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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골짜기 초가 삼간에 박이라는 시인이 살고 있었어요. 이 시인은 90이 가까왔지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총각이었어요. 90세의 총각이라, 이제 총각 신세 면하긴 어렵겠지요. 그런데 이 총각을 일편단심 사모하는 처녀가 있었다는 말씀이예요. 만순이라고, 총각네 마당의 큰 쇠말뚝에 매인 똥개 처녀였지요. 만순이는 90 먹은 총각을 지키느라고 밤이나 낮이나 늘 으르렁거렸어요. 단 둘이 살면서 조용히 알콩달콩 살지 못하는 것이 이 둘에겐 비극이었지요. 둘은 밤이나 낮이나 서로 으르렁댔어요. 만순이는 가랑잎만 날려도 누가 제 사모하는 총각을 해치러 오는 줄 알고 짖어대고 그러면 만순이 마음도 모르는 총각은 시끄럽다고 고함을 지르고 그렇게 그렇게 살던 어느 날 아침, 만순이를 붙들어 맨 쇠말뚝이 사립문 쪽으로 휘어진 것이 총각의 눈에 예사롭지 않게 보였지요. "저것이, 바깥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서 저렇게 짖어댄 모양이구나." 그러고 보니 쇠말뚝은 만순이의 감옥처럼 보였지요. 총각은 가장 아픈 경험이 있어요. 오래 전 생각지도 못한 사건으로 아주 오래도록 감옥에 갇혔었지요. 그는 인간이 만든 모든 문화 중에서 가장 혐오하는 것이 감옥과 처형이었지요. 그가 세상을 등지고 이 깊은 산속으로 들어 온 것도 그 감옥 생활과 무관하지 않을 거예요. 그에게 감옥은 누가 뭐래도 지옥과 동의어였지요. 그런 그가 한 생명체를 감옥에 가두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지요. 총각은 즉시 만순이의 목줄을 풀어 주었어요. 만순이를 감옥에서 풀어주고 지옥에서 해방시킨 것이지요. 만순이도 기다렸다는 듯이 밖으로 달려 나가 뒤도 안 돌아보고 산 속으로 사라졌어요.
총각은 하루 종일 자기가 한 일이 뿌듯했지요. 산 속이니까 개구리도 잡아 먹고 산짐승 똥도 주워먹고 자연 속에서 좋은 친구들도 만나고 잘 살아가겠지 뭐. 무릇 살아 있는 것은 자연이 그 생명을 돌볼 것이라. 그렇게 생각했지만 왠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지요. 깊은 산중에는 너른 세상보다 서둘러 오는 손님이라고는 추위와 어둠뿐이지요. 해는 이미 산등성이에 가려 보이지 않았어요. 일찌감치 저녁을 차려 들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만순이 밥그릇을 힐끗 보았지요. 다행이 아침에 부어 준 밥은 깨끗히 핥고 나갔더군요. 그날따라 밥이 목에 걸려 넘어가질 않았지요. 시래기 국에 말아 신김치를 한가닥씩 얹어 반쯤 먹었을 때, 마당에서 기척이 났죠. 방문을 벌컥 열어보니 만순이가 소리없이 돌아와 제 감옥인 쇠말뚝에 몸을 기대고 제 빈 밥그릇을 핥고 있었지요. 쇠말뚝은 만순이의 감옥이면서 지옥이었고 쇠말뚝은 만순이의 삶의 버팀목이고 기댐이고 서방이었지요. 쇠말뚝은 만순이의 밥이고 집이고 신앙이었지요.
총각은 얼른 먹던 밥그릇을 들고 나가 따뜻한 쌀밥 한덩이를 더 말아서 만순이의 밥그릇에 부어주었어요.
그러나 만순이는 밥그릇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총각의 해진 바짓가랑이를 한없이 핥더랍니다.
겨울 아침
졸업전에 일본 학도병으로 끌려가 중국에서 복무하던 중 1958. [새앙쥐와 우표], 1964 [화염 속에 숨진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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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얘가 만순인가요? ㅎㅎ 어쭙잖은 인간이 되기보다 달관한 개가 되리라.
아~~~근데 외단 곳에 살면서 꼭 개를 묶어둬야 했나요....-_-'' 아~~~전 나이들어 교외에서 살면 꼭 개를 키울 것이고 자유롭게 풀어 둘 것입니다.(애초에 너무 사나운 개는 목 키우겠지요 ㅎㅎㅎ)
그나저나 개가 마치 득도한 달마대사 가타염....
아 이제사 이 무지렁이 인간들이 날 알아봐 주네그랴. 내가 전생에 도 높은 스님이었음을...눈을 달고 다녀도 그걸 못 보더니만 뉘 그걸 일러주었남? 쯧쯧 중생스러운 것들. 좀 오바마다워라(내 유식허재?)-만순이 독백
ㅎㅎㅎ, 박희선님의 진묵대사를 읽었었는데 좀 어려웠어요. 누보로망이라나. 하여튼 박 선생님은 기인이었지요. 유발거사라고 불교쪽에선 큰 스승으로 모시는 것 같던데.
총각은 만순이의 주!
개는 주인을 기억을 한답니다. 개의 실화는 주위에 많이 있지만, 저에게도 그런 아픔 추억이 있어요. 담에...... 잘읽고 갑니다.^^*
나도 만순이가 되고 싶어요......오늘은...누구의 바지 가랑이를 물고 늘어지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