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사랑 노래 - 1 -
황 동 규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요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위한 저녁 하늘에
찬란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 앉지도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사람이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 지에 대해서는 할 말들이 많겠지만
왜 사랑에 빠지는 거에 대해서는 별로 말들이 없다.
왜 사랑에 빠지는 걸까?
전에 누군가에게 마치 영화배우 허장강이 말하듯
"우리 심심한데 연애나 해볼까?"라고 문자를 보낸적이 있다.
그랬더니"이미 하고 있는거 아니었나요"라고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잠시 뒤..."저는 연애는 두렵지 않은데 정들까 그것이 두렵다."는
문자가 연이어 날아 왔다.
사랑에도 종류가 있다.
그 과정을 놓고 보자면 역시 첫눈에 반하는 사랑
혹자는 이런걸 "crush-on-you"라고 한다는데, 그런 타입이 있고
계속 지켜보다 보니 서로에게 정이 들어 버리는
"growing-on-me"로 구분하더라.
나는 어떤 유형일까?
생각 해보니 두가지를 모두 중요하게 생각 하고 있었다.
첫눈에 반하는 사랑은 성욕이라고 폄하하는 이들을 종종 보았는데
난 그렇게 말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웃기고 자빠졌네." 난 육체 없는 사랑에대한 찬미자들,
성욕에 대한 이유 없는 멸시를 보내는 이들을 볼때마다
"호박씨"가 떠오른다.
열심히 까라....나는 열심히 털어 먹을 테니... 하는 배배꼬인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박완서의 소설 <너무도 쓸쓸한 당신>에 이런 구절이 있다.
"적어도 같이 아이를 만들고, 낳고, 기르는
그 짐승스러운 시간을 같이 한 사이"가 아니라면
늘그막의 결혼이란 힘들다고 말하는 ....
즉, 육체가 배제된 사랑은 그저 '마른 꽃'이다.
실시간 체험이 없다면 인생이란 그저 길고 재미없는
지루한 영화 일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으면 생리적으로 몸의 수분이 날라간다고 한다.
내가 의사가 아니니 전문적인 의학 지식을 망라해서 설명 할 수는 없으나
소화액의 분비가 적어져서 밥을 국에 말아 먹거나
물에 말게 되고 된밥보다 진밥이 좋아지고
피부는 푸석푸석해지고 질에서 분비되는 애액도 적어지고
남자는 정액 생산에 차질을 빚는다.
어디 그뿐이랴.
생리도 듬지다가 결국 달거리도 멈추고 만다.
우리는 그렇게 거꾸로 매달려 시들어 가는 아니 사실음 매말라가는 꽃이다.
그럼에도 작가 박완서가 말하듯
늙는다고 불쌍하게 여길일도 서러워 할 것도 없다.
늙어도 여전히 나는 재미있게 살거다.
아니 그러려고 애쓸 거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인생을 즐기라"는 충고도 해주면서.....
자신이 선택해서 짐승같이 살 수 없을 때
인간은 때로 짐승보다 불쌍하다.
그럼에도 내가 어떤 사랑의 방식을 굳이 택해야 한다면
나는 "crowing-on-me"를 택하고 싶다.
누군가의 늙어가는 모습을 한량없는 시선으로 오래도록 지켜보는 것이
내가 어느 한 인간에 대해 갖출 수 있는 최선의 예의란 걸
나도 일고 그도 알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진정한 의미에서 성장이란 없는 지도 모르겠다.
시인 황동규는 "어제를 동여 맨 편지"를 받는다.
어제를 살아 본 이들만이 오늘 그런 편지를 받을 수 있다.
앞을 보고 걸어가던 이에게 어느날 문득 길이 끊긴다.
더이상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멈춰 설 수밖에 없다.
우두커니...이젠 서 있을 수박에 없다.
종착역에 도달 했을 때... 마중하기로 한 죽음이 아직 나오지 않았을 때...
여생(餘生)이란 자식을 낳은 뒤의 삶이라고 힌다.
자식을 낳은 사람은 누구나 남겨진 삶을,
당신을 위해 남겨진 시간이 아니라
자식을 위해 하늘이 남겨준 여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여생"이란 한자어의 담긴 뜻이다.
그제에야 비로서 우리는
"어는 노 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수 있고
마주 선 누군가의 얼굴에 간 금을 볼 수가 있다,
성겨진 머리카라과 함께.
"땅 어디에 내려앉지도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송이 눈"....
말 없는 눈을 보게 된다.
나는 종종 나를 온통 불살라 버릴 수 있는 사랑을 꿈꾸었으나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조그만 사랑"
과가로 부터 동여매진 편지 한통처럼
문득 전해진 그런 작은 사랑을 원했다.
삽입곡 : 고성현의 인생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