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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불리 생각지 말자
思之勿遽(사지물거)-섣불리 생각지 말자
遽則多違(거칙다위)-섣불리 생각하면 틀리기 쉬우니
思之勿深(사지물심)-너무 깊이 생각지 말자
深則多疑(심칙다의)-너무 깊이 생각하면 괜한 의심 많아지니
이규보(李奎報)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사잠(思箴)편
고려 대문호(大文豪) 동국이상국집 주인공 이규보 묘를 찾아서
2016년 12월 31일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고려(高麗) 최고의 대문호(大文豪)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의 주인공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강화도
묘(墓)를 답사하였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의 의미는
*동국(東國)-중국에서 부른 “동쪽의 나라” 고려(高麗)의 다른 이름이다.
*상국(相國)-영의정 국무총리의 직위다
고려 이규보 상국의 문집(高麗李奎報相國文集)이란 뜻이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은 한반도 역사 속에 최고급에 속하는 문집(文集)이다.
문학세계에서 뛰어난 문학 작품을 많이 써서 알려진 작가를 “대문호(大文豪)”라 한다.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사르트르 셰익스피어 헤르만헷세등
중국 宋(송)대의 소식(蘇軾). 구양수(歐陽修). 한유(韓愈) 등
신라의 최치원(崔致遠) 등과 같이--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은
고려시대의 사회상과 전승(傳承)들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
우리역사속에 역사적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은 고려 시대를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사서(歷史書) 구실을 하는 문집(文集)이다.
서문(序文)을 통하여 “구삼국사(舊三國史)”라는 우리나라 사서(史書)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고, 시(詩) 속에는 한반도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어 사료(史料)로서의 가치도 높은 책이다.
이규보(李奎報)에 관한 자료가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이 지면에서 다 기록할 수는 없다.
이규보(李奎報)는 강화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몽고의 침입으로 고려의 수도(首都)를 강화로 천도(遷都)와 함께 강화도에 정착한 뒤 이 섬에서 삶의 마지막을 맞이했다.
강화도는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국가의 운명을 보호하는 “보장지처(保藏之處)”
의 역할을 했다.
“보장지처(保藏之處)”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 임금과 조정이 피신하는 장소다.
특히 대몽항쟁(對蒙抗爭)의 중심지다.
이규보(李奎報)는 강화도로 수도(首都)를 옮긴 감회를 아래의 시로 쓰고 있다.
遷都自古上天難(천도자고상천난)-천도란 예부터 하늘 오르기만큼 어려운 건데
一旦移來似轉丸(일단이래사전환)-공 굴리듯 하루아침에 옮겨왔네
不是淸河謀大早(부시청하모대조)-청하의 계획 그토록 서둘지 않았더라면
三韓曾已化胡蠻(삼한증이화호만)-삼한은 벌써 오랑캐 땅 되었으리
百雉金城一帶河(백치김성일대하)-백치 금성에 한 줄기 강이 둘렀으니
較量功力孰爲多(교양공력숙위다)-공력을 비교하면 어느 것이 나은가
萬千胡騎如飛鳥(만천호기여비조)-천만의 호기가 새처럼 난다 해도
咫尺蒼波略未過(지척창파약미과)-지척의 푸른 물결 건너지는 못하리
表裏江山坐萬家(표리강산좌만가)-강산 안팎에 집이 가득 들어찼네
舊京形勝復何加(구경형승복하가)-옛 서울 좋은 경치 이에 어찌 더할쏜가
已知河勝金城固(이지하승김성고)-강물이 금성보다 나은 줄 안다면
且更諳他德勝河(차갱암타덕승하)-덕이 강물보다 나은 줄도 알아야 하리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전집 권18
이규보(李奎報)의 생애는 순탄하지 않았다.
드라마에서도 종종 볼 수 있지만 최충헌(崔忠獻), 정중부(鄭仲夫), 이의민(李義旼)등등
고려 무신집권기(武臣執權期) 시대와 같이 살았기 때문이다.
위에 있는 시(詩) “섣불리 생각지 말자”는
이규보는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경솔히 행동한 것을 항상 후회하여 아래와 같이
스스로에게 다짐하였다.
