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74]이우는 봄날…신록新綠이 오고 있다
‘이울다’의 사전적 정의는 ‘꽃이나 잎이 시들다’ ‘(사물이) 차차 쇠약해지다’이다. 꽃이 이울고 달이 이울다라 할 때 쓴다. ‘이우는 봄’은 조금 어색하지만, 틀렸다고는 할 수 없겠다. 봄이 달음박질하며 지나고 있는 듯하다. 어느새 개나리도, 진달래도, 벚꽃도, 목련도 다 져버렸다. 우리집 꽃밭 노오란 수선화꽃이 고개를 떨군 모습을 보니 ‘이울다’는 표현이 참 어울린다. 식물이든 사물이든 ‘이우러진 모습’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다음에 따라다니는 말이 ‘권불십년權不十年’일 것이다. ‘그까짓 대통령 5년이 뭐 대단하냐?’며 대통령이 된 사람 생각이 난다. 도대체 얼마나 오만하기에 국민들을 언제까지 개돼지를 여기는 것일까? 한심지경. 목불인견. 정치 이야기를 안하려 하나, 국정을 쇄신한다며 비서실장으로 거론되는 3인을 보니 오장 깊숙한 데서 욕이 절로 나와서 하는 말이다.
각설하고, 요즘 일교차가 심하여 낮에는 마치 초여름날씨같다. 독감이 판친다는데, 초로初老 인사들은 감기를 조심할 일이다. 지구촌 이상기후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지난 겨울도 눈 대신 비가 참 많이 왔다. 모내기할 때 물걱정은 안해도 되겠지만, 봄비조차 장마비처럼 주룩주룩 내리니 초보 농사꾼 주제에도 웬일인가 걱정이 된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또 어떠한가? 0.78선도 깨졌다는데, 이대로 20-30년 간다면 국가적으로 인구소멸 위기가 올 것이 뻔하지 않은가. 이런 큰 주제를 ‘국가 어젠다’로 시급히 세워도 부족할 판인데, 최고위 권력자가 자꾸 ‘정치 어긋장’을 놓은 것같아 안타깝다. 총선에서 민심을 확인했으면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당연할 터인데, 오죽하면 어느 정치평론가가 “그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기에 어둡다. 내 예감이 제발 틀리면 좋겠다”고 말했을까?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속담은 결코 빈 말이 아닌 듯, 100여일간 여당을 지휘한 ‘임시 사령관’격의 '애송이 정치인'이 한순간에 우리 눈에서 사라졌다. 그건 정말 좋은 일이고 잘된 일이다. 돌풍을 일으킨 제3당은 ‘이제 그만 깝죽대지 마시고 조용히 특검을 기다리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 왜 대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꼭 ‘진 것’같은 기분일까? 개헌선에 확보하지 못해 그러할까? 혹자는 190석이라는 절묘한 구도가 ‘국민의 뜻’이라 하지만, 암것도 모르는 민초의 눈엔 아무래도 아닌 것같다. 오죽하면 ‘쓴 김에 10석만 더 써주시지’라며, 엊그제 <야당 압승이라고 말하지 말라>는 제목의 격문을 썼을까. 역대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아닌 것만큼은 천만다행한 일이나, 2년간 고통받은, 이해할 수 없는 국정의 행태에 분忿이 난 국민들로서는 뭔가 2% 부족한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디 한풀이가 되던가.
‘넘버 1’의 문제만이 아니다. 평생 공직에 뼈를 묻은 고위급 공무원들의 '역사를 보는 눈'이나 현재의 국정 난맥상을 풀어가는 마음자세가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대장’이 영 아니라면 삐딱선 타는 것은 당연할 것이 아닐까? 레임덕이라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요즘 세상에 '입틀막'이 될 말인가? 누구라도 숨통이 트여야 사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이치인 것을. 봄날이 이우네뭐네 하다가 웬 정치타령일까? 며칠만 있으면 ‘계절의 여왕’이라는 신록新綠의 5월이 오기 때문이다.
5월은 또다른 희망이다. 이미 남녁 산하엔 초록이 물든 지 오래이다. 수많은 봄꽃이야 금세 지고마는 일이지만(이제 해를 넘어서야 다시 환한 얼굴을 내밀 터), 푸르른 5월, 나무마다 물이 올라 싱그러운 여름을 뽐낼 것이다. ‘곳 조코 여름 하나니…’의 ‘여름’은 ‘열매’의 고어古語가 아니던가. 엄혹한 겨울을 거쳐 화무십일홍의 봄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 우리, 신록의 숲에서 (제발) 신선한 공기를 맘껏 들이켜 보자. 숨통이 트이도록 심호흡을 크게 해보자. 그리고 우리, 혁신의 바다에서 알찬 열매를 맺도록 노력하자. 가장 빠르고, 가장 단호하고, 가장 강력하게 ‘사회권 선진국’을 향한 발걸음을 힘차게 내딪자. 그래야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