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는데도 자꾸 벽에 부딪히는 육아
“도대체 우리 아이는 왜 이러는 걸까요?”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EBS <60분 부모>에 고정패널로 출연하는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원장이 20여 년 동안 진료실이나 방송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좋은 먹을거리를 찾아다니고, 최상의 교육을 지원했고, 장난감 하나, 말 한마디 등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는데, 아이는 도통 엄마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오은영 원장은 “‘아이’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이의 스트레스’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죠”라고 말한다. 어느 순간부터 부모들은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욕심 때문에 정작 아이에 대해서는 모르게 되었다고 한다.
학원에 데려다주고, 아토피 때문에 유기농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그림책을 읽어주는 등 부모가 해야 할 업무를 정신없이 처리하느라 너무 바빠 정작 내 아이에 대해서는 모르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에디터는 요즘 부모가 아이를 잘 모른다는 말에 갸우뚱했다.
인터넷 육아카페에 엄마들끼리 묻고 대답하는 글만 보아도 전문가 뺨치는 조언이 쑥쑥 올라오는데, 아이를 모른다니…. 오은영 원장은 요즘 부모들이 똑똑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옛날 부모보다 교육수준도 높고, 책도 많이 읽고, 매스컴도 많이 접해 최신 육아정보도 많이 알고 있단다. 실제로 진료실을 찾는 엄마들도 아이의 문제행동의 원인을 대부분 짐작하고 있고, 나름대로 해결책까지 가지고 온다.
“부모들은 아이가 무엇에 스트레스를 받는지는 알고 있어요. 그러나 그 껍질만 알고 알맹이는 모르고 있죠. 배변훈련으로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알지만, 아이의 심리발달상 배변훈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강제로 시켰을 때 어떤 마음을 갖는지는 몰라요. 그러니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를 어떻게 구해줘야 하는지도 알 수 없죠. 모두 어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아이의 진짜 마음을 알면, 부모는 스스로 달라진다
오 원장은 자신을 ‘마음의 통역사’라고 말한다. 아이도 모르는 아이의 마음을 찾아내 부모에게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만난 여섯 살짜리 꼬마는 자신이 하루 종일 혼난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단다. 도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혼나냐고 물으니, 아이는 “뭘 먹으면 왜 그걸 먹었냐, 안 먹으면 왜 그걸 안 먹었냐, 자면 왜 지금 자냐, 안 자면 왜 안 자냐”고 한다는 것이다.
아이는 말끝에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고개를 숙였다. 오 원장은 그 아이의 말을 엄마에게 그대로 전했다. 엄마는 “어머, 우리 애가 그랬어요?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줄 몰랐어요. 제가 잔소리를 좀 줄어야겠네요”라고 대답했다. 아이의 마음을 알면, 특별한 방법을 알려주지 않아도 부모는 스스로 변한다. 내 아이를 끔찍이 사랑하는 부모로서의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오 원장은 아이 진료 후 부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아이 마음이 그런 줄 정말 몰랐어요. 알았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텐데…”라고 한다. 부모들의 말 속에는 하나같이 후회가 담겨 있다.
“나이에 따라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르고 그것에 대한 감정반응이 다르듯, 아이가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부분은 어른과 달라요. 때문에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을 때는, 아이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해요. 정성 어린 관찰과 세밀한 탐색, 더 깊은 사고로 진지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32세의 눈으로 보았을 때 4세 아이의 스트레스는 정말 우스워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 그 순간 그 아이에게는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예요. 그것을 부모가 인정해줘야 해요.”
아이의 스트레스를 대할 때, 아이의 스트레스를 가볍게 다루어선 안 된다. “형아는 다 하는 거야” , “왜 너만 그래?” , “뭐가 무섭다고 난리니?” 같은 말은 피해야 한다. 아무리 사소해도 아이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하고, 지금 부모가 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와 동등하게 다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0~6세, 아이들의 진짜 스트레스와 대처법
이 시기 아이들의 스트레스는 주로 성장에 대한 것이다. 겪을 수밖에 없고, 꼭 필요한 것이라 ‘아프면서 큰다’는 생각으로 잘 겪어나가게 도와주어야 한다.
