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쭉 한잎
홍정숙
도서관에서 시집을 빌렸다
작은 철쭉 한잎이
책갈피 대신 납작 엎드려 있다
누군가 이 시를 철쭉꽃 옆에서
가슴에 품었나보다
보내지 못한 사람을
마음에서 놓아주며
시집 속에 대신 두고 갔나보다
그 사람이 밟고 갔을 맨발 지문이
잎맥 속에 어지럽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가슴 쓸어내렸을 마음 한잎이여
흐느끼며 뒤척이다
잎맥 속 그리움 다 빠져나오면
우두커니 봄,
철쭉 한잎
---홍정숙 시집 {푸른 음표 하나 바람이 될 때}에서
철쭉은 진달래과 진달래속의 낙엽관목이며, 원산지는 아시아이고, 우리나라의 산야에서도 무리지어 자란다. 키는 2m에서 5m 정도이고, 5월에 연한 홍색으로 꽃이 피고, 잎과 꽃은 강장제, 이뇨제, 건위제 등으로 사용한다. 진달래, 참꽃나무, 영산홍 등, 철쭉은 그 종류도 많고 그 이름도 다양하며, 정원의 조경이나 관상수로 많이 심기도 하며, 그 꽃말은 ‘정열’과 ‘명예’라고 한다. 인간의 삶의 의지는 ‘정열’이고, 이 정열의 꽃이 ‘명예’이다. 요컨대 명예는 가장 이상적인 삶의 꽃이고, 이 꽃의 상징이 홍정숙 시인의 [철쭉 한잎]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나 홍정숙 시인의 [철쭉 한잎]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한 시이며, 그 상실의 아픔이 서정적인 그리움으로 배어 있는 시라고 할 수가 있다. 때는 어느 봄날이고, 그는 도서관에서 어떤 시집을 빌렸던 것이다. 시집 속에는 “작은 철쭉 한잎이/ 책갈피 대신 납작 엎드려 있”었고, 그것은 누군가가 먼저 이 시집을 “철쭉꽃 옆에서/ 가슴에 품었”던 증거이기도 했던 것이다.
시는 언어의 꽃이고, 철쭉은 식물의 꽃이지만, 모든 꽃은 자기 짝을 부르는 노래라고 할 수가 있다. 노래는 소리의 꽃이고, 소리의 꽃은 열정인 만큼, 그가 그의 명예를 걸고 온몸으로, 온몸으로 부르는 노래라고 할 수가 있다. 따라서 “보내지 못한 사람을 / 마음에서 놓아주며/ 시집 속에 대신 두고 갔나보다”라는 시구는 그러니까 그를 어쩔 수 없이 떠나보냈지만,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는 ‘님’으로서 더욱더 크게 끌어안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룰 수 있는 사랑은 희극이 되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은 비극이 된다. 희극의 결말은 ‘해피 엔딩’이지만 예술적 가치가 없고, 비극의 결말은 상처뿐이지만 그래서 가슴이 더욱더 아프고 만인들의 심금을 울린다. 왜냐하면 모든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고, 모든 사랑은 철쭉꽃처럼 ‘화무십일홍의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홍정숙 시인은 [철쭉 한잎]을 통해서 그와 하나가 되며, 따라서 “그 사람이 밟고 갔을 맨발 지문이/ 잎맥 속에 어지럽”게 그려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깊이 있게 공부하고 깊이 있게 성찰하면 사물의 본질을 깨닫고 그 예언자적인 힘(지혜)을 얻게 된다. 홍정숙 시인의 고고학적 시선은 “그 사람이 밟고 갔을 맨발 지문”을 펼쳐보이고, 다른 한편, 그 예언자적 힘으로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가슴 쓸어내렸을 마음 한잎”을 파헤쳐 본다. 떠나보낼 수 없는 그 ‘님’을 떠나보내고, 그 안타까운 마음과 그리움을 ‘철쭉 한잎’으로 남긴 그 사람과 하나가 되어 “흐느끼며 뒤척이다/ 잎맥 속 그리움 다 빠져나오면// 우두커니 봄/ 철쭉 한잎”의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고고학적 시선과 예언자적 시선을 교차시키며 이 [철쭉 한잎]을 빚어내는 솜씨는 가히 천하제일의 명장의 솜씨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모든 예술의 힘은 비극의 힘이며, 너무나도 순수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할 때만이 만인들의 심금을 울리게 된다.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은 감정이입이고 황홀함이며, 문학예술이란 철두철미하게 감정의 산물이며, 이 황홀함을 통해 이해와 설득보다는 정서를 자극시키게 된다.
상주보다 복쟁이가 더 서러울 수도 있고, 단 한 방에 KO패 당한 챔피언 보다 그를 응원하는 관중이 더 서러울 수도 있다.
시는 감동이고 황홀함이며, 이 황홀함의 진수가 홍정숙 시인의 [철쭉 한잎]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