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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 그들은 예수를 대제사장에게로 끌고 갔다.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14:54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서, 예수를 뒤따라 대제사장의 집 안마당에까지 들어갔다. 그는 하인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고 있었다.
14:55 대제사장들과 온 의회가 예수를 사형에 처하려고, 그를 고소할 증거를 찾았으나, 찾아내지 못하였다.
14:56 예수에게 불리하게 거짓으로 증언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의 증언은 서로 들어맞지 않았다.
14:57 더러는 일어나서, 그에게 불리하게, 거짓으로 증언하여 말하기를
14:58 "우리가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내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허물고, 손으로 짓지 않은 다른 성전을 사흘만에 세우겠다' 하였습니다."
14:59 그러나 그들의 증언도 서로 들어맞지 않았다.
14:60 그래서 대제사장이 한가운데 일어서서, 예수께 물었다. "이 사람들이 그대에게 불리하게 증언하는데도, 아무 답변도 하지 않소?"
14:61 그러나 예수께서는 입을 다무시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대제사장이 예수께 물었다. "그대는 찬양을 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요?"
14:62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바로 그이요. 당신들은 인자가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
14:63 대제사장은 자기 옷을 찢고 말하였다. "이제 우리에게 무슨 증인들이 더 필요하겠소?
14:64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예수는 사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정죄하였다.
14:65 그들 가운데서 더러는, 달려들어 예수께 침을 뱉고,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고 하면서 "알아 맞추어 보아라" 하고 놀려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하인들은 예수를 손바닥으로 쳤다.
14:66 베드로가 안뜰 아래쪽에 있는데, 대제사장의 하녀 가운데 하나가 와서,
14:67 베드로가 불을 쬐고 있는 것을 보고, 그를 빤히 노려보고서 말하였다. "당신도 저 나사렛 사람 예수와 함께 다닌 사람이지요?"
14:68 그러나 베드로는 부인하여 말하였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다." 그리고 그는 바깥 뜰로 나갔다.
14:69 그 하녀가 그를 보고서, 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말하였다. "이 사람은 그들과 한패입니다."
14:70 그러나 그는 다시 부인하였다. 조금 뒤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갈릴리 사람이니까 틀림없이 그들과 한패일 거요."
14:71 그러나 베드로는 저주하고 맹세하여 말하였다.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14:72 그러자 곧 닭이 두 번째 울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께서 자기에게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그 말씀이 생각나서, 엎드려서 울었다.
◈ 주해
1.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공포로 인하여 심히 놀라며, 비탄에 잠기어 극심한 불안 가운데 “나의 마음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심히 괴롭다”고 하신다.
1) 죄를 모르시는 예수님이 죄가 되시고(고후 5:21) 그로 인하여 하늘 아버지로부터 버림당하기 때문이다(마 27:46).
2) 예수님은 그 잔이 지나가기를 기도하지만 곧 나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간청하신다.
2. 유다는 “랍비여”라면서 다정한 듯이 입을 맞춤으로 예수님을 팔아넘긴다.
1) 예수님은 이 부당한 일들이 “성경 말씀을 이루려는 것”이므로 그 잔을 받아 마신다.
2) 예수님은 무리들의 부당함, 악을 행하는 죄인들의 악독함을 책망하신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하게 보고 있는 것은 “성경 말씀을 이루시는 하늘 아버지”다.
3)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기도 하고,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결단도 하고, 칼을 들고 맞서보고, 두려움에도 주님을 따라가 보지만, 모두 실패하고 도망가고 만다.
3. 예수님이 체포되어 대제사장에게로 끌려간다.
1) 늦은 밤에 산헤드린(공회)이 열리고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장로들이 다 모였다.
- 그들이 밤에 강도처럼 예수님을 잡고, 밤에 산헤드린을 연 것은 유월절이기에 민란이 날까 봐였을 것이다.
2) 한편 베드로는 예수님 옆에 있다가 칼을 들고 보호하려다가, 그 다음에는 도망하다가, 도망하는 것을 중단하고 “멀찍이” 예수님의 뒤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간다.
3) 예루살렘의 봄날 밤은 싸늘하여서 베드로는 하인들과 함께 불을 쬔다.
4. 이미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기습적으로 잡아 온 자들은 재판을 시작한다.
1) 그들은 예수님을 암살하지 않고, 위법한 것을 합법적으로 가장하여 죽이려고 한다.
- 예수님을 시기했던 산헤드린의 명예를 회복하면서 예수님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그들은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려고 증거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였다.
3) 산헤드린은 70명이며, 의장은 대제사장이다. 그들은 모두 재판관들이어서 직접 증인이 될 수 없었다. 많은 증인이 거짓 증언을 했으나 그것조차 서로 맞지 않았다.
