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32414 충남 예산군 삽교읍 두리학교길 19 ☎(041)334-4865 기독교대한감리회 삽교교회 원로목사 박 한 응(朴 漢 應)H.P 010-5452-4865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43ch E-Mail : park43kr@hanmail.net ***************************************************************************** 2024.5.12. 주일오전예배 설교문 【어 버 이 주 일】 본 문 : 창세기 50 : 1 - 9 제 목 : 요셉의 모범적인 효도를 본받자 찬 송 : 199, 273, 275, 559, 579. 복음송 : 어머니의 기도(예배당에 처음 간 날)
할렐루야!! 오늘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어버이 주일입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우리 다 같이 어머니 노래를 불러보겠습니다.
어머니 마음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달토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높다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러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위에 그 무엇이 높다하리요 어머님의 정성은 그지없어라
부모님의 은혜를 언제인들 잊으리오마는 부모님 주일을 맞이하여 마음속 깊이, 그리고 뼈에 사무치도록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효성을 다하여 하늘의 신령한 복과, 이 땅의 기름진 복을 충만하게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오늘 아침에 교회에 들어오실 때 우리 학생들이 꽃을 달아드려서 여러분들의 가슴에는 붉은 카네이션 꽃들이 달려 있습니다. 붉은 색 카네이션은 어버이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뜻하는 것입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어버이날이며 또 해마다 맞이하는 어버이 주일입니다만 해가 거듭될수록 오히려 부모님에 대한 감정은 더욱 되살아나는 것 갔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어머니」 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코끝이 찡해 지고 있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살아계신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마지막 죽을 때 제일 후회하는 것은 출세를 못해서 높은 벼슬을 못한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벌지 못하여 호강하지 못한 것도 아니고, 부모님 살아생전에 효도하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요즘 새상은 또 바뀌어서 부모에게 대놓고 패륜을 하는 못된 자식들도 있어서 뉴스에서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참 가슴이 먹먹합니다. 저는 이제 어버이날이 되어도 찾아뵈올 분이 한분도 계시지를 않습니다.
TV에서는 하루 종일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화제로 그리고 가수들의 노래도 부모님에 대한 노래가 하루 종일 방송이 되었습니다. 구성지게 들려오는 대중 가수들의 노래를 들을 때도 자꾸만 어머니 생각이 나서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 애써야 했습니다. 나의 추억 속에 어머니는 남보다 일찍 늙으신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 나이 마흔 다섯에 날 낳으시고 하신 말씀이 ‘내가 환갑만 살면 이 자식이 열여섯 살이 되니까 그러면 굶어 죽진 않겠지…’ 라고 하셨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이 세상에 살아 계시지 않고 어느새 내 나이 팔순을 넘었습니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도 어머니를 그리는 회한의 감정은 사그라질 줄 모르고 더욱 짙어만 가고 있습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지나간 어버이날이건만 올해는 더욱 가슴이 아려옵니다.
저는 어제 11일 날이 어머니의 추도일 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소천 하신지 56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지금도 어머니 생각을 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어머니 살아생전에 자식으로써 효도하지 못한 일들이 후회가 됩니다. 어느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나는 나의 어머니가 마흔다섯 노년에 나를 낳으셔서 막내아들이라고 참으로 애지중지 키우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어머니께서 소천하실 때 임종은 고사하고 장례식까지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날이 1968년 5월 11일 나는 월남땅에서 한참 베트콩 소탕작전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월남으로 떠나기전 마지막 휴가를 왔을 때 어머니가 많이 아프셨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내 손을 꼭 잡고 들려주시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니 네가 전쟁터에 가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다. 나도 너 위해 기도하마 그런데 네가 돌아오는 것을 볼수 있을는지 모르겠구나” 말씀하시던 그 어머니의 기도로 월남땅에서 전쟁중에서도 총을 한방도 쏘아보지 않았고 머리터럭 한올 상하지 않고 무사히 복무를 마치고 귀국 할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텔레비전에서 노인들이 나와 무엇을 하는 것만 보아도 어머니 생각에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길을 가다가 허리 굽은 노인들이 지팡이 짚고 가는 것만 보아도 문득 문득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 흘리곤 합니다. 