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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대협동우회 원문보기 글쓴이: 윤영덕(5기)
글 - 최은희(당시 박승희 열사와 용봉교지편집위원회 활동)
4월 30일
피냄새가 가득한 병원 침대의 머리맡에서 나는 승희와 함께 지냈던 지난날들을 생각한다. 그 기억 속에 승희의 모습은 퍽도 선명해 바로 지금 내 눈앞에 누워 있는 승희의 모습과 너무 달라 허공에 발을 내딛은 것처럼 내 마음은 아직도 허둥대고 있다. 승희의 분신소식을 나는 어제 퇴근길의 버스 안에서 방송을 통해 알았다. 여대생 분신. 전남대 가정대학 식품영양학과 2학년 박승희. 나는 미친년처럼 울며 버스를 내려 택시를 타고 전대병원에 도착했다. 마치 꿈인듯만 싶었다. 고작 하루 전에 함께 강경대 학우의 죽음을 슬퍼하며 눈이 퉁퉁 붓도록 울다가 한 이불 속에서 나란히 잠들었지 않았던가. 정확히 세끼 전에 같이 상치쌈을 하지 않았던가. 셀 수 없이 많은 기억들이 머릿속을 고통스럽게 헤집는다. 홀로 앉아 다시 승희를 생각하니 이렇게 온몸이 상처투성이로 누워 있기까지 겪었을 결단의 고통과 마음 준비와 이별에 대해서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나는 승희가 결단을 내렸던 것이 금요일 밤에서 토요일 사이였다고 생각한다. 마침내 토요일 유서를 쓰고 승희가 바라본 모든 풍경과 승희가 만났던 사람들, 승희가 했던 일들은 얼마나 눈물겨운 ‘마지막’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었던 것일까. 학교 풍경이며, 하늘빛이며, 나하고 함께 잔 마지막 밤, 나와 함께 먹은 마지막 밥, 얼마나 많은 것들에 마지막이라는 의미를 느끼며 그 처절한 결단을 다짐 했던 것일까. 이제 와서 그런 일들을 생각하니 정말 미칠 것만 같다. 승희가 존경하던 선배 건이도 지금 다 죽어가는 얼굴로 내 곁에 있다. 승희가 분신한 바로 그날은 음력 3월 15일, 보름달이 휘영청한 그날이 바로 건이의 생일을 축하해 주리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생일날을 건이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아픈 승희를 위해 당장 무엇을 해주어야 되는데, 무엇을...나는 승희가 제일 좋아했던 노래 ‘애국의 길’을 떠올렸다. 건이와 함께 애국의 길을 불러 주겠다고 했더니 승희는 피가 엉켜있는 목을 끄덕였다.
아,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누구나 한때는 가슴이 아픈 그리움이 있었던 것을
오늘밤은 달이 뜨리라
음력 삼월 보름 둥근달이 뜨리라
퇴근의 시내버스는 6시를 넘어서고
어둠이 채 내리지 않은 거리
창문에 이마를 대고
나는 열무김치와 생일 선물과 그리움을 생각했어
오늘밤 네 손을 잡고 선물을 들고
시장 너머에 있는 친구집에 들러
생일 술 한잔해야지 그리움도 때론 쓴약
속으로 몰래 삼키면서 한 뼘씩 마음이 커가는 거지
스쳐가는 도시의 풍경
내가 네 앞에 섰을 때
이미 사람이 아닌 네 앞에 섰을 때
시내버스. 뉴스. 분신. 박승희
미친년처럼 울며 뛰어 병원
울부짖는 어머니와 쓰러졌다가
중환자실 눈도 입도 코도 사람도 아닌
불탄 네 몸뚱이 앞에 섰을 때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그밤 달이 떴다 보름달
칠흑의 밤을 새벽까지 밝히다가
조금씩 조금씩 제 살을 깎아 스러질.
