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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펜더(딴지일보 펌)
지난 토요일(24일) 늦은 시각, 로스토프나도누 기지로 떠날 준비를 하는 바그너 그룹 용병들
출처 - <AP통신>
지난 24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치르는 동안 러시아군의 주력 병력으로 분류됐던 ‘바그너 그룹’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자세한 내막은 더 밝혀져야 알겠지만, 전선에서 싸우고 있던 병력이 러시아 수도인 모스크바로 진격했다는 건 그 자체로 ‘반란’이다. 이걸 단순히 쿠데타, 반란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동안 예브게나 프리고진의 행보나 바그너 그룹의 움직임을 본다면, 바그너 그룹은 이미 예브게나 프리고진의 사병이나 다름이 없다. 즉, 프리고진은 ‘군벌’이 됐다.
군벌이 된 프리고진은 2022년부터(전쟁 개시 이후부터) 본격적인 ‘대외활동’을 시작했다. 이전까지 바그너 그룹에 대한 정보는 (파병 나간 곳에서 사고를 치다) 가끔 흘렀지만, 대부분이,
“바그너 그룹이 또 사고 쳤다고? 이놈들 완전 범죄 조직 아냐?”
“전과자들을 잔뜩 모아 놨으니, 범죄조직이 맞지.”
“그냥 범죄 집단으로 등록시켜 버려!”
정도였다. 전쟁하라고 보내 놨더니 살인, 강간, 약탈을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하고 다녀, 바그너 그룹에 ‘막장 집단’이란 이미지가 각인 됐다. 원래 이런 PMC(Private Military Company : 민간 군사 기업)는 업체 내부 정보 공개를 꺼리고(사람을 죽이는 일이지 않은가? 이후의 사회생활이나 개인 신변 보호차원에서도 정보 비공개가 필요하다), 그나마 공개되는 정보도 반 이상은 업체 홍보를 위한 것들이다.
그런데 2022년부터 프리고진은 대놓고 얼굴을 드러냈다. 여기서 끝나는 정도면 그냥저냥,
“직원(?!)들 사기 진작 차원에서 그러는구나?”
하고 이해하겠는데, 언론이나 SNS에 공개된 그의 발언에선 명확한 그의 ‘목표’가 드러났다.
러시아군의 로켓 공격으로 바그너 그룹 요원들이 사망했다고 주장한 프리고진. 러시아 고위급 인사 쇼이구와 게라시모프를 비판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출처 - <가디언즈>
러시아 국방부와 결정권자들. 예를 들어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나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국방부 차관이기도 한 그는 러시아 현역 군인 중에서 최고위 장성이다)등을 까기 시작했다.
한번 생각해 보자. 한참 전쟁을 치르는 중에, 그동안 잘 싸우던 용병대 대장이 언론에 나와서 최고 지휘관과 국방부 장관을 까기 시작한다는 게 이해가 되는가.
국방부 관계자1: “쟤 뭐하냐? 이번에 입금 안 시켰어?”
국방부 관계자2: “용병은 월급 안 주면 큰일 납니다. 보너스까지 넣은 걸요.”
국방부 관계자1: “근데 왜 저래? 용병 주제에 지휘를 까? 선 씨게 넘네?”
국방부 관계자2: “교통 정리가 한번 필요할 것 같습니다.”
6월 24일까지의 분위기는 이랬다. 이후 실제로 ‘교통 정리’가 들어갔고 지금,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이제 바그너 그룹의 쿠데타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예브게니 프리고진, 그는 누구인가?
2011년, 모스크바 외곽에 위치한 프리고진의 식당을 방문한 푸틴에게 프리고진이 직접 음식을 대접하고 있다.
출처 - <AP통신>
예브게니 빅토로비치 프리고진(Yevgeny Viktorovich Prigozhin)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동네 삼류 양아치가 백 선생이 되었다.”