이게 웬 주책인가 하여 나이 들면 괜찮으려니 했더니 내 나이 어느새 팔순을 훌적 넘었는데도 눈물은 그칠 줄을 모릅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고 효도하라는 것은 어떤 인간의 철학이나 사상을 넘어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십계명 중에 제5계명에서 제10계명에 이르는 인륜 계명의 제일로 효도를 말씀하신 이유는 이 효도가 바로 모든 인간 세상의 윤리와 도덕의 근본이 되고 시작이 되기 때문이며, 가정과 사회질서의 기본이 되고 출발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는 사람이라면 도둑질이나 살인죄를 범할 수가 없고 좋은 사람이 안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세의 징조 중에 하나가 부모를 거역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회가 어지러워지는 것입니다. (딤후3:1-3)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라고 했듯이 부모를 거역하는 세상이 되는 것이 말세의 징조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바로 지금이 그런 세상입니다. 고로 오늘날 부모를 거역하는 세대 속에서 사는 우리 성도들은 더욱 힘써 효도를 행해야 합니다. 효도를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명령과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모범적인 효자 한 사람을 찾아볼 수가 있으니, 그가 바로 창세기에 나타난 야곱의 아들 요셉입니다. 이에 오늘 우리는 어버이주일을 맞아 이 요셉이 어떻게 부모님께 효도를 하여 오늘의 우리들에게까지 모범을 보였는가를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은혜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1. 요셉은 부모님의 마음을 즐겁게 해드렸습니다
야곱은 12아들 중에 요셉을 제일 예뻐하고 사랑해서 채색 옷을 특별히 지어 입혔습니다. 요셉이 이런 특별한 사랑을 받은 것은 그 요셉이 부모의 마음을 즐겁게 해드렸고 마음에 들게 행동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뭐니 뭐니 해도 부모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고 즐겁게 해드리는 것이 첫째 효도이지, 비단 옷에 육선이 상에 가득하게 해 드려도 마음을 즐겁게 못해 드리면 효도가 되지 못합니다. (잠17: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아무리 좋은 옷에 좋은 음식을 공양하여도 그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지 못한다면 효도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부모를 즐겁게 해드리기는 커녕 도리어 아프게 하고 슬프게 해드리지는 않습니까? (잠15:20)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하였고, (잠23.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를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순종하는 것은 곳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과 같습니다.
2. 요셉은 부모에게 순종을 하였습니다.
어린 소년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형들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며 잘 있는가 보고 오라고 할 때, 살기등등한 형들의 마음을 모를 리가 없었겠으나,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 머나먼 길을 찾아갔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머나먼 길을 걸어서 형들이 양을 치는 세겜까지 왔으나 형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물어보니 이동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형들이 이동해서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핑계 대고 그냥 돌아올 수도 있었겠지만 도단으로 갔다는 말을 듣고 또 그 멀고 먼 길을 굳이 찾아갔습니다. 결국 거기서 요셉은 형들에게 죽을 뻔 하게 되고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또 아버지 야곱이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선조들과 같이 장사 지내 달라'고 명령하셨는데, 그에 순종하여 1,000리(400km)가 넘는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아버지를 장사지냈습니다. 그 옛날, 버스도 기차도 없는 시절에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겠습니까 마는 요셉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도 명령대로 순종했습니다. 이런 효자이기 때문에 다른 형제들보다 더 큰 축복을 받고 대 애굽나라의 총리대신까지 되었습니다. (엡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옳으니라' 는 말은 '당연하다'(It is right‥‥)라는 뜻도됩니다. 결국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자녀들의 마땅한 도리요 의무인 것입니다.
<예> 옛날 중국에 순(舜)이라는 훌륭한 임금이 있었습니다. 그가 임금이 되기 전 그의 아버지는 후처의 꾐에 빠져서 아들 순을 몹시 괴롭혔다고 합니다. 한번은 이복동생이 물에 빠져 죽게 된 것을 보고 순이 들어가서 건져주었는데도, 계모는 그것을 순이 계획적으로 한 짓이라고 해서 피가 나도록 때렸다고 합니다. 그래도 순은 지극한 효성을 다했습니다. 한번은 계모가 물이 없는 우물에 비녀를 빠뜨리고 순을 보고 들어가 건져오라고 들여보내 놓고는, 남편보고는 물이 없는 샘을 그대로 두면 빠지기 쉽고 위험하니 메워버리라고 해서 순이 들어간 우물에 돌과 흙을 퍼부었습니다. 다행히 우물 안에는 옆으로 굴이 있어서 순은 그곳으로 빠져 나와 살았다고 합니다. 또 한 번은 계모가 순에게 썩은 곡식을 옮기라고 다락에 올라가게 해놓고는 불을 질렀습니다. 마침 옆에 삿갓 두개가 있어서 순은 그것을 양 겨드랑이에 끼고 뛰어내려서 살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못된 부모이지만 순은 끝내 효도를 잘해서 그 소문이 요(堯) 나라의 임금에게까지 들어가 堯 임금이 舜을 데려다 자기 딸과 결혼을 시켜 사위로 삼고 후에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효자 舜은 역시 훌륭한 임금이 되어 천추에 빛나는 임금이 되었습니다. 마치 효자 요셉이 대 애굽의 지혜로운 총리대신이 된 것과 같습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만드신 최초의 거룩한 조직(Divine Institution)입니다. 그래서 가정이 부패하면 국가도 부패합니다. 그런데 이 가정의 부패는 부모와 자식 간에 올바른 관계가 되지 못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부모는 신적 권위(Divine Authority)를 가진 분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일이 아닐진대 자녀들은 부모에게 반드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 되신 분이지만 육신의 부모에게 순종하고 효도했습니다. (눅2:51)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3. 요셉은 부모님을 물질로 봉양했습니다.