일요일 아침 목포로 가던 네 뒷그림자
일요일의 아침 밥상은 풍족했어
왜 그날 아침 나는 미역국을 끓였을까
밥을 먹다가 우린 어머니를 얘기했지
누가 먼저였는지 몰라
우리를 낳고 미역국을 먹었을 어머니
그리고 어느 날 우리가 애기 엄마되어
미역국 앞에 앉을 거라고 내가 그랬을까
싱싱한 오이와 상추
목포에서 가져온 파란 파래무침과
계란을 씌운 두부지짐
그 일요일의 아침 밥상은 평화로웠어
그 밥상머리에서 숟가락을 든 채
신나와 휘발유의 차이를 묻던 너
아, 나는 무어라고 대답했을까
휘발유는 오토바이에 넣는 거고
신나는 화염병에 담는 것이라고 했던가
김치통을 들고 집에 가는 너를
대문 밖에서 바라보며 나는 웃었지
가다 되돌아와 갖고 싶은 게 뭐냐고
용돈 타서 언니에게 해주고 싶다던 너에게
김치통 가득 열무김치를 담아오라고 웃었지
그렇게 평화로운 아침이었어
골목을 빠져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돌아와
밀린 빨래를 하던 그 일요일의 아침
그 얼굴 그 몸이 성한 네 마직막 모습일 것을
내가 헹구어 낸 그 청바지가
네 육신을 덮었던 마지막 허물이었던 것을
어찌 알 수 있었겠지 그 일요일의 아침
5월 1일
혹 승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만다면 나는 이제 승희와 함께 살던 방에 들어설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둘이 함께 운산동의 골목길들을 거의 다 들쑤시고 다니며 얻었던 방. 함께 시장에 가서 샀던 작고 예쁜 그릇들과 옷걸이와 부엌에 걸린 꽃액자, 방에 꽂아놓은 꽃... 그런 일상의 사물들조차 나는 어떻게 나는 어떻게 견뎌야 할 것인가. 아직도 승희의 냄새가 남아 있을 베개와 승희와 체취가 묻어난 옷들, 손때 묻은 책들과 우리가 함께 닦아내던 방바닥. 도대체 승희가 없이 홀로 남은 방에서 나는 어디에다 눈을 두고 어디에다 코를 내밀어야 그 모습 그 냄새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오전이 되자 승희의 가슴 고통도 조금 가셨다. 기계로 목 속의 가래를 뽑아주고 코와 입에서 흐르는 진물도 뽑아냈다. 몸에서는 이제 핏물이 보이지 않고 노랗게 배어 나온다. 담당의사인 정상영 과장 선생님, 문석진 선생님이 헌신적인 치료를 하고 계신다. 특별히 문선생님은 승희의 치료를 자원하셨다. 따뜻한 분들이다. 승희에게 그 말을 전해 주었더니 승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가락 글씨로 어렵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한다. 그 고통 속에서도 고마움을 애써 표시하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다시 눈물이 쏟아져 나오려고 한다. 몸이 저렇게 참혹하게 망가져 있는데도 도대체 어디에서 저렇게 해맑은 정신이 푸릇푸릇 살아있는 것일까. 오후엔 의식이 좀더 뚜렷해져 승희는 어머니와 만났다. 어머니는 눈물을 참느라 입술을 꼭 물고 승희와 의사소통을 하셨다. 어머님이 지금 느끼시는 고통의 무게는 얼마 만큼일까. 이 세상 누구도 그 아픔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어머니는 그래도 거의 초인적인 의지로 의연함을 가장하신다. 방금 전까지도 병실 밖에선 식음을 전폐하고 눈물로 시간을 새기고 계셨던 분이 아닌가. “승희야 나는 참 자랑스러운 딸을 두었다. 이제 네 뜻대로 엄마 아빠도 살아가겠다.” 승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매우 기뻐하는 눈치다.
