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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9. 묵상글 ( 연중 제5주간 금요일. - 특별한 사랑이 필요합니까?. 등 )
*** 07:00. 김찬선 신부님 들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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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9. 연중 제5주간 금요일.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2024.02.09 05:55
- 특별한 사랑이 필요합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늘 주님께서는 그 유명한 에파타 기적을 행하십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 ‘에파타’를 우리가 세례 때도 재현합니다.
세례로 이제부터는 주님의 말씀을 잘 듣는 귀가 열리고,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입이 열리라는 뜻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의 행위가 다른 때와 같지 않습니다.
다른 때는 주님의 행위가 이렇게 은밀하지 않은데
오늘은 주님께서 귀와 입에 장애가 있는 사람을 따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그리고 다른 때는 그저 말씀 한마디로 치유해주시는데
오늘은 여러 행위와 직접 손을 대시며 치유해주십니다.
어떻게 보면 과장된 제스츄어의 연출 같기도 합니다.
왜 이렇게 하신 걸까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신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더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랑을 하신 것이고,
그에게 필요한 사랑을 하신 것입니다.
어쩌면 그는 쉽게 열리는 사람이 아니었나 봅니다.
꼭 이렇게 해야만 열리는 사람이었을 수 있습니다.
마음의 문이 굳게 닫힌 사람.
귀와 입만 닫힌 사람이 아니라
그로 인해 마음의 문까지 굳게 닫힌 사람일 것입니다.
사실 귀와 입의 장애는 능력의 주님께서 말씀 한마디로
고치실 수 있고 그런 예는 성경에 수도 없이 많지 않습니까?
창세기에서는 말씀 한마디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백인대장은 한 말씀만 하시면 종이 나을 거라는 믿음을 고백하고,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의 종을 찾아가지 않으시고 한 말씀으로 치유하셨잖습니까?
그러나 오랜 장애로 그의 마음은 정말 굳게 닫혀있었고,
그래서 이 마음의 장애는 능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치유하셔야 했을 겁니다.
내가 너를 정말로 사랑한다.
너만 미워한 것이 아니다.
너만 미워해서 너의 귀와 입을 닫히게 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너만 고통을 많이 당했다고 생각하니
지금 이렇게 너만 특별히 사랑할게.
이런 주님의 특별한 사랑과 말을 행위에 담아 그에게 말씀하셨을 것이고,
이런 특별한 사랑이 그의 마음에 닿아 귀와 눈과 함께 마음도 열렸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특별한 사랑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까?
이런 특별한 사랑이 아직도 우리에게 필요합니까?
아직도 필요하다면 우리의 마음이 아직도 완고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직도 그렇다면 곧 사순 시기가 다가오는데
마음이 아직 사순 시기인 우리는 이런 말씀을 자주 듣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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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9. 연중 제5주간 금요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에파타!(열려라)”(마르 7,34)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방인 지역인 티로와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지역을 지나 다시 갈릴래아로 오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습니다.”(마르 7,31)
사실,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교는 혼자 깨달음에 이르는 종교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그 ‘말씀’에 따라 사는 종교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귀’와 ‘입’은 신앙을 형성하는 조건에 해당합니다.
그러니 ‘귀먹은 이’란 단지는 듣지 못하는 이가 아니라, 곧 귀가 있어도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입니다. 또한 ‘말 더듬는 이’란 입이 있어도 혀가 굳어져 말씀을 삼키지 않는 이입니다. 그러니, ‘귀먹고 말 더듬는다’는 것은 소통과 통교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곧 친교를 나누지 않음이요, 단절과 분리요, 자신을 내어주지 않고 사랑하기를 거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친교를 나누지 않고 사랑하기를 거부하는 것일까?
