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10.9 ,제천의병제를 다녀왔다.올해가 을미의병 창의 120주년(2주갑)이고 류인석 의병장의 서거 100주년이다.광복된지 70년이 지났는데,제천시민들은 의병장 이름 하나 모른다.류인석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제사지내고 있다.
제천의병 장영구(열은洌隱 장충식張忠植 선생의 고손자요 중재中齋 장익환張益煥 선생의 증손자) 유족회장께서 정중하게 초대를 해주셨기에 다녀왔다.작년에 가보고 싶었으나 사정이 허락치 못했고...
갑자기 글을 쓸려고 하는데 열은 장충식 선생의 호가 생각나지 않는다.기억에 없다 .내가 본 모든 자료에 호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 또한 기억에 없는 것이다.그런데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장충식 선생의 호가 없다-안보인다.단양문화원에서 펴낸 독립운동사자료를 찾아볼 생각도 않고 유족회장(장영구)께 전화로 물었다.참 편리한 세상이다.장충식 선생께서는 의병기록인 산거만록山居慢錄과 의병일기를 남기셨다.아들인 장익환 선생도 의병일기를 남기셨다.단양 대명콘도 앞 도로 건너편 공원에 장충식 선생의 기념비가 있다.장충식 선생의 본가가 엣날 상진나루터 인근인데 거기가 바로 공원 근처인 것이다.
의병축제에 많은 시행착오가 있다.
의병의 도시를 상징하는 아치하나 못만들엇다는 것이 첫번째 문제고(제천의회에서 시장이 추진한 것에 대해 예산을 삭감햇다고 한다) ,의병축제 개막식 행사에서도 시행착오가 많았다.의병유가족회 회장은 도지사나 시장보다,대통령보다 의전에서는 상위이다.의병전쟁을 위해 목숨과 재산을 바친 유공자분들의 후손이기 때문이다.자리배치가 잘못되었기에 내가 수정을 요구하였고 의전담당자가 수긍하였다.그것은 감사하다.콱막힌 공무원을 만나면 한참 싸워야 하는데.
시행착오중에 또 다른 것이 있다.도지사와 시장,그리고 전직 장관을 소개하는 앞에 의병유족회 회장을 소개하였다.나는 그때 유족 회원들을 모두 일어나서 인사를 하시라고 유도하였다.그런데...이때 유족회원들중 중요인사들의 후손을 소개했어야 한다.아니면 단상에 나오도록 해서 소개를 하고 기념사진이라도 찍도록 했어야 한다.전직시장이나 다른 분들의 소개를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유가족중 실곡 이필희,습재 이소응,치당 원도상 ,열은 장충식 선생 후손등은 소개를 했어야 한다.그러니까 문화예술위원회와 시청측이 준비를 하면서 의병을 이해못한 것이다.의병대장과 전군장,중군장,좌군장,우군장,소모장,운량관,지역 수성장들의 후손을 소개안하면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전직 장관들을 소개하는 대신에 했어야 한다.전직 제천시장을 4~5명씩이나 소개를 왜하는가?도의원이나 시군의원을 소개하는 것 이상으로 해줘야 자긍심과 명예가 생기고 제천시민이나 국민들에게도 이해가 될것이다.참가한 제천시민들께 물어보라..의병장 이름 두사람 이상 아는 분이 몇분이나 있을까?전직 제천시장을 소개하는 경우는 처음본다.어디 다른 도시에서 행사가 있을때 전직 자치단체장을 소개하던가?
8일날 학술회의에서 세명대 구완회교수의 뼈아픈 반성과 회오의 변이 있었다.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분에게 제천의 이미지를 물어봤더니 '의병의 도시'라는 말이 안나오더란다.그 원인중의 하나가 제천시민들이나 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답사를 안한 것이 큰 원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광복회도 안하고 시청과 문화원,시민단체가 안하는 답사를 나는 나혼자 하고 있다.
SNS퀴즈문제 홍보에도 열을 올렸지만 ,정작 의암 류인석 선생 한사람만 물었다.호좌의진이 류인석 선생 혼자서 투쟁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공부가 안되는 것이다.지평의병이 원주 안창에서 거의할 때 의병장으로 추대된 인물은 누구인가?1911년 소백산 연화동(영주 단산면)에서 체포되어 순국한 3대 호좌의병장은 누구인가?아들넷과 함께 의병에 투신한 영춘(1914년 이전에는 영춘군이 따로 있었다) 수성장은 누구인가?호좌의진의 류인석의진이 서북행을 할 때 도로장(선봉장)으로서 길을 열다가 낭천전투(狼川戰鬪)에서 순국한 분은 누구인가?호좌의진 소속으로 영남소토사의 직책을 받아서 '예천회맹'을 주도하여 상주 태봉의 일본병참기지를 공격했던 주장主將은 누구인가?이조승이 쓴 의병일기는 무엇인가? 초기 의병진의 격문작성을 전담하였으나 충주성전투에서 분투하다가 순국한 분은 누구인가?정미년에 의병모집에 열중하던 운강 이강년이 횡성 봉복사에서 맞이하여 대단한 공헌을 세운 충주출신이며 군인출신은 누구인가?예를 들어서 8개를 다 맞추는 분에게는 어떤 선물을 주겠다고 하여야 제천의병(호좌의진)이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공부가 되고 홍보가 되는 것이다.이것은 시민을 상대로 골든벨 퀴즈문제를 내는 행사로 진행하였다면 참좋은 것이다.예를 들어 그 퀴즈문제에 장원을 한 사람을 제천시 문화관광역사해설사로 채용하겠다고 하여야 한다.그래야 책을 보고 공부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다.의병기념관을 지어놓고 이용하는 사람하나 없는 실정이다.