이 새벽의 마리아
마리아
중환자실 유리벽 밖에서
무릎을 꿇고 묵주기도를 드리는 이 새벽의 마리아
식민지 땅에서 딸을 잉태한 죄였던가
마리아라 이름 받아 딸의 피로 새벽을 적시는 어머니
고개 숙인 무릎 위로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이
차디찬 마룻바닥을 적실 때
옛날의 먼 나라 유대 땅 마리아
십자가에 매달린 자식이
보소서 여자여 아들이니라 할 때
아들의 어머니 마리아야
식어가는 아들의 몸에 무슨 기도를 드렸는가
이 새벽
민족해방의 제단 위에 제 몸을 번제로 드린
어린 딸의 음성은 이미 죽고
꿈틀대는 손굽으로 핏물 적셔 그리는 말
어머니 슬퍼하지 마세요
조국의 딸이랍니다
아가다라 이름받아 십자가에 흐르는 피로
일찍이 그 몸을 적셨던가 천국에 있는 예수보다
십자가에서 죽었던 예수를 더 사랑하던 아가다
아가다의 어머니 마리아가
이 새벽 눈물로 드리는 기도
주여, 당신의 딸 그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5월 2일
오늘 아침 새벽이 시작된 시간은 사뭇 의미심장했다. 승희 분신 후 삼일밤이 무사히 지난 것이다. 화상환자는 삼일째가 고비라는 말에 밤새워 맘을 졸였다. 그 삼일 밤을 아무 탈없이 넘긴 셈이다. 나는 병실 창가에 서서 새벽이 오는 모습을 꼼곰이 지켜보았다. 간호원들이 아침 청소를 시작하고 라디오 방송이 들려왔으며, 병원 중정에 있는 나무들이 반짝반짝 눈을 떠갔다. 나는 시간을 새기기라도 하듯이 그 정경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문득 희망이 샘처럼 솟는다. 5월 3일 아침. 나는 이 순간을 오래오래 떠올리게 되겠지. 오늘은 많은 분들이 승희의 병실을 찾았다. 태현사 현덕 스님도 오셨고, 목사님, 신부님들도 다녀가셨다. 승희야, 이 큰 슬픔에 함께 하는 수많은 마음씨 따뜻한 사람들을 보아라. 함께 끝까지 하나되어 싸우자는 네 소원을 모두가 기억하고 있다. 특별히 강일이가 이미 실명한 한쪽 눈에 붕대를 감고 휠체어에 실려 승희를 보러왔다. 승희가 시위 도중 눈을 다쳐 실명한 강일이를 두고 얼마나 슬퍼했는지를 나는 잘 안다. 강일이가 적들에 의해 그런 불행을 당했는데도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있는 자기 자신이 싫다고 승희는 울부짖었다. 휠체어 때문에 병실 유리 칸막이 저쪽에서 승희를 바라보는 강일이의 한쪽 눈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병실 안 전경은 슬픔 속에서나마 이렇게 따뜻하다. 그러나 신문에 나타난 정가의 모습은 짜증스럽다 못해 분노가 솟구친다. 노태우의 사과. 이것이 노태우의 사과로 끝날 일인가. 정권을 잡기 위해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수천명을 가두고 수십명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한 그 장본인이 사과 한마디로 청산을 하자고 하다니. 그 추악스러움이 끔직하다 끔직해. 은근히 사과의 뜻을 비춘 노태우나 사과를 요구한 야당의 능구렁이 같은 정치인들이나 모두가 너무너무 끔찍하다. 이제 절대 제2의 6.29, 아니 속이구가 되풀이 되어서는 정말 안된다. 우리 모두가 노태우 정권 퇴진, 노태우 정권의 배후조정자 미제 축출에 하나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탓인지 오후가 되자 승희는 잠을 자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의사 표시를 했으면서도 왠일인지 잠을 자지 않고 오른손으로 자꾸 무언가를 쓰려고 했다. ‘ㅇ’, ‘ㅏ’하고 쓰는 것은 알겠는데 다음 글자는 알 수 없다. 건이, 나 그리고 승희의 아버지. 곁에 있던 모두가 안타까움에 붕대가 칭칭 감겨진 승희의 뭉툭한 손을 주시했지만 오리무중이었다. 그러나 승희 아버님이 ‘아빠!’ 그렇게 소리를 지르셨다. 건이와 내가 돌연한 큰소리에 놀라 아버님을 바라보는데 그 순간 승희는 기뻐서 마구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두드린다. 아버지 손을 잡고 잠들고 싶다는 말이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승희 곁으로 다가가 석고상 같은 승희의 손을 가만히 쥐었다. 그 순간 아버지의 눈 속에 물기가 가득 고인다. 평소에 아버지 얘기를 많이 하던 승희, 승희가 평소 그처럼 이타적이고 순수하게 살 수 있었던 것도 아마 저런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5월 3일
