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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홀로 테마여행 원문보기 글쓴이: 광나루
[Overseas Trip] 우즈베키스탄, 수천 년의 시간을 따라서
매일경제 2023. 7. 21
‘박물관 도시’ 부하라, 그리고 ‘성곽 도시’ 히바를 가다
실크로드에 위치한 무역, 학문, 문화, 종교의 중심지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난 고대 건축물 여행
실크로드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우즈베키스탄에선 고대 건축물이 여행의 하이라이트이자 전부나 다름없다.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면 할수록 건축물의 등장은 계속해서 여행자에게 같은 듯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수천 년의 시간을 따라서 정처 없이 거닐 수 있는 곳.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도시 부하라와, 흙으로 지어진 성벽이 감싼 도시 히바에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의 이면을 살폈다.
여행자를 따뜻하게 맞아준 우즈베키스탄 히바 사람들
우즈베키스탄 여행에서 포기할 수 없는 두 곳이 바로 부하라(Bukhara)와 히바(Khiva)다. 정확히 말하면 히바가 주 목적지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일곱 번째로 큰 도시, 부하라는 최소 5,000년 동안 사람들이 거주해온 유서 깊은 도시로 실크로드에 위치해 오랫동안 무역, 학문, 문화, 종교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이 부하라에서 서쪽 약 500km 지점에 위치한 히바는 약 1,500년 전부터 존재했던 도시, 이곳 또한 실크로드의 중요 경유지로 발달해 현재에 이른다.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서 출발하는 아프로시욥(Afrosiyob, 우즈베키스탄 고속열차)이 부하라까지 편성되어 있어 대다수의 여행자는 부하라까지 욕심을 내지만 히바는 그렇지 않다. 히바에 가려면 부하라에서 일반열차를 타고 약 7시간 이동해야 한다.
부하라 올드시티의 풍경
차로 이동하더라도 사막을 통과하는 도로사정상 소요시간은 기차와 비슷하다. 실크로드의 중심지로 번영했던 부하라와 히바, 이동과정은 달라도 목표는 같다. 포기할 수 없는, 도달해야 할 곳, 같은 듯 다른, 다른 듯 같은 두 곳의 고대도시에서 역사의 시간을 여행한다.
박물관의 도시, 부하라(Bukhara/Buxoro)
버스 타고 골목길 따라 올드시티로
부하라 역 택시기사들의 호객행위가 심하다는 한 여행자의 말이 떠올랐다. 부하라 역은 외곽에 위치해 있어 도시 중심부 올드시티까지 대략 15km 거리다. 기사들은 먼 거리를 내세워 두 배, 세 배 그 이상의 웃돈을 붙여 흥정을 하게 만드는데, 서로 대화 대신 계산기에 숫자를 두드려가며 흥정을 하는 일이 생각보다 꽤 스트레스다.
관광지 특성상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부하라의 첫인상이 부정적으로 다가온다. 나를 둘러싼 여러 명의 기사들이 서로 싸우듯 더 크게 질러대는 목소리가 뺨과 귀를 수차례 때리는 이 상황을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 이들보다 최대한 더 크게 목청껏 소리를 지르곤 “No Taxi”를 방방곡곡에 알리는 일. 이쯤 되면 ‘부하라에 왜 왔을까’ 싶은 의문이 이어진다.
오랜 역사가 묻어나는 부하라의 골목길 풍경
하나 남은 좌석에 마지막 승객이 엉덩이를 들이밀자 그제서야 로컬버스 엔진에 불이 켜졌다. 앉거나 서 있는 승객들로 만석인 버스는 중간 중간 사람이 새로 탈 때마다 용케도 여유공간을 만들어낸다. 더 놀라운 건 승객들 중 누구 하나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오히려 다같이 여유공간을 만드는 것. 승객들의 협동심은 이방인이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에도 빛을 발해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기사를 불러 세워 버스를 멈추게 했고, 버스 밖으로 여행자의 짐과 몸을 반출시켰다.
도시의 중심부인 니소미 스트리트(Nisomi Street)에서부터 올드시티까지 2,0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오래된 골목길을 걷는 동안 앞선 자문에 대한 답을, 부하라의 첫인상을 다시 고쳐 썼다.
