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인 나도 여자를 모를 때가 많은데 하물며 남자를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 어떨 때보면 참 단순해 보이고 어떨 때보면 참 대단해 보이기도 해서 어디에 기준을 둬야하는지 잘 모를 대상이 남자이다. 그래서 더 궁금하기도 했다. 남자가 남자 이야기하는 거야 쉬운 일이다. 여자가 여자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당연히 설득력 있듯이. 하지만 여자가 남자들의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화성과 금성이 아니라 수성과 천왕성만큼이나 멀어 보이는 여자와 남자의 생각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
중년이 되면 집으로 집으로 귀소하는 남자들과 달리 밖으로 밖으로 탈출을 꿈꾸는 여자들은 서로 행복할 수 없어 보였다. 아내가 곰국 끓이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거나, 이사할 땐 이삿짐에 꼭 붙어가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뒷맛 씁쓸한 웃음을 준다는 걸 여자도 남자도 안다. 결혼하고 삼십 년 가까이 현장에서 일하던 남자가 퇴직으로 24시간 함께 있게 되자 아내는 숨 막혀 죽을 것만 같다는 현실은 기가 막힌 일이 분명하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이게 당연한 걸까? 아님 자연스런 현상일까?
여자가 남자이야기를 써보겠다는 이 무모한 도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결론이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확실하게 확인하고 끝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해보지 않고 서로 소 닭 보듯 사는 것보다야 낫지 않을까? 적어도 어떻게 다른지 정도라도 알게 될테니까.
남자들은 도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다며 쏟아내는 여자들의 불평을 무수히 들었었다. 먼저 그것들을 물어보기로 했다. 누구에게? 남자들에게. 그리고 최대한 남자들의 얘기를 그대로 담기로 했다. 애당초 남자들의 이야기를 하려 했을 때부터 맘먹은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남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해준다는 전제 하에서이다. 불필요한 개입이 남자들의 이야기를 왜곡하거나 확대, 축소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다행히 시작은 만족스러웠다.
남자들은 수다스럽다
정말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남자들은 수다스럽다. 그것도 아주 굉장히 어마어마하게. 집에서 하루 종일 침대와 일심동체가 되어 잠만 자는 남편을 보아온 여자들이라면 콧방귀를 뀔지도 모른다. 혹은 깨어있는 시간 동안 입에 먹을 것 들어가는 시간 빼고는 텔레비전을 향해 묵언수행하는 남편들에게 익숙한 여자들이라면 절대 동의안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이다. 물론 말 진짜 없는 남자들도 있다. 말없는 여자도 있고 남자 같은 여자도 있듯이 사람 따라 천차만별인 것이니까.
어쨌거나 남자들은 수다스럽다. 남자들이 말이 없다는 생각은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처럼 근거없이 가하는 구속과 같다. 남자도 하고 싶은 얘기가 있고 대화 속에서 관계를 유지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수다스러운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여자들이 잘 저지르는 모순 가운데 하나는 ‘수다스런 남자는 가벼워 보인다. 남자는 과묵해야 좋다’는 것이다. 처음에야 말 많고 수다스러우면 무슨 남자가 저러나 싶지만 살 부비고 살아보면 열에 아홉은 정반대의 결론을 내린다.
말없는 과묵한 남자와 사는 답답함보다 수다스럽게 얘기하며 얘기 들어주는 남자가 백배쯤 낫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정말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때문에 난 남자들의 수다스러움이 좋다. 인터뷰에 기꺼이 속 얘기까지 해줘서가 아니다. 두 시간을 훌쩍 넘기면서도 지루할 틈 없이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은 여자 친구와는 또 다른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과연 그 나이에도 일탈을 꿈꿀까?
그런 용기가 남아있을까?
한창 바쁜 중년의 그를 인터뷰하고 추가로 물어보고 싶어서 하루가 지난 후에 연락을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그는 조심스레 고백을 했다. "지난번에 나한테 지금까지 했던 가장 큰 일탈을 물어봤잖아. 그때 내가 안한 얘기가 있었어. 사실 솔직하게 얘기하지 못했거든 그때. 근데 그 얘긴 나중에 해줄게" 하긴 그때 그가 해준 이야기는 사실 실망스러웠다. 다른 사람들과 몸싸움을 해서 경찰서에 갔었단 대충 그런 얘기였다. 그렇다고 어떤 특정한 이야기를 듣길 바랬던 것은 아니다.
중년이 되어 해 본 일탈이 궁금했다. 과연 그 나이에도 일탈을 꿈꿀까? 그런 용기가 남아있을까? 그런 것이 궁금했다. 젊은 시절 불타오르던 패기와 열정도 그 나이쯤 되면 집구석 어딘가에 고이 접어놓고 나와야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은 그러기엔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버리지는 않았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특정한 얘기를 듣고 싶었다기보단 그 쪽이 더 맞을 것 같다.