이제 4일째. 승희로 인해 내 마음은 미세한 화학물질에도 반응을 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것이 되어 있다. 승희에게 일어나는 작은 변화에 나는 쩔쩔 매달려 있다. 어젯밤 자주 가슴의 통증을 호소해 미칠 것만 같은데 이제 부어있던 혀가 입속으로 들어가고 눈동자가 더욱 온전해 졌다는 두 가지 변화 때문에 나는 또 어떤 희망으로 아침을 맞는다. 혀가 너무 예뻐지고 가재로 입을 닦아 주었더니 하얗게 반짝반짝 빛을 낸다. 혀가 조금 나아지자 승희는 이제 말을 해보려고 애를 쓴다. 혀를 내밀며 입술을 우물우물 해보지만 쇳소리만 날 뿐 이미 호흡을 시키기 위해 기관지를 절개해 놓은 상태에서 말이 될 리가 없다. 대신에 우리는 글자 짚기 방법을 발견하여 의사소통이 훨씬 쉬워졌다. 종이에 한글 자모를 써가면서 승희가 얘기를 하고 싶어 할 때마다 한자씩을 짚어간다. 원하는 글자가 나왔을 때 승희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 글자 짚기 때문에 승희가 우유를 먹고 싶어 한다는 사실까지도 알아낼 수 있었다. 가재 끝에 우유를 적셔 대어 주었더니 혀를 내고 좋아한다. 우유맛을 느끼는 것 같았다. 아직 감각이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 기쁘다. 그러나 가슴의 통증은 여전하다. 온 살갗이 다 벗겨졌는데 그 고통이 오죽하랴. 숨쉬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빈번하게 답답함을 호소한다. 방이 건조한듯해 잠깐 가습기를 틀어줬다. 감각이 차츰 좋아지는 탓인지 팔다리의 아픔도 유난히 심한 모양이다. 팔다리를 자주 들어달라고 한다. 그런 중에도 승희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하려고 애를 썼다. 승희의 그 같은 몸짓이 치료에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나쁠 것인지 헤아려지지 않고 은근히 걱정도 된다. 어머니를 보고 된장국을 먹고 싶다고 얘기도 했었고 건이에게 우스개 소리를 하려고도 했다. 새벽이면 늘 무서운 꿈을 꾸니까 일찍 깨워달라고 그런다. 승희의 악몽이 도대체 무엇일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잠들겠다고 하던 승희는 잠들지 못하고 가슴이 답답하다며 호흡곤란을 겪다가 가래를 제거한 후 밤 11시에야 잠이 들었다. 한 두세 시간 동안 긴장과 두려움으로 가슴을 떨다가 막상 승희가 편안히 잠들고 나자 힘이 쑤욱 빠져버렸다. 이처럼 나는 승희의 병상을 지키며 살얼음 위를 걷듯 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르락거린다. 내일은 승희의 상태가 조금 더 좋아지기를 손꼽아 빈다.
네 고통의 깊이를 몰라 나는 외롭다
한 알의 진통제로 잠재울 수 있는 고통도 견디기 힘든데
마약으로도 마취로도 멈출 수 없는 네 고통은 어떤 것일까
그 고통의 깊이와 무게를 몰라
몸부림치는 네 옆에서 나는 더욱 외롭다
잠시 고통이 멈추어지면 다가올 고통이 두려워
위태로이 어지러운 호흡 그래프 따라
내 심장도 곤두박질 하루에도 수십번씩 무너지고
희망을 버린 것처럼
절망도 버린 날들
파도 위 부서진 배처럼 출렁이는 시간들을
조국은 알고 있는 걸까
이렇게 싸운 한 사람의 운명을
오늘 밤
조국은 고통 속에서 바라보고 있는 걸까
수많은 벗들의 피칠갑된 몸을 가슴에 묻으면서
조국이 무엇인지 애국이 무엇인지
한 사람의 목숨과 운명은 무엇인지
바보처럼 나는 묻고 싶었다 조국이여
식민의 밤 피흘리는 새벽이여
5월 4일