『나는 허겁지겁 일을 하고 나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은 걸 후회하곤 한다.
생각하고 일을 처리했더라면 어찌 화(禍)가 있을 리 있겠는가.
나는 불쑥 말을 던지고는 한 번 더 생각지 않은 걸 후회하곤 한다.
생각하고 말했더라면 어찌 욕을 볼 일이 있겠는가.
섣불리 생각지 말자.
섣불리 생각하면 틀리기 쉬우니.
너무 깊이 생각지 말자.
너무 깊이 생각하면 괜한 의심 많아지니.
세 번을 잘 생각하는 것이 가장 알맞으리.』
고려사에는 이규보의 동명왕편(東明王篇)과 함께 “진정표(陳情表)”가 있다.
몽고의 침입으로 고려 조정이 강화도에 옮겨 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이규보는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고 생각했다.
이때 이규보는 자신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여, 몽골황제에게 보내는 외교문서를 작성한 것이 진정표(陳情表)이다.
외교문서는 단순히 문체(文體)의 아름다움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전후(戰後) 상황에 대한 조리 있는 설명과 설득 회유 등 외교의 총체적인 내용이 담기는 것이다.
이규보(李奎報)의 진정표(陳情表)를 보고 몽골 황제가 감격하고 깨달아 철군하였다고 한다.
“진정표(陳情表)”내용은 아래에 별도로 소개한다.
강화도에는 역사속의 유명한 문인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규보(李奎報), 권필(權韠), 이색(李穡), 송강(松江), 최자(崔滋) 등등
다음에 이들 유적지를 답사하여 소개할 생각이다.
인간의 마음이란 참 묘한 것이다.
200여년이 지난후 고려의 문장가인 이색(李穡·1328~1396)은 역사속 전쟁의 상처보다
강화도의 낭만적인 정취를 아래와 같이 시로 남겼다.
시(詩)에 나오는 “교동(喬桐-강화 옛 이름)”은 현대까지 전해지는 문학작품의 이름으로 많이 등장한다.
교동(喬桐)
海門無際碧天低(해문무제벽천저)-바닷문은 끝이 없고 푸른 하늘 나직한데
帆影飛來日在西(범영비래일재서)-돛 그림자 날아오고 해는 서쪽에 있도다
山下家家蒭白酒(산하가가추백주)-산 아래의 집집마다 흰 술을 빚고 있는데
斷蔥斫膾欲鷄棲(단총작회욕계서)-파(蔥)를 베어 회(膾)를 치며 닭 들기만 기다린다
목은(牧隱) 이색(李穡)
농월
강화도가 좋다
表裏江山坐萬家(표리강산좌만가)-강산 안팍에 집이 가득 들어찼나니
舊京形勝復何加(구경형승부하가)-옛 서울 좋다 해도 경치가 어찌 이보다 다하랴
已知河勝金城固(이지하승금성고)-강불이 금성탕지의 경고함보다 나은 줄 알았으니
且更암他德勝河(차갱암타덕승하)-덕이 강물보다 나은 줄 알아야 하리
이규보(李奎報)
병 오래된 병(久病)
一嬰沈瘵度三秋(일영침채도삼추)-한 번 앓아 온지 이미 삼 년
臥腐公家俸祿優(와부공가봉록우)-병으로 누운 채 나라의 록만 썩힌다.
乞退欲休君不頷(걸퇴욕휴군부함)-물러나 쉬려 해도 허락하지 않으니
天將使我大休休(천장사아대휴휴)-하늘이 나를 매우 슬프게 하는구나.
