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안 썸머 2001. 5. 13
이 영화는 멜로 영화라는 것 이외에 제 관심을 끈 것이 있습니다. 과연 박신양, 이미연이라는 두 배우가 이 영화로 다시 재기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작년에 '물고기자리'로 여우주연상을 획득했고, 박신양 역시 멜로 영화로는 잔뼈가 굵습니다. 하지만 최근작들이 잇달아 흥행에 실패하면서 두 배우의 위상 역시 좁아진 면이 없잖아 있죠. 과연... 우리 관객들의 눈물샘을 얼마나 자극할 것인가...!!??
글쎄요... 의문임다.
먼저 제가 감정이 메마른 녀석이라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대략의 줄거리는 국선 변호사 서준하(박신양)가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이신영(이미연)을 변호하는 이야깁니다. 서준하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뛰어라'는 아버님의 명(?)을 받들어 법정에서도 운동화를 신고 나오는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바른생활 사나이'입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 저같은 인물이죠? ^^;;;
'죽고 싶다'란 말이 '살려달라'는 말보다 절실하게 다가와서라고 합니다. 서변호사가 피고인 이신영에게 끌리는 이유가 말입니다. 변호인 접견조차 거부하는 이신영. 어떤 이유에서건 서준하는 마치 탐정처럼 그녀의 주변을 조사합니다. 그것도 정의감에 불타는 인물이어서 그렇겠죠? 그러다가 남편의 상습적 폭행 사실을 알아내고, 1심 사형을 뒤집을 정황증거들을 대서 2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선고를 받아냅니다. 이걸로 영화가 끝? 그랬음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제 다시 살고 싶은 의욕이 생긴 이신영과 서준하는 짧은 여행을 떠납니다. 어느 늦가을 겨울 문턱에서 잠시 다가오는 마치 여름날의 더위 같은 얼마되지 않는 기간. 인디안 썸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시기가 자기에게 가장 아름다운 시기라는 것을 모르고 지나칩니다. 인디안 썸머는 기나긴 겨울을 견뎌내고 다시 여름을 기원하는 사람들만이 알아챌 수 있는 신의 선물이라고 하죠. 영화에서요.
이 둘의 짧은 여행은 아마도 인디안 썸머일겁니다. 하지만 그 짧은 여름날 뒤에는 겨울이 다가오죠. 무죄판결을 뒤집을 수 있을 만한 증거를 잡은 검사측은 다시 이신영을 법정에 세웁니다. 아따 그놈 자식들... 그냥 살게 두지... 하지만 그래야 이 사회에 법과 질서가 바로 서고 영화도 본래 목적인 울음바다가 되겠죠?
그렇지만 이제 살고 싶은 생각이 든. 자기 입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던 이신영은 모든 혐의를 인정해 버립니다. 살고 싶다가 왜 갑자기 죽고 싶은 맘이 들었을까요? 이제 겨우 행복해 질 수 있을 여건이 마련되었는데. 왜 죽고 싶어진거죠? 한 15년 받아서 구차하게 사느니 그냥 죽자는 생각이 들어서일까요? 아마도 노효정 감독님께서는 여자 주인공이 기어코 죽어야 더 슬퍼지는 거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서준하는 한술 더 뜹니다. 우리의 바른생활 사나이 서준하는 위조 여권을 마련하고 증거인멸을 우려해 잠복하던 경찰을 따돌리기에 이릅니다. 그것도 자기가 예전에 변호했던 폭주족들을 동원해서 말이죠. 이 장면에선 사람들이 통쾌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립니다. 제가 실소를 지은 것에 반해서 말이죠. 명색이 변호사라는 사람이. 그것도 판사의 지적을 받으면서도 운동화를 신고 법정에서 변호하는 나름대로의 정의감과 사명감이 있는 사람이 이런 짓을 하다뇨... 눈에 콩깍지 씌여서 뵈는게 없을 것이라고 용서해 줘야겠죠? 휴허허...
1심 재판을 뒤집을 증거로 제시하는 법정 장면에선 긴장감이 감돕니다. 변호사와 검사간의 공방. 정황적, 물적 증거들이 제시되고 등장하는 많은 증인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두 사람이 여행을 떠나는 장면은 지나치게 조용하고 나른합니다. 긴장과 이완의 반복. 그렇지만 그 호흡의 조절을 잘 하지 못해서 필요 이상 긴장하고, 너무 오래 늘어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두 사람이 곧 닥쳐올 겨울에서 좌절할 것을 관객은 이미 알고 있죠. 가장 행복한 짧은 시간. 그 뒤에는 고통이 있으리라. 그런 면에서 두 사람의 여행은 행복하면서도 불행이 예고된 간절하고 애절한 맛이 있어야 하는데 마치 영화가 끝난 듯이 너무 늘어집니다. 조금의 복선이나 위험의 예고라도 있었으면 두 사람의 마지막 여행이 더욱 슬프게 느껴졌을 겁니다. '아이구... 곧 겨울이 올텐데... 그것도 모르고 행복하네... 불쌍한 것들...' 뭐 이런 생각이 들었으면 더 좋았을 거란 이야기죠. 저도 사실은 무죄판결 받았을 땐 영화가 끝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시간상), 너무나 늘어지고 차분한 여행장면에서 깜빡 속았었죠. 이대로 끝나나? 마지막 여행의 비장미가 아쉽습니다...
멜로 영화를 보는 목적은 뭘까요?
슬픈 영화를 보고 펑펑 울고 싶어하는 '한'의 민족 한민족이기 때문에 보는 것 아닐까요?
저는 웬만한 영화를 보고는 눈물이 잘 나질 않습니다. 절규하는 서준하를 보면서도 슬프다는 생각보다는 '바보같은 자식...'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마도 뒤로 가면 갈수록 이해할 수 없이 변해가는 모습을 봐서 그런가 봅니다. 그에 반해 절제하는 눈물연기를 보여준 이미연의 연기는 좋았습니다. 펑펑 운다고 같이 슬퍼지는건 아니거든요. 언제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촉촉한 눈망울로 지긋이 응시하는 얼굴을 보고 있자면 괜히 측은해지더군요. '선물'에서 이정재의 주정뱅이같은 연기나 '하루'에서 고소영의 짜증내는 연기보다는 박신양, 이미연 커플이 훨씬 연기력에서 뛰어납니다. 연기력에서는 검증된 배우들이니까요.
'인디안 썸머' 라는 제목처럼 차라리 가을에 개봉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시기적인 이점도 있었을 텐데 말임다.
좀만 더 기다리셨다가 이번주에 개봉하는 '엑소시스트: 디렉터스 컷' 보심이 어떨지요?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긴 합니다만.
휴... 상당히 연장까지 가는 박빙의 승부를 하고 온 탓에 정신이 하나도 없군요. 전혀 보탬이 안되긴 했지만...T.T 그래도 더 지나면 그나마 있었던 감상마저 까먹을 것 같아서 써 올립니다. 허허...
여러분들의 가장 행복하고 빛나는 때는 언제입니까? 지나고 나서 그때가 좋았지... 하는 것보다 매일매일을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가는건 어떨까요?
즐겁고 행복한 하루하루 되세요...
그럼 이만.
ps: 물론 상업적 광고나 스펨성격의 글은 아니지만 영화평과 한스동이 어울리는 글인가...? 괜한짓 하는거 아닌가 몰겠네요. 거슬리신다면 죄송...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