(창47:12)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고 한 말씀대로, 요셉은 7년 대흉년 기근에 굶어 돌아가시게 된 부모님을 모셔다가 잘 봉양했고, 뿐만 아니라 부모님이 낳으신 자식들,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형들과 그 자식들을 잘 살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자식들이나 자기가 쓰는 용돈의 5분의 1만 부모님께 드려도 효자가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자기가 옷을 다섯 벌 사 입을 때 한 벌만이라도 해드리면 불효자는 되지 않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됩니다. 자식들은 부모에게 서슴없이 돈을 달라고 합니다. 무슨 무슨 사업을 해야 하는데 돈이 조금 모자라니 좀 도와주시면 금방 부자가 되어서 몇 배로 갚아주겠다고 온갖 감언이설로 부모님이 평생 피땀 흘려 이룬 재산인 논밭전지를 팔아 가는 자식들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성공한 자식 몇이나 됩니까?
그런데 반대로 부모님들은 당신이 낳고, 키우고,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켰건만 용돈 달라는 말이 잘 안 나온다고 합니다. 알아서 옷도 철따라 넉넉하게 사드리고 용돈도 넉넉하게 드려서 아쉽지 않게 해드리도록 다시 다짐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밥을 먹여 키웠으면 부모가 늙고 불편하실 때 먹여드리는 것이 당연하고. 옷 입지 못할 때 옷 입혀 키웠으면 거동 못하시는 부모님 옷 입혀드리는 것도 당연하고, 부모님이 대소변 가려서 자식 키워주셨으니, 부모님이 대소변 가리지 못할 때 수발들어 드리는 것이 당연한데 자식들은 왜 그렇게 못합니까? (딤전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고 했는데, 하물며 부모님을 돌보지 않고 봉양치 않는 사람이야 그 죄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옛날에는 고려장이라고 해서 늙은 부모님을 산채로 깊은 산에 갔다 버렸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 하기 좋은 말로 '세상에 그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느냐?' 고 하지만, 요즘 보세요 늙으신 부모님 서로 안 모시겠다고 자식들 간에 싸움 벌리고 칼부림하는 자식들도 있습니다. 기도원에나 요양원에 데려다 놓고 몇 년씩 돌보지 않고 찾아보지 않는 사람도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달동네 쪽 방 한 칸에 혼자 살면서 쓸쓸히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또 외국여행 시켜드린다고 꾀어서 동남아 나라에 버리고 오는 천벌을 맞을 자식도 있습니다. 병원에 가서 주사 한번만 맞으면 아주 쉽게 고칠 수 있는 병도 고치지 못하고 그저 운명이려니 하고 한숨만 쉬고 있는 그런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산에다가 등산용 텐트를 치고 며칠 동안 먹을 것을 갖다 놓고 도망간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 먹고 떨어지면 죽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려장과 무엇이 다를 것이 있습니까? 몇 년 전에 한 법정에서는 아주 이색적인 재판이 열렸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주면 평생 잘 모시겠다고 하여 다 주었더니 요양원에 데려다 놓고 매달 내야 할 돈도 내지 않고 1년 이상 찾아오지도 않아서 그 아버지가 재산을 다시 돌려 달라는 재판을 해서 이긴 사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돌아가신 후에 후회 말고 잘 봉양합시다. '심는 대로 거두는 법칙'은 부모님께 심는 대로 후손들을 통해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도 70일장을 지냈습니다. 시신의 부패를 막기 위해 향 재료를 넣는데도 40일이 걸렸으니, 얼마나 많은 비용과 정성이 들었겠습니까? 참으로 상상도 못할 효성을 보였습니다.
4. 요셉은 모든 영광과 명예를 그 부모님께 돌렸습니다.