오랜 역사가 묻어나는 부하라의 골목길 풍경
‘부하라Bukhara’는 산스크리트어로 ‘수도원’을 의미하며, ‘박물관의 도시’라 일컫는다. 140개 이상의 중세 건축 기념물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10~17세1598년 건설된 벽돌 성벽, 이찬 칼라 기 중앙아시아의 중세 도시 가운데 도시 구조가 21세기 현재까지 거의 온전하게 남아 있는 가장 완벽한 역사지구이다. 부하라 칸국 당시 지어진 건축물이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 모으는 이유이다.
가장 완벽한 역사지구에서
요새로 사용된 아크 오브 부하라 전경
2,000년 이상의 역사를 품고 있는 부하라는 중앙아시아의 중요한 경제 및 이슬람 문화의 주요 중심지였다. 이곳 올드시티는 16세기 초 셰이바니(Sheibani) 시대의 도시화와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각 건물의 독창성을 넘어 이를 한데 아우르는 전체 도시 경관의 일관된 건축양식이 부하라의 가치를 드높인다.
오랜 역사가 묻어나는 부하라의 골목길 풍경
부하라의 역사지구는 199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됐다. 수많은 모스크와 이슬람 교육기관인 마드라사(Madrasah), 햇볕에 말린 벽돌로 된 평평한 지붕의 집, 지붕이 덮인 시장과 유적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 부하라의 상징이라 꼽히는 곳이 바로 이슬람 종교단지 ‘포 이 칼란(Po-i-Kalan)’이다. 모스크와 첨탑인 미나렛(Minaret), 마드라사 총 3개의 건축물로 구성된 이 단지에서 중심축은 단연 미나렛이다.
부하라의 상징, 약 50m 높이의 미나렛(첨탑)
1127년에 완공된 약 50m 높이로 우뚝 솟아 있는 미나렛은 과거 부하라 주변의 사막을 가로질러 여행하는 캐러밴의 랜드마크로 사용되었다는 설이 있다. 포 이 칼란을 중심으로 도시가 수세기 동안 확장되고 발전해왔기 때문에 미나렛은 예나 지금이나 부하라의 중심축으로서 도시를 밝히고 아우르는 존재다.
부하라 역사지구에서 초기부터 살아남은 중요한 기념물로는 이스마일 사마니 영묘(Ismail Samani mausoleum)가 대표적이다. 중앙아시아 건축에서 가장 높이 평가되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영묘는 9~10세기에 지어졌다. 당시 이 지역을 통치한 마지막 토착 페르시아 왕조인 사마니 왕조의 창시자 이스마일 사마니의 안식처로 지어졌는데, 영묘의 독특한 건축양식은 조로아스터교와 이슬람교의 결합에서 비롯된다.
이스마일 사마니 영묘
이러한 점은 당시 조로아스터교 인구가 대다수를 차지했던 이 도시에서 이슬람교로의 개종이 활발히 시작된 시기를 건축양식에서 고스란히 살펴볼 수 있어 특별함을 더한다. 건물의 정면은 태양을 연상시키는 패턴을, 돔형 지붕은 모스크 건축의 전형적인 특징을 그대로 담았다.
부하라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일몰 무렵의 올드시티
부하라의 여름은 덥다 못해 뜨겁다. 전형적인 중앙아시아의 기후로 부하라는 덥고 건조한 기후가 여름을 뒤덮는다. 6월 초여름에도 한낮의 기온은 37도를 웃돈다. 그렇기에 뜨겁게 타오르는 도시의 대낮은 여행자에게 무용지물이다. 강렬한 햇볕 아래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늘을 찾으러 다니거나 그늘에 몸을 숨기는 것뿐.
(좌로부터 첫 번째와 세 번째 사진)올드시티에 자리한 상점과 카페 (가운데) 교육기관이었던 미르조 울르그베크 마드라사
그늘에 앉아 나지막이 불어오는 바람결에 감사함을 품는 것, 별것 아닌 것에도 존경심을 갖는 것. 부하라의 여름은 그렇게 여행의 시간을 채운다. 그렇게 무용지물 같이 느껴지는 낮의 시간이 지나면 낮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밤의 시간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도시의 화려한 어둠 속 빛을 밝힌 건축물
부하라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일몰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된다. 이는 여행자뿐만 아니라 로컬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강렬한 햇볕이 자취를 감춘 뒤 이 도시에 어둠이 깔리고 나면 모두가 집 밖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올드시티 어느 거리를 가더라도 사람들로 빼곡하다. 도시의 화려한 어둠 속 빛을 밝힌 건축물, 이를 둘러싼 사람들, 그들이 일으키는 소리와 몸짓, 오랜 역사가 빚어내는 공기.