주의할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 당연히 이겨내야 한다는 식으로 대하면 스트레스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Stress 1 낯가림 중인데, 낯가리지 말라고 하는 것
대처법 ⇢ 낯가림은 친숙한 사람과 아닌 사람, 안전한 사람과 아직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사람을 구별해내는 능력이다. 보통 낯가림이 심하면, 낯선 사람을 만날 기회를 아예 차단하거나 오히려 많이 만나게 하는데, 둘 다 옳은 방법이 아니다.
전자는 대인관계 능력을 발달시킬 수 없고, 후자는 매사 예민하고 과민한 아이로 만들기 때문이다. 아이의 낯가림을 다루려면, 우선 아이의 마음이 ‘싫어’가 아니라 ‘두려워’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포심과 경계심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한 가지 방법을 추천하자면, 아이의 울음이 멎고, 스스로 주변을 둘러볼 때까지 엄마가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하며 가만히 안고만 있는 것이다. 이때 주변 사람들은 아이를 쳐다보거나 말을 걸지 않아야 한다.
Stress 2 대소변 가리기
대처법 ⇢ 지나치게 강압적으로 대소변 가리기를 시키면, 아이는 엄마의 힘과 맞서기 위해 일부러 사고를 치기도 한다. 절대 때리거나 혼내면서 훈련을 진행해서는 안 된다.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면 엄마의 자존심보다 아이의 자존심을 먼저 챙겨야 한다.
아이를 잘 관찰하면 일정하게 대변을 보는 시간과 대변을 보기 전 특정한 행동을 알아차릴 수 있다. 다리를 오므리고 놀기도 하고, 뱅글뱅글 돌기도 한다. 그때 “한번 해볼까?” 하면서 유아용 변기커버를 올려놓은 양변기에 앉힌다. 아이 발밑에는 디딤대를 놓아 발을 올릴 수 있게 해준다.
만약 아이가 실패하더라도 편안한 표정으로 “다음에 또 해보자”라고 말하는 정도로 끝낸다. 대변을 봤을 때는 “지지”, “더러워”, “냄새 나”라는 삼가야 한다. 아이의 자존심이 상할 수 있다.
Stress 3 동생의 존재
대처법 ⇢ 동생이 생기면, 아이들은 안 하던 짓을 한다. 우는 소리를 자주 하고,
안 흘리던 침도 흘린다. 잘 가던 유치원도 안 가려 하고, 대소변 실수도 한다.
이때 아이에게 ‘엄마는 여전히 너를 사랑하고 있다’라는 것만 확인시켜주면
문제는 쉽게 풀린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반대로 한다.
“어디! 형아가 돼서!”라며 더 차갑고 단호하게 대한다. 동생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줄이려면, 큰아이에게 “너 동생이 태어나면 엄마 사랑이 줄 것 같니?”라고 물어주자. 그리고 동생이 태어나면 엄마 아빠에게 더 많은 사랑이 생길 거라는 것을 말해준다.
또 “네가 어릴 적 그랬듯이 동생을 돌보아야 하기 때문에 너와 놀아줄 시간이 줄어들 수 있지만, 하루 30분은 정말 재미있게 놀아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정말 아이와 집중해서 놀아준다. 단 그동안은 작은아이를 업거나 안고 있지 않도록 주의한다.
Stress 4 억지로 자는 잠
대처법 ⇢ 이 시기 아이들은 낮에는 낮잠 안 잔다고 혼나고, 밤에는 일찍 안 잔다고 혼난다. 만 3세까지는 낮잠을 자는 것이 좋지만, 수면은 개인차가 크다. 잠이 안 온다는 아이를 너무 재우려고 하는 것도 스트레스다. 어린 아이에게 눈을 감고 자는 척하며 누워 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집에 있는 아이가 낮잠을 싫어한다면, 굳이 재우지 않아도 된다. 대신 밤에 일찍 재운다.
