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가 말을 끄네'
정 경 자
낮에 시장을 다녀올 때였다. 넓은 8차선
도로에 난데없이 드라마에서나 나오던 말발굽소리가 울렸다. 행인들은 키 크고 잘생긴 경주마와 날렵한 체구의 기수(騎手)들을 신기한 듯 구경하느라
가던 길도 멈추었다. ‘따그닥 따그닥’ 경쾌한 말편자 소리를 듣는 게 몇 년 만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했다.
한 사십 년 전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갓
입학할 때까지 우리 집에는 토종말 한필을 키웠다. 우리가족이 살던 곳은 시내 변두리 마을의 작은 집이라 마구간을 지을만한 땅이 없었다. 아버지는
동네 어귀에 땅주인의 허락을 얻어 공장 담벼락에 바람막이 두른 마구간을 마련하셨다. 어린 우리들은 사람보다 덩치 큰 말이 무섭기도 하고 말똥냄새
때문에 집이 좁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마을 어귀에 마구간이 있어 동네사람도 오가며 매일 말의 안부를 살피거나 시시껄렁한 농을
걸기도 했다. 우리 집은 마을 입구에서 모퉁이 돌아 다섯 번째 집이었는데 첫째 집 김 주사 어른만은 고약한 냄새에 털까지 날린다고 말을 굉장히
싫어했다. 술김에 아버지와 몇 번인가 실랑이도 벌였던 것 같다.
말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참으로
지극정성이었다.
새벽 네 시경에 일어나셔서 마구간부터
살피는 것으로 아버지의 하루 일과가 열렸다. 말의 안색을 살피거나 등을 쓰다듬기도 하고 밤새 잘 잤냐고 말 하면 그놈도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흐르릉’ 하고 웃음소릴 냈다. 동트기 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여물을 퍼주면 씩씩거리며 여물통을 깨끗이 비웠다. 요즘처럼 전용사료는
꿈도 못 꾸던 시절이라 마차로 풀을 한차씩 베어오기도 하고 근교 농가까지 찾아가서 짚단을 구해오기도 하셨다. 특히 그놈은 짚이 들어간 여물 위에
누런 등겨가루를 후루루 뿌려주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아버지는 특식도 자주 만드셨는데 말에게 좋다는 약초도 별도로 구해서 삶아 먹이곤 하셨다.
추운 겨울에는 탈이라도 날까 싶어 바람구멍을 막고 담요도 몇 겹이나 덮어 주었다. 물론 우리 집 재산목록 1호이기도 했지만 아버지가 그렇게 공을
들일만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삼륜차도 아주 귀했던 그 시절에 아버지는
마차로 짐 나르는 일을 하셨다. 집으로 돌아온 마차를 보면 아버지가 오늘은 어떤 짐을 실었는지 알 수 있었다. 마차 칸에 얹힌 격자 틀에 황토
덩어리나 모래가 잔뜩 껴 있으면 집 짓는 곳에 흙모래를 파신 날이고 가끔은 시커먼 연탄가루가 묻어있기도 했다. 그런 날 아버지는 말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자가 몸집이 조래도, 연탄을 육백 장이나
업는 장사라 카이.”
볕이 따뜻한 공휴일이면 아버지는 마차에
식구들을 태워 금호강가의 ‘백사부리’로 향하셨다. 흰모래가 많다 해서 붙여진 백사부리 강에서 아버지가 말을 씻겨주고 남동생이 물장구를 치면
어머니는 ‘남탕’엔 안 들어가겠다고 버티셨다. 아버지가 말에게 모래마사지를 해주다가 강물을 끼얹고 글겅이로 등허리를 긁어주면 놈도 시원한지
갈기와 말총을 요란하게 털었다.
마차 일을 시작하신 아버지에게 동네사람들은
엉뚱하게도 당나귀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성씨가 ‘정’(鄭) 이다보니 한자 모양이 당나귀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는데 나는 사람들이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듣기 싫었다. 그렇지만 마을사람들이 아버지를 결코 무시해서 붙인 별명이 아니라는 것을 천렵을 가서 알게 되었다.
