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 <229>
H-322지역은 아직 지명이 붙여지지 않아서 기호로만 표기 되었는데
한랜드의 남동지역으로 근처에서 석유 시추 공사가 한창이었다.
만일 석유가 매장되었다는 것이 확인되면 H-322지역은 당장에 전주나 광주,
또는 원산 등의 한반도 고유 지명을 배정받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 석유 매장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H-322지역의 분위기는 활기에 차 있었다.
마치 옛날 서부 개척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과 비슷해서 포장도 안된
도로에 통나무집이 즐비하게 늘어섰고 한 몫을 노리고 각지에서
흘러 들어온 개척자 군상들이 우글거렸다.
물론 소동도 많이 일어나서 보안관 역할을 하는 보위부
파견대 유치장은 언제나 만원이었다.
오늘도 파견대방 주경호는 술집에서 싸움을 벌린 러시아인과 조선족 출신
동포 두명씩을 유치장에 집어 넣었는데 이로써 수감 인원은 43명이나 되었다.
수용 한계가 30명이었으니 50%정도나 초과한 것이다.
“3급 이상은 67지역으로 보내야겠는데요. 대장님.”
보안대원 안대식이 말하자 주경호는 머리를 저었다.
“안돼. 조금 전에 연락했는데 그 쪽도 만원이야.”
67지역은 322지역의 상급지역으로 이른바 한국식으로 말하면 면소재지가 된다.
면소재지의 보안대가 있는 67지역의 유치장도 가득 찼다는 말이었다.
“이거 야단났는데, 더 이상 유치장에 넣을 수가 없단 말입니다.”
안대식이 투덜거렸다. 322지역의 보안부 파견대는 보안부의
가장 하부 조직으로 파견대장 휘하에 7명의 대원이 있다.
그러나 그 8명이 사방 700㎞의 면적에 6000명이 넘는 주민을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이 거친 뜨내기여서 몇배나 더 힘이 드는 종자들이다.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대원 강민수가 들어섰다.
모자를 벗어 눈을 털어낸 강민수가 주경호에게 보고했다.
“대장님, 12지점 아리랑 싸롱에서 싸움이 일어났는데
조선족 하나가 칼을 던져 고려인의 팔에 상처를 냈습니다.”
그리고는 강민수가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고려인이 고발을 하지 않겠다고 해서 그냥 놔뒀습니다.
큰 상처도 아닌 것 같아서요.”
“역시 고려인들의 수준이 높아.”
안쪽에 앉아 있던 대원 하나가 말했고 안대식도 동의했다.
“잘했군. 유치장도 만원인데.”
그때 주경호가 이맛살을 찌푸리고 강민수를 보았다.
“그 칼 던진 조선족놈 소재는 파악해 놓았나?”
“예, 일행 둘과 함께 합숙소 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합숙소에 연락을 해서 확인을 했습니다.”
“그래?”
“상처를 입은 고려인은 서울여관에서 묵고 있다는군요.”
“흥, 돈이 많은 놈이군.”
“일행이 여럿이었습니다. 싸롱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순찰을 돌다가
그자가 일행 10여명하고 함께 차를 타는 것을 보았거든요.”
그러자 안대식이 다시 머리를 들고 거들었다.
“대장, 그 놈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 칼을 맞았다는 고려인 말입니다.
뭔가 찔리는 점이 있으니까 칼을 맞고도 고발을 하지 않은 것 아닙니까?
일행이 그렇게나 많은데 말입니다.”
“하긴 그러네.”
안쪽의 대원이 동의했고 강민수도 머리를 끄덕였다.
“예, 그렇긴 합니다.”
다음날 오전 10시가 조금 지났을 때 H-322지역에서 20㎞쯤 떨어진
기후관측소의 건물 안에는 10여명의 사내가 모여 있었다.
건물 밖의 공터에도 40, 50여명의 사내가 제각기 부산하게 움직였는데
그들을 싣고 온 러시아제 대형 수송 헬리콥터 2대가 아직도 로우터를 회전시키고 있다.
