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케아 종교회의는 《다 빈치 코드》가 소설 전반부에서 깊이 파고드는 여러가지 쟁점을 결정한 자리였다. 소설에서 레이 티빙은 신약성서에서 어떤 복음서는 포함시키고, 어떤 복음서는 빼버릴지를 결정한 것은 니케아 종교회의였다고 주장한다.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중대사항 결정
소설 속 인물들이 풀어내려고 애쓰는 수수께끼의 중심에 있는 중요한 사건은 바로 니케아 종교회의가 결정했다. 그 수수께끼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이냐 아니냐의 문제이다.(예수가 인간이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이라고 믿는 신앙은 아리우스주의(Arian hersy)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니케아 종교회의는 예수 그리스도는 신이며,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했을 리가 없다고 법령으로 포고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아리우스파로 발생한 교회 내의 분열과 분쟁을 우선적으로 끝내고자 325년에 최초로 종교회의를 소집했다. 종교회의를 소집한 또 다른 목적은 부활절 날짜를 통일하는 일이었다.
니케아 종교회의는 아리우스파 문제를 논의하고 처리했으며 그리스도교의 신앙 중 가장 중요한 교리 중 하나, 즉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니케아에 모든 주교들이 참석
콘스탄티누스는 이 문제들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든 주교를 종교회의에 참석시키고자 했다. 주교들이 공의회에 안전하게 참석할수 있도록 황제의 교통 체계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권한까지 주었다. 그 덕에 주교들은 자비를 들이지 않고도 로마 군대의 보호를 받으며 이동할 수 있었다.
원래 종교회의는 앙카라에서 소집되었지만, 콘스탄티누스는 종교회의의 소집 장소를 좀 더 서쪽으로 떨어진 니케아로 바꿔버렸다.
니케아는 오는날 터키의 이즈닉(Iznik, 터키 남부의 해안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결정 덕분에 이탈리아와 유럽에서 오는 주교들은 더욱 수월하게 참석할 수 있었다. 또한 콘스탄티누스는 집접 공의회의 진행사항을 볼 수 있었으며 주교들 사이에도 참석할 수가 있었다.
콘스탄티누스: 자신이 이룩한 제국의 번영을 위하여
니케아 공의회는 325년 6월 19일에 소집되어 2달 동안 열렸다. 다양한 보고서에 따르면 250명에서 320명의 주교들이 참석했다. 콘스탄티투스 황제는 7월 초에 도착하여 화합의 중요성에 관해 연설했다. 공의회에서 작성되어 현재까지 남아 있는 문서로는 니케아 신경, 카논(그리스도교적 신앙 및 행위의 규범), 그리고 이집트 교회에 쓴 서한이 있다.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이 이룩한 제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교회가 화합하기를 바랐다.
아리우스파 "예수는 신의 피조물중 최고의 존재"
하지만 아리우스파는 로마 제국 전역의 그리스도교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고 아리우스파가 제국의 안정을 위협하지는 않을까 우려했다. 아리우스파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그리스도교인 아리우스의 이단적 견해에서 발생했다.
아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적인 존재가 아닌 '신의 피조물 중 최고이자 으뜸인 존재'라고 봤다.
아리우스의 생각대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신성이 없다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죄를 짓고 변질될 수 있는 존재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아리우스는 '기원이 없는' 신과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는 기원이 있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세대 이전에는 있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공의회에서 아리우스파를 강력하게비난
사실, 콘스탄티누스는 아리우스파 주교 몇 명뿐만 아니라 아리우스파의 관점에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는 점점 커져가는 교회의 분파를 끝내고 싶다는 바람이 강했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는 교회의 분파 문제를 공의회의 결정에 맡기기로 결심했다.
공의회는 아리우스파에게 비난을 퍼부었으며 이미 정해진 교회의 교리를 확고하게 다졌다. 주교들은 신경(神經)을 만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과의 관계를 강조했다.
[출처 : 다빈치 코드의 진실/사전]
첫댓글 예수가 아담과 동일한 신의 피조물 중 최고이자 으뜸인 존재 ? 정말 궤변론자들 많네요. 인간도 등급이 있으니 예수님은 특등급이라. 나머지는 일등급 이등급 ... 사람도 등급제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