의병장도 모르면서 친일파를 왜 욕하는가?정치인이 도둑질을 해도,나라를 팔아먹어도 비난하지 말자~!
또 하나는 의병기록인 이정규의 '종의록'과 장익환의 '일기',2대 호좌의진을 이끌던 운강 이강년의 창의사실기와 창의일록등을 시민들과 공무원들이 하나도 안읽어 봤다는 것이다.그것을 읽어 봐야만 답사를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텐데 아무도 모른다...과연 어떻게 풀어야 할지는 제천시민들과 공무원,문화원,내재문화연구원이 치열한 논쟁과 토론을 거쳐 반성을 해야한다.경북 예천 촌놈이 일일이 답사해야한다고 가르칠 수는 없지 않는가?
제천의병기념관이나 문화원 혹은 내제문화연구소등이 주도하여 한달에 한번 이상 답사를 해야한다.초,중,고,대학생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답사를 진행안하면 제천시민들은 의병장 이름도 모르는 이상한 사람들이 제사지내는 꼴이 될 것이다.예비군 훈련과 농협행사,이장단과 마을 단위로도 강의와 답사를 진행해야 한다.숙박-민박이나 펜션사업자 등과 택시기사,식당업자들 모두에게 지속적으로 홍보해야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제천은 과연 무엇을 했는가?
답사를 안하면 의병들이 빨간머리인지 노란머리인지 모른다.부모님의 이름도 모르고 제사지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3대 호좌의진 대장은 백우 김상태 의병장이다.그런ㄴ데 바로옆인 영월군 김삿갓면(옛날 영춘군)에서 치러지는 김생태의병장 추모문화제에 제천시민 몇사람이나 참여했던가?제천시 공무원과 시민 한사람도 참여안했다.바로옆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관심없고... 작년에 내혼자만 참여했고,올봄에는 제천에서는 장영구회장과 단양사람 옃분만 참석하였다.그러니 김상태 의병장과 관련인물들이 한사람도 제천의병제에 참여안한 것이다.김상태의병장 추모문화제 주최측에서 답사를 안하니까 김상태의병장의 체포장소가 영주시 단산면 연화동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삼도접경지라고 소개하고 있다.영월군청,영월문화원과 영월의 향토사학자들이 무관심해서 그렇지만...수정을 요청해도 도리어 참견한다고 이상한 논리를 편다.참 답답한 일이다.
또다른,이해못할 부분은 의병제에 독립군가를 합창하고 제창을 유도한 것이다.정미년 1907년 운강 이강년 의병장이 창의하여 민긍호호 의병장과 문경 갈평전투와 새재전투,봉화서벽전투와 죽령전투,가평 화악산의 용소동전투와 백담사전투,신돌석과 연합한 화천전투까지 남북을 오르내리며 전투를 했지만 그 때는 의병이라 독립군이란 단어가 없었다.의병아리랑은 있엇고 불렀지만...그때까지 우리나라에 독립군가는 없었다고 생각한다.★춘천 의병 아리랑 을 비롯해 의병격중가, 의병창의가, 안사람의병가(윤희순)는 있었지만 ...그런데 왜 독립군가를 합창,제창하고 사회자는 의병과는 직접 관련없는 이회영선생과 이종잔 전 국정원장을 4번씩이나 언급을 했을까?
'제천의병'이란 말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지평의병이 모태가 되었고 제천인근 영춘군(백우 김상태,원도상 등),단양군(장익환 父子등),청풍군(이조승 형제등) 과 제천이 합해서 '내사군'이다.그래서 '호좌의진'이란 말이 더 역사적 사실에 근접한 것으로 생각한다.엄밀히 말해서 '제천 호좌의진 축제'가 맞다고 생각한다.제천축제라면 인근의 다른 지역 출신과 다른지역 정서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충주,평창,영월,정선,원주,내사군의 모든 선비들과 포군과 인력과 물자가 제천에 있는 호좌의진으로 결집된 것이다.자양영당안에도 '호좌창의진湖左倡義陣''이란 기旗가 있다.
필자는 9일 오후에 윤우 의병정신선양회 중앙회장과 제천의병유족회 장영구 회장과 유족들을 소개시켜주고는 향리인 예천으로 향했다.그런데 잘못 생각했다.다음날 의병묘역에서 지내는 제사에도 참례할 것을 생각했다가 잊어 먹었다.ㅎ
백두대간 의병전쟁 답사회
도지사님이 단상에서 인사할 때 찍은 사진이다.그런데 의병유족회장이 도지사(대통령)보다 의전을 앞서야 한다고 했더니 좌측으로 5보나 떨어진 자리 끝으로 의자를 옮겼다.VIP가 있는 자리에 의병유족회장이 없는 것이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 뒤에 부인께서 앉았다.그뒤에 무공수훈자와 6.25참전유공자분들이 앉았는데,여러분들이라면 의병유족회원 20여명은 어디에 앚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현장에서는 의병유족회원 20여분은 오른쪽 끝에 앉은 분(제천시문화예술위원장)으로부터 10여보 떨어진 우측 두번째줄부터 세번째 열까지 두줄에 앉았다.
8일 저녁 의병유족 간담회에는 시장도 참석했고,도지사까지도 참석하였다.그것이 예의인 것이다.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예禮와 의義를 지키려 의병을 일으켰는데 의병광장 현장 행사에서는 공무원과 문화예술위원회의 잘못으로 의병유족회가 푸대접 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