그것은 닫혀있는 까닭일 것입니다. 귀와 입이 닫혀있어 말씀이 드나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막혀 있어서 흘러들고 흘러나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름 아닌 완고하여 고집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사실, 우리도 귀 막고 입 막고 사는 귀머거리요, 벙어리임에 틀림없습니다. 타인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가 바로 귀머거리요, 타인을 칭찬하지 않을 때가 바로 벙어리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우리는 귀머거리요,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때 우리는 벙어리입니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듣기 싫은 말은 듣지 않을 때 우리는 귀머거리요, 하고 싶은 말만하고 하고 싶지 않는 말은 하지 않을 때 우리는 벙어리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따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을 따로 광야로 불러내듯, 여인을 광야로 불러내어 사랑을 속삭여주듯(호세 2,16-25 참조),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시어, 당신 손가락을 우리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우리의 혀에 손을 대십니다.”(마르 7,33) 그리고 빵 다섯 개로 5천명을 먹이셨을 때처럼,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의 뜻에 의탁하여 ‘숨을 내쉬어’ 당신의 영을 불어넣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에파타!(열려라)”(마르 7,34)
바로 그 순간, 저희는 그분 손가락을 통하여 만질 수 없는 신성을 만집니다. 곧바로 묶였던 ‘혀’가 풀리고 닫혔던 ‘귀’의 문이 열립니다. 마치, 아담이 말을 배우지 않고도 곧바로 말을 하게 해 주셨던 것처럼(창세 1,27-28;2,20), 힘들게 배워야 하는 말을 배우지도 않고도 말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당신 말씀을 듣도록 ‘듣는 귀’를 열어 당신 말씀을 심으십니다. 당신 손가락으로 혀를 도유하여 영을 불어넣으십니다. 그리고 이로써, “귀머거리는 귀가 얼리리라. ~벙어리도 혀가 풀려 노래하리라.”(이사 35,5-6)는 이사야의 예언을 저희에게서 이루시고, 메시아 시대가 왔음을 알리십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도유하십니다. 저희 귀를 열어주시어 당신 말씀을 담아주시고, 혀로 그 아름다운 향기를 맛보게 하십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저희가 당신 말씀의 향기를 뿜게 하소서!
당신 영으로 도유된 진리의 말씀을 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에파타!(열려라)”(마르 7,34)
주님, 저는 귀 막고 입 막고 사는 귀머거리요, 벙어리입니다.
타인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가 바로 귀머거리요,
타인을 칭찬하지 않을 때가 바로 벙어리입니다.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귀머거리요,
당신께 감사드리지 않을 때 벙어리입니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듣기 싫은 말은 듣지 않을 때 귀머거리요,
하고 싶은 말만하고, 하고 싶지 않는 말은 하지 않을 때 벙어리입니다.
주님, 저의 영혼을 도유하소서.
당신의 영을 불어넣으시어 저의 귀와 입을 열어주소서.
저희 귀에 당신 말씀을 담아주시고,
저의 혀로 그 아름다운 향기를 맛보게 하소서.
오늘 제가 당신 말씀의 향기를 뿜게 하시고,
당신 영으로 도유된 진리의 말씀을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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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9. 연중 제5주간 금요일.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야 한다
귀가 있어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면 그는 귀먹은 사람입니다. 입이 있어도 하느님에 관해 말할 수 없다면 그는 말 못 하는 이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의 현존을 깨닫기도 전에 나를 사랑하시고 먼저 생각하고 찾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행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로마10.17).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에파타!” 곧 “열려라!” 하시며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능력으로 귀를 열어 주시고 말할 수 있게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사회적으로는 공부도 많이 하고 지위도 있으며 세상 것에 해박하면서도 하느님의 말씀에는 둔한 사람들이 있다면 들을 귀가 없는 그는 귀먹은 사람이요, 입이 있어도 주님을 전하는 일에 사용하지 못한다면 말 못 하는 이입니다. 그런 우리의 귀와 입을 열어 주시길 청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엘리사벳 자매는 청각장애인입니다. 그분의 취미는 음악 감상입니다. 놀라시겠지만 ‘음악은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분은 육체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주님의 말씀을 듣고 느끼며 살아갑니다. 지금도 서예를 가르치고 수필을 쓰며 장애인을 위한 활동을 열심히 하시고 말씀도 얼마나 이쁘게 잘하시는지 모릅니다. 그는 육체적인 귀는 닫혔지만, 영적인 귀와 입이 열려 있으십니다. 내면의 귀가 열리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더 큰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환자를 따로 데리고 나가서 손가락을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우리도 한적한 곳에서 주님과 따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말씀으로 끝날 수 있음에도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자신을 가두어 놓은 주위 환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손가락을 귀에 넣고 침을 발라 혀에 대는 행동으로 당신의 관심과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셨듯이 우리도 구체적인 행동을 통하여 이웃사랑을 드러내야 하겠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꼭 안아주는 포옹으로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그의 손길에 담았습니다. 말보다 사랑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침을 발라 혀에 대는 것은 비위생적이고 단정치 못한 행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하고 늘 혼자 외롭게 지냈던 그에게는 큰 사랑의 표현입니다. 엄마가 자식에게 먹을 것을 꼭꼭 씹어서 주는 것과 같은 행위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셨다고 하였는데 하늘을 우러러 본다는 것은 곧 하느님 아버지의 능력을 바라보면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길 소망하였다는 것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물고기 2마리와 빵 5개로 5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루카9,16).을 베풀 때도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어떤 처지나 환경 안에서도 하늘을 우러러 보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은 하늘 아버지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콜로3,2).
