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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진월스님
(북가주 고성선원 선원장)
전회에 이어서 소납의 회고담을 이어갑니다. 최초의 해외여행은 우연하게 되었습니다.
1981년 이른 봄에, 백상원 (동국대학교 서울 종비생 비구기숙사) 스님들 몇 분을 일본불교계가 초청하여 보름정도 일본불교 유적과 사원을 시찰하며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는데, 겨울방학중이라 우연히 그 그룹에 편승하여 동참하게 되었지요. 당시 인도철학과 교수로 인도종교는 물론, 범어와 티베트어 강의를 하셨던 정태혁 교수님이 안내를 하셨는데, 과거에 일본에서 유학하셨던 분입니다.
후쿠오카를 거쳐 나라와 오사카, 교토의 사찰과 문화유적지를 돌아보며, 말로만 들었고 책을 보며 상상했던 일본의 풍광과 역사 문물을 직접 보고, 현대 일본인들의 살림살이도 다소나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시아 대륙의 동북쪽 한반도 보다 남쪽에 위치한 섬나라로서 기후가 온난하며 해양적 특성이 있었으나, 산천의 모습과 분위기는 크게 낯설지 않았고, 특히 백제 등 한반도 유민이 많았던 나라지방은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일본인에 대한 부정적 선입관과 편견, 오해와 무지, 또는 과대평가나 지나친 피해의식도 극복해야할 문제임과 실상을 통찰할 필요를 실감했습니다. 역사 문화적으로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의 선배로서 형님 노릇을 잘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일본인들의 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한국에 대한 정신문화적 콤플렉스를 이해하고 포용해야 할 줄 압니다. 아무튼 그 여행이후에 외국에 대한 상상과 짐작이 현실과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지, 책이나 언론의 보도를 어떻게 파악하고 인식하여야 하는지 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83년 여름방학기간 중에 동남아와 유럽의 종교관련 유적과 시설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불교성지인 네팔의 룸비니, 인도 힌두교 내지 이슬람의 성지인 델리의 적성과 간디 유서지, 타지마할,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유대교 성지와 베들레헴의 예수탄생지, 터키 이스탄불의 이슬람 성지 소피아 모스크와 정교회, 독일 뮨헨의 개혁교회, 이태리 로마의 바티칸 등지를 방문하며, 종교 및 신학자와 현지 성직자들의 안내 및 교리에 대한 강의도 들었습니다. 불교와 다른 세계 종교들을 비교해 보며, 잠시나마 그들의 집안으로 들어가서 색다른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지구위의 여러 종교 전통과 문화를 대강이라도 이해하고, 다른 종교인들의 신행에 어느 정도 공감 능력이 있어야 서로 소통하고 협조할 수 있음을 경험하였습니다. 1984년 2월에 동국대학교를 졸업하면서, 하와이 대원사의 법사로 초청되었습니다. 당시 서강대학교 영어연구소에서 영어를 익히고 있었는데, 그 무렵 서울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던 길희성 교수가 서강대학교 종교학과로 이적하여 불교학과 힌두교 등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호기심에서 만나 보았습니다. 그분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학교 대학원에서 신학 석사과정을 거쳐,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박사학위논문은 한국 고려시대의 지눌선사에 대하여 작성하였음이 주목되었습니다.
그 과정과 배경 설명을 듣고, 종교학의 중요성을 느꼈습니다.
결국 하와이대학교 대학원에서 종교학을 공부하기 위한 준비로 서강대학교 종교학과에서 종교학과 신학을 2년간 공부하였습니다. 그동안 서강대학교 총장과 이사장, 종교학과 교수였던 여러 신부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삶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교실에서의 강의와 책을 통한 지식은 물론, 예수회 내지 천주교 성직자들의 살림살이를 통해 크리스천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었음은 큰 경험이었습니다.
