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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와 쑥떡
소전
1,
강 건너 사는 김씨는
예순 다섯
그의 동갑 호랭이 아내와는
젊은 시절
뜨거운 사랑
멈추지 못해
과속을 했다네요.
아직 힘이 넘치는 김씨는
호랭이 우리에서
기회만 엿보며
일탈을 꿈꾸고
그의 아내는
여성성은 시들고
남자도 여자도 아닌 중성으로
김씨 단속에 속 태우다
포악하고 무서운
호랭이로 변했지요.
아직 남은 사랑은
지키며 살아야하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나날이 흉해가는
육신이, 서럽고 억울한데
남편은 아직도 청춘이고
함께 늙고 싶었다.
하지만
움켜 쥘 수 록
미꾸리처럼 빠져나가는 김씨
호랭이 앞에선
할퀴면 할퀴이고
시키면 시키는 데 로
군말 없는 순한 양이지만
아직 건강한 김씨는
불끈 불끈 솟는 힘을
제압치 못해
눈치껏 일을 꾸미지요
무뎌진 머리도 때론
좋아하는 일엔
명석하게 돌아가는 법
2,
봄 들판을 어슬렁거리며
쑥을 뜯다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으슥한 논 뚝 아래 자리 잡고
정 다방 미스 오를 부른다.
다정히 마주 앉아 속닥거리며
내일을 약속하고
육천원 배달료를
만원으로 퉁 친다.
먼지 속으로 사라지는
오양의 소형 배달 카
매정함에 김씨는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인생도 어느 날
저렇게 사라질까?
먼지 속으로
3
아침 터미널엔
딸딸딸 김씨의
경운기 소리 요란하다.
짐칸엔 호랭이 마누라와
쑥떡 한 보따리
쑥떡 좋아하는
서울 아들네로
호랭이를 꼬드겨, 보내는 김씨
못미더워 살피는
호랭이의 눈빛이 날카롭다.
그 도끼눈이 무서운 김씨는
나도 서울 가고 싶지만
함께 가고 싶지만
못자리 핑계로 궁시렁 거릴 때
아홉시 발 서울행 버스는 떠나고
김씨는 쾌재를 불렀다.
폰의 스위치를 끄면서
4
경운기에
아이스박스, 김밥, 통닭을 실어 놓고
대문 앞서 오양을 기다렸다.
화사한 봄꽃
너풀거리는
진홍의 목단 꽃잎
원피스 차림으로
쪼르르 달려오는 오양
오양의 향기로운 분 냄새
김씨는 손목을 덥석 잡아
거실로 끌고 들어
호랭이의
몸 빼 바지, 작업복 남방, 해가림 모자, 마스크로
갈아입히니
몸은 오양이요, 가죽은 호랭이
감쪽같은 변신에
이젠 남의 눈이 두렵지 않다.
경운기에 가짜 호랭이를 태우고
시속 십오키로
몇 일 전 보아둔 곳으로
호젓한 숲을 향해 달리는 김씨
입이 찢어져
귀 밑에 걸렸네
세상에 이리도
고소한 맛이 또 있을까?
짐칸에선
고운 오양의 손이
옆구리로 건너와
간지럼을 태우고
슬쩍슬쩍 사타구니를
건든다.
4
서울행 버스는
안동서 잠시 쉬고
톨 케이트를 벗어나
고속도로로 들었다.
모처럼 화사한 날씬데도
호랭이는 찜찜한 구석이 있어
날씨만큼 맘이
개운치가 않았다
의심 병이 도진 호랭이는
폰의 일번을 누르니
“ 골치 덩어리”
신호음이 몇 번 가다간
전화기가 꺼져 있다네.
호랭이 가슴에
솟아 오른 불덩이
의심은 의심을 낳고
화는 화를 부르는데
되 돌 릴 수 없는
노선버스는
앞만 향해 묵묵히
갈 뿐이다.
호랭이 겨드랑이에
나래라도 있다면
아직 영주도 못 왔는데
맘은 이미
강변터미널 하행 안동 매표소에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린다.
5
인적이라곤 없는
버려진
묵은 풀 밭 길을 덜컹대며
경운기는 힘겨운 듯
연신 연기를 뿜으며
꾸역꾸역 기어오르고
엉덩이 깨진다고
오양의 콧소리는
아양의 콩고물을 묻히는데
핸들을 거머쥔
김씨의 팔뚝엔
검붉은 힘줄이
불끈불끈 솟는다.
