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이 말은 떨고 있는 죄인의 언어라고 합니다.
구원받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며 살지 못했던 간수가 인생의 엄청난 일을 겪으며 구원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그와 온 집안이 예수님 영접하고 느꼈을 큰 기쁨은 이 세상이 주는 어느 기쁨과도 비교할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구원받은 자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의 언어라 생각합니다.
가장 아름답고 귀한 축복의 언어를 받았기에 핍박도 두려움도 모두 이기고 복음 전도의 길을 다시 떠나는 바울과 실라를 봅니다.
구원의 큰 기쁨을 전하는 자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 믿어도 안 믿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생 살며 환난이나 고통이 있지만 다르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이 환난이나 고통은 나를 주님 계신 큰 기쁨의 강으로 인도할 도구일 뿐입니다 ‘
이 고백이 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4~25절)
이 시대의 깊은 감옥은 상상을 초월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 습하고 더러운 깊은 감옥에서 두려움이 아닌 찬송을 하는 바울과 실라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환경이 어떠하든지 예수님만이 나의 구주 되심을 찬송하는 그 찬송은 옥터를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고 묶인 것이 풀리는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간수와 간수의 온 가족이 구원을 받는 귀중한 경험과 역사가 일어남을 묵상합니다.
어려움이 닥칠 때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찬송하며 모든 것이 하나님 손에 있음을 굳게 믿고 나가는 두사도의 모습을 닮고 싶습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엎드리는 그런 본능이 제게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어떠한 상황에도 복음을 전하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1~32절)
아멘!!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25절)
바울은 처음에 아시아로 가기를 원했지만, 성령께서는 그 길을 막으시고 마게도냐로 인도하십니다. 바울이 원하는 방향과 성령께서 원하시는 길이 다를 수 있음을 보며, 저도 저의 계획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바울과 신라는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는 고난 중에서도 찬송하고 기도합니다. 그들에게서 기쁨의 원천은 상황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였음을 봅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그 기쁨이 제 안에도 충만하기를 간구합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복음의 열매가 보이지 않을 때가 많지만, 저에게 맡겨진 일들을 성실히 감당하며,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길 원합니다. 어떤 순간에도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행 16: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6장에서는 유독 기도 이후 여러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게도냐로 향하게 되고, 루디아를 만나고, 옥을 지키는 간수와 그 가족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주님의 뜻을 알 수도 없고 기도하지 않으면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지도, 경험하지도 못함을 보게 됩니다
이슬에 옷 젖듯 기도가 쌓이고 쌓이면 주님의 뜻 가운데 행하게 될 줄 믿습니다. 기도를 사모하여 기도의 자리로 나가길 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예상하지 못할 일들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짐작이 가지 않고 예상할 수 없어 때로는 하루하루가 걱정이 되고 두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일들을 통해 구원의 복을 누릴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시며 깨우칠 수 있게 하여 주십니다.
계획할 수 있어 준비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을 통해 일하시지 않기 때문에 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가장 선하신 이가 가장 최선의 길로 우릴 인도하신 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알 수 없기 때문에 근심걱정 하기보다 그의 뜻대로 그의 때에 맞춰 인도하시니 알 수 없어서 더 의지하고 알 수 없어도 믿고 순종하며 나아가는 이가 되길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말씀과 같이 구원의 기쁨, 복에 복을 더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복된 믿음의 자녀 되길 소망합니다.
바울과 실라를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게 했습니다.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지만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였고 그 소리를 죄수들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든 사람들을 깊은 옥에 가두어도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워놓아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 그런 상황에도 변함없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찬양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끝이 없고 깊고 넓고 말로다 형용 못하는 그 사랑으로 저를 사랑해 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매일 감당할 일이 참 많지만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게 하실 줄 믿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게되는 진통 중 하나가 율법적 신학적 논쟁입니다. 15장에는 이방인들도 모세의 율법울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논쟁이 시작됩니다. 지난 세월 동안 한국교회도 윤리적 율법적 논쟁이 끊임없이 진행되어 왔고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9절에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셔서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라고 설교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이 깨끗하다고 하신것을 인정하지 않고 율법과 전통에 얽매어 살아가는 것이 선교와 전도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나의 삶 속에서 세상을 향하여 열린 마음을 가지고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기 원합니다. 하지만 불의한 일과 악한일에 대해서는 늘 경계하며 타협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