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인생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살다가, 어머니의 재혼으로 새 아버지를 만난다. 새 아버지 덕분에 잠깐 ‘스포츠(종목은 크로스컨트리) 소년’의 꿈을 키웠지만 일찌감치 재능이 없는 것을 확인. 18세부터 양아치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절도는 기본이고, 사기, 미성년자 매춘 알선(포주 노릇을 했다) 등 동네 양아치로서의 삶에 충실했다. 살인이나 폭행을 일삼는 레드 마피아로서의 싹수는 없었고, 진짜 동네 양아치 같은 짓만 골라 했다. 이 때문에 프리고진은 20대 대부분을 감방에서 보내야 했다. 절도, 사기, 포주 짓으로 10년 가까이 복역하는 건 쉽지 않은 일. 프리고진의 인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사면을 받아 출소한 그는 딱히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돈도 없었다. 고향(상트페테르부르크)에 내려가 길거리 핫도그 장사를 시작한다. 이게 ‘맛집’으로 소문이 났는지 그야말로 대박이 터진다. 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승승장구 그 자체였다. 핫도그를 팔아 번 돈으로 콩코드 케이터링이란 회사를 만든 뒤, 러시아 곳곳에 레스토랑과 음식점을 냈다. 여기서 그의 인생을 뒤바꿀 한 사건이 터진다.
푸틴이 집권하고 얼마 뒤인 2001년,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한다. 이때 푸틴이 자크 시라크를 대접한 곳이 프리고진이 운영하던 ‘뉴 아일랜드’라는 레스토랑이었다. 푸틴은 프리고진의 인생사를 듣더니 한눈에 그가 마음에 들었고(푸틴과 고향도 같았다), 이후부터 확실하게 ‘프리고진 밀어주기’가 시작되었다.
정부 관련 일감이나 군납 일감이 있으면 프리고진 업체에 몰아줬다. 연간 12억 달러 수준의 러시아군 식자재 공급계약이 프리고진에게 떨어졌다. 프리고진은 푸틴 덕분에 조 단위의 이익을 얻게 된다.
바그너 그룹의 시작
러시아 도심 속 바그너 그룹 용병의 모습
출처 - <NBC>
식품, 요식업계에서 승승장구하던 프리고진의 인생이 2013년에 다시 한번 바뀐다. 러시아 군 예비역 중령이자 레드 마피아 출신인 드미트리 웃킨(Dmitry Valerievich Utkin, 스페츠나츠 출신)이 프리고진을 찾았다. 당시 웃킨은 ‘슬라브 군단’이라는 PMC를 운영하고 있었고 프리고진을 살살 꼬드기기 시작했다.
웃킨: “형님, 언제까지 백 선생 노릇할 겁니까? 남자라면 총도 쏘고, 수류탄도 까야 하는 거 아닙니까?”
프리고진: “그건 뭔 소리야?”
웃킨: “제가 용병 짓 해 봐서 아는데, 이게 스트레스도 풀리고, 돈도 되더라 말입니다.”
말 많고, 탈 많은 <바그너 그룹>은 이렇게 시작됐다. 타이밍도 기가 막혔다. 2013년도에 바그너 그룹 설립 이후 ‘일감’이 무지막지하게 몰려들었다.
2014년에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먹어버리면서, 우크라이나와 8년 넘게 전쟁을 치르게 되는데 바로 돈바스 전쟁이다. 우크라이나 안에 있던 ‘친러 지역’에서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우크라이나에서 독립하려 했는데, 이때 러시아의 지원에는 ‘인적 지원’도 포함돼 있었다. 러시아는 현역 군인을 서류상 ‘제대’시킨 뒤에 보내기도 하고, 바그너 그룹을 집어넣기도 했다.
대외적으로 팽창하는 러시아의 행보에 발맞춰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갔다. 러시아가 지원했던 시리아는 물론, 알제리, 리비아, 말리, 수단, 콩고, 마다가스카르, 짐바브웨이 등 아프리카 여기저기를 들쑤셨다. 비슷한 시기, 중국이 아프리카에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애를 썼던 것(‘일대일로’도 하고)처럼 러시아도 아프리카 지역에 공을 들였다.