5. 증인들을 통하여 예수님을 죽일 증거를 찾지 못하자, 대제사장이 직접 나서서 피고인의 자리에 있는 예수님에 대한 심문을 시작한다(60절).
1) 이미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총동원하여 예수님을 죽일 증거를 찾았지만 찾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대제사장은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을 죽일 증거를 찾는다.
막 14:55 대제사장들과 온 의회가 예수를 사형에 처하려고, 그를 고소할 증거를 찾았으나, 찾아내지 못하였다.
2) 증거를 찾지 못했음에도 대제사장은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고 묻는다.
3) 예수님은 침묵하신다. 너희는 나를 칠 증거가 없다고 자신을 변호하지 않으신다.
6. 증거를 찾지 못한 대제사장은 질문을 통하여 예수님 스스로 증거를 대도록 유도한다.
막 14:61 그러나 예수께서는 입을 다무시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대제사장이 예수께 물었다. "그대는 찬양을 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요?"
막 14:62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바로 그이요. 당신들은 인자가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
1) 악한 의도만 아니라면, 대제사장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정답을 말한다.
- 예수님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고 묻는다.
-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믿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다.
2) 말도 않되는 부당한 재판에 대하여 지금까지 침묵하던 예수님은 이 질문에는 응하신다.
3) “내가 바로 그이다”라고 하면서, 자신이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한다.
7. 그뿐만이 아니라 시편 110:1(권능의 오른편 자리)과 단 7:13-14(인자가 구름을 타고)을 근거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분명히 선언하신다.
1)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여 권능자(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실 것이다. 그리고 구름을 타고 재림하실 것이다.
2) 지금까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여러 번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시어 보좌 우편에 앉으실 것과 재림하신다고 하심으로 “하나님 자신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분명히 선언하신다.
8.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인 예수님을 알기보다는, 그를 죽일 증거를 찾았다면서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1) 그는 옷을 찢으며 “이 이상 무슨 증거가 필요하겠는가? 너희는 하나님을(신성) 모독하는 말을 들었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산헤드린 재판관들에게 묻는다.
2) 모든 회원은 예수님을 사형에 해당한다고 정죄한다.
9. 우는 사자처럼 삼키려고 달려드는 대제사장의 질문에 예수님은 삼킴을 당해주신다.
1) 대제사장은 주님이 부활 승천하시어 만물을 다스리며 재림하여 심판하심을 전혀 듣지 않고 예수님을 죽이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2) 그는 사단을 너무 닮았다. 사탄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서 앉으심과 재림하신다는 말은 듣지 않고 오직 예수님을 죽이는 데만 혈안이 되어서 십자가형으로 예수님을 죽인다.
- 사단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데까지는 성공하지만, 그로 인하여 철저히 패배한다.
3) 예수님은 사단에게 삼킴을 당해 주심으로 십자가로 승리하시고 부활로 사망의 권세를 파괴하신다. 이것이 사단과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회원들의 어리석음이다.
10. 재판은 사형 선고에 이어 예수님을 조롱하는 것으로 끝난다.
1) 어떤 이는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얼굴을 가린 후에 주먹으로 치면서 예언해보라고 요구한다. 침을 뱉는 것은 극심한 경멸을 뜻한다(민 12:14; 신 25:9; 욥 30:10).
2) 하인들은 예수님을 손바닥으로 때린다.
11. 늦은 밤, 이 모든 과정을 베드로가 지켜보고 있다.
1) 예수님이 거짓 증언에 이어 사형선고를 받고 경멸을 받는데도 베드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여전히 불빛을 쬐고 있었다.
2) 죽기까지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단했고, 칼을 가지고 예수님을 보호하려고 나섰던 베드로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12. 대제사장의 여종 하나가 베드로를 주목하여 보고 그에게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폭로한다.
1) 그러자 베드로는 부인하면서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겠다”하고 말한다. 난처한 베드로는 바깥 뜰로 나가며 그 자리를 피한다.
2) 베드로가 부인하자, 여종은 베드로가 아닌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사람은 그들과 한패다”라고 베드로를 고발한다. 베드로는 다시 이를 부인한다.
- 두 번째 부인은 ‘미완료시제’로 베드로의 부인이 ‘지속적’이었음을 시사한다.
13. 베드로가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후에 곁에 선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한다.
“네가 갈릴리 사람이니 틀림없이 그들과 한패이다”
1) 이 위기를 무조건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하였는지, 베드로는 저주하고 맹세까지 한다.
막 14:71 그러나 베드로는 저주하고 맹세하여 말하였다.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14:72 그러자 곧 닭이 두 번째 울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께서 자기에게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그 말씀이 생각나서, 엎드려서 울었다.
2) 유대교 증인법에는 두 사람 이상의 증언만이 완전한 효력을 지닌다(민 35:30; 신 17:6).