꼭두새벽부터 머리끝에 피가 몰리는 날이다. 전날 밤 11시경에 잠이 들었는데 3시간이 미처 못된 1시 30분경에 승희는 잠을 깨 숨을 헐떡였다. 2시 5분에 설탕물을 조금 먹은 뒤 주사를 맞고 잠이 들었으나 15분 만에 다시 깨버린다. 잠들고 숨이 가빠지며 다시 깨어나고, 가래 제거, 혈당검사, 체온 측정.....아침이 다 되어서야 승희는 조금 평온을 찾는다. 밤새워 살이 쑥 내린 듯한 느낌이다. 오전 8시경이 되어 의식이 꽤나 맑아진 승희는 주변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학기를 찾길래 10분쯤 만나게 해주었다. 학기도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다. 부모님도 만났다. 오늘따라 승희는 부모님을 보며 유난히 반가워한다. 오후가 되자 승희는 더욱 기운을 냈다. 자기 피부가 어떠냐고 묻는다. 내가 슬그머니 웃었더니 덩달아 따라 웃는다. 갑자가 언니와 동생을 찾아 모셔왔더니 언니에겐 몸이 다 나으며 맛있는 것 해주겠다고, 그리고 동생에겐 음료수를 마시라며 곰상스럽게 되레 가족을 챙긴다. 기특하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애다. 내가 저 상태라면 그럴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저녁시간엔 내게 목에 달라붙어 있는 튜브를 언제 빼냐며 추궁을 한다. 튜브 없이 숨쉴 수 있냐고 얘기했더니 슬그머니 고개를 저어버린다. 그 순간 뜨거운 것이 목을 타고 넘으려 했다. 마음이 찢어질 것 같다.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래, 승희야 나도 그 튜브가 한정 없이 싫다. 그걸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더 답답할 지경이다. 헌데 어떡하니 그게 없으면 숨을 쉴 수가 없는데. 하지만 그것도 승희의 의지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5월 6일
승희 분신한 뒤 학기가 쓴 앉은뱅이 제비꽃이란 시를 승희에게 읽어주었다. 언젠가 승희가 내게 얘기했었다. 제비꽃을 앉은뱅이 꽃이라고도 하는데 그걸 찧어 상처에 바르면 신통하게 낫는다고 했다며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승희 스스로가 그런 걸 알 리가 없고 누가 그러더냐고 물었더니 학기가 그랬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나는 그때 속으로 많이 웃었다. 새까만 촌놈 출신인 학기가 아니고선 어떻게 그런 것들을 알겠는가.
5월 7일
어제 떼놓았던 인공호흡기를 오늘은 다시 부착하고 떼고 하는 일을 반복했다. 승희가 호흡곤란을 계속 호소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답답한지 선풍기를 틀어 달라 부채를 부쳐 달라 안달이다. 두렵고 마음이 아프다. 열도 38~9°까지 바짝 올랐다. 물을 계속해서 찾는다. 정말 고통이 심한 모양이다. 잘 견뎌냈는데 오늘은 몸부림을 치면서 짜증도 부리고 눈물을 흘린다.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저럴까. 아 승희야. 진정제와 해열제를 잇따라 투여했다. 오늘은 정말 엉망이다. 승희의 좋지 않은 상태 때문인지 밤에 병실을 지키기가 나도 힘이 들었다. 밤 병실의 냄새는 죽음 냄새와 맞닿아 있다. 모두가 잠든 이 시간 승희는 얼마나 처절하게 혼자인가. 아니다. 승희는 여전히 우리 모두와 함께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속수무책 승희의 고통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나는 한없이 절망스럽다. 승희의 고통을 내 몸에 조금이라도 이식시킬 수가 있다면 나는 차라리 지금의 고통을 아름답게 견딜 수 있으련만.
5월 8일
오늘은 어버이 날이다. 승희의 부모님을 모시고 병실 복도를 지키던 애들이 ‘어버이 은혜’ 노래를 불러 주었다. 두 분은 설움에 겨워 고개를 못 드시고 목이 메었다. 매년 어버이날이면 승희가 꼭 제 손으로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꽃을 달아드리기는커녕 제 손으로 부모님의 손 한 번 잡아드리지 못할 처지에 있는 승희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몸에 힘이 없다고 자꾸 의사표시를 했지만 오늘은 그래도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물도 잘 받아 마시고 딸기 으깬 것도 조금 먹었다. 아주 조금이지만 죽도 떠먹었다. 의사 선생님 말대로라면 장 기능엔 별탈이 없다는 증거이다. 승희는 차츰씩 소생하고 있다. 아주 훗날 승희가 밝게 웃고 다시 건강을 회복하는 날, 이런 순간순간은 얼마나 찬란한 기억이 될 것인가. 힘을 내자. 승희 너도 힘을 내라.