아프리카는 러시아의 군사 무기를, 러시아는 아프리카의 천연자원을 원했다. 그 결과 교역액은 수직 상승, 여기에 덤으로 군사 지원이 시작된다. 러시아는 아프리카 국가들과 군사협정을 맺은 뒤, 아프리카 대륙에 바그너 그룹을 파견했다.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이 있다. 러시아가 접근했던 대부분 국가가 제국주의 시절 프랑스 식민지국이었기 때문에, 프랑스와 외교적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상황이 꽤 심각했다. 그러나 이런 신경전은 바그너 그룹의 ‘막장 짓’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프리카에 들어간 바그너 그룹은 숨 쉬듯(정확하게는 미친 듯이) 살인, 강간, 약탈을 벌였다. 이들은 범죄 집단과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이 퍼져나갔다. 이들은 아프리카 광산 개발이나 목재 벌목의 권리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해당 국가 정부(주로 독재를 하거나 정통성이 약한)의 정권 유지를 위한 ‘모든 걸’ 해줬다. 해당 정부도 이 부분을 묵인했는데, 바그너의 살인, 강간이 통치 차원에서 ‘유효’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아프리카는 러시아 용병 즉, 바그너 그룹이 장악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덕분에 러시아는 아프리카의 수많은 천연자원을 손쉽게 획득할 수 있었다. 작게는 나무부터 크게는 천연가스나 금광, 다이아몬드까지 수많은 자원이 러시아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그 행동 대장이 바로 바그너 그룹이었다.
러시아 군 지도부를 무너뜨리겠다고 선언하는 프리고진
출처 - <AFP통신>
바그너 그룹의 위상은?
바그너 그룹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약 10% 정도를 차지했다. 개전 초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활동했으며, 러시아군 내에서도 ‘주요 전력’으로 분류될 정도로 활약했다. 세베로도네츠크 전투나 9개월간이나 이어졌던 바흐무트 전투에서도 그들은 큰 역할을 했고 승기를 얻었다.
그들의 만행은 우크라이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에서도 바그너 그룹은 살인, 강간, 약탈을 벌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현재까지 밝혀진 민간인 학살 사건 중 가장 큰 사건이라 불리는 <부차 학살>에도 바그너 그룹이 개입해 있다.
바그너 그룹은 네오나치이며, 이들이 부대 내에 독립적으로 ‘형벌 부대’를 운영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범죄자나 죄수를 포함한 인적 구성 자체에도 문제가 크다. 또한 사담 후세인 시절 이라크에서 ‘대포 밥’이라며, 최전선에 총알받이 군대를 배치해 적의 전력을 소진한 뒤, 정예 병력으로 승부를 보는 것처럼, 바그너 그룹도 초반에 총알받이를 들이미는 전술을 활용하곤 한다. 어떻게 부대를 돌리는지 이제는 느낌이 올 거다.
끊임없이 전쟁 범죄를 일으키는 바그너 그룹. 과연 이들이 러시아 군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어느 정도일까?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러시아 군대를 비난하는 프리고진
출처 - <AP통신>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이야기가 묘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만약,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바그너 그룹과 프리고진은 ‘푸틴의 사병’이라는 타이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프리고진이 전선 시찰을 핑계로 언론에 나와서 푸틴과 러시아 군 지휘부에 쓴소리를 쏟아냈다.
프리고진이 쏟아낸 ‘쓴소리’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면, 그의 말이 전부 헛소리는 아니었다. 현재 러시아 군대를 이끄는 이들 중 누구보다 전선을 많이 시찰했고, 병사의 목소리를 가장 가까이서 들은 이가 프리고진이었기에 그는 현장 이해도가 높았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전쟁에 대한 것이 아닌 ‘정쟁’과 ‘정치’를 생각하고 발언했다.
전쟁 초반에 프리고진은 나름 괜찮은 평을 받았다. 바그너 그룹은 푸틴의 사병으로서 전선에서 활약했고, 돈바스 전역에서의 전투 경험도 있었기에 러시아군보다 더 나은 전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푸틴도 프리고진을 팍팍 밀어주며 분위기가 좋았다.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바그너의 ‘법적 지위’였다.
