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종일토록 비가 온다고 합니다.
변화무상한 날씨가 사람의 마음과도 같지만,
그 가운데 한결같은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끝없는 탐심과 부정성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주님의 보혈로 정결케 하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실 때
진리를 밝히 봄으로 기뻐 춤추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8. 다윗 왕이 명령하여 이르되 밧세바를 내 앞으로 부르라 하매 그가 왕의 앞으로 들어가 그 앞에 서는지라
29. 왕이 이르되 내 생명을 모든 환난에서 구하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라
30. 내가 이전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네게 맹세하여 이르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고 나를 대신하여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였으니 내가 오늘 그대로 행하리라
31. 밧세바가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내 주 다윗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니라
32. 다윗 왕이 이르되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내 앞으로 부르라 하니 그들이 왕 앞에 이른지라
33.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의 신하들을 데리고 내 아들 솔로몬을 내 노새에 태우고 기혼으로 인도하여 내려가고
34. 거기서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은 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고 너희는 뿔나팔을 불며 솔로몬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고
35. 그를 따라 올라오라 그가 와서 내 왕위에 앉아 나를 대신하여 왕이 되리라 내가 그를 세워 이스라엘과 유다의 통치자로 지명하였느니라
36.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왕께 대답하여 이르되 아멘 내 주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오며
37. 또 여호와께서 내 주 왕과 함께 계심 같이 솔로몬과 함께 계셔서 그의 왕위를 내 주 다윗 왕의 왕위보다 더 크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본문 주해)
28~31절 : 성경에는 이 맹세의 장면이 나오지는 않지만 다윗이 분명히 밧세바에게 여호와를 가리켜 솔로몬이 자신의 후계자 될 것을 맹세한 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30절).
그것을 밧세바와 나단이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32~35절 : 다윗이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불러 솔로몬을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삼는 의식을 행하라고 지시한다.
늦었지만 다윗은 정확한 절차에 따라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게 한 것이다.
36~37절 :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레셋 용병들을 지휘하는 시위대 대장이다.
브나야의 말은 단순히 다윗과 솔로몬에 대한 충성심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한 말이었다. 하나님께서 이미 다윗에게 언약하신 대로 그 왕위를 이어갈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다윗보다 그 크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은 세상의 힘을 크게 가지는 그런 왕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그 땅을 이미 차지하였다. 다윗을 통하여 여호와의 전쟁이 마무리됨으로 평화의 왕이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37절 말씀은 다윗의 왕위를 이어받은 솔로몬이 계속 땅을 정복하여 더 큰 나라를 만들고 제국을 이루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더욱 확대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가 되어 하나님의 긍휼을 다른 나라에도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어야지 힘으로 세상을 정복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의 묵상)
다윗이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불러 솔로몬을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삼는 의식을 행하라고 지시한다.
늦었지만 다윗은 정확한 절차에 따라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게 한다.
아도니야는 스스로 왕이 되고자 사람을 모아 세력을 구축했다.
그런데 솔로몬은 철저히 수동적이다. 성경에 솔로몬 자신이 나서서 이러저러했다는 설명이 없다. 아버지 다윗 왕의 명령에 따라 일이 차근차근 이루어지는 것이다.
간음과 살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태어난 여디디야가 왕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힘을 키워서 만들어 내는 아도니야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으로 세워지는 나라임을 어제 묵상하였다.
그런데 아도니야 측이나 솔로몬 측이나 둘 다 자신들이 하나님 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하나님 편인가를 구분해 낼 수 있을까?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는 아도니야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거나 묻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합리화시킨다. 세상 정신이 충만하면서도 하나님을 입에 올리는 것과 같다.
아도니야나 요압과 아비아달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탐욕을 위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 브나야의 말을 들어보면(36~37절),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려는 다윗의 뜻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를 원하고 또 왕이 될 솔로몬의 치세가 다윗보다 더 빛나길 기원한다.
이 브나야의 말은 개인적인 말이라기보다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는 자들 모두의 마음과 생각이리라.
그것은 단순히 다윗과 솔로몬에 대한 충성으로 외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나라를 기대하는 마음인 것이다.
교회라는 조직 안에서뿐만 아니라, 내 안에서도 세상 정신과 하나님 나라 정신이 충돌할 수 있다.
과연 자신이 진실로 하나님 편인지, 하나님 나라 정신으로 사는 자인지를 아는 것은 십자가 정신으로 하는 것인지를 보면 된다.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고자 세력을 모은다. 군대의 총수인 요압이 자기 편이 되고, 제사장 아비아달도 자기 편이 되니 우쭐한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힘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 정신이 아니다.
그에 비해 아버지 다윗에 의해 철저히 수동적인 자세로 왕위에 오르는 솔로몬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영원한 왕이 되시는 예수님을 생각하게 한다.
자신의 뜻과 자기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이 땅을 살아야 하는 성도들의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직 나의 품은 뜻이 하나님의 뜻과 같게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어차피 세상 정신과 하나님 나라 정신이 뒤섞여 돌아간다.
겉으로 보면 능동적인 세상 정신이 힘을 떨치는 것 같고, 성도의 수동적인 하나님 나라 정신이 위축되어 보인다.
그러나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의 승리를 알기에 오직 오늘이라는 한 날을 주님 편에 서는 자로 살게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오늘도 말씀 앞에 나아가 아도니야의 세상정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브나야의 기원을 주님께 올려드리기를 소원한다.
(묵상 기도)
주님,
과거에 하나님과 원수로 행하면서도
‘나는 하나님 편’ 이라고 큰소리 친 것을 기억합니다.
그 무지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십자가에 자기의를 못 박지 않고서는 결코 하나님 편이 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안다고 그것을 다 삶으로 살아내지는 못합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날마다 십자가에 연합되게 하옵소서.
이 치열한 영적 전투에서 자주 부상을 입고 너덜거리지만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며 또 일어나 달려가게 하옵소서.
연약한 팔과 다리에 다시 힘을 주시는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