“놈들의 정찰 위성이 체크한다고 해도 우리를 석유 시추단으로 볼 겁니다.”
둘러선 사내중에서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말했다. 그
는 이번 작전의 지휘관으로 임명된 박강일이다.
40대 중반의 박강일은 러시아 공군소속 특수기동대 중령
출신으로 지금은 한랜드 보안부의 기동대장이 되었다.
박강일이 테이블 위에 펼쳐놓은 지도를 손끝으로 짚었다.
“H-322지역은 이미 포위되었습니다.
놈들은 한명도 빠져 나갈 수가 없습니다.”
김명천은 박강일이 짚은 H-322지역을 내려다 본채 입을 열지 않았다.
어제 H-322지역의 파견대장 주경호가 성실하게 올린 보고서
한 장으로 한랜드에 침투한 일본의 행동대가 밝혀진 것이다.
어제 조선족이 던진 칼에 상처를 입은 사내는 고려인이 아니었다.
본명이 김인구인 재일동포로 야마구치로의 행동대원이었으며
그와 함께 있는 사내들은 모두 조직원이었다
. 아니, 조직원이라고 하기보다 일본 정부의 비밀 기동대라고해야 맞는 표현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중에는 자위대에서 퇴역한 장교들도 포함되어
있는데다 현역 정보국 요원들도 파악되었기 때문이다.
H-322지역이 바로 일본 정부의 한랜드 공작 본거지였던 것이다.
“현재까지 파악된 일본 요원은 모두 72명이다.”
김명천이 주위에 둘러선 작전의 간부들에게 말했다.
주경호가 찍어보낸 일당들의 사진을 한국과 북한 정부에 보내
판독시킨 결과 일본 행동대는 72명이 되었던 것이다.
기후관측소 건물은 구소련 정부시절에 세웠지만 꽤 오랫동안
비어져 있었으므로 지붕위의 하늘이 보였다. 김명천이 말을 이었다.
“오늘자로 한랜드에 대한 방해 세력은 일망타진 될 것이다.”
그리고는 김명천이 팔목시계를 내려다 보았다. 작전 개시는 12시 정각이다.
이미 H-322지역 안으로 침투한 3개로 45명의 대원이 주변에 잠복해 있었으며
밖으로 통하는 6개 도로와 4개의 탈출 가능 지역도 봉쇄되었다.
마지막 간부 회의를 마치고 간부들이 건물 밖으로 나갔을 때
이곳까지 김명천을 수행해온 신해봉이 말했다.
“부장님, 러시아 극동군 참모회의 결과가 아직 발표되지 않은
이유는 모스크바 정부에서 보류시켰기 때문이라는 정보가 있습니다.”
김명천의 시선을 받은 신해봉이 말을 이었다.
“국방장과 알렉세이비치가 미코얀 수상에게 압력을 넣었다는 것입니다.”
국방장관 알렉세이비치는 떠오르는 실세인 극동군 사령관 말로비치의 유일한 견제자였다.
말로비치는 군에 대한 영향력이 부족한 미코얀 수상의 지원을 받아
급부상을 했지만 알렉세이비치의 반발도 상대적으로 증가되었다.
건물 안에는 신해봉과 박강일 둘 뿐이었으므로 김명천이 거침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백대장이 러시아 쪽은 맡겠다고 했으니까 지켜보겠다.”
그리고는 김명천이 희미하게 웃었다.
“어쨌던 지금 우리들의 작전도 남북한 합동 작전이야.
우리는 한국측 기동대로 볼 수가 있지 않겠나?”
한국측 기동대는 고려인과 조선족 병력까지 포함시킨 혼합 세력이다.
개척자 <230>
일본 외무장관 와타나베는 보좌관이 넘겨주는 전화기를 받았다.
오후 1시반이 되어가고 있었는데 그는 지금 수상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다가 전화를 받으려고 복도로 나온 것이다.
“예, 와타나베올시다.”
걸직한 목소리로 와타나베가 응답했을 때 수화구에서 낮고 굵은 목소리가 울렸다.
“모두 당했습니다.”
