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이 진흙을 필요로 하듯이,
행복은 고통을 필요로 한다.
연꽃에게 진흙은 ‘십자가’이다.
우리도 살다 보면 각자의 ‘십자가’를 갖는다.
이 ‘십자가’의 본질은 무겁다.
정호승 시인은, 이 ‘십자가’를 등에 지지 말고,
가슴으로 품으라고 말한다.
그 말은 상실의 고통을 ‘사랑’으로 승화시키라는 말이다.
“관계가 힘들면 사랑을 선택하라”는, 헨리 나우웬의 말처럼 말이다.
우리는 각자가 만든 빵을 싸 가지고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한다.
그 때 그 빵은 고통과 사랑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 인생의 긴 여행 길의 두 날개는
고통과 사랑이다.
정호승 시인이 강의 때마다 하는 말이다.
그리스어 성경에서 보면 ‘십자가를 진다’는 단어는
‘바스타제인’의 번역어이다.
이 단어가 지닌 첫 번째 의미는
‘귀중한 것을 품고 가다’이다.
구체적으로 어머니가 아기를 품에 안고 갈 때 이 동사를 쓴다.
『삶이 고통으로 휘청거릴 때』에서,
송봉모 신부님은 “십자가는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안고 가는 것이다. 안고 가는 것은
단순히 견디어 내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라 했다.
물론 지고 가든, 안고 가든 짐은 짐이다.
그런 짐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바스타제인’의 느낌으로
어깨나 등으로 짊어졌던 짐들을 풀어
그것들을 품 안에 안는 자세로 바꾸어 보는 거다.
짐의 무게에 짓눌려 등이 자꾸만 점점 더 굽어지는
초라한 모습으로 늙어가기보다는,
그 짐, 즉, 화나게 하는 것, 지치게 하는 것들을
눈 맞추고 자장가를 부르며 마음으로 아기를 안 듯
살포시 안아 보는 거다.
어쩌면 그 길이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말일 것이다.
사람의 진짜 깊이는 편하게 누린 순간보다,
책임과 고난을 감당한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주어진 일들은
나 자신을 더 깊게 만드는 몫으로 받아들이고
십자가를 가슴에 품고 받아들인다. 사랑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