성경은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분을 찾으면 만나 뵐 것이다”(신명4,29).라고 적고 있습니다. 우리가 귀를 열어 주시고 말을 할 수 있게 해 주시는 주님을 뵙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이 말씀에 열리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위로와 구원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너 한껏 네 입을 벌려 보라, 나는 곧 그 입을 채워 주리라”(시편80,11). 사람들이 우리의 변화된 삶을 보고,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하고 놀라워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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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9. 연중 제5주간 금요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아르키메데스는 ‘유레카(Eureka)’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유레카는 뜻밖의 발견을 했을 때 외치는 감탄사입니다. 꽉 막힌 문제가 어느 순간에 풀렸을 때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순금과 같은 무게인 물체를 물에 넣어 순금이 밀어내는 물의 양과 다른 물체가 밀어내는 물의 양을 비교하여 순금인지 합금인지 알아내었다고 합니다. 생각이 깊은 사람은 목욕탕에서도 새로운 발견을 하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은 ‘염화시중(拈華示衆)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부처님이 영산회에서 연꽃 한 송이를 대중에게 보이자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깨닫고 미소 지으므로 그에게 불교의 진리를 주었다고 하는 데서 유래합니다. 유레카는 아니지만 살면서 기분 좋은 일이 더러 있습니다. 약속시간에 조금 늦을 것 같았는데 상대방이 늦을 것 같다고 문자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급하게 해야 할 일을 처리하고, 여유 있게 약속시간에 나갈 수 있습니다. 염화시중은 아니지만 ‘찌찌뽕’이 있습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것을 뜻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삶에 유레카와 염화시중이 있다면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복음서는 ‘희랍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람어’로 복음을 선포하셨지만 복음서가 희랍어로 기록된 것은 복음을 듣는 대상들이 희랍어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이스라엘을 넘어 아시아로 전파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희랍어는 지식인들이 사용하는 언어였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대부분 희랍어로 표현했지만 3가지 말은 아람어를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유는 그 말이 특별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케파’입니다. 케파는 ‘바위’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을 만났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희랍어로 베드로라는 뜻이고, 베드로는 우리말로는 ‘바위’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복음서 저자는 베드로에 천국의 열쇠를 맡겨 주시는 그 특별한 순간에 ‘케파’라는 아람어를 사용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탈리타쿰’입니다. 탈리타쿰은 ‘일어나라’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소녀를 찾아가셨습니다. 사람들은 소녀가 이미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미 죽어있는 소녀에게 ‘탈리타쿰’이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활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절망에서 희망에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불신에서 믿음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분노에서 용서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교만에서 겸손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25세에 죽고 75세까지 묻히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인생의 잠재력을 완전히 경험하지 못하고 자신의 열정과 꿈을 추구하지 못한 채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절망 중에 있다면, 불신 중에 있다면, 분노 중에 있다면, 교만 중에 있다면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의미와 가치를 모르고 산다면 그것은 신앙인의 삶이 아닙니다. 복음서 저자는 죽은 이를 살리는 특별한 순간에 ‘탈리타쿰’이라는 아람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에파타’입니다. 에파타는 ‘열려라’라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에파타!” 곧 “열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시작하였던 성 요한 23세 교황께서도 교회의 창문을 열자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통하는 주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 가르침은 낯선 곳의 긴장도 쉽게 풀어주고, 새로운 만남을 곧 친숙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것만 잘 지키면 우리는 닫힌 문을 열수 있을 겁니다. “남에게 원하는 대로 남에게 해 주는 것입니다. 먼저 말하기 전에 먼저 듣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충실하게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 둘을 식별하는 지혜를 청하는 것입니다. 복음서의 저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특별한 순간에 ‘에파타’라는 아람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복음을 선포하고, 주님은 그들과 함께 일하시며 표징으로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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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9. 연중 제5주간 금요일. 민동규 다니엘 신부님.