“남자들은 스트레스 푸는 방법이 술밖에 없어?”
- 술이 좋아서 먹겠냐? 그건 절대로 아니거든. 술 먹고 싶은 그날, 스트레스 받은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술자리 친구밖에 없는 거지. 그게 직장 동료가 됐건, 술집 여자가 됐건, 노래방 도우미가 됐건.
- 집에 가면 답이 없거든. 여러 스트레스 잔뜩 안고 집에 갔는데, 아마 그런 기대는 다들 하고 갈거야. 집에 가면 토끼같은 자식들이 “아빠 수고하셨어요”하고 어깨 주물러주고 여우같은 마누라가 방긋방긋 웃으면서 한번 안아주기도 하고 표현은 안하겠지만 다들 그런 상상들은 할거야. 근데 현실은 그게 아니잖아.
- 아내와 대화 시도는 하지. 집에 가서 맥주 한 잔 하면서 얘기해. 애들 얘기도 하고 일상생활 얘기도 하고. 근데 한 가지 얘기가 빠져있어. 부부관계 얘기가 없어. 집에 들어가면 그런 부분은 머리가 하얘져. 아내는 육아문제로 시달리고 하니까 힘들겠지. 그래도 내가 시도는 해. 근데 결국 남편한테 맞춰주지만 여자는 자기 만족은 없는 거지. 그렇게 지나다보면 한 달, 6개월, 1년 올해도 부부관계는 한 번. 그게 힘들지. 그렇다고 뭐 그거 가지고 어쩌고저쩌고 할 맘은 없어. 어쨌거나 밖에서는 집이 그리워서 들어가지만 막상 집에 들어가면 또 거기대로 쌓이는 게 있어.
허보리 작가 개인전 ‘무장가장 (武裝家長)’에 전시된 탱크. 남자들의 양복과 셔츠를 모아 탱크를 만들었다. 가장이라는 삶의 무게는 남자들의 삶을 전쟁으로 만들고 있다.
남자는 괴로워. 그리고 외로워
“인간은 누구나 다 외로운 존재라고 하잖아 여자들도 중년되면 외롭거든. 남자들도 그렇겠지?”
- 그렇지. 근데 좀 복합적인 거 같아. 나 같은 경우는 영업을 하고 그게 주로 혼자하는 일이잖아.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일로 만나는 거고 대화도 대부분 일에 관한 거잖아. 일을 빼면 하루 종일 나는 혼자라는거지. 내가 잘 가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아. 구실은 하루 종일 한 일 정리하는 거지만 대부분 멍 때리고 있어. 잡념이 많아. SNS도 보고 하지만 나랑은 관계없는 세상 같고 그럴 땐 자괴감도 들지. 그런 중첩된 감정들이 들어.
“그런 스트레스들은 어떻게 풀어?”
- 못 풀지.
“남자들은 하고 싶은 일 하며 살고 있는 거야?”
- 그게 젤 문제야. 반평생을 하고 있는 일인데 자신에게 행복감을 주고 만족을 줬는지 묻는다면 아마 대부분 아니라고 할 거야. 지금 내가 이 일을 뭣 땜에 하는지, 이게 행복한지보다 가장으로서 처자식 먹여 살리고 교육시키려는 의무가 크니까.
중년되면 가족과의 관계에서 정서공유가 안되는 게 문제야. 맨날 저녁에 술 먹고 들어가고 자식들은 아빠를 소 닭 보듯이 하고 그런데서 오는 허탈감 그런 게 커.
“그럼 속상하지 않아? 돈은 내가 버는데.”
- 남자들이 진짜 그 말 많이 한다. 내가 무슨 돈 벌어다 주는 기계냐고.
나는 최근에 울어본 적 있냐고 남자들에게 물었다. 대답은 비슷했다. 최근에 본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울었다고 한다. 그래도 다행인건 부모님 세대의 생각처럼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은 별로 없었다. 실컷 울고 난 뒤의 개운함도 알았다. 다행스런 일이다.
결혼하면서 자신이 가장이라고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냐고도 물어봤다. 물론 자신이 가장이라고 생각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태어난 로봇태권 브이처럼 처자식을 먹여살리겠다는 강한 의무감도 얘기해 줬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했냐고 되물었다.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닌데 왜 당연히 자신이 가장이라는 생각을 했는지.
나는 여자는 이래야 해, 엄마니까 그러면 안 돼 이런 생각들을 신경질적으로 싫어한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남자도 수다스러울 수 있고 남자도 맘껏 울 수 있다. 남자도 집안 살림을 즐길 수 있고 남자도 티타임을 좋아할 수 있다. 남자도 쇼핑을 즐길 수 있다. 반대로 전혀 싫어할 수 있다. 앞으로 쓰게 될 남자이야기는 시작도 끝도 그럴 것이다.
이숙정 객원기자
첫댓글 남자나 여자나 나이들면 다 외롭습니다.
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