이규보(李奎報)
개성 옛 도읍을 못잊어
故國荒涼忍可思(고국황량인가사)-황량한 고국을 어이 차마 생각하랴
不如忘却故憨癡(부여망각고감치)-다 잊고 짐짓 바보가 됨만 못하이
唯餘一段關情處(유여일단관정처)-그래도 못내 마음에 걸리는 하나는
歸法川邊踞送巵(귀법천변거송치)-귀법사 개울에서 다리 뻗고 술잔 돌리지 못하는 일
이규보(李奎報)
그러나 이규보는 74세로 강화도에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이규보는 1237년 대장경을 판각할때는 “대장경도량음찬시(大藏經道場音讚詩)”
14수를 짓고 임금과 신하들의 공동기도문인 “대장각판군신기고문(大藏刻板君臣祈告文)”
을 지어 부처님의 힘을 빌려 외적을 물리치려는 뜻을 담았다.하지만 그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무신정권이 승도들의 반란을 우려하여 살육을 자행해서 그 핏물이 개성 성문 밖에 몇날을 흘렸다는 사실을, 그리고 몽고군에게 유린당하는 일반 백성들이 눔룰조차 흘리지 못하고 지냇다는 사실을, 이규보가 그런 글들을 지을 때 과연 어떤 심경있을가
큰 나무 아래의 즐거움
好是炎天憩(호시염천게)-큰 나무 더운 날씨 쉬기에 편해 좋고
宜於急雨遮(의어급우차)-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 피해서 좋구나
淸陰一傘許(청음일산허)-그늘이 양산 같으니
爲亦云多(위역운다)-주는 혜택 또한 많다.
이규보(李奎報)
우물에 비친 내얼굴
不對靑銅久(부대청동구)-오래도록 거울을 안 보았더니
吾顔莫記誰(오안막기수)-내 얼굴도 이젠 알 수가 없네.
偶來方炤井(우래방소정)-우연히 우물에 비친 모습을 보니
似昔稍相知(사석초상지)-전에 어디선가 본 듯한 녀석일세.
이규보(李奎報)
이 사진은 이규보 영정(影幀)인데 빛의 반사를 피할 수 없어
문의 그림자로 영정의 밑부분이 가리워졌다.
↓사가재(四可齋)
목원대학교 역사교육과 이정호 교수에 따르면
고려시대 관리들의 최고 바람은 은퇴 후 별장의 일종인 “별서(別墅)” 생활이었다
이는 지금의 전원생활(田園生活)을 동경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이규보(李奎報)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별서(別墅)는 “4가지를 갖췄다”는 뜻에서
“사가재(四可齋)”로 이름 붙였다.
사가(四可)는
밭, 뽕나무, 샘, 땔나무를 갖췄다는 뜻으로, 그 자체가 별서(別墅)생활을 상징하고 있다.
그의 문집 “동국이상국전집”에 관련 내용이 있다.
밭이 있으니 식량을 마련하기에 가(可)하고,
뽕나무가 있으니 누에를 쳐서 옷을 마련하기에 가(可)하고,
샘이 있으니 물을 마시기에 가(可)하고,
나무가 있으니 땔감을 만들기에 가(可)하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권23 사가재기(四可齋記)
이규보는 말하기를 “내가 이 집에 살면서 만일 전원의 즐거움을 얻게 되면
세상일을 팽개치고 옷을 떨쳐 입고 옛동산으로 돌아가 늙으면서 태평성세의
농사짓는 늙은이가 되리라라고 적었다.
陳情表
朝天路阻。戀闕情深。感念古今。嗚咽寤寐。中謝。恭惟皇帝陛下。乾坤覆燾。
日月照臨。應天順人。宅萬世無疆之地。柔遠能邇。得四方嚮內之心。
伏念臣權襲世封。愧叨藩職。自小國之基構。憂在戒隣。及上朝之撫綏。
泰然無患。久荷大平之化。切輸樂率之誠。豈圖獷俗之猖狂。反致神州之遷徙。
始而懵若。未詳京邑之攸都。久迺聞焉。又昧道塗之安自。加以寇兵之爲梗。
曠修歲信而展儀。况所謂獷俗者。旣已屠殘於庶邦。又將吞噬於弊邑。故豁拋其舊壤。
遂入保於瘴鄕。奈緣今日之阨艱。益慕大邦之恩愛。每對賜書之堆積。
不堪隕涕之霶沱。因念誠苟有加。事無不濟。行不避險。直凌江海以勉歸。
往必有時。非若穹蒼之難到。肆馳賤介。聊達微情。仰賴天扶。儻得通於鳳陛。
雖棲地僻。若已覩於龍顔。
진정표(陳情表) 이규보(李奎報)
하늘에 조회할 길이 막히매 대궐을 연모(戀慕)하는 정이 깊고, 예와 지금을 생각하매
자나 깨나 목이 메입니다.