- 그리고 보통 여자는 증언할 자격이 없다.
3) 따라서 “사람들(남성들)”의 고발은 매우 위협적이어서 저주하며 맹세하며 강력히 부인한다.
- 저주의 맹세는 맹세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면 자신이 저주를 받겠다는 강력한 선언이다.
4) 이 같은 저주의 맹세는 어떤 사람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을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 베드로는 강하게 예수님과의 절교를 선언한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14. 너무 두렵고 불안해서인지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과의 관계를 끊고 있다는 사실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닭이 두 번째 울자,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엎드려 운다.
1) 베드로는 가룟 유다 다음으로, 제자들 중에 예수님을 배신하게 된다.
2) 그가 이렇게 예수님을 강력하게 절교하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그가 예수님을 그만큼 따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눅 22:33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나는 감옥에도, 죽는 자리에도, 주님과 함께 갈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15. 다른 제자들처럼 끝까지 도망하여 숨어버렸다면 이런 배신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1) 그러나 베드로는 죽기까지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래서 칼을 빼서 저항하다가 도망하다가, 급히 도망하는 자리에서 돌이켜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왔다.
- 마태복음 26:58에서는 “그 결말을 보려고” 따라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2) 그 재판장에 있었다면 다른 제자들도 두려움으로 인해 베드로처럼 부인했을 것이다.
3) 예수님을 따르려고 가장 처절하게 몸부림을 친 것이 도리어 가장 강력하게 예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맹세까지 하게 되었다.
16. 첫 번째 닭 울음은 첫 번째 부인 후에 있었다. 그때까진 깨닫지 못했다.
1) 두 번째로 닭이 울자, “닭이 두 번 울기 전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베드로는 수치와 참회로 인해 울음을 터뜨린다.
2) 이 비참한 순간에 “말씀이 생각났다.” 그래서 더 비참하지만, 그래서 감사하다.
3) 만약 말씀이 생각나지 않았다면 그는 뻔뻔하던지, 정죄하던지 하였을 것이다.
4) 그런데 말씀이 생각났다. 예수님의 말씀은 세 번 부인과 함께 회복을 말씀하셨다.
눅 22:31 "시몬아, 시몬아, 보아라. 사탄이 밀처럼 너희를 체질하려고 너희를 손아귀에 넣기를 요구하였다.
눅 22:32 그러나 나는 네 믿음이 꺾이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네가 다시 돌아올 때에는, 네 형제를 굳세게 하여라."
5) 베드로는 이 말씀 때문에 더 울었는 지도 모른다.
17. 예수님은 죽음 앞에서 자신이 ‘그리스도’(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가장 분명하게 선포하셨다.
1) 즉 베드로는 인자가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할 것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며 재림하실 것을 다 들었다. 정말 완벽하게 복음을 들은 것이다.
2) 그러나 베드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하여 예수님과 십자가를 부인한다.
3)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베드로가 부인하는 장면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 베드로는 공포와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부인한다.
4) 이런 베드로를 예수님은 한 번도 정죄하지 않는다. 그를 존재적으로 용납하시고 사랑하시며 중보하여 주신다. 그의 부인을 미리 경고하시되 사랑하고 회복까지 말씀하여 주셨다.
◈ 나의 묵상
너무나 담대하신 예수님의 생명을 구한다. 그 생명이 내 안에 있으나, 그 생명의 담대함과 위엄과 존귀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 놀라운 생명을 얻고도 나는 베드로의 행동에 감정이 이입된다. 그가 느낀 두려움과 불안을 함께 느낀다. 여종의 말을 감당하지 못하는 베드로, 저주와 맹세까지 하면서 자아보호를 하는 베드로가 고맙기까지 하다. 베드로가 그곳에서 담대하였다면 나의 비겁함과 불안과 도피는 더욱 비참했을 것이다. 베드로의 비겁함과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인하여 동지의식을 느낀다. 베드로는 나를 이해해 줄 것 같다. 물론, 이미 베드로를 용납하신 예수님은 참 놀랍다. 내 꼬라지를 알아도 겸손하고 용납하기가 힘들다. 베드로처럼 부인하고 실패해도 믿음 없고 실패하는 자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교만한 인간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온전한 복종으로 아버지를 사랑하면서도, 실패하고 부인하고 도피하고 절망하는 인생을 이해하시고 공감하시고 체휼함으로 용납하시고 사랑하여 주신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이런 나를 더욱 체휼하고 존재적으로 용납하도록 하였을 것이다.
베드로의 실패가 나의 실패다. 깔끔하게 한 번의 배신으로 끝냈다면 이렇게 처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겟세마네에서 도망한 것으로 끝냈어야 했다. 그랬다면 단 한 번 배신하는 것이고, 나만하는 특별한 배신이 아니라, 모든 제자들과 함께하는 배신이니 합리화하기도 좋다. 그런데 되지도 않는 믿음과 결단과 의리로 배신의 발걸음에도 돌이켜 멀찍이 따르다가 배신의 아이콘이 되고 말았다. 닭이 울 때마다 움찔하는 유일한 제자가 되었다.