바그너 그룹은 PMC. 즉, 용병이다.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로 여차하면 손 놓고 쌩 깔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수틀리면 이들은 러시아 국방부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돈을 받고 일하는 용병답게 러시아 군보다 지원을 덜 받는 것이 맞다. 하지만 바그너 그룹은 푸틴의 ‘사병’이라 불리며 정치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모병부터 장비까지 상당한 배려를 받았다.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 교도소에서 병사들을 모집했는데, 이때 프리고진이 건 조건이
“6개월만 버티면 사면 또는 석방시켜주겠다.”
는 것. 죄수를 그냥 데려갈 수 있는 것부터 러시아 정부의 특혜였다. 그렇게 급하게 병력을 모집해 밀어 넣은 곳이 바흐무트였다. 피를 빨아먹는 진공펌프라고 해야 할까? 도네츠크주의 소도시인 바흐무트에서는 9개월 동안 이어진 공방전 동안 양측 합해서 2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나왔다(데려간 죄수 중 살아남은 이들은 거의 없다는 것이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히틀러가 SS와 독일 국방군이란 두 개의 무장 집단을 만들어 놓고, 상호 견제를 시킨 것과 같은 느낌으로, 바그너 그룹과 러시아군은 서로를 견제할 수밖에 없는 포지션이 된다. 툭 까놓고 말해서, 히틀러는 SS라는 사병을, 푸틴은 바그너 그룹이라는 사병을 뒷주머니에 차고 있었다.
반기(反旗)의 조짐
러시아 국방부가 대통령과 국민을 속이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 뒤로 보이는 것이 바그너 그룹의 깃발.
출처 - <월스트릿저널>
프리고진이 사고를 치기 시작했다. 9개월간 이어진 바흐무트 공방전을 치르는 동안 서서히, 그가 ‘딴생각’을 품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아주 강하게 풍긴다. 언제부터인가 전선에 나와서 러시아 군 지휘부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게 러시아에 대한 충성심의 발로인지, 개인적인 야심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푸틴에게는 영 거슬리는 행동이었다. 그의 행동이 조금 이상해졌다는 추정을 할 뿐, 확실한 사건은 없었다.
프리고진이 푸틴의 역린을 건드렸다. 러시아 극우 세력에서 프리고진을 푸틴의 대안으로 거론한 것이다. 높은 확률로 프리고진이 직접 ‘의뢰’를 넣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아주 깊숙이 선을 넘는 일이 터졌다. 러시아 승전 기념일을 전후로, 입을 잘못 털었다.
“그냥 가정인데, 만약 이 할아버지가 완전히 멍청이였다면 어떻게 할 거냐?”
여기서 할아버지는 푸틴이다. 20년 넘게 이어진 푸틴 체제에서 이제껏 단 한 번도 아랫사람이 푸틴을 비판한 적이 없었다. 차르보다 더 차르 같던 이가 푸틴이었고, 그에게 반기를 든 인물들에게는 ‘방사능 홍차’가 날아가는 것이 상식이 된 상황에서 대놓고 푸틴에게 반기를 든 것이었다.
당시 프리고진은 병력과 물자(포탄 보급)에 대한 불만이 컸다. 약속된 물량의 10%밖에 포탄이 보급되지 않았다. 바흐무트 전선의 선봉으로 등 떠밀려 들어가 총알받이를 하고 있는데, 보급 물자까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물론, 여기에는 바그너 그룹에 대한 러시아 군의 견제도 한몫 했다(히틀러 집권 당시, 독일 제3제국의 독일 국방군과 SS가 충돌했던 양상이 러시아에서 반복되고 있다). 여기에 최고 권력자에 대한 비판, 더 나아가 ‘차기’를 염두에 둔 행보(?!)까지 감지되자 푸틴은 정리 수순에 돌입한다.
바흐무트 공방전을 보면서,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떠올랐다. 쉽게 생각했던 전투였는데, 막상 뚜껑을 따보니 치열한 시가전이 이어졌고, 최정예라 불리던 병력이 그야말로 녹아 사라졌다. 오죽하면, 백악관에서 바그너 그룹을 콕 찍어 이런 코멘트를 했을까?