무더웠던 여름날, 동네사람들 모두
금호강가로 천렵을 가게 되었다. 커다란 솥과 기물들, 음식들, 천막, 무거운 짐들은 모두 마차에 얹어졌다. 덕분에 사람들은 맨몸으로 걸어서
강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강가에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물고기를 잡고 뛰어다니며 놀았고 아저씨들은 술판을 벌였다. 곱게 차려입은 아주머니들은
큰소리로 노래 부르며 한데 어우러져 한바탕 춤도 추었다.
저녁놀이 짙게 깔리자 아버지는 동네아이들만
모아 마차에 태웠다. 가벼워진 그릇들은 어른들이 들고 오게 하고 맨 먼저 마을로 향했다.
“허허, 당나귀가 마실 애들 몽땅 훔쳐
말에 싣고 도망간다. 저놈 당나귀 잡아라.”
얼굴이 불콰해진 아저씨들이 뛰어오는 시늉을
하며 아버지를 놀렸건만 그 별명이 싫지 않은 듯 아버지는 그저 웃기만 하셨다. 생전처음 마차를 탄 아이들은 신이 났다.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귀에 익은 동요가 끊이지 않고 나왔다.
“아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
친구들이 즐거워하는 만큼 아버지가 정말
자랑스러웠다. 그날 이후, 말은 동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되었다.
그 즐거웠던 기억은 결국 오래 가지
못했다.
천렵 다녀온 몇 달 뒤였다. 아버지가
새벽에 나가보니 서서 자던 말이 그날은 어이없게도 축 늘어져 꼼짝을 하지 않았다. 체온도 이미 식어가고 있었다. 늘 먹던 대로 여물을 주었고
지난밤 잠자리는 특별히 보송보송한 새 짚으로 깔아주었는데 간밤에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는지.
몇몇 사람들이 김 주사의 소행이라고
말했지만 심증만 있을 뿐, 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니 억울하고 답답해도 하소연할 데가 없었다. 좀도둑이 많이 설치던 때라 일손 바쁜 경찰서에
찾아가 보아도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말의 부검을 의뢰할만한 기관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개가 가장 충직한 동물이라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말처럼 충직하고 온순한 동물은 없다고 하셨다. 말은 수 백 미터 밖의 아버지의 귀가를 알아차리고 먼저 반가운 몸짓을 하곤
했다. 뿐만 아니라 저 싫어하는 사람은 금방 분간할 줄 알았다. 아버지가 채찍 한 번 제대로 쓰지 않아도 ‘이랴’ 하면 가고 ‘와와’ 하면
서기도 잘했던 말. 그 얌전했던 말도 김 주사가 슬쩍 넘겨보기라도 하면 말은 푸푸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도 김 주사가 가지 않을 땐 발을
달싹거리다 ‘히히힝’ 크게 포효하고는 풀쩍 뛰면서 겁을 주었다. 그 때문에 김 주사가 말을 더 미워했는지도
모른다.
커다란 트럭에 빳빳해진 말의 주검이 실려
나가던 날, 말을 쓰다듬으며 아버지는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내가 너를 너무 부려먹은 탓이다 하고 가슴을 치셨다.
강단 있는 아버지도 텅 빈 마구간을
들여다보며 한동안 아무 일도 못하고 허전해 하시자, 어머니가 이제 힘들게 여물을 끓일 일도, 말똥 치울 일도 없다고 위로하셨다.
마구간을 헐어 마구와 함께 불에 태우면서
아버지는 주문을 외듯 중얼거렸다. 다음 세상에는 꼭 몸을 바꾸어 인간으로 태어나라고.
젊었을 적에 마부였던 아버지도 병마에
시달리던 끝에 칠순을 못 넘기고 몇 해 전에 돌아가셨다.
저 세상에 먼저 간 말은 아버지를
기다렸을까? 만약에 만났다면 생계라는 무거운 짐은 벗어버렸으니 이제 한 팀을 이루어 광활한 대지로 마음껏 질주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