이 모두가 한데 어우러진 이 밤이 끝나는 것이 아쉬워 밤을 낮처럼 신명 나게 보내는 로컬 사람들과 함께, 아쉬움을 삼킨 매일의 밤은 여행자의 마음과 달리 흔적 없이 저물어간다. 부하라의 밤이 없었다면 여행의 시간은 종이조각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 도시의 밤은 또 하나의 여행이자 추억으로 남았다.
성벽 안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삶 히바(Khiva/Xiva)
밤 기차를 타고 다시 고대도시로
부하라발 히바행 밤 기차
자정을 넘긴 시각, 전광판 알림을 시작으로 부하라발 히바행 기차 탑승이 시작됐다. 3등석 기차 칸은 좁다란 복도를 중심으로 좌우 4개와 2개의 좌석 겸 침대가 위아래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환히 불 켜진 기차 내부는 대낮처럼 밝다. 승객이 뒤섞인 채 각자 제자리를 찾느라 분주한 풍경은 ‘자정’의 시간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늦은 밤이 선사하는 긴장감도 그새 저 멀리 달아난 뒤였다.
이슬람 국가인 우즈베키스탄의 기차에는 승무원이 모두 남성이다. 나이 지긋한 중년부터 어수룩해 보이는 20대 초반 젊은 층까지 다양한 남성의 얼굴만이 기차 칸 곳곳을 누빈다. 승무원으로부터 전달 받은 새하얀 빳빳한 천으로 단장한 침대와 베개는 제법 새것 같았고, 그것과 하나된 7시간의 기차생활은 나름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했다.
우즈베키스탄 기차 내부 침대 칸
아침 7시를 넘긴 시각, 히바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승무원의 친절한 안내가 없었다면 침대와 한 몸인 시간이 얼마나 더 길어졌을지는 알 수 없다. 결과적으로 7시간의 이동은 예상보다 훨씬 짧았다. 히바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히바 기차역은 2018년 12월 1일 개통됐는데, 이곳 기차역이 개통되기 전 히바를 여행하려면 약 40km 떨어진 주변 도시인 우르겐치(Urganch)에서 버스나 택시를 타고 한번 더 이동해야 했다. 부하라에서 히바까지 고속열차의 편성은 현재로선 불확실한 상황이지만 히바역의 존재로 이동의 편의성은 높아졌다. 우르겐치를 통하지 않는 것만으로 이곳 현지인들 사이에선 기차역 자체가 삶의 질 향상을 가져온 것이다.
2018년 12월 개통된 히바 기차역
산책의 즐거움, 이찬 칼라에서
히바 여행은 숙소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주 간단하다. 숙소를 성 바깥에 잡을 것인지, 성 안쪽에 잡을 것인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물론 가격 면에선 바깥이 안쪽보다 저렴하다. 성 안쪽에 머물 경우 동선에 효율성을 가져다 주지만 관광지 특유의 분위기에 피로함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반대로 성 바깥에 머물 경우 동선은 멀어질 수 있겠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코끝에 닿을 수 있다. 성 바깥에 숙소를 잡은 이유는 그것이 가진 장점이 이번 여행의 우선순위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고대와 현대를 모두 살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1598년 건설된 벽돌 성벽, 이찬 칼라
히바는 10세기에 기초가 세워진 후 1598년 건설된 벽돌 성벽, ‘이찬 칼라(Itchan Kala)’가 중심을 이룬다. 높은 방어벽으로 둘러싸인 고대 요새인 이찬 칼라는 사실 히바 여행의 핵심이자 전부이기도 하다. 구불구불한 모양으로 세워진 도시 장벽에 들어서면 절로 탄성이 나올 만큼 잘 보존된 내부 모습에 감탄하게 된다. 옛 히바 칸국의 수도였던 이곳의 명성을 짐작하게 하는 유려한 풍경이 곧장 고대도시로 여행자를 이끈다. 오랜 역사 동안 ‘고요한 도시’라 일컬어지는 이곳이 가진 묵직함은 성을 산책하는 길목마다 강한 울림을 선사한다.
