜주옵소서 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삶, 여러분의 믿음 속에도 야긴과 보아스가 세워지고 있습니까? 혹시 야긴의 자리에 내가 세웠다, 보아스의 자리에 내 능력이다 라는 바벨의 기둥이 세워져 있는 것은 아닌가요? 요즘 보면 이상한 일이 많이 생깁니다. 그전에는 자신이 크리스찬인지 밝히거나, 사람들이 보는 자리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경우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운동선수가 경기에 이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세상 노래를 하는 가수가 무슨 상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미스 코리아를 뽑는 자리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집니다. 여기저기에 야긴과 보아스가 세워집니다. 참으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들이 돌리는 영광, 그들이 세운 야긴과 보아스가 가짜가 있다는 것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한국에는 기독교 인구가 1000만명에 달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장사속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척하고, 자신이 크리스찬임을 알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히 야긴과 보아스가 될 수 없지요.
그 이유 때문에 솔로몬왕은 야긴과 보아스를 세우고, 그곳에 장식을 합니다. 그저 보기 좋으라고 장식을 한 것이 아니고, 뜻을 가지고 장식을 했습니다. 놋기둥의 꼭대기에는 석류를 놋기둥의 머리에는 백합으로 장식을 했습니다. 본문을 보면 그 장식의 모양을 설명하고 있지만, 그 모양이 어떤지 확실히 알 수가 없습니다. 어찌보면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장식이 바로 백합과 석류라는 사실입니다. 백합은 순결을 상징합니다. 깨끗함과 순수함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하는 꽃으로 부활절에는 교회에 백합으로 장식을 하지요. 솔로몬은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이 그렇게 깨끗하고 순결하라는 바램으로 야긴과 보아스를 백합으로 장식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적당하게 신앙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얼마든지 크리스찬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세상적인 뜻이 조금이라도 숨어 있다면, 그것은 헛것이요,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없습니다. 백합으로 장식된 야긴과 보아스, 순수함과 순결함으로 가지는 믿음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인 것입니다.
석류는 진실됨을 상징합니다. 석류의 껍질을 보십시오. 모양이 그렇게 아름답지 못합니다. 그러나 석류의 안에는 그 빨간 알들이 생명을 가지고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석류는 진실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들의 믿음이 진실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석류로 야긴과 보아스를 장식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거짓이 있습니까? 얼마나 남에게 보이고자 하는 외식이 있습니까? 우리의 신앙에도 그런 면이 있는 것같습니다. 남에게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해, 남에게 보이기 위해, 남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그럴듯하게 장식하는 그런 신앙은 올바른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석류와 같이 안에 꽉 찬 신앙,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아 주십니다. 또한 백합은 얼마나 향기가 좋습니까? 이것은 우리의 신앙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신앙이 되어야 함을 나타냅니다. 석류는 많은 열매가 숨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자로써 열매맺는 삶을 살아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이유 때문에 야긴과 보아스에 백합과 석류로 장식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여러분의 신앙에 어떤 야긴과 보아스를 세우렵니까? 좀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어느 사람을 한사람 소개합니다. 17세기 독일에 살았던 베네딕트 카르초프라는 사람으로 그는 1620년부터 1666년까지 46년간에나 라이프치히 고등 재판소의 소장을 지낸 사람입니다. 그 기간동안 절도, 사기, 각종 죄를 저지른 사람을 수만명이나 사형을 시켰다고 합니다. 조금의 자비도, 사랑도, 눈물도 없었던 그는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매주일 아침이면 빠짐없이 얼굴에 미소를 짓고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또 일생동안 성경을 50번이나 읽었다고 자랑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가 죽었습니다. 그는 건강했었는데, 갑자기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 때문에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은 것입니다. 그 충격적인 일이 무엇인줄 압니까? 바로 자신이 기르던 애완견을 죽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서는 아무런 가책이나 슬픔을 가지지 않았는데, 기껏 자신의 개가 죽으니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죽은 것입니다.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는 것, 성경을 많이 읽고 잘 아는 것, 그것은 신앙에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순결함과 진실됨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카르초프는 사람이었으나 진정한 사람이 되지 못했고, 교회에 나녔으나 진실된 크리스찬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2008년 첫 번째 주일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를 "야긴과 보아스" 로 정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정한 것입니다. 야긴과 보아스는 우리의 찬양이요,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보통 야긴과 보아스를 솔로몬이 지은 성전의 기둥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야긴과 보아스와 같이 하나님의 전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자 라는 다짐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야긴과 보아스는 지붕을 받치는 기둥이 아닙니다. 낭실, 현관 앞에 세운 기념물입니다. 성전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언제나 보면서 마음 속에 그 의미를 새기라는 뜻으로 기둥을 세운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에는 어떤 기념물을 세우렵니까? "그가 세우신다" 라는 야긴과 "그에게 능력이 있다" 라는 보아스를 세워야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세우신다 라는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내 삶을 누가 세워줍니까? 우리의 가정, 생업을 누가 세워줍니까? 우리의 교회를누가 세워줍니까?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야긴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또한 모든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고, 그의 능력을 사모하며, 간구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의 능력으로 살아갑니까? 누구의 능력으로 우리의 가정과 생업이 보호받을 수 있습니까? 누구의 능력으로 우리 교회가 부흥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보아스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솔로몬은 야긴과 보아스의 두 가둥 위에 백합과 석류로 장식을 했습니다. 순결함과 진실됨을 상징하는 백합과 석류를 장식한 것이지요. 우리의 찬양과 고백이, 우리의 기도와 간구가 순결해야 하고, 진실되어야 함을 뜻합니다. 2008년을 시작합니다. 올 1년 언제나 하나님께서 세우신다 라는 찬양을 드리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능력이 있다 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기 바랍니다. 우리 자신에, 우리 가정에, 우리 생업에, 우리 교회에, 이 나라에 야긴과 보아스가 세워질 때 진정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모두에게 임할 것입니다. 말씀을 찾아 읽지요. 히브리서 3장 14절입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올해를 시작하며 가진 이 결단을 끝까지 지켜서 예수님과 동업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 속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2019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