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흔이 가까워오는 사람의 공직을 맡을 자격을 따지면서 스물일곱 살에 했던 실수 혹은 범법 행위를 중요하게 취급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누군가 20대 초반에 어딘가 남겨 놓은 글을 근거로 ‘넌 이렇게 생각하지?’ 하고 나를 규정하려 한다면 참으로 난감할 것이다. 20대 초반과 40대 초반의 나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금 문재인 정부의 핵심에는 1980년대 북한의 주체사상에 경도되었던 이들이 많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이 20대 때의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리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 이후 그들의 행적을 볼 때 주체사상 같은 허무맹랑한 이념은 일찌감치 버렸으리라고 충분히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준표의 돼지 발정제 강간 모의와 안경환의 경우가 다를 게 뭐냐고 묻는 것이 번지수가 틀린 것도 이 때문이다. 20대 홍준표의 강간 모의에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은 그런 젊은 날의 그의 모습과 지금 홍준표의 여러 모습이 겹쳤기 때문이다. 홍준표는 20대 때의 좋지 않은 모습을 지금까지 그대로 심화시켜 온 나쁜 예의 하나로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안경환은 지난 40년간의 삶을 통해서 그 세대 가운데서도 비교적 돋보이는 공익을 위한 활동과 또 그런 공적 활동에 부합하는 인격을 연마해온 듯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실제로 과거의 그와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니 그의 말대로 40년간의 삶을 “부정하고” 스물일곱 살의 실수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옳지 않다. 그로서는 억울할 만했다.
2.
이번 사태에서 가장 안타까운 일은 검찰 개혁 같은 기득권의 저항이 강력한 현실 과제를 일흔이 내일모레인 안경환 같은 이른바 ‘원로’에게 떠넘긴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상상력’이다. 유승찬 선배가 며칠 전에 언급했듯이 왜 문재인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86 세대’는 또래 세대나 다음 세대와 연대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같은 맥락에서 안타까운 일은 그런 과제가 자신에게 주어졌을 때, 그것을 덥석 받은 안경환 혹은 그 세대의 처신이다. 물론 그의 말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소명”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안경환 정도면 “마지막 소명”으로 장관 자리를 맡아서 현실의 검찰 개혁을 하는 일보다 훨씬 더 훌륭한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보자.
여러 요인으로 기대 수명이 늘면서 앞선 세대의 은퇴가 계속 늦어지고 있다. 김종인(1940년생), 반기문(1944년생), 안경환(1948년생), 홍석현(1949년생) 등 팔순, 칠순이 가까워오는 옛날로 따지면 ‘노인’이 여전히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현역’으로 뛰고 싶은 욕심을 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기회가 안 와서 그렇지 분야마다 이런 이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지난 수십 년간 우리나라의 산업화, 민주화 과정에서 여러 기여를 한 것을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들은 그 기간 동안 그런 기여에 대한 충분한 대가도 받았고, 그에 상응하는 기득권도 누렸다. 굳이 ‘대통령’, ‘장관’을 하지 않아도 이름 석 자에도 경의를 표하는 이들이 많은데다 ‘억’ 소리가 나는 재산까지 축적했다.
그런 기득권은 그 또래 다수의 희생을 딛고 선 것이기도 하다. 일찌감치 일자리를 잃고 돌봐줄 사람도 없이 죽음만을 기다리는 전국 1인 가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독거노인이야말로 그 희생양이다. 기회만 있으면 소수의 노인이 권력을 쥐려는 사회에서 다수의 노인이 10만 원, 20만 원도 없어서 배를 곪는 상황이야말로 참으로 역설이고, 비극이다.
3.
지난 수십 년간 그들이 비교적 많은 성취를 냈다고 해서 앞으로도 꼭 그러리란 보장도 없다. 왜냐하면, 세상이 엄청나게 변했기 때문이다.
2006년 9월 5일, 고(故) 리영희 한양대학교 명예교수가 지적 활동 마감을 공개 선언한 것도 바로 이런 자기성찰의 결과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77세. 지병으로 집필이 어렵긴 했으나, 마음만 먹는다면 그의 한마디를 기사화할 매체가 줄을 선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홀연히 지적 은퇴를 선언하고서, 2010년 세상을 뜰 때까지 가능하면 현실 문제에 대한 논평을 삼갔다.
그가 지적 은퇴를 선언하면서 했던 인터뷰는 이렇다.
"한 개인에게는 무한한 욕심과 집착을 버려야 할 시기가 있는데 그 시간이 온 것 같다. (…) 내가 산 시대가 지금 시대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고 내가 할 수 있는 한계가 왔다. (…) 자기가 할 수 있는 한계를 깨달을 때 이성적 인간이라 할 수 있고, 마치 자기가 영원히 선두에 서서 깨우침을 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오만(이다)."
안경환과 비슷한 연배의 존경하는 선생님도 10년쯤 전에 사석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강 기자, 내가 일흔이 넘어서 헛소리를 하면 아예 입을 꿰매 버리시오.” 그 선생님은 어쩔 수 없는 시대 변화와 그 변화를 수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노화에 따른 인간의 한계를 간파한 것이다.
4.
그렇다고, 안경환이나 이 선생님께서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총, 균, 쇠>(문학사상사 펴냄), <문명의 붕괴>(김영사 펴냄) 등으로 유명한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한 강연에서 자신과 같은 노인이 지금 현재 이바지할 수 있는 일로 세 가지를 들었다. 그는 1937년생으로 올해로 만 80세다.
첫째, 노인은 다음 세대 그러니까 손자, 손녀를 양육할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다이아몬드는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이 직장을 갖는 것이 필수가 된 이 시대에 다음 세대의 양육을 할아버지, 할머니가 책임지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일 뿐만 아니라 보람찬 일이라고 강조한다. 어쩌면 종의 보존에 이바지하는 일이니 가장 훌륭한 일이다.
둘째, 노인은 전쟁이나 경제 공황 등 앞으로 일어나서는 안 될, 하지만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극단적인 일을 직접 경험한 세대다. 그들은 그런 경험으로부터 얻은 지혜를 후세대에 전할 의무가 있다. 실제로 안경환 등 앞에서 언급한 이들도 나이에 따라서 편차는 있지만 해방 전후의 혼란, 한국 전쟁, 궁핍과 개발, 독재와 민주화를 겪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안경환 등이 그런 극단적인 일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았던 것은 다른 이들의 희생을 딛고 섰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역사 앞에 참회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가감 없이 후세대에 전하는 데 나서야 한다. 그런 경험을 통해서 얻은 지혜를 앞으로 올 위기에 어떻게 활용할지는 온전히 후세대의 몫이다.
셋째, 노인은 인간관계를 조율하거나, 봉사 활동을 하거나 혹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사안에 접근하는 데는 유의미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니 칠순, 팔순 가까운 나이에도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기 어려우면 당장 우리 사회 곳곳에서 신음하는 소수자를 돕는 봉사 활동에 나서라. 평생 위에서 군림하기만 했으니, 세상을 뜨기 전에 밑에서 섬기는 경험도 나쁘지 않다.
나는 안경환 등이 다이아몬드가 언급한 이런 일들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것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소명”을 제대로 완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눈앞의 개혁 과제는 다음 세대의 몫으로 남기고 자신은 가족도 돌보고, 이웃에게 봉사하는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오랫동안 쌓은 경험을 공유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바탕으로 50년 후, 100년 후 인류의 비전을 그리는 데 도움을 준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