어린이집에 다닌다면 교사와 상의해 다른 방에서 조용히 놀게 해준다. 밤에 아이를 일찍 재우려면 집 안의 불을 모두 끄고 가족이 모두 누워야 한다. 그래야 억울함이 없다. 할 일이 남아 있더라도 아이가 잠든 후 일어나서 해야 한다.
Stress 5 그림에 대한 해석
대처법 ⇢ 아이들도 본인이 내켜서 가끔 그리는 그림은 좋지만, 자꾸 여기저기서 그림을 보여달라고 하면 부담스럽다. 게다가 왜 그렇게 한 거냐고 묻는다면, 그림 그리기는 세상에서 가장 싫은 일이 되기도 한다. 그림이 아이의 마음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잘못 해석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 온통 까만색이나 빨간색으로 칠한 그림의 경우, 그저 성격이 급한 아이일 수 있다.
여러 가지 크레파스를 사용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니 아무 색이나 잡아서 빨리 칠해버린 것이다. 또, 그림에 뾰족한 무기가 등장하는 것도 요즘 아이들이 즐겨 보는 애니메이션이 워낙 그러한 것이니 그것만으로 문제라고 볼 수 없다. 아이의 마음이 궁금하면 무언가 알아내려는 의도를 가지고 캐지 말고, 아이가 즐겁게 조잘댈 수 있도록 편안히 물어봐야 한다.
Stress 6 친구와 내 장난감을 나눠 가지고 노는 것
대처법 ⇢ ‘불안’이 심한 아이 중에 이런 경우가 많다. 불안이 심한 아이는 자신과 남의 경계선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다른 아이가 자신의 장난감을 만지는 것을 자신이 안전하게 정해놓은 경계선을 넘어오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굉장히 싫어한다. 욕심하고는 다르다. 욕심이 많다고 생각하면 절대 아이를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아이들은 친구를 데려오기 전에 타협을 본다.
“네 것 맞아. 절대 안 가져갈 거야. 놀 때만 같이 놀자. 혹시 여기 있는 네 장난감 중에서 절대로 같이 가지고 놀고 싶지 않은 것 있니? 그것은 치워두자. 나머지는 같이 가지고 놀자. 놀고 나면 분명히 돌려줄 거야. 그럼 이제 친구가 네 장난감을 만져도 짜증 부리지 않을 수 있니?” 아이가 수긍하면 친구를 놀러 오게 한다.
Stress 7 승부에서 진 것
대처법 ⇢ 꼭 이겨야만 하는 아이들도 또래관계에서 스트레스가 심하다. 자기가 이기기 위해서 규칙을 어기고, 바꾸고, 져놓고도 규칙이 바뀌었으니 자기가 이겼다고 우긴다. 그래도 지면 울고불고 난리니, 또래들이 좋아하질 않는다. 이런 아이들은 기분 좋게 져보는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한 예로 아이와 놀아줄 때 아빠나 삼촌들은 꼭 약을 올린다.
심하게 장난을 치고, 지나치게 놀린다. 그러면 아이는 놀면서도 즐겁지 않다. 더욱이 이기지 않고 놀이가 흐지부지 끝나면 마음이 묘하게 복잡해진다. 이겨야 아빠나 삼촌이 자신을 열 받게 하고 놀린 것이 자기 마음 안에서 마무리된다. 이 외에도 아이 자체가 너무 욕심이 많거나 부모가 늘 “누가 1등이야?”, “몇 점이야?”, “1등을 해야지”, “다음엔 잘해” 식으로 결과를 중시했거나 불안이 많은 아이들도 그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