5월 14일
신문을 읽어 달라는 너에게
1면 2면 3면
그 어디를 들춰봐도
네가 기뻐할 소식하나 없는 참혹한 신문을 펼쳐들고
불꽃으로 타오른 젊은 벗들의 얼굴만 가득한 벗들의 죽음을 저주하는 글발만
무성한 소름끼치는 신문을 펼쳐들고
무엇을 소리내어 진물 흐르는 네 귀에 넣어주랴
30만이 투쟁한 어제도
최루탄은 그 숫자만큼 터지고
민자당 중앙당사를 점거한 46명 학우들은 개처럼 끌려갔는데
경대는 상여에 실려 싸우다가
시청 앞에서 다시 연세대로 들어가고
내일은 또 영균이의 장례식
아, 언제 어디서 또 하나의 낯선 얼굴이
불덩어리로 떨어질지 모르는데
쇠파이프에 떨어질지 모르는데
무슨 기쁜 소식을 지어
목마른 너에게 적셔주랴
무엇을 기다리며 너는 재촉하는 것이냐
이 밤
편히 잠 한숨 못들면서
네 고통을 견딜 그 어떤 소식을 기다리는거냐
이 몸뚱이로 아직 꿈꾸고 있는 네 아름다운 세상은 정말 무엇이냐
이 고통보다도 더 간절한 네 소원은 무엇이냐
5월 17일
중환자실 창밖 아카시아 꽃이 이윽고 지고 말았다. 며칠 전 어느 아침이었을까. 새벽을 기다리며 창문에 기대 있다가 설핏 잠들어 눈떴을 때 창문 밖 미명의 서늘함 속에 하얀 아카시아가 흔들리고 있었지. 진녹의 성장 위에 섬세한 레이스처럼, 나는 그 아카시아 꽃이 얼마나 눈부셨던가. 바람에 쓸려 물결치듯 출렁이던 수많은 꽃떨기 잎새. 나는 그날 아침 승희에게 “눈부신 아카시아 아침”이라고 새벽 6시를 이름붙여 주었다. 그리고 오늘이 며칠째인가. 아카시아는 그 화려하고 향내나던 싱싱한 꽃봉오리를 차디찬 그늘에 흩어놓았다. 나는 사람사는 것이 수학방식 같았으면 좋겠다. 좋은 일이 적당히 쌓이면 희망이 되는 적분법이, 혹은 슬픔을 하나씩 쪼개어 버리면 절망이 사라지는 미분법이 우리 인생에도 있다면……. 작은 기쁨, 작은 슬픔 하나에도 모든 것이 쌓였다 무너지는 병실의 나날. 승희야. 우리에겐 정말 몇%의 희망이 있는걸까. 어린 시절 가위, 바위, 보로 아카시아 나뭇잎을 손톱으로 튕기던 그 기억처럼 어느날 우리에겐 기억이라 할 수 있는 앙상한 슬픔만 준비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의 이 작은 기쁨 또한 아카시아 하얀 꽃망울만한 것, 결국 우린 맨땅에서 머리풀고 울게 되는 것은 아닐까.
흰 아카시아꽃 목숨처럼 지는 아침
오월의 창밖엔 아카시아꽃 흔들리고
진녹의 눈부신 잎사귀 사이 하얗게 흔들리고
아카시아 꽃향내 나는 스무살
너도 하얗고 예쁜 젖가슴위에
흰레이스 눈부신 속옷을 입고 살았지
채곡채곡 깨끗이 개어진 너의 속옷들
우리들의 좁은 방에서 널 기다리고 있지
소독내 독한 흰 가아재를 감고
속수무책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한 채
낯선 사람들 앞에서 불탄 젖가슴 드러낼 때
병원 창밖 아카시아꽃 툭툭 떨어지고
아침을 기다렸지 창밖엔 휠체어
아카시아 꽃 그늘을 타고 가는 얼굴이 행복해 보이고
또 아침을 기다렸지 하얀 속옷을 깨끗이 입혀
짧게 타버린 네 머리위에 창모자를 얹어
휠체어에 너를 태우고
저 바람 낮게 부는 아카시아꽃 그늘에 서고 싶었지
네 두발로 땅을 딛고
네 손으로 노란 우산을 쓰게 되는 날
나도 그 노란 그늘 아래 나란히 서서
가만히 네 깨끗한 얼굴
눈물없이 바라보리라 꿈꾸없지
네 살썩는 냄새 깊어가는 병실에서
네 뼈 굳어가는 그 병실에서
창밖엔 아카시아꽃 속절없이 지는데
5월 19일
승희야. 네 머리맡에 엎드려 울면서 아직 네가 깨어나지 않는 아침의 이름을 나는 예감한다. 이게 마지막이구나. 마지막이란 말은 눈물보다 슬픔보다 고통보다 더한 ‘영혼의 파괴’를 느끼게 한다. 의사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다. 그 동안 한 번도 나는 의사 선생님께 너의 미래에 대하여 묻지 않았다. 의학적으로 예정된 결과를 나는 믿지 않았고, 어떤 희망도 절망도 없이 그저 살아 있는 날. 농부가 밭을 갈고 노동자가 나사를 조이듯 우리의 숨이 살아 있는 그 순간을 최선으로 살고 싶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 계속되는 어제 낮의 혼수상태여서 너에게 아침을 말해 줄 수 없는 오늘 아침. 의사 선생님께 많이 어렵냐고 여쭈어 보았다. 의사선생님의 침통한 표정과 목소리 “많이 어려워.” 나는 네 침대로 돌아와 울었다. 아무도 아직 모른다. 오늘 아침 이 아침이 너의 마지막이란 걸. 지금 울고 있다가 울지 않으마. 승희야. 이제 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너의 머리를 쓰다듬어 눈물을 적시며 승희야 이제 정말 ‘마지막 아침’이라는 슬픈 이름을 오늘 적어야 하는 거냐.