백악관 국가안보실 전략 소통 비서관, 존 커비
출처 - <로이터통신>
“바흐무트 전투에서 최근 5개월간 러시아 측 전사자는 2만 명이고, 이 중 절반이 바그너그룹이다.”
- 백악관 국가안보실 전략 소통 비서관 존 커비(John Francis Kirby)의 발언 중 발췌
군벌의 힘은 자신의 ‘군대’에서 나온다. 바흐무트 전투에서 프리고진는 자신의 병력이 녹아내리는 걸 봐야 했다. 러시아군 내부에서 자신을 견제하는 움직임이 뚜렷해졌고, 프리고진 본인도 어느 정도 욕심이 생겼고, 전장에서 쌓인 불만이 복합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래서 푸틴에게 한소리를 한 것이다.
푸틴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러시아 국방부 손을 들어주었다.
“국방부, 국가와의 계약이 없으면 (바그너 그룹을) 외부로부터 보장해 줄 근거가 없다.”
6월 13일, 푸틴의 발언이다. 간단히 말해서, 바그너 그룹은 국방부와 계약을 맺고, 국방부 지시를 받으라는 의미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프리고진”이 쏙 빠졌다는 것. 즉,
“프리고진을 빼고 러시아 국방부와 계약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의 신분은 보장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이다. 프리고진은 더욱 흥분하기 시작했다.
“전쟁 시작하기 전에 국방부랑 계약하란 말 없었잖아?”
해서는 안 될 말도 분간하지 못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와 나토의 침략이 있었다며, 푸틴 대통령과 국민을 속이려 들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푸틴과 러시아 국방부가 거짓말을 했다는 뜻이다. 전쟁 자체를 부정하고, 푸틴을 엿 먹이는 행위였다. 이후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들기리의 최후통첩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바그너 그룹과 러시아군의 대립
러시아 정부는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 병사들의 형사 입건을 취소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출처 - <MSNBC>
바그너 그룹이 들고 일어난 ‘명분’은 이랬다.
“러시아 연방군이 바그너 그룹 캠프에 미사일을 발사해, 애꿎은 우리 용병 2천 명이 사망했다! 군부의 폭정을 몰아내자!”
실제로 러시아군과 바그너 그룹은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고, 바그너 그룹이 우크라이나 군에게 러시아군의 위치를 알려줬다는 의혹이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러시아군이 철수하는 바그너 그룹 길목에 지뢰를 매설해 바그너 그룹이 피해를 입고, 바그너 그룹이 러시아군 여단장을 잡아 두들겨 패는 등 완전 막장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즈음이었다. 프리고진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말, 쿠데타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을 때가(늘 그렇지만, 완벽한 정보 통제는 없으며 어디선가는 정보가 새기 마련이다).
6월 24일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 남부 지대의 최대거점이자,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향하는 물자의 집적지면서 교차로인 로스토프나도누를 점거했다. 일각에선 여길 점령한 뒤에 크렘린 측과 협상을 벌이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는데, 프리고진은 예상보다 더 ‘미친놈’이었다. 병력을 이끌고 모스크바로 진격했다.
모스크바는 발칵 뒤집어졌다. 바그너 그룹의 행동을 ‘반란’으로 규정하고 성명을 발표했다 .
“바그너 그룹에 복무하고 있는 용병에게 경고한다. 투항하면 안전 보장이 있을 것이다.”
모스크바도 전투를 대비해 방어 병력이 전개됐다. 푸틴은 프리고진을 “러시아 국민을 배반한 배신자”로 표현했다. 푸틴 입에서 “반역을 맞닥뜨렸고, 1917년의 적백내전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이 와중에 바그너 그룹은 보로네시에로 진격해 들어갔고, 지방정부들은 모스크바의 ‘단도리’ 때문인지,
“우리는 바그너 그룹이 아니라 크렘린을 지지한다!”
고 발표하게 된다.