찬미 예수님
주님께서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 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십니다. 단 한마디로 말입니다. 그 말씀은 바로 ‘에파타’ 즉 ‘열려라’입니다.
‘에파타’라는 말은 막혀있는 귀를 엽니다. 굳어버린 혀를 풀어버립니다.
고해소에 있다가 보면 ‘에파타’라는 주님의 말씀이 필요한 분들을 만납니다. 실제로 귀가 막혀 듣지 못하거나 혀가 굳어 말을 못 하는 분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귀는 열려있어 듣기는 듣는데 제대로 듣지 못하는 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주님의 소리는 듣지 못하고 자신이 듣고자 하는 세상이 말하는 유혹의 소리만을 듣습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유혹을 따라간 뒤 주님께서 나를 도와주지 않으시고 돌보지 않으신다고 말하는 분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분에게 말씀하고 계신대도 말입니다.
또한 말은 기막히게 하는데 정작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소리는 전하지 않습니다. 사랑이나 자비나 용서에 대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오직 세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만을 말합니다. 이 또한 혀가 굳어 있는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 혀는 주님 보시기에 굳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열려라’라고 말입니다.
우리 귀가 열려 주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우리 혀가 풀려 주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기를, 우리 마음이 열려 우리 마음에 사랑을 담아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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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t
Halt는 독일어입니다.
이 단어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첫째는 빨간불 즉 멈춤, 정지입니다.
그 두 번째 의미는 받침, 발판입니다.
한 단어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멈춤과 정지 그리고 받침과 발판….
그런데 이 두 가지 의미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멈춤과 정지 즉 쉬어가는 것은
우리 삶의 받침이 되고 발판이 되어 줄 것입니다.
쉼이 없는 곳에는 늘 사고가 발생합니다.
쉼이 없는 곳에는 늘 병마가 창궐합니다.
쉼이 없는 곳에는 늘 전이되는 상처가 나타납니다.
필요하다면 멈추세요. 그것이 삶의 발판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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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9. 연중 제5주간 금요일.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이제까지 했던 선택 중에 가장 잘한 것을 제게 꼽으라고 한다면, 자신 있게 사제가 된 것을 말합니다. 사제 서품을 받기 전, 신학생 때 다른 길을 가고 싶다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꽤 시간이 지나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는 이 사제의 길이야말로 가장 커다란 축복임을 깨닫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돈, 명예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학창 시절 때의 친구들을 만나면, 세상일이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힘들다면서도 이 세상을 벗어나지 못하니 계속해서 힘들다는 말만 하고 있습니다.
맹자는 자신의 책 ‘맹자’에서 군자삼락, 즉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을 말합니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천하의 왕 노릇은 포함되지 않는다. 부모 형제가 모두 살아 계시고 무탈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고,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그리고 천하의 영재를 얻어 이들을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천하의 왕 노릇은 그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
저는 이 군자삼락을 거의 가진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부모님 모두 돌아가셨지만, 우리 신앙 안에서는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신 것이니 주님 안에서 무탈하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 안에 살지만, 세상 것을 추구하지 않아 그래도 100%는 아니지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미사 강론과 강의를 통해 교육하고 있으니 이 역시 큰 즐거움입니다. 계속해서 이 군자삼락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진짜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의 성공과 권세를 쥐는 것이 즐거움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충실한 삶 안에서만 진짜 행복이 나오게 됩니다.