마지막 아침
새벽이면
시계가 다섯 시를 넘기길 기다려
나는 너에게 아침 이름 하나씩을 지어 주었다.
아침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
하루를 넘기고 하루치 양식을 다시 받는 시간.
한꺼풀 한꺼풀 새벽이 벗겨내는 어둠을 쫓으며
다시 살아나는 지상의 사람과 풍경
아름다운 의미 하나씩 새겨
너에게 들여주었다.
아카시아 향내가 창문까지 나풀거리는 아침
그 아침의 이름은 아카시아
비둘기가 어두운 병원 하늘을 일제히 깨우는
평화의 시간 종소리가 들리던 아침
그 아침의 이름은 아카시아
비둘기가 어두운 병원 하늘을 일제히 깨우는
평화의 시간 종소리가 들리던 아침
그 아침의 이름은 희망이었다.
경대가 상여에 태워지던 날의 아침은
동지의 아침
네가 딸기 으깬 것을 받아먹던
그 아침은 소양강이었지 소양강 처녀를
잘 부르던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내 순정아
안개가 낀 어느 아침은 시인의 아침이었고
어제 5․18의 아침은 임을 위한 행진곡
이제 오늘 아침
시간도 모르고 눈도 못 뜨는 너의 이마 곁에서
나 혼자 가만히 마지막 아침임을
네가 뛰던 맥박으로 나도 뛰었고
네가 울던 눈물로 나는 울었다
그러나 이제 안녕
새벽 5시
까맣게 타버린 딱딱한 네 입술에
내 입술을 맞추어 나는 작별을 한다.
울지 않으리라
지금 소리 없이 모두가 잠든 새벽 이렇게 작별하리라
어머니 아버지는 새벽 미사에 가고
간호원 의사도 없는 시간
딱딱한 네 입술을 내혀로 문지를 때
네 입에서 흐르는 진물도
내겐 따뜻하고 아름다워라
안녕
마지막 아침 나의 어린 누이여
5월 26일
지금이 몇 시인줄 모른다. 다만 새벽일 것이고 너의 집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비가 너의 묏자리를 다지려고 소리 없이 내린다. 너를 묻고 너의 친구들, 네가 사랑했던 용봉골 학우들이 슬픈 노래가 울려 퍼지는 망월동에서 버스를 타고 돌아갈 때 나는 갈 곳이 없었다. 광주에 있는 집은 이미 나의 자취가 떠나버린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두려움에 가지 못한다. 아버지를 따라서, 어머니를 따라서, 선배, 후배들을 따라서 갈 뿐이다.
꿈
깊은 밤
망월의 어둔 묘지에 너 혼자 묻어두고
살아있는 우리는 바다로 난 길을 따라
네 살았던 예집 상복을 입고 갔다
오래 참았다는 듯이 빗줄기가 쏟아지고
네 몸뚱아리가 비에 젖을까 눈물나는 내게
열일곱살 어린 동생
까만 상복 상주 노릇하던 성경이가
갚고 있던 눈을 떠 내 어깨에 기대며
누나 모든게 다 꿈인 것 같애
참았던 눈물을 줄줄 쏟고
어두운 남쪽 도시
비내리는 목포집 마당에서
그래 모든게 다 꿈인 것 같애
이제 깰 때도 되었는데
무섭고 끔찍한 이 꿈길을 따라 다니기도 지쳤는데
비에 젖어 추워도
험한 꿈은 눈물 속에서 더욱 생생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