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소개
엄니, 아버지 어렸을 때 어떻게 사셨는지 아세요?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부터 이미 아버지였고 당연히 어른이었고, 바쁜 목수였습니다. 아버지는 일하느라 늘 밖으로 돌았습니다. 깜깜한 새벽에 나가서 해가 지고 어둑해진 뒤에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오자마자 연장 가방부터 풀어 정리했습니다. 아버지의 연장 가방에서는 고된 작업의 흔적이 남아 있는 목수의 연장들이 연이어 나왔습니다. 그때는 아버지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목수가 되기 이전과 아버지가 되기 전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랬던 아버지가 몇 년 전부터 집에만 있습니다. 주름진 얼굴, 허옇게 센 머리, 앙상한 팔다리, 구부정한 몸, 세월이 흘러 어느덧 노쇠한 할아버지로 변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문득 아버지의 지난날이 궁금해집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아버지에 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연장은 손에 익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아부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 어린 시절에 대해 본인이 알고 있는 것과 더불어 평생 목수 일만 해 온 아버지의 삶에 대해 들려주었습니다. 어머니를 통해 처음 듣는 아버지의 어린 시절은 몹시 외롭고 고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생계를 위해 뛰어든 공사판에서 바지런히 일하다가 우연히 찾아온 기회로 목수가 된 아버지. 그래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 늘 함께할 가족을 꾸릴 수 있게 된 아버지. 가장이 된 아버지는 목수로서 일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들을 장만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아버지에게 연장에 대해 물은 적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에게 처음 쥐어 준 것은 장도리, 그리고 톱과 대패. 모양도 쓰임새도 제각기 다른 연장들에 대해 일러 주면서도 잘하는 요령 같은 건 없다고 대답하던 아버지. “야야 그걸 말로 우예하노. 연장을 잘 다룰라믄, 손에 익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아버지에게는 연장이 몸으로 익힌 삶의 기록이자 삶의 흔적이 새겨진 도구들이었습니다.
아버지…… 이 가방은 뭐 하러 남겨 뒀어요?
고향 본가 한구석에서 발견한 아버지의 낡은 연장 가방. 그 안에는 가방만큼이나 낡고 오래된 망치, 톱, 대패 따위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작가의 아버지는 이런 연장들로 일해 온 목수입니다. “필요한 사람한테 주는 게 맞지 않겠나.” 늙어가는 몸으로 점점 일하기 힘들어지자 한때는 창고를 가득 채웠던 연장들을 하나둘 떠나보낸 아버지. 그렇게 모든 것을 정리한 줄 알았던 아버지가 끝내 버리지 못한 연장 가방을 보면서 작가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연장들로 아버지의 삶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작가는 꽤 오랜 시간 그림을 그리며 살아왔습니다. 작가의 연장은 바로 종이와 연필과 물감 등. 어쩌면 아버지의 연장과는 정반대의 지점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로, 늘 밖으로만 돌던 그래서 실은 잘 모르는 아버지의 지난날을 어머니에게 물어물어 지면에 옮겼습니다. 묵묵히 일만 했던 아버지의 삶은 심심하게도 목수 일과 연장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작가는 꾸밈없이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맨 처음 이 이야기의 시작점이 되었던 물음에 대한 답이 숨어 있습니다. 아버지가 다시 쓸 일 없는 낡은 연장 가방을 간직하고 있는 이유, 그것은 늙은 아버지처럼 낡고 가벼워졌지만, 그 속에 아버지의 삶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연장 가방에는 잔잔하지만 묵직한 울림을 주는, 평생 목수 일만 해온 아버지의 이야기가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의 이면에 있는 ‘나’의 이야기, 작가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버지를 이해해 보려 노력하면서 아버지의 의미에 대해 되새기는 과정은 우리로 하여금 ‘한 사람으로서의 나의 아버지’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합니다.
첫댓글 작가의 나의 이야기이자 우리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