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이 우리를 먹여 살렸어.
네가 허락한다면 이 땅은 너도 먹여 살릴 거다.”
대지와 그 대지를 믿는 자들이 만들어내는 장대한 드라마
1921년 텍사스. 매년 풍작이 이어지는 대평원의 사람들은 개척자의 후손이라는 자부심과 ‘밀로 전쟁을 이겼다’라는 고조된 애국주의 속에 풍요롭게 살아간다. 그리고 닥쳐온 대공황. 그러나 이들에게 더 무서운 것은 끝날 줄 모르는 가뭄과 먼지 폭풍이다. 큰바람이 불면 흙이 일어났다 비처럼 쏟아지는 대지와 함께 사람들은 서서히 메말라간다. 자신을 ‘과년한’ 딸로만 여기던 가족들에게서 내쫓기듯 결혼한 주인공 엘사에게도 새로운 역경이 시작된다. 수백만이 일자리를 잃은 시대, 농부들의 곤궁함은 매스컴조차 주목하지 않고, 이제 엘사 앞에는 빈약한 선택지만이 놓인다. 모래에 잠겨가는 대평원에서 운 좋게 살아남길 기원할 것인가, 대공황의 한복판에서 가진 것 없이 대륙을 가로질러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인가.
대공황과 먼지 폭풍으로 인한 이주, 뉴딜 정책의 명암...
풍요롭게 재현된 역사 속에 담긴 여성 서사
이 책에서 저자는 놀랍도록 풍성하게 역사를 증언한다. 무대가 되는 텍사스의 가뭄은 실제 미국의 최악의 환경 재앙으로 불리는 ‘더스트볼(황진)’을 그대로 가져왔으며, 가뭄으로 땅이 황폐해진 원인으로 꼽히는 건조농법을 둘러싼 정부와 농민 간의 갈등, 어쩔 수 없이 떠나간 이주민의 행렬, 뉴딜 정책의 사각지대까지 아름다운 산문 속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독자들은 “여성의 시각에서 새롭게 쓰인 《분노의 포도》”(아마존 리뷰)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작가 역시 역사를 다루는 데 있어서 의도적으로 “여성을 최전선에 두는 데 전념”(〈뉴욕타임스〉)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고난의 시대를 살아온 여성의 삶을 좇으며, 작가는 역사를 재해석하고 다채로운 시선으로 조망하게 하는 역사 소설의 묘미를 한껏 끌어올린다.
또 다른 환경적·경제적 재앙의 시대에서 길어 올린
우리 시대를 위한 응원
3년 전, 나는 미국의 힘겨운 시기에 관한 이야기인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환경 재해, 경제 붕괴, 대량 실업의 영향에 대해. 그러면서도 나는 대공황이 우리 현대의 삶과 이리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거라고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도움을 필요로 하며, 앞날을 두려워하는 것을 내가 직접 목격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역사에는 늘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 희망은 다른 이들이 겪어내야 했던 어려움으로부터 나온다._작가 노트 중에서
〈뉴욕타임스〉가 “또 다른 환경적·경제적 재앙의 시대로 독자를 이끄는 책”이라고 표현했듯, 이 책에는 오늘날 우리 눈에 무겁게 밝히는 장면들이 스친다. 각자도생을 택해야 했던 노동자들의 삶과 이러한 사회구조가 어떻게 제노포비아를 거듭 생산해왔는지, 역경 앞에 인간은 ‘다른 자’들을 비난하게 되어 있다는 지적을 따라가다 보면, 기후변화로 쏟아지는 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반지하의 시민들, 주변 국가의 정세에 생계를 위협받는 농어민들, 걷잡을 수 없이 양극화된 오늘의 우리를 견주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가뭄 속에서 작은 텃밭을 키운다. 질긴 엉겅퀴를 요리해서 먹을 궁리를 한다. 누군가는 불의 앞에 떨쳐 일어서고, 누군가는 주변을 보살핀다. 고난을 이상과 끈기로 이겨낸 사람들이 오늘에 전하는 응원이 될 책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땅이 우리를 배신하고 우리 모두를 무너뜨렸다. 날씨 이야기를 나누고 밀 풍년을 서로 축하하던 고집 세고 나이 든 남자들마저도. 남자는 먹고살려면 여기서 싸워야 하는 거야, 그들은 서로 그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 대평원의 여자들도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밀 농장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대지만큼이나 달구어져 바짝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힘든 노동을 했다. 때로 눈을 감으면 아직도 정말로 입에서 그 먼지 맛이 느껴진다…. -프롤로그 중에서
“내 땅은 귀를 기울이면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 가족의 이야기. 나는 내가 시칠리아에서 이리로 가져와 꺾꽂이한 포도로 와인을 만들고, 내가 만드는 그 와인은 우리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지. 이 땅은 그렇게 대를 이어 우리를 하나로 결속시켜왔다. 아무리 사는 게 힘들어도 우리는 여길 떠나지 않았어. 이 땅이 우리를 먹여 살렸어. 네가 허락한다면 이 땅은 너도 먹여 살릴 거다.”-5장 중에서
그녀가 결혼할 때, 어머니가 될 때는 몰랐으나 지금은 아는 것이 있다.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을 때나 사랑 없이 살 수 있다는 것._6장 중에서
그는 로레이다 손을 잡고 속삭이는 밀밭 사이로 걸으며 그녀가 귀를 기울여보면 밀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라 말하곤 했다. 그는 옹이 진 커다란 손으로 흙을 한 덩어리 들고 마치 다이아몬드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에게 내밀며 “이것이 언젠가는 모두 네 것이 될 거란다, 그 후에는 네 아이들, 또 그 후에는 네 아이들의 아이들 것이 될 거고”라고 말했다. 땅. 그는 마치 미카엘 신부가 하느님을 부르듯 땅을 불렀다._6장 중에서
식구들 중에 행복한 사람이 있는 건 아니었다. 어떻게 행복하겠나? 그러나 토니와 로즈와 엘사는 삶이 어려울 것이라 예측하면 살아남기 위해 더 강인해지는 사람들이었다. 시부모는 오랜 세월 열심히 일했다. 시아버지는 철도에서, 시어머니는 블라우스 공장에서 돈을 벌어 이 땅을 샀다. 손수 지은 흙 벽돌 움집이 이 땅에서 그들의 첫 집이었다. 배에서 내렸을 때는 안토니오와 로살바였겠지만 극한 노동과 그 땅으로 토니와 로즈가 되었다._7장 중에서
엘사는 다시는 그들을 보지도, 그들과 말도 하지 않을 거라 결심했으나, 그랬음에도, 그들의 부재는 가시지 않는 아픔이었다. 어떤 사람인지 잘 알면서도 사랑하는 일을 멈출 수 없고 사랑을 계속 원하게 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_8장 중에서
“사랑은, 아이의 삶 시작과 네 삶 끝에 온단다. 하느님은 그런 식으로 잔인하시지.”_8장 중에서
때로는 마음의 고통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았고, 때로는 그것이 눈가리개가 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_10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