1986년 봄, 열반절법회 봉행에 즈음하여 하와이 대원사로 갔습니다. 대원사에서는 불교문화원 건립불사를 준비하며 기초공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사찰의 대내외적 사정상 부득이 총무직 소임을 보게 되었고, 현지상황에 적응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지요. 그 무렵 하와이국제 불교인협회 (Hawaii Association of International Buddhists) 가 창립되고, 수련담당부회장직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중국, 일본, 월남, 태국, 티베트 등 여러 불교국가로부터 온 다양한 전통의 승가와 재가 불자들이 모여, 친목을 다지며 불교적 공동과제 해결에 단합하여 협조하기로 한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국제적 인연들이 일어나 소통과 교류의 마당이 열리고, 각각의 사찰 및 연합행사에도 참석하며 다양한 모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한 종교내부에서의 교섭 및 연대 (Intra-religious/faith) 운동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89년 여름에는 아시아불교평화회의 (Asia Buddhists Conference for Peace) 참석차 몽골 울란바토르에 다녀오며, 중국의 북경과 낙양에 들러 불교와 유교 및 도교의 유적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하와이대학교 (University of Hawaii, Manoa) 대학원 종교학 석사과정에 들어가서 세계종교의 역사와 전통 및 현상을 공부하고 연구하기 시작하여 1990년 6월에 문학석사 (MA) 학위를 취득하였지요.
학위논문은 청허휴정스님의 <삼가귀감> 즉, 불교와 유교 및 도교의 근본적인 교의를 종합적으로 제시하며 삼교일치를 주창한 사상을 현대적으로 조명하고 평가한 것입니다. 그 무렵 하와이대학내에 종교학박사과정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하여 그 결과를 기다리며, 결국 무산되는 말았지만, 약 2년가량 단편적으로 역사와 범어 강좌 등을 들으면서 독학하는 기간을 가졌습니다. 평가와 학점의 취득에 부담이 없이 공부하며, 걸림이 없는 열린 영성의 자유를 누려 보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1991년 겨울, 학문을 더욱 심화하여 박사공부를 해보고 싶어, 캘리포니아 주립 버클리 대학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불교학 그룹 (Group in Buddhist Studies) 에 입학원서를 보냈고 통상절차를 거쳐서 다음해에 허가를 받았지요. 불교학그룹은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 남아시아학과, 철학과, 심리학과, 범어학과, 예술사학과 등, 여러 학과에 재직하는 불교관련 교수들이 모여서 불교학박사양성을 위하여 형성한 협동과정입니다. 이곳에서는 인도-티베트문헌 전공과 동아시아 한문문헌 전공으로 크게 나누어 진행하지만, 학생들은 어느 쪽 전공이든 다른 쪽도 부전공으로 공부하기를 권장하고 다양한 교과과정을 이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불교학을 세계적 관점과 수준으로 소양을 두루 갖추도록 하려는 의도이겠지요. 소납도 한문을 바탕으로 하는 동아시아전통을 전공하면서 범어와 팔리어 및 티베트어 공부와 문헌읽기에 고생을 하였음은 물론입니다. 1992년 여름 호놀룰루로부터 버클리로 옮겨와
가을학기부터 처음 1년간은 국제학사 (International House)에서 지냈는데, 약 600여명의 학생 가운데 절반은 외국인으로 75개국에서 유학을 왔고, 나머지 미국 학생들도 50여개 주에서 선발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른바, “한 지붕 밑에서 한 솥의 밥을 먹는” 인연을 만들어 주어서, 다양한 인사들과 폭넓은 학연을 맺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1994년 시카고에서 개최된 세계종교의회(Parliament of World Religions)에 참석하였고, 스위스와 독일에서 열린 불교기독교학회(Society for Buddhist Christian Studies)에 국제 자문위원으로 참석하였으며, 그 뒤에 러시아를 방문하여 모스크바와 생페테르츠브르크를 돌아보고 정교회와 불교사원을 방문했지요. 마하트마 간디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대문호 톨스토이의 조촐한 무덤에도 들려 그의 인격을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학회나 종교행사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여기저기 순례 여행하면서, 시공을 관통하는 인간본성의 동질감과 형제애를 느끼고 인류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나름대로의 역할과 사명을 새삼 되새겨 본 성찰과 연수의 시절, 학문과 구도의 길에서 겪는 기쁨과 보람, 글로 표현하기는 불가능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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