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따니 : 풍납토성은 대방군의 군치이다..
문화재연구소와 한신대박물관의 발굴로 더이상 이런 헛소리는 안하고 다닌다 합니다.
미이케켄이치 : 신라의 관등제도는 진평왕때 성립되었다고 주장함
단양적성비의 발견으로 한방에 핫소리가 되었다고 함.
이런 예를 볼때, 공백으로 남아 있는 부분을 마음대로 제단하고 가설을 입론할경우,
이런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문헌이 알려주는 사실은 당시의 상황을 모두 알려주지 않은 제한된 정보이기에
이 정보의 공백을 가설로 추론해 나가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러나 이런 추론은 추가적인 자료의 발견이나 발굴을 통해 그 오류가 여지 없이 드러나
그 학설 자체가 용도폐기 되기도 합니다.
첫댓글 일본 학자들이 한국사를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후 유물발굴 등으로 자기 주장이 논박될 것을 두려워하여 애매한 태도만을 취하는 것도 학자의 좋은 태도는 아닙니다. 유물발굴로 자기 견해가 뒤집어지면 멋적은 일이 되긴 하겠지만 솔직히 인정하고 견해를 수정하면 되지요.
원론적으로 미주가효님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지나친 추론으로 고대사를 단정해버려 결국 후에 새로운 발굴이나 금석문자료로 인하여 자신의 주장이 용도폐기되는 경우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관점이 아닌가합니다..
과감한 추론도 필요할경우 추론단계임을 적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수 있습니다.
과감한 추론보다는 추가자료가 나올때까지 판단보류하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원래 일본인들 하는 짓거리가 그렇긴 하죠,
니시타니 타다시 선생님께는 개인적으로 강의를 들어본 바가 있기 때문에 사실 그분이 헛소리만 하고 다닌것 처럼 쓰여진 점이 매우 안타깝군요. 니시타니 타다시 선생님이 풍납토성을 대방군치소로 본 것은 90년대에 일본의 선학들의 견해를 따라서 말한 것인데, 이후 모 교수님이 그분을 지속적으로 비판하시더군요. 사실 일본의 분위기 상 선학의 견해를 바로 무시하고 갈 수 없기 때문에 한 언급이고, 니시타니선생님의 경우엔 현재로서는 풍납토성을 대방군치소로 보고 있지 않지요. 그분도 예전에 강의를 하실 때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 답답함을 토로하곤 하시더군요. 참고로 니시타니 선생님은 한중일에서 왕성한
니시따니 선생을 비판한 선생님이 누구인지 대략 짐작이 갑니다.그렇다고 그분이 원색적인 비난? 조금 그렇군요. 그분은 풍납토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경당지구등의 발굴없이 재개발되는 것을 막아선 분이 아닌가요?
선학의 연구를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는 말이 안되죠. 이미 기단식적석총등 한성백제의 고분이 상당수 발굴되었고(70년대-80년대) 뻔질나게 한국에서 자료를 취득해간 자료는 국내학자이상의 자료를 확보한 연구자가 바로 니시따니선생입니다.
니시따니 선생에 대하여 이제는 그런소리하지 않는다고 본글에서 언급한것처럼 풍납토성이 발굴된다음에 더이상 대방군치애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학자라면...단
단순히 선학들의 애기를 반복하지 말고 70-80년대 송파일원의 백제고분발굴 80년대 중후반 몽촌토성등을 통해서 확인된것으로만 보아도 대방군치하고는 말이 안되는것 파악이 가능했답니다. 몽촌토성이나 석촌동 기단식적속총에 니시따니선생이 몇번이나 방문하였는지 후에 강의시간등에서 니시따니선생을 만나면 물어보세요.
학자로서 10년 전의 견해와 그 이후의 견해는 달라질수 있다고 봅니다. 언제까지나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죠. 그 선생님께서는 과거의 견해만을 보고 불과 4년 전에도 니시타니선생님에 대해 비판하였었지요. 그때는 이미 니시타니선생님은 그분의 견해를 수정하셨을 때인데 말이지요. 청사죽백님의 글에서는 자세한 언급보다도 단순화시켜서 일본학자들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바로 내보내셨기에 다른 회원분들께서 자세한 사정을 모를까봐 이렇게 사족을 단 것입니다. 아. 그리고 이형구교수님도 학자의 입장에서 비판한 것이기에 원색적인 비난이라는 단어를 비판으로 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활동을 하시며 한국어도 잘하시는 대표적인 지한파 학자이시죠. 또한 일본문화가 한국에서 도래한 것에 대해서 매우 적극적으로 설명하시기도 하고 말입니다. 저로서는 그분에 대해서 인상을 깊게 받은게 대학교 2학년 때 그분의 강의에서 약간 잘못 말씀하신게 있더군요. 파형동기가 국내에서는 출토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쉬는시간에 잠깐 찾아뵈어 대성동고분군에서 출토되었다고 하니깐 잠시 깜빡했다고 하시면서 사과하시고는, 다시 수업을 시작 할 때 바로 그 부분을 정정하시더군요. 굉장히 겸손하시면서도 학자적인 자세가 되어 있는 분인데, 그분의 말씀이 단순히 헛소리로만 치부되고 끝나는게 안타깝군요.
파형동기가 대성동고분에서 출토되었지 않았다고 불과 10여년전이전의 강의에서 니시따니선생이 말했다고요.
설마 그렇다면 니시따니 선생은 좋은 사람이 아닌듯..
신경철선생이 대성동고분 발굴보고서가 나오기전에 논문을 한, 일 학계에 여러차례 발표하였는데, 한국에 자료취득차 수시로 들날날락하는 니시따니선생이 모르고 있었다니 기가막히는 군요...
니시따니 선생이 대성동고분출토 통형동기에 대하여는 뭐라 하던가요?
대성동고분에서 출토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신 적은 없습니다. 제 댓글을 잘못 이해하셨군요. 잠시 깜빡하였다고 말씀하시면서 제가 드린 말씀에 대해 바로 인정하시더군요. 그러면서 규슈지역의 파형동기와 대성동고분군에서 출토된 파형동기의 형태가 어떤 점에서 차이를 보이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때 파형동기에 대한 부분은 애초에 규슈지역의 고고학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나온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분께서 실수하고 넘어간 부분이지요. 개인적으로는 그때 겨우 학부생의 말에을 경청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끗하고 인정한 부분이 학자로서의 진모습으로 느껴졌습니다.
아 그렇군요.....니시따니 선생이 통형동기에 대한 설명...즉 금관가야의 위세품으로 보이는 통형동기가 일본내 출토등을 설명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니시따니선생이나 미이케켄이치선생이 국적을 떠나 선학의 연구논고로서 나름 연구사적으로 평가받을 만한 연구자들이라는 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섣부른 추론에 의한 결론도출이 얼마나 허무하게 용도폐기될수 있음을 지적한것이 위글의 취지입니다.
애초에 이 말씀이 글에 언급되어 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글만 놓고 볼때는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사에 대해 깔보고 자기 멋대로 판단하여 식민사학적인 의견을 도출해낸다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라는 염려에 몇자 적어 본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청사죽백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한 섣부른 추론에 의한 결론도출이 잘못될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역시 저 또한 동의하는 바 입니다.
제가 글의 취지를 위글에 같이 올렷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물론 과거연구를 식민사학어쩌구하는 그런 무리한 판단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오해없이 글 그대로 이해하여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