지난 토요일(24일), 텔레비전 연설 당시 푸틴 대통령
출처 - <러시아 공영 방송>
24~25일 동안 수많은 공방과 설전, 뜬소문들이 난무했다. 프리고진이 러시아의 핵 저장고를 노린다는 말까지 나왔다. 여기서 주목해 볼 만한 것이 있다. 바그너 그룹이 하룻밤도 안 돼 1천 킬로미터를 주파했다. 과연 이게 무슨 의미일까?
전차가 자력으로 1천 킬로미터를 자력으로 기어갈 수는 없다(물론, 하려면 한다). 가다가 퍼질 수도 있고, 궤도가 망가질 수도 있다. 바그너 그룹의 전차들은 트레일러에 실려서 진격했다(전차부대는 전투 예상 지역까지 실려서 갔다가 근처에서 내려 진형 짜고 공격하는 게 상식이다. 트레일러에 실려 있다가 갑자기 공격당하면 어떻게 되겠나?).
이를 위해서는 2가지가 담보되어야 한다.
첫째, 러시아군의 내부 사정과 병력 배치를 알고 있었다.
둘째, 모스크바까지 ‘무혈입성’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현재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전선에 모두 몰려 있다곤 하지만… 바그너 그룹이 러시아군의 병력 배치와 실시간으로 변하는 이동 사항을 알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즉, 러시아군 내부에 ‘협력자’가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덤으로 러시아군의 ‘병력 상황’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전선에서 모스크바까지 1천 킬로미터나 되는 데 이 사이에 바그너 그룹을 막을 ‘부대’가 없다는 의미가 된다. 모스크바 코 앞 2백 킬로까지 갔으니 말이다.
이 모든 것의 총합은,
“프리고진에게도 한방이 있었다.”
가 된다. 오죽하면, 푸틴이 상트페테부르크로 도망갔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왔다. 프리고진이 헬기를 떨어뜨렸네, 푸틴이 나쁜 놈이네… 등의 언론 플레이는 넘어가자. 핵심은, 푸틴과 프리고진이 맞부딪쳤다면 둘 다 피를 봤으리라는 것.
여기서 극적으로 타협안이 나온다. 푸틴도 알고, 프리고진도 아는 동네 형의 등장이다.
벨라루스 대통령, 루카셴코의 등장
2022년 2월, 벨라루스 대통령 루카셴코의 크렘린 방문 당시 모습
출처 - <AFP통신>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프리고진을 20년 동안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중재를 제안했다.”
- 드미트리 세르게예비치 페스코프 러시아 연방 크렘린궁 대변인의 발언 중 발췌
루카셴코가 언론에 등장하기 전, 이미 25일부터 프리고진과 크렘린이 협상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장 프리고진과 푸틴의 협상 타결이 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제삼자가 중재하는 모습이 필요했다. 이 상황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면 푸틴과 프리고진 모두 큰 피해를 볼 것이 분명했다. 자칫 잘못하면 내전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협상은 최선의 선택지였다.
지난 토요일(24일),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프리고진과 바그너 용병을 처벌하지 않을 것이며,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병사들은 국방부와 계약할 것이라 밝혔다.
협상안이 나오고, 크렘린궁 대변인의 공식 발표가 있었다.
첫째, 프리고진에 대한 형사 사건은 기각.
둘째, 바그너 그룹은 이번 반란과 관련돼 형사 처벌받지 않는다.
뭐, 푸틴과 루카셴코가 이번 상황에 대해 공동 대응한다 어쩐다 말은 많지만, 실질적으로는 푸틴과 프리고진이 어떤 ‘협상’을 했을 것이라는 건, 모두 예상하였을 것이다. 그 내용은 모르지만,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얼추 예상할 수 있다.
바그너 그룹은 전선으로 복귀. 프리고진은 벨라루스로 떠났다. 루카셴코가 분명 안전보장을 약속했을 것이고, 푸틴도 이에 동의 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바그너 그룹은 어떻게 될까?
