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너하임 에인절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은 지난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창단 4년차 우승' 만큼이나 파격적인 것이었다. 애너하임은 시즌에 앞서 베테랑투수들인 케빈 에이피어와 애런 실리를 데려와 투수력을 강화했고, 타선도 파워에서 정확성으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죽음의 지구'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 전체 4위에 해당되는 99승을 올려 와일드카드를 따낸 애너하임은 디비전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를 잡는 이변을 연출한 후, 미네소타 트윈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차례로 격파하고 창단 41년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대릴 카일의 죽음
'커브의 달인' 대릴 카일(전 세인트루이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카일은 시카고 컵스 원정경기를 앞둔 6월23일(이하 한국시간) 시카고의 한 호텔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사인은 심근경색. 1979년 뉴욕 양키스의 스타포수 서먼 먼슨이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이후, 팀의 주축선수가 시즌 중에 세상을 뜨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하루아침에 에이스를 잃고서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잔잔한 감동을 남겼다.
▲새 노사계약 체결
선수노조의 파업 예정일을 하루 앞둔 8월31일, 새로운 단체협약이 체결되며 메이저리그 노사는 공멸의 위기를 넘겼다. 2006년 12월18일까지 유효할 새 단체협약은 ▲기간내 구단의 증설과 퇴출 불가 ▲스테로이드 테스트 도입 ▲사치세 강화 ▲최저연봉의 30만달러 책정 ▲국제드래프트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새 협약안으로 인해 시즌 전 퇴출대상으로 꼽혔던 미네소타 트윈스, 몬트리올 엑스포스 등이 목숨을 건졌으며, 양키스는 강화된 사치세를 버티지 못하고 마침내 '총연봉 삭감'을 선언했다.
▲오리엔탈 돌풍
시즌 초반에는 LA 다저스의 일본인투수 이시이 가즈히사의 돌풍이 거셌다. 이시이는 시즌 개막후 6연승으로 사사키 가즈히로(2000년)-스즈키 이치로(2001년·이상 시애틀)에 이은 일본선수의 신인왕 3연패가 기대됐다. 하지만 이시이는 시즌 중반부터 위력이 급감하기 시작, 9월10일에는 머리에 타구를 맞고 시즌을 마감했다. 한국은 최희섭(시카고 컵스)이라는 첫번째 '메이저리그 타자'를 갖게 됐으며, 대만은 첸진펑(다저스)이 9월 확장로스터에 오름으로써 처음으로 메이저리거를 배출하는 감격을 누렸다.
▲스테로이드 파동
두번의 충격적인 폭로가 있었다. 최초의 40홈런-40도루 달성자인 호세 칸세코는 5월 <팍스스포츠넷>과의 인터뷰에서 "메이저리거의 85% 이상이 약물을 복용하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켄 캐미니티도 "MVP를 수상했던 96년 당시에도 스테로이드를 복용했었다"며 "적어도 선수들의 절반 이상이 약물의 의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는 후속타를 날렸다. 이를 더 이상 두고볼 수 없었던 사무국과 선수노조는 새 노사협약에 '2003시즌부터 무작위 도핑테스트'의 조항을 삽입했다.
▲이변의 포스트시즌
멤버구성 자체가 이변이었다. 지난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8개 팀 중 총연봉 10위 이하가 3팀(시애틀 11위, 휴스턴 17위, 오클랜드 29위)이었던 반면, 올해는 8팀 중 무려 5팀(샌프란시스코 10위, 세인트루이스 13위, 애너하임 15위, 미네소타 27위, 오클랜드 28위)이 전체 10위에도 들지못하는 총연봉으로 포스트시즌행 티켓을 따냈다.
랜디 존슨-커트 실링의 원투펀치를 앞세워 월드시리즈 2연패를 노리던 애리조나의 3연패 탈락은 이변도 아니었다. 천하의 뉴욕 양키스가 애너하임에게 무릎을 꿇었으며, 막판 20연승으로 기세를 올렸던 오클랜드는 미네소타에게 덜미를 잡혔다. '올해야말로 우승'을 외쳤던 애틀랜타 역시 챔피언십시리즈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텍사스-뉴욕 메츠 망신살
시즌을 앞두고 가장 많은 전력보강을 한 텍사스 레인저스와 뉴욕 메츠는 나란히 지구 꼴찌에 그치는 망신을 당했다. 주로 공격력 보강을 택했던 두 팀의 실패는 전력의 균형을 생각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외부영입과 공격력 위주 야구의 한계를 보여줬다.
▲배리 본즈와 랜디 존슨
올해로 만 38세가 된 본즈와 39세의 존슨은 여전했다. 지난해 홈런과 장타율 기록을 갈아치웠던 본즈는 올해도 내셔널리그 최고령 타격왕과 함께 볼넷, 고의4구, 출루율 기록을 경신하며 사상 최초로 5번째 MVP를 따냈다. 존슨 역시 다승, 방어율, 탈삼진 타이틀을 모두 석권하는 '트리플 크라운'으로 생애 5번째 사이영상을 수상하며 변함없는 위력을 과시했다.
▲새로운 에이스들의 출현
올시즌은 새로운 에이스 투수들이 유난히 많이 등장해 관심을 모았다. 풀타임 2년차만에 사이영상을 따낸 배리 지토(오클랜드)와 함께 제로드 워시번(애너하임)과 마크 벌리(시카고 화이트삭스)가 아메리칸리그의 '왼손 영건 3인방'을 이뤘으며, 로이 오스왈트(휴스턴)는 사이영상에 거의 근접한 실력을 선보였다. 홈런공장의 불명예를 벗은 로이 할러데이(토론토)와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따낸 제이슨 제닝스(콜로라도)도 각자 자신의 팀에서 새로운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초보 마무리투수들 맹활약
최고마무리투수 마리아노 리베라(양키스)가 어깨부상에 신음하는 사이, 새로운 불펜 에이스들이 출현해 우리를 즐겁게 했다. 메이저리그 14년차만에 전업 마무리로 돌아선 존 스몰츠(애틀랜타)는 55세이브로 내셔널리그 기록을 경신했으며, 에릭 가니에(다저스)도 위력적인 피칭으로 완벽한 뒷문단속을 선보였다. 아메리칸리그 세이브 1위에 오른 에디 구아다도(미네소타)와 피츠버그의 마이크 윌리엄스도 주전 마무리 1년차에 눈부신 성적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