공손히 생각하건대, 황제폐하께서 천지와 같이 덮어주시고 일월과 같이 빛을 비추사,
천명(天命)에 응하고 인심(人心)에 순하여 만세무강(萬世無彊)한 땅에 자리잡으시고,
먼 곳을 회유(懷柔)하고 가까운 데를 다스려 사방의 향모(響慕)하는 마음을 얻었나이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신이 임시로 세봉(世封)을 승습(承襲)하여 외람되이 번직(藩職)에
재임한 바, 소국(小國)이 국기(國基)를 마련한 이래 근심이 이웃 나라의 침략에 있었으나,
상조(上朝)를 섬긴 뒤로부터 태연히 환난이 없어 오랫동안 태평의 교화(敎化)를 입고
간절히 조공의 정성을 드리더니, 뜻밖에도 오랑캐의 미쳐 날뜀이 도리어 신주(神州)를
옮기게 하여, 처음엔 어가(御駕)가 어디로 파천(播遷)하셨는지도 몰랐고,
오랜 뒤에 비로소 들었으나 또 도중의 안부를 몰랐며, 게다가 적병(賊兵)이 중간에
가로막아 세신(歲信)을 닦지도 못하였나이다.
하물며 저 오랑캐들이 이미 중국의 여러 지방을 무찌르고 또 장차 본국을 집어삼키려고
짐짓 그 넓은 옛땅을 포기하고 풍토병의 고장으로 입보(入保)하니 오늘날의 액난(厄難)을
어찌하리까.
더욱 큰 나라의 은애(恩愛)를 사모하며, 연하여 하사하시는 조서를 대할 때마다 주루루
쏟아지는 눈물을 금할 길이 없나이다. 인하여 생각하건대, 정성만 다하면 안 될 일이
없을까 하여, 험한 길을 피하지 않고 곧바로 강해(江海)를 건너 노력한다면 도착할 때가
있을 것이니 하늘처럼 도달키 어렵지 않겠기에, 이에 사신을 달려 보내어 애오라지
하정(下情)을 아뢰니, 요행히 하늘이 도와 대궐뜰에 통할 수 있다면 비록 궁벽한 땅에
있을망정 이에 용안(龍顔)을 뵈온 듯하겠나이다.
병 오래된 병(久病)
一嬰沈瘵度三秋(일영침채도삼추)-한 번 앓아 온지 이미 삼 년
臥腐公家俸祿優(와부공가봉록우)-병으로 누운 채 나라의 록만 썩힌다.
乞退欲休君不頷(걸퇴욕휴군부함)-물러나 쉬려 해도 허락하지 않으니
天將使我大休休(천장사아대휴휴)-하늘이 나를 매우 슬프게 하는구나.
이규보(李奎報)
미인의 원망(美人怨)
腸斷啼鶯春(장단제앵춘)-꾀꼬리가 우는봄날, 애간장이 다 타는데
落花紅簇地(낙화홍족지)-떨어지는 꽃잎들로 땅을 붉게 덮었다네
香衾曉枕孤(향금효침고)-향내나는 이불속의 새벽 잠은 외롭나니
玉瞼雙流淚(옥검쌍유루)-옥과 같은 고운 뺨에는 두 줄기의 눈물일세
郎信薄如雲(낭신박여운)-님의 약속 못 믿을손 얇은 구름 같을지니
妾情搖似水(첩정요사수)-이 내 마음 일렁이는 강물처럼 흔들리네
長日度與誰(장일도여수)-기나긴 날을 그 누구와 함께 지내고파
皺却愁眉翠(추각수미취)주름지는 푸른 눈썹, 수심 속에 찡그리네
이규보(李奎報)
농민을 생각하며 雨中觀耕者贈書記
一國瘠肥民力內(일국척비민력내)-나라가 잘돠고 못됨은 백성의 힘에 달려있고
萬人生死稻芽中(만인생사도아중)-만민의 살고 죽음은 벼 싹에 매였네
他時玉粒堆千廪(타시옥립퇴천름)-가을날 옥같은 곡식 일천 창고에 쌓이니
請記今朝汗滴功(청기금조한적공)-땀흘리는 농민들 오늘의 공을 기록하게나
이규보(李奎報) 동국이상국집 15권
달 샘속의 달 이규보
山僧貪月光(산승탐월광)-산승이 달빛을 탐하여
甁汲一壺中(병급일호중)-병 속에 물과 함께 길어 담았네
到寺方應覺(도사방응각)-절에 다다르면 바야흐로 깨달으리라
甁傾月亦空(병경월역공)-병 기울이면 달빛 또한 텅 비는 것을
이규보(李奎報)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달빛을 사랑한 스님이라면 벌써 그것으로 공(空)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아는 스님이련만
연못속의 달을 탐낸것도 욕심이요,
병 속의 물을 쏟아내면 달빛 또한 사라지는데,
이또한 완벽한 공(空)의 세계를 향한 치열한 수행이 아닐 수 없다.
