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부활의 새벽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십자가 죽음은 부활의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기꺼이 십자가에 연합되게 하시고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 부활주일 예배를 영과 진리로 드리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본문 주해)
1~3절 : 주일 새벽에(안식 후 첫날 새벽에) 여자들이 무덤의 돌을 어떻게 굴려낼 것인가를 염려하며(막16:3)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찾는다.
그런데 무덤에 가보니 돌이 옮겨져 있었고, 무덤 안에는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여자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라 다녔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에 시체가 사라진 것을 근심할 수밖에 없었다.
4~7절 : 그때 두 명의 천사가 나타나 ‘어찌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하며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고 말한다.
그리고 평소에 예수님께서 부활에 대해 하신 말씀을 기억해 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눅9:22)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눅18:33)
8~12절 : 여자들이 천사의 말을 듣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한다.
그래서 사도들와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말씀을 전한다.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와 또 그들과 함께 한 여자들이다. 당시 법정에서 증인도 되지 못하는 여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최초로 목격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나 여자들이 전하는 말을 사도들은 믿지 않았다.
성질 급한 베드로(요한과 함께)가 무덤에 달려 가 시신을 감았던 삼베만을 확인할 뿐, 그 역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였다. 그저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이상히 여길 뿐이었다.
(나의 묵상)
여인들이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 가 보니 입구를 막았던 돌이 굴려져 있고, 무덤은 비어 있었다.
여인들이 빈 무덤을 보고 근심했다는 것은 이는 여인들이 예수께서 생전에 부활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믿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아니, 아예 ‘부활’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었던 듯하다.
그런데 여인들은 천사의 메시지를 듣고서야 빈 무덤의 의미 즉 주님께서 살아나셨음을 일게 된다. 천사의 메시지는 예수님께서 살아계셨을 때 하신 말씀이었다.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눅9:22)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눅18:33)
예수님의 말씀이 기억난 여인들이 두려움에서 벗어나 열한 제자들을 찾아가 주님의 부활을 전한다. 여인들은 부활 신앙을 드디어 믿기 시작했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믿지 못한다. 빈 무덤을 직접 확인한 베드로조차 놀라기만 할 뿐, ‘부활’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제자들은 아직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 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죽을 병이 낫고, 실패한 사업이 전격적으로 회복되는 등의 체험에 목을 매는 교인이 많다.
나도 복음을 알기 전 육신의 아버지가 암에 걸렸을 때 병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신다는 신령한(?) 장로님을 찾아가 오랜 시간을 줄 서서 기다리며 기도를 받곤 했다.
이버지는 병이 낫지는 않았지만, 그분의 용한(?) 능력을 이야기하는 환자들의 간증이 많았다.
그런데 그들의 믿음은 당장은 뜨거운 것 같으나 이내 시들해지고, 더 용한 자를 찾아서 이리저리 헤매는 자들이 된다. 그들은 주님과 친밀한 관계보다 자기 소원 성취에 초점이 있으니 탐심만 가득하여 평안이 없다.
때때로 초신자에게 체험을 통해 역사하시는 것은 말씀 위에 세워진 믿음이 되라고 인도하시는 과정이다.
내게도 주님께서 놀라운 체험을 하게 하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체험을 한다고 예수님을 다 믿게 되는 것은 아니다. 더 큰 체험을 원하다가 소원대로 되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이 있네 없네’ 하며 나가떨어지고 만다.
말씀 위에 세워진 믿음이어야 한다.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는 것이다.
오늘 주님의 무덤을 찾은 여인들이 천사의 인도로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자 두려움이 사라지고 담대함이 생겼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26)
매일의 말씀 위에 믿음을 세워주시는 주님께 감사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과 나타나 보이심이 나의 구원을 이루시는 그리스도의 행하심임을 믿을 수 있는 것은 복음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말씀 위에 신앙의 뿌리를 내린 자는 심판의 그날, 주님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린다. 이것 역시 주님 다시 오시리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1:10~11)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1:7)
(묵상 기도)
부활의 새벽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살아나길 원합니다.
주님,
말씀으로 충만하게 하시어 굳건한 믿음을 주시옵소서.
복음의 말씀 위에 든든히 서게 하시고
날마다 주님과 교제하는 이 생명의 삶을 끝까지 이어가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