주님께서 강조하셨던 행복도 세상의 성공과 권세에 있지 않았습니다. 주님과 어떤 사람이 함께했었는지를 떠올려 보십시오. 당시에 힘을 가지고 있었던 종교 지도자나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소외되고 힘든 삶을 살고 있었던 병자나 마귀 들린 사람이었습니다. 또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는 세리나 창녀와 같은 죄인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그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하시는 주님을 오늘 복음에서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주실 때, 당신의 전지전능하심을 이용해서 말씀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시지요.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십니다. 부모가 어린아이에게 보이는 사랑처럼 하십니다. 그만큼 사랑한다는 것을 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가 느끼도록 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에파타!”, 곧 “열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단순히 치유를 위한 말씀이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는 마음을 열고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있나요? 진정한 행복의 길을 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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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명언: 기쁨을 주는 사람만이 더 많은 기쁨을 줄 수 있다(알렉산더 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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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9. 연중 제5주간 금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들어라!
-“에파타(열려라)!”-
어제 저녁미사때 강론 원고에 없던 내용의 인용이 새로웠고 잊지 못합니다. 아주 예전 30년전쯤 어느 자매로부터 무심코 들었던 말인데 지금도 생생한 다음 탄식성 말마디입니다. 아마도 자녀로부터 많은 상처와 실망을 받은 분이었을 것입니다.
“음식이 맛이 가면 버리기라도 하는데 자식은 맛이가면 버릴수도 없고...”
하느님의 솔로몬에 대한 탄식도 이와 흡사하리란 생각이 듭니다. ‘맛이갔다!’ 음식뿐 아니라 사람도 변질되면 맛이 갈 수 있습니다. 정말 맛있는 음식도 맛이가면 버리는데 사람은 버릴 수 없으니 참 문제입니다. 밭농사는 일년인데 사람농사는 평생이요,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니 어렸을때부터의 사람 교육이, 훈육이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어렸을 때만이 아니라 평생 배움의 여정에 충실하는 평생 공부가 또 얼마나 중요한지, 참으로 마음의 귀를 기울여 듣는 경청의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죽음에 임박했던 노년의 솔로몬은 완전히 맛이 갔으니 죄의 결과는 이처럼 무서운 것입니다. 새삼 회개하는 마음으로 마음의 귀를 기울여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매일미사은총이 사람의 맛이 가지 않게 하는데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지 감사하게 됩니다.
말그대로 회개 은총의 효소가 부패인생을 발효인생으로 만들어 줍니다. 다윗의 발효인생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그의 아들 솔로몬의 부패인생입니다. 어제 저녁식사때 식당독서중 2월8일자 성규의 말씀이 귀에 쏙 들어왔습니다. 요즘 식당독서중 규칙서는 가장 긴장에 속하는 “제7장 겸손에 대하여”중 어제는 열한째 단계에 속하는 말씀입니다.
“겸손의 열한째 단계는, 수도승이 말할 때 온화하고 웃음이 없으며 겸손하고 정중하며 간결한 말과 이치에 맞는 말을 하고, 목소리에 있어서는 큰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이다. 책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은 적은 말로써 드러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500여년전 규칙서인데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날도 그대로 공감되니 참 놀랍고, 역시 고전중의 고전인 베네딕도 규칙서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겸손의 덕을 지닌 사람은 참으로 잘 듣는 사람일 것입니다. 문득 ‘온화(溫和)하고’, 즉 ‘따뜻하고 부드럽고’라는 한자 뜻을 대하니 얼마전 성지순례 내용을 담은 수필집을 낸 분의 이름, ‘온화(溫花)’가 생각납니다. ‘따뜻한 꽃’이란 꽃’화(花)’자로 원래 한문에는 없는 단어일 것입니다. 참으로 잘 듣는 경청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베네딕도 규칙 맨 첫마디도 “들어라!”로 시작됩니다.