남편을 기다리며
斷腸啼鶯春(단장제앵춘)-꾀꼬리 우는 봄날 애간장 타는데
落花紅簇地(낙화홍족지)-꽃은 떨어져 온 땅을 붉게 덮었구나
香衾曉枕孤(향금효침고)-이불 속 새벽 잠은 외롭기만 하여
玉瞼雙流淚(옥검쌍유루)-고운 뺨엔 두 줄기 눈물 흐르누나
郎信薄如雲(낭신박여운)-님의 약속 야속하기 뜬 구름 같고
妾情撓似水(첩정요사수)-이내 마음 일렁이는 강물 같구나
長日度與誰(장일도여수)-긴긴 밤을 그 누구와 함께 지내며
皺却愁眉翠(추각수미취)-수심에 찡그린 눈썹을 펼 수 있을까
이규보(李奎報)
눈 속 친구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해
雪色白於紙(설색백어지)-눈빛이 종이보다 희길래
擧鞭書姓字(거편서성자)-채찍 들어 이름을 썼지.
莫敎風掃地(막교풍소지)-바람아 불어서 땅 쓸지 마라
好待主人至(호대주인지)-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려주려무나.
이규보(李奎報)
어부(漁父)를 보고 짓다
一隻針鉤當耒鋤(일척침구당뢰서)-바늘 낚시 하나가 쟁기와 호미 대신하니
豐年但卜海饒魚(풍년단복해요어)-그대 집 풍년은 오직 고기잡이에 있네
農耕千畝猶艱食(농경천무유간식)-천 이랑 농사에도 먹고 살기 어려운데
沙戶尋常有宿儲(사호심상유숙저)-강 집 살림살이 언제나 묵은 양식 남았다오
이규보(李奎報)
자식들에게 남긴 유훈(囑諸子)
家貧無物得支分(가빈무물득지분)-집 가난하여 나누어 줄 물건 없고
唯是簟瓢老瓦盆(유시점표노와분)-대그릇과 표주박 쓰다 남은 질거릇 뿐이란다.
金玉滿籯隨手散(금옥만영수수산)-광주리에 가득한 금옥은 씀씀이에 따라 없어지나니
不如淸白付兒孫(불여청백부아손)-자손에게 청백(淸白)한 행실 당부함만 못하리
이규보(李奎報) (동국이상국집 후집 제9권)
천도(遷都)가 어렵다
遷都自古上天難(천도자고상천난)-천도(遷都)란 하늘 오르기 만큼 어려운데
一旦移來似轉丸(일단이래사전환)-공굴리듯 하루 아침에 옮겨 왔네
不是淸河謀大早(부시청하모대조)-황하를 맑게 하려는 계획을 서둘지 않았더라면
三韓曾己化胡蠻(삼한증기화호만)-삼한(三韓)은 벌서 오랑캐 땅이 되었으리
이규보(李奎報)
이규보는 65세 되던해 1232년(고종 19)6월에 고려 조정를 따라 강화도로
들어갔다. 지공거와 재상(宰相)을 역임하면서 인재 선발과 국정을 담당했을 뿐
아니라 몽고에 보내는 외교문서를 전담해서 지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