순간 몸을 굳힌 와타나베가 무의식중에 주의를 둘러보았고 사내의 말이 이어졌다.
“본부가 기습을 받은 겁니다. 오가와씨, 곤도씨, 모리씨 모두 죽거나 잡혔습니다.”
“이런.”
이를 악물었다가 푼 와타나베가 으르렁 대듯이 말했다.
“마쓰다군, 자넨 지금 어디에 있나?”
“본부에 있습니다.”
“그럼 자네만 당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아닙니다.”
“그럼 뭐야? 오가와, 곤도도 다 당했다면서?”
“그렇습니다.”
“자넨 도망친건가?”
“아닙니다.”
그러자 와타나베가 버럭 악을 쓰려고 입을 벌렸을 때 수화구에서 다른 사내의 목소리가 울렸다.
“와타나베씨, 마쓰다도 우리가 생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당신한테 연락을 하도록 한겁니다.”
놀란 와타나베가 전화기를 귀에서 멀찌기 떼어냈다가 눈을 부릅뜨고는 다시 붙였다.
“당신 누구야?”
“한랜드의 보안부장 김명천이요.”
와타나베가 숨을 들이켰을 때 김명천의 말이 이어졌다.
“와타나베씨, 당신이 한랜드에 파견된 일명 시베리아조인
특수공작대로부터 주기적으로 보고를 받고 있었다는 것이 이것으로도
증명이 되었어. 지금 이 통화는 녹음이 되고 있거든.”
“빌어먹을.”
전화기의 전원을 꺼버린 와타나베가 앞에 서 있는 보좌관을 노려보았다.
“앞으로 전화는 안받는다.”
“예, 장관님.”
“한랜드의 시베리아조가 당했다.”
몸을 빳빳하게 굳힌 보좌관에게 전화기를 던져준 와타나베는 다시 방으로 들어섰다.
수상 하마모토는 관방장관 요시다와 이야기 하면서 웃고 있었는데 와타나베를 보자 물었다.
“와타나베씨, 요시다씨가 같이 필드에 한번 나가자는데.”
그러나 자리에 앉은 와타나베의 어두운 표정을 보자 곧 정색했다.
“와타나베씨, 무슨 일이 있소?”
“아무래도 한랜드 공작은 포기해야 될것 같습니다.”
와타나베가 웅얼거리듯 말했을 때 수상이 눈을 치켜떴다.
“사고가 일어났소?”
“그렇습니다.”
길게 숨을 뱉은 와타나베가 상황을 설명 하는 동안 방안의 정적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이윽고 와타나베가 말을 그쳤을때 하마모토가 입맛을 다셨다.
“더럽게 되었군 그래.”
“현 상황에서는 작전을 보류 시키는 것이 낫습니다.”
와타나베가 말하자 요시다도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 셋은 이번 시베리아조 편성에서부터 간여를 해온 것이다.
이윽고 하마보토 수상이 탄식하듯 말했다.
“일본 열도 바로 옆쪽에 거대한 조선인의 영토가 또 하나 생기다니,
이게 무슨 운명인가?”
개척자 <231>
김명천이 사무실로 들어서자 민경아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지금은 청주라고 이름 붙여진 이 곳은 한랜드의 남서쪽에
위치한 고원지대로 순록의 사육지에 적합했다.
그래서 수백만마리의 순록떼가 광대한 고원위에 방생되고 있었는데
그 광경이 장관이어서 관광객이 몰려왔다.
한랜드의 관광사업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지나다가 들렀는데.”
김명천이 시선을 민경아와 사무실 직원들의 중간쯤에다 두고 말했다.
“이야기 할 것이 있어서.”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었지만 김명천이 누구인가?
매일 3개의 한랜드 방송은 물론이고 신문에 보도되는 보안부장이다.
한랜드가 탄생된 지 이제 1년이 가깝게 되어서 인구는
1200만이 되었고 그 중 한민족은 700만이었다.
남북한 이주자는 400만이 되었으며 300만 정도가 고려인과 조선족 등 해외동포들이다.
그리고 지금도 남북한 정부는 2000만명의 이주민을 더 이주시킬 계획이었다.