크렘린 측은,
“이번 사태로 우크라이나 전선에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
이라고 했다. 당연히 영향은 있겠으나, 실질적으로 전력에 누수가 생기지는 않았다. 다시 생각해 보면, 러시아 전력의 10%. 전쟁 시작부터 지금까지 공세의 주력, 선봉으로 활약했던 용병들이 등을 돌려 정말 ‘실력 행사’를 했다면, 러시아로선 헤쳐가기 힘든 상황이 벌어졌을 거다.
프리고진과 푸틴의 미래
지난 토요일(24일), 로스토프나도누에 있는 기지로 돌아가는 프리고진
출처 - <AP통신>
문제는 이후 수순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종합해 보면, 바그너 그룹을 프리고진이 계속 장악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러시아 국방부는 바그너 그룹과 직접 계약해 그들을 흡수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국가의 통제 속에 있지 않은 무력은 언제나 위험하다. 더구나 이런 아찔한 상황까지 겪었는데, 바그너 그룹을 손에 쥐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협상 결과만 보면, 프리고진의 반란은 실패한 것이고, 바그너 그룹은 ‘전시’라는 특수 상황이 있으니 주동자, 핵심 관계자 몇 명을 정리하는 선에서 빠르게 러시아 국방부가 흡수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러시아 입장에서 우려되는 것은, 프리고진에게 충성하는 핵심 세력들이 우크라이나로 망명하거나 투항해서 그쪽에 정보를 주거나 전투력을 제공하는 경우다(그런 생각이 없더라도 서방측, 우크라이나 쪽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다). 프리고진과 그를 따르는 바그너 그룹의 일부 세력들은 분명 자기 살길을 찾아야 한다. 벨라루스에서 프리고진의 ‘물리적 생명’을 지켜준다고 말하지만, 그 생명이 얼마나 갈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
협상안이 발표되기 1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프리고진에 대한 체포령을 내렸고, 바그너 그룹에 대한 투항을 말했으며, 모스크바는 대테러 작전 체제를 발령했다. 일각에서는 모스크바 근처에 참호를 팠다는 말까지 나온다(2차 대전 때로 돌아간 듯하다). 게다가 푸틴의 입에서 이번 사건을, ‘반역’으로 규정했다. 그것도 공식적으로.
프리고진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또 다른 선택지를 고민해야 한다. 바그너 그룹에서 프리고진을 따랐던 이들도 마찬가지다. 푸틴이 이런 식으로 끝낼 리 없다. 방사능 홍차보다 더한 게 나오면 나왔지, 그것보다 낮은 ‘보복’일 리는 없다.
영국으로 망명한 러시아 연방보안부(FSB) 전직 요원 리트비넨코. 망명 이후 푸틴 정권을 비판하는 활동을 하다 2006년, 방사능 홍차로 암살당했다.
출처 - <로이터통신>
푸틴은 본인에게 불리한 정보를 공개한다거나, 정치적으로 반대하고, 민주화 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방사능 홍차나 노비촉Novichok 같은 독극물을 이용한 독살 시도를 해 왔다. 다른 암살 방법이 많은데도 독극물을 활용한 공개적인 암살은 그 자체로 ‘공개 처형’의 효과를 낸다. 즉, 항명이나 반항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경고’를 보내는 거다. 정적에게 독극물을 보내는 마당인데, 전 세계가 지켜보는 와중에 군대를 이끌고 쿠데타를 시전 했다면 분명히 보복은 불가피하다.
다 떠나서 푸틴 입장에서는 인간적으로 정말 빡이 쳤을 것이다. 프리고진의 “쿠데타”는 말 그대로, 생일상 차려주던 요리사가 오냐오냐해 줬더니 총 들고 덤벼든 모양새다. 바그너 그룹은 어떻게 정리될지, 프리고진은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해 봐야 하는 순간이다.
지금까지만 보면 프리고진은 쿠데타에 실패했고, 물리적 생명 얼마를 더 연장하기 위한 망명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행동이, 그가 감정에 따라 움직인 것인지, 망상에 빠져 상황을 오판했던 것인지, 아니면 어떤 확신이 있어서 치밀하게 계획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흐지부지 끝이 났다. 그의 미래는 어두워졌지만, 적어도 푸틴이라는 철옹성에 실금 이상의 타격을 준 건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