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사람들이 문학이 되다
청송의 산은 깊다. 산 하나를 넘으면 또 다른 산이 기다리고, 길은 그 품을 따라 오래 굽어진다. 객주문학관으로 가는 길에서 문득 생각했다. 옛사람들도 이 산길을 걸었을 것이다. 등에 짐을 지고 장터에서 장터로 떠돌던 보부상과 장돌뱅이들. 그들이 넘었던 고개에는 얼마나 많은 한숨과 사연이 묻혀 있을까.
푸른 잔디밭 너머로 객주문학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은 유난히 높았고 흰 구름이 청송의 산 위를 천천히 흘러갔다. 문학관 앞에 서자 거대한 책 한 권을 펼치기 전처럼 마음이 조용해졌다. 이곳은 청송 출신 소설가 김주영과 그의 대하소설 『객주』의 세계를 만나는 곳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소설 객주 안으로’라는 글귀가 발걸음을 붙잡았다. 원고지를 닮은 벽면 위로 문장이 흘러간다. “샛바람 사이를 긋던 빗방울이 멎자….” 글자를 따라가다 보니 전시장을 걷는 것이 아니라 소설의 첫 장을 넘기는 듯했다. 문장은 오래전에 쓰였지만 그 안의 바람과 달빛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객주』가 품은 사람들은 화려하지 않다. 장터를 떠돌고, 물건을 사고팔고, 끼니를 걱정하며 하루를 버텨낸 사람들이다. 전시 공간에 재현된 초가와 객주의 풍경 앞에서 한동안 걸음을 멈췄다. 마주 앉은 사람들과 음식을 나르는 여인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시대와 옷차림은 달라도 먹고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의 표정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객주』는 길의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길은 목적지로 가는 통로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삶 그 자체였다. 오늘 장사를 마치면 다시 짐을 꾸려야 했고, 고개 하나를 넘으면 또 다른 장터가 기다렸다. 그들에게 삶은 머무름보다 떠남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 고단한 발걸음이 모여 시장을 만들고 마을을 잇고 세상을 움직였다.
전시실을 나오자 햇빛이 눈부셨다. 잔디밭 바위에 두 아이가 나란히 앉아 있는 조형물이 보였다. 한 아이의 무릎에는 작은 소쿠리가 놓여 있다. 아이들은 말없이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 앞에서 이상하게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거대한 역사는 늘 이런 작은 풍경 뒤에서 만들어지는지도 모른다. 밥 한 끼를 걱정하던 어머니, 장날을 기다리던 아이, 먼 길 떠난 이를 기다리던 사람. 역사책이 다 기록하지 못한 삶을 문학은 기억한다.
문학관 안뜰에는 수많은 나뭇조각으로 만든 커다란 구체가 서 있다. 길고 짧고 굵고 가느다란 나무들이 서로 기대어 하나의 둥근 세계를 이루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며 『객주』의 인물들이 떠올랐다.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시대를 이루듯, 작은 삶 하나하나가 모여 결국 역사가 된다.
여행을 하다 보면 유명한 풍경보다 오래 남는 것이 있다. 어느 골목에서 만난 사람의 표정이나 낡은 의자 하나, 벽에 적힌 짧은 문장 같은 것들이다. 객주문학관에서도 그랬다. 화려한 전시보다 마음에 남은 것은 길 위에서 살아야 했던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문학관을 나서며 다시 청송의 산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자동차가 고개를 쉽게 넘지만 옛사람들은 저 산을 두 발로 넘어야 했다. 짐보다 무거운 생계를 등에 지고서도 다음 장터를 향해 걸었을 것이다. 어쩌면 삶이란 그렇게 저마다의 보따리를 들고 다음 고개를 넘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객주문학관에서의 여행은 한 작가를 만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소설을 따라 걷다가 어느새 오래전 사람들의 삶을 만났고, 끝내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길까지 돌아보게 되었다. 청송의 산 사이로 바람이 지나간다. 장돌뱅이들의 발자국은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그들이 걸었던 길은 문학 속에 남아 있다. 사람은 길을 떠나고 세월은 장터를 거두어 가지만, 누군가의 삶을 기억하는 문장만은 오래도록 그 길 위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