나의 실패도 베드로와 비슷하다. 깔끔하게 한 번의 배신으로 주님으로부터 도망하였으면 더 많은 죄와 불신과 배신은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도망하는 나를 용납할 수 없어서 다시 돌이켜 주님을 따라 가는데, 멀찍이 따른다. 베드로는 감옥이나 죽는 자리까지 함께하겠다고 했지만 멀찍이 밖에 따라가지 못한다. 마음은 원이로되 나의 실존이 그러하다. 결과적으로 보면 멀찍이 따르는 것보다는 아예 도망가는 게 낫다. 그러나 베드로의 입장에서 보면 멀찍이라도 따르는 것이 그의 최선이었다. 멀찍이 따르면서 베드로에게 일어난 일들이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라 마음이 아프다. 그렇다고 계속 도망하지도 못하고, 함께하며 가까이 따르지도 못한다. 멀찍이에서 따를 수밖에 없다.
그 비참함과 실패 속에서 베드로는 말씀을 기억하며 울었다.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신 은혜도 말씀을 기억하며 비참해지는 것이다. 말씀 때문에 더욱 비참하다. 말씀 앞에 나오기에 더욱 비참하다. 그래서 감사하다. 말씀으로 인하여 비참하지만, 주님의 말씀은 이미 용납과 사랑과 중보와 회복까지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 세상이 나를 정죄해도 주님은 나를 용납하시고 존재적으로 사랑하여 주신다. 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해도 주님은 나를 이해하신다. 베드로처럼 막막하지만 주님은 섭리 속에서 나를 인도하여 가신다. 오늘 본문은 “울었더라”로 일단락 된다. 일단은 그게 끝이다. 현재는 이것이 전부다. 그 이후와 그 이상을 모른다. 그러나 베드로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우는 사자처럼 사단은 베드로를 삼켰지만 예수님은 그 입에서 베드로를 끄집어 내신다. 내 영혼의 목자 되신 주님은 그런 분이시다. 그분의 인자는 정복되지 않는 사랑이며, 그분의 신실하심은 모든 상황 속에서 선하시다. 나는 정복되었고, 나는 완악하지만 그분의 인자와 신실하신 영광의 빛이 일정하게 비추신다. 빛이 어둠에 비추되 깨닫지 못하나, 그 빛은 계속 비추인다. 그 빛이 베드로의 심령을 뚫고 통과하였듯이, 그 빛이 내 심령도 뚫고 지나갈 것이다. 그 신실하신 사랑과 전능하신 능력을 찬양한다.
◈ 묵상 기도
주님, 잘 아는 베드로의 이야기지만 베드로의 노력과 절망에 마음이 아픕니다. 최선이 도리어 더 큰 악이 되고 말았습니다. 최선이 도리어 더 큰 부인과 절교와 배신이 되었습니다. 주님, 저의 최선도 그러했습니다. 저의 최선으로는 주님과 함께 감옥에도 죽는 데까지 갈 수 없고 멀찍이 밖에 따르지 못합니다. 그로 인하여 더욱 사단의 표적이 되고 우는 사자에게 삼켜지듯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멀찍이 따르는 그 베드로를 특별히 사랑하시고, 그를 위해 중보하시고, 그를 특별히 찾아와 양들을 먹이게 하시니 은혜입니다. 주님의 인자와 신실함이 저의 소망입니다. 성령님, 계시의 영으로 임하사 생명을 주십시오. 지식으로 아는 하나님을 넘어 영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십자가 복음과 장사복음과 부활복음을 영으로 정확히 알아서 생명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선명하게 앎으로 생명을 얻게 하옵소서. 복음의 물을 마심으로 샘물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따르려고 하지만 멀찍이서 따를 수밖에 없는 성도들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최선을 다하나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사단에게 공격당하는 주님의 양들을 돌보아 주십시오. 다윗도 사자와 곰의 입에서 양들을 건져 내었습니다. 선한 목자되신 주님, 사단의 입에 삼킴을 당하는 양들을 건져내 주시고, 성령으로 생명을 주사, 부활에 동참하게 하옵소서. 광야를 지나는 성도들과 교육부와 청년부, 그리고 교회를 인자와 신실로 덮어 주십시오. 다음세대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고, 십자가를 사랑하게 하옵소서. 고난 주간 십자가에 연합되는 은총이 있게 하소서. 비유의 메리골드를 통해 단원들과 관객들이 살아나게 하시고, 복음을 전하는 그 자리마다 성령의 능력으로 함께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