이찬 칼라를 구성하는 자갈길, 진흙 모스크, 정교한 문양, 장엄한 성벽은 여행자로 하여금 깊은 인상을 남기며 그것 자체로 여행의 묘미를 더욱 배가시킨다. 더욱이 성을 구성하는 동서남북 네 개의 문은 각기 다른 디자인과 의미를 가진다.
(위로부터) 이찬 칼라의 남문, 이찬 칼라의 동문, 성벽 위에서 바라다본 고대도시 전경들
서문은 메인 역할을 하는 정문(Ata-Darvaza), 동문은 영웅을 뜻하는 영웅 문(Palvan-Darvaza), 남문은 돌을 뜻하는 돌 문(Tash-Darvoza), 마지막 북문은 정원을 뜻하는 정원 문(Bagcha-Darvaza)으로 구성된다. 동서남북 방향에 따라 각기 역할과 의미를 부여한 고대도시 네 개의 문을 살피는 일은 산책을 한층 흥미롭게 이끈다.
성벽 내 여러 다양한 고대 건축물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랜드마크는 칼타 마이너 미나렛(Kalta Minor Minaret). 우즈베키스탄어로 칼타 마이너 미나렛은 ‘길이가 짧은 미나렛’을 의미한다. 1845년부터 1855년까지 우즈베키스탄의 일곱 번째 통치자이자 49대 히바 칸국의 왕이었던 무함마드 아민 칸(Mohammed Amin Khan)은 미나렛의 높이가 70~80m에 달하는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첨탑을 만들 계획이었다.
히바의 랜드마크, 칼타 마이너 미나렛
그러나 1852년 건설이 시작된 후 3년이 지난 1855년 첨탑의 높이가 약 29m에 이르자 계획과 다르게 공사가 중단된다. 역사가들은 무함마드 아민 칸의 죽음이 미나렛의 운명을 결정지은 배경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런 숨은 스토리가 현재의 독특한 형태의 미나렛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무함마드 아민 칸의 영향력은 차지하더라도 파란색, 녹색, 흰색 도자기와 타일로 장식된 독특한 양식의 칼타 마이너 미나렛이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첨탑 중 하나라는 점은 자명한 사실이다.
과거와 현재, 도시 그리고 사람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한국사람입니다.” “히바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히바를 좋아합니까?” 우즈베키스탄 현지인을 만났을 때 국적을 묻는 질문은 항상 맨 처음 등장한다. 그리고 자신의 나라 혹은 도시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인사도 으레 이어진다. 하지만 히바에선 또 하나의 질문이 매번 뒤따른다. “히바를 좋아합니까?”
(좌)여행자를 따뜻하게 맞아준 히바 사람들, 고대 건축물을 놀이터 삼아 뛰어 노는 이 도시의 아이들
이곳 현지인들의 얼굴과 목소리엔 자신의 도시에 대한 애정이 가득 묻어나서 곧장 “히바를 좋아합니다”라고 답을 하는 여행자의 말은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순간으로 각인된다. 외국인 여행자를 만나면 여러 번 묻고 들었을 대답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바 사람들에겐 처음, 날것 그대로의 감정이 실린다. 그 감정은 여행자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어 도시와 도시 사람들의 역사를 바로 보게 했다.
“히바 여행이 또 특별한 이유는 천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고대 성벽, 이찬 칼라를 지켜온 이곳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 도시 전체가 수평적 건축으로 지어진 히바의 고대 성벽 안은 다른 지역과 달리 예나 지금이나 현지인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이 자리한다. 오늘날 성 안쪽에는 약 3,000명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히바 예술에 몸 담은 세습 장인 가족을 중심으로 의복, 요리, 지역, 춤, 방언, 전통 및 관습을 지켜가는 사람들이 히바의 정체성을 이룬다.”
고대 건축물을 놀이터 삼아 뛰어 노는 히바의 아이들
수많은 건축물과 관광상품을 판매하는 여러 상점들 가운데 관광지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다가도 한 걸음 뒤를 돌아보면 인적 드문 골목길에 조성된 작고 아담한 집의 풍경이 과거에서 현재를 오가는 특별함을 안긴다. 미나렛과 마드라사를 놀이터 삼아 뛰어 노는 이곳 아이들의 모습은 유려한 건축양식만큼이나 꽤 오래 진한 여운을 남겼다. 이토록 오래된 도시에서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여행은 히바라서 가능한 것, 골목길에서 현지인과의 또 한번의 만남은 또 한번의 답으로 이어졌다. “히바를 좋아합니다”라고.
[글과 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8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