아아 이 기운을 어찌하랴!
남은 힘은 어 데 다 쓰랴!
6
호랭이는 불길한 생각들을
애써 왜면하고
먼 산을 바라다보니
느림보 버스는
이제 막 재천을 지나고 있나보다
군데군데 핀 산 벗 꽃이 지며
흩날리는 꽃잎들이
겨울눈을 연상케하고
문득 생각하기도 싫은
지난겨울일이
또 떠올라
고개를 저어 외면해도
달라붙는 찰거머리 기억
그 날 사과 공판장
선별 장에서
모진 몸살로
오전 일을 파하고
현관에 들어설 때
다방여와 겸상으로 마주 앉아
안심하고 정겹게
비싼 해물 짬뽕을
먹던 김씨
호랭이에겐
자장면 한 그릇도 없었다.
눈이 뒤집혀
테기 친 짬뽕상이
흩어지고, 시뻘건 국물이
벽과 천정에 수묵화를 칠 때
다방녀는
생쥐처럼 빠져 나가고
가을 칠십만원 들여 바른
벽지 값만 날렸다.
몸살은 몸살이고
분함이 몸을 지배 할 때
사흘 밤낮을 알아 누웠다
그렇게 할퀴이고 얻어맞아도
머리 곁을 지키며
무릎 꿇고 앉아 비는
불쌍한 못난 서방을
용서 할 수밖에
7
산 공기는 상쾌하여
스스럼없이
폐부 깊숙이 파고든다.
모처럼 자연에 안긴 오양은
연신 깔깔대고
잘 냉동된 소주병은
땀을 조르르 흘리고
김씨가 뜨거운
술잔을 칠 때
옥구슬 구르는 산새 소리
해방에 젖은 김씨는
소주 한 크라스를
단숨에 땡겼다.
목젖을 타고
짜르르 가슴으로 흘러드는
소주의 쾌감
오양은 닭다리를 뜯어
김씨에게 물리며
“꼽빠잉, 많이 먹어
그래야 힘쓰지잉“
찰지고 끈 적 한 목소리
호랭이의 거칠고
퉁스런 깡통소리보담
열 값 절 듣기 좋다
교태에 김씨는
땡볕에 강 엿 녹듯
흐믈 거리며 녹아내리고
오양은
김씨의 무릎에 앉아
엉덩이를 비벼댄다.
요철의 합일을 절묘히 비켜가며
8
호랭이를 태운 버스는
문막 휴게소에 도착하고
기사의 감정 없는
안내 멘트가 방송될 쯤
걸려온 낮선 전화 한 통
김씨가 경운기에
다방 여를 태우고
소풍을 갔단다.
올 것이 왔구나.
어느 할 일 없는
싱거운 자의 신고가
호랭이 꼬리에
불을 붙였다.
문막 휴게소에서도
하행 버스는 없었고
저마다 활기찬 사람들
그사이를 헤집고
무알 콜 캔 맥 두 개를
서둘러 사왔다
불난 가슴에
캔 맥 하나를 들어붓고
한 숨 돌리고
두 개 째를 쉬엄쉬엄 마시니
헛 취기에 한 결 맘이
대범해 지는 듯 풀어지고
버스는 여주를 지나
이천을 달리고
예고 없이 아랫도리가
축축이 젖어와
급한 김에 휴지로 틀어막고
차가 일렁일 때 마다
출렁대는 방광은
감당이 안 되더라.
다급함에 아무도 없는
뒷좌석으로 옮겨 봐도
젖어가는 아랫도리는
막을 방법이 없더라.
아무잘못 없는 내가
왜 하필 요실금을
하늘도 무심하지
요놈의 영감탱이
주리를 틀어도
시원찮을
9
고운 햇살에
아직도 사십대 초반인
오양의 하얀 가슴이
눈부시다
취기가 오른
김씨의 거친 손이
아담한 B컵 85사이즈
오양의 가슴을
조물락 거 릴 때
오양의 헛 신음 소리가
음탕한 뻐꾸기 소리와
뒤섞여, 쉬고 있는
착한 사슴의 귀를
어지럽힌다.
여전히 오양의 엉덩이는
김씨의 무릎에서
강, 약을 조절하며
가짜 절구질과 멧돌질이 교대하고
벌겋게 달아 오른 김씨는
거친 숨 씩씩거리고
껌벅이는 두 눈은
흡사 황소 같더라.