각각 1000만명의 남북한 주민이 이주해 가면 한랜드는
명실공히 한민족의 새로운 조국이 될 것이다.
물론 그동안 한랜드 정부는 러시아 정부를 설득시켜
한랜드가 이탈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이미 봇물이 터지듯이 한랜드로의 이주 열풍이
불고 있는 터여서 막기에는 너무 늦었다.
사무실에 남아 있던 서너명의 직원이 자리를 피해 주었으므로
곧 김명천과 민경아의 둘이 남았다.
민경아는 정색한 채 김명천을 바라보고만 있다.
이곳 청주에 정착한지는 6개월째가 되어가는 중이었는데
그동안 김명천으로부터 세 번인가 전화가 왔을 뿐이다.
김명천이 선 채로 사무실을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사업이 잘 된다는 소문을 들었어.”
시선을 든 김명천이 민경아의 앞으로 다가가 섰다.
민경아는 아무르 교역을 나와 이 곳에서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오면서 관광 팜프렛을 보았는데 좋은 상품이 많더구만,
특히 순록 썰매 여행이 인상적이었어.”
“무슨일로 오신거죠?”
김명천의 말을 자른 민경아가 물었다.
그러나 시선은 부드러웠다. 민경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한테 부담 느끼실 필요는 없어요. 이렇게 혼자 잘하고 있으니까.”
“어쨌던 한랜드에서는 혼자 살아가기가 어렵지, 특히 개척지에서는.”
김명천도 부드럽게 말했다.
“자식이 곧 재산이고 노동력이니까.”
시선을 내린 민경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김명천은 곧 한랜드의 총리인 안재성의 딸 안세영과 결혼할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것은 이미 진작부터 기정사실화 된 일이어서 요즘은 잘 보도도 되지 않는다.
“내가 제의를 하려고 왔는데.”
다시 시선을 든 김명천이 이제는 정색했다.
“사업 제의야.”
잠자코 눈으로만 묻는 민경아를 향해 김명천이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 여행사에 내가 투자하면 안될까? 자본금의 반 정도를 말이야.”
“……”
“그래서 설원용 차량도 몇 대 구입하고 통나무 모텔도 짓는거야.
내가 오면서 모텔용 부지 좋은 곳을 봐 두었어.”
그리고는 김명천이 민경아“?바짝 다가섰다.
“내가 보안부장을 그만두면 이곳에서 당신하고 같이 사는거야. 자식들과 함께.”
김명천이 민경아의 어깨위에 두 손을 얹었다.
“당신하고 둘이서 우리 인생을 개척하고 싶어.”
여기까지가 am7 에 연재된 전부입니다.
요사이 이원호 님의 소설들이 이런식으로 많이 끝나네요.
프로페셔널도 이렇게 끝나서 작가님이 연세가 많으셔서 이렇게 종료 했는가 보다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책으로 나온거 보니까 끝을 대강이나마 맺으셨더라구요.
개척자도 소설로 나오면 조금더 완성된 형태로 만나게 되겠지요.
이원호님으 글을 도저히 중단할수 없는 현대 무협지 읽는 기분으로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 너무 흥미진진하게 쓰셔서 다른소설 읽으려면 김이 좀 빠지는게 탈이긴 하지만요
오래 오래 많을글 뵐수 있었으면 하네요 이원호님 화이팅^^
첫댓글 막을 내렸군요. 그후는 내꿈과 같이 키워 볼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
한민족의 힘찬 미래가 열리는듯한 착각에 빠져봅니다 그렇게는 아니드라도 뚤리고 통했으면 좋겠다.
읽는 내내 즐거웠고 오랬만에 독서 삼매경에 들어보았네 ㅎㅎㅎㅎㅎ
저하늘 높이 우리의 꿈을 펼쳐보게하는군요.현실적으로는 너무복잡하고 어려운일인데 과연 어느누구가 이루어내실지...
박근혜대통령님께 기대가 좀 갑니다~~~
박진감 넘치는 소설 잼있게 읽었습니다 여러날 글 올려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