“들어라! 오 아들아, 네 마음의 귀를 기울여 스승의 계명을 경청하고 어진 아버지의 권고를 기꺼이 받아들여 그것을 실행하여라.”(머리1절)
지난 2월3일자 제1독서 열왕기 상권에서 지혜를 청하던 솔로몬의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열왕상3,9)” 말도 생각납니다. 듣는 마음, 듣는 귀를 지녔던 솔로몬이 완전히 변질되어 맛이 가, 마음의 귀가 닫힌 완고한 사람이 되었으니 바로 마음이 하느님을 떠난 죄의 결과입니다. 죄의 결과 다윗 때는 하나였던 이스라엘은 솔로몬 사후 산산히 분열된 나라가 되었으니 바로 오늘 제1독서의 내용입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 화답송 시편81장의 선정이 참 적절하고 후렴도 잘 어울립니다.
“나는 주님, 너의 하느님이니 너는 내 말을 들어라.”
여기서도 강조되는 말마디가 ‘들어라’입니다. 평생 배움의 여정중에 잘 들으며 공부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공부를 강조한 다산 정약용의 어록중 오늘 2월9일자 말씀이 이채로웠습니다.
“그 어떤 공부도 예술이 함께하면 즐겁다. 지식이 놓친 마음을 예술은 따뜻하게 데워준다. 가르침의 목적과 의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학문을 즐기지 못한다. 그러나 아직 학문을 즐기지 못한 이들에게는 노래와 춤부터 가르쳐야 한다.”
그리하여 옛 선비들은 모이면 시(詩)를 짓고 거문고를 타며 노래와 춤을 가무(歌舞)를 즐겼던가 봅니다. 이런 경지의 전인적 공부라면 정말 멋질 것이며, 새삼 끊임없이 시편을 노래하는 우리의 성무일도가 전인적 공부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세상에 이렇게 매일 시편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또 성가를 노래하는 미사와 같은 전례가 어느 종교에 있겠는지요.
오늘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치시는 복음도 참 은혜롭습니다. 육신의 귀가 아무리 밝고 좋아도 죄로 인해 마음이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굳어져 있으면 즉 마음의 귀가 닫혀 있으면 있는 그대로 듣지 못합니다. 마음의 귀가 열려 있어야 제대로 듣습니다. 입이 열려 있다고 말 잘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중 마음의 귀로 잘 듣는 이가 진짜 생명을 주는 유우머나 청담, 덕담의 참말을 합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복음의 귀먹고 말더듬는 이가 상징하는바 바로 우리들입니다. 죄로 인해 마음의 귀가 먹고 제대로 참말을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다음 예수님의 정성을 다해 귀먹고 말더듬는 이를 치유하는 과정이 그대로 우리를 향한 미사은총처럼 생각됩니다. 예수님은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신후 하늘을 우러러 한 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에파타! 열려라!”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 말을 제대로 하게 되니 얼마나 통쾌한지,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죄로 인해 마음의 귀가 먹은 이들은 회개와 더불어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제대로 말하게 하시는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기적을 목격하고 마침내 복음 선포자가 된 군중들의 고백은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에 참석한 우리의 고백이 됩니다.
“주님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제가 참 좋아하는 예수님의 아람어 둘입니다. 하나는 “탈리타 꿈(소녀야 일어나라!)”이고 하나는 오늘의 “에파타!(열려라!)”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탈리타 꿈!” 일어나, 주님과 함께 “에파타!” 활짝 열린, 축제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고해인생이 아닌 축제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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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9. 연중 제5주간 금요일.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에파타! 열려라!>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에파타!” 곧 “열려라!”하고 말씀하셨다.(마르 7,32-34 참조)
사람들 사이에
사람 있으니
사람들에게
들을 수 있거늘
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찌 들을 수 있으랴
말하지 않는
사람들 밖으로
들을 수 없는
사람을 데리고 가시어
몸소 말씀하시는 분께서
말씀하시네
에파타! 열려라!
내가
늘 말하니
귀먹은 그대의
닫힌 귀야
에파타! 열려라!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사람들의
다문 입들아
에파타! 열려라!
사람들 사이에
사람 있으니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거늘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찌 말할 수 있으랴
듣지 않는
사람들 밖으로
말할 수 없는
사람을 데리고 가시어
몸소 들으시는 분께서
말씀하시네
에파타! 열려라!
내가
늘 들으니
말 더듬는 그대의
다문 입아
에파타! 열려라!
사람이
말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막은 귀들아
에파타! 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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