10
호랭이를 태운 차는
한강을 끼고 돌아
강변 터미널에 도착했다
호랭이는 하초가
젖은 것도 잊은 체
매표소로 달려갔지
지성이면 감천이라
진보 행 버스가
십분 후 출발이라네.
한숨을 돌리고
갈증에 물 한 모금 마시고 나니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주왕산 발 승객 중에
짐을 놓고 가신 분은
분실물 센터로 오세요“
“쑥떡 필요 없다
니들이나 노나 먹어라
쑥떡 때문에 요모양 됐다“
11
김씨의 자가용 경운기는
땡볕에 그냥 엎드렸고
몸 빼 바지, 남방 벗어던진
오양의 우유 빛 살결
송 글 밴 땀방울엔
송화 가루
끈적끈적 달라붙어
얼룩지고
민첩치 못한 손길은
결정적 순간에 노터치
애가 탄 김씨는
지갑을 열어
접근 비를 지불한다.
다시 온순해진 오양이
서서히
아양의 불을 짚 힐 때
지갑은
연신 아가리를 벌려
지폐를 토해 내고
김씨의 거친 숨은
이승, 저승 함부로 넘나든다.
까짓것 이대로 죽어도 좋아
12
호랭이를 실은 하행 버스가
박달재를 기어오를 때
전화벨이 울리고
혹시나 영감일까
반가움에
젖은 목소리로
받은 전화가
서울 며느리
쑥떡 타령이다.
시어미는 안중에 없고
사실을 말 할 까
숨겨야 할까
어정쩡한 틈새에
며느리는 짜증을 내고
호랭이는 그제 서야
냉철하게, 급 한 일이 생겨
못가노라 얼버무렸다.
결코 서방을 감쌀 생각은
눈 곱 만큼도 없었지만
왜 그랬는지
자신도 알 길이 없네
어느 듯 버스는 휴게소에 멈춰서고
오줌 지린 치마도
대충 말랐지만
내리고 싶은 생각이 없다.
허기는 밥 달라고
칭칭 거려도
애써 외면하고
소태같이 쓴 입도 입이지만
평소, 휴게소 음식이
돈 아깝다고 생각 했다.
한 푼이라도 헛되게 쓰지 말자.
13
해는 어느 듯
오후 중참에 걸려 있고
제법 시원한 바람이
코끝을 스친다.
오양은 김씨의 지갑을
마저 털고서야
부끄러운 알몸에
옷가지를 챙기고
씁쓸한 입맛을 쭉덕이며
담배에 불을 땡 기는 김씨
“오빠, 나 오늘 저녁일 못할 것 같아
무슨 힘이 그리 쎄냐“?
오양의 립 서비스에
김씨의 입 가로 번지는
시 건방의 미소가 일품이다.
“저녁에 벌 돈 까지 다 챙겼으니
그만 오늘은 쉬어라“
“알았어 오빠, 시키는 대로할게”
14
그렇게 느리게 느껴지던 버스는
안동을 지나 가랫재를 넘으니
단숨에 진보더라
급한 맘에
눈 질끈 감고
택시를 잡아탔다.
발 달 린 짐승이
어디는 못가고
무슨 짖은 못하랴
내가 병이 아닐까
이젠, 사랑보담
살아온 정으로 사는데
내 집착이 병이 아닐까
이 의심 조차도...
덜컥 겁이 났다.
집으로 오는
오 분 거리에서
호랭이의 심정은 복잡 했다.
현관을 열어 젖히니
낮선 뾰족 구두가
눈을 분노케 하고
거실 아무렇게나 벗어둔
화사한 목단의
원피스를 집어 드니
역겨운 향수 냄새
호랭이 눈에 핏발 돋고
가위질로 난도치고
거름 더미 불 짚 히니
흔적 없이 사라지더라
분기가 하늘을 찔러
대문 밖을 넘나들 때
먼 곳 서 딸딸딸
귀에 익은 경운기 소리
살아오고
호랭이는 부러진
물푸레 괭이자루를 들었다
온 힘을 두 손에 모아.
첫댓글 첫 페이지가 감칠 맛나면
밤샘으로 읽어내리지요
나중이 지루하면
패스 합니다.
감사합니다.
노인들의 성 문제가
심각하지요,
잘 보았습니다.
지루하기는 하지만
그런대르 재미를
더하는 김씨와 쑥덕
한편을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