요셉은 종살이, 감옥살이 별별 고생 다하면서도 성공하고 축복 받아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부친을 잘 모셨으니 얼마나 부모님께 영예를 돌리고 기쁨을 드렸겠습니까? 으리으리한 황금 수레를 보내 아버지를 모셔 왔으며, 그 아버지 야곱이 도착을 하였을 때 일국의 총리가 되어 휘황찬란한 옷을 입고 천하를 호령하는 요셉이었지만 맨발로 뛰어나가 아버지를 맞아드리고 목을 부둥켜안고 엉엉 울 때의 광경을 생각해 보십시오. 또 돌아가신 뒤에도 70일장을 지내고 1,000리가 넘는 가나안 땅으로 장례 행렬이 지날 때 얼마나 굉장했겠습니까? 부모님께 큰 영예가 돌아가게 했던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에서 '공경'이라는 말은 곧 '무겁다'는 뜻입니다. 부모님을 가볍게 대하지 않고 무겁게 대하라는 뜻입니다. 부모에게 욕을 돌리는 자식이 되지 말고 크나 큰 영예를 돌리는 자식이 됩시다.
5. 요셉은 형제들을 사랑함으로 부모님께 효도를 했습니다.
요셉은 자기를 죽이려던 형들이었지만, 그 형들과 형들의 자식들까지 사랑으로 돌보고 키웠습니다. 아버지 야곱의 장례식이 끝나자 전에 요셉을 죽이려 했던 형들이 이제라도 요셉이 복수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면서 말하기를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라고 말하자, 요셉이 그 말을 듣고 울었더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아버지 체면 때문에 자신들을 돌보아 주었으나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복수하지나 않을까' 두려워 떠는 것을 보고 울었던 것입니다. 이때 요셉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간곡한 말로 위로했습니다. 이제라도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해서 형제간에 사랑을 하고 또 나보다 못사는 형제가 있으면 돌봐주고, 형제간에 화목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부모의 마음에는 모든 자식이 다 안쓰럽고 염려가 되므로 진정한 효자라면 이러한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형제를 사랑으로 보살핌으로써 효도를 다해야 합니다. 부모는 형제간에 우애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가장 기뻐하고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부디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최대로 공경하고 기쁘게 해드림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칭찬 받는 효자, 효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주셨습니다. 그러고도 더 못 주어서 안타까워하십니다. 이제는 우리가 부모님께 드려야 합니다. 무엇을 드릴 수가 있습니까?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드려야 합니다. 그 사랑이 우리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의 천분의 일이나 만 분의 일도 못 된다 하더라도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효도하는 길입니다. 효도는 또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본문 6:1-3절 말씀에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좋은 옷 입히시려고 자신들은 추위에 떨었고, 자식들 배불리 먹이시려고 자신들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습니다. 문풍지 우는 깊은 겨울밤에도 호롱불 켜놓고 바느질로 긴 긴 밤을 지새우셨습니다. 휘영청 밝은 달을 쳐다보며 객지 나간 아들 생각에, 또 시집보낸 딸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부모님이셨습니다.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한대서야 어찌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시49: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에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서, 부모님을 편안하고 기쁘고 즐겁게 모시고, 영원한 천국까지 인도하시어, 효도 중에 효도를 하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아 멘!> 그러면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과, 신상의 건강의 축복과, 자손 천대까지의 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될 줄로 믿습니다.<아 멘>
성도 여러분!! 오늘 「어버이 주일」 을 맞이해서 부모님께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마음으로만 하지 말고 행함으로 효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순종을 하는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는 불효만을 저질러 왔고 하나님 말씀대로 부모님께 순종도 효성도 하지 못했을지라도, 이제부터라도 부모님께 효도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며 축복을 받는 길임을 깨달아서, 순종하며 행함으로 자자손손이 천대까지 하나님이 약속하신 하늘의 신령한 축복과, 이 땅의 기름진 축복과 신상의 건강의 축복을 자손만대까지 받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아 멘!>
알리는 말씀을 전합니다. 할렐루야!! 부족한 저의 설교를 사랑해 주시는 전국, 세계의 모든 동역자님들과 주님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설교문을 작성함에 있어서 외람된 말씀이오나 항상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맞추려고도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나의 카페를 비롯하여 몇몇 기독교 사이트에 업로드를 하고 있습니다. 또 나의 모든 설교는 실명제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황당한 일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나의 설교는 누구나 사용하실 수 있고 인용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설교를 자신의 사이트나 다른 곳에 자신의 설교인양 전제를 하여서 이것을 보신 분들이 내가 그것을 보고 도용을 하였다고 오히려 나를 책망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안되겠습니다. 나의 부족한 설교를 인용도 하시고 전문 사용을 하셔도 좋으나 다른 곳에 전제를 하는 것은 삼가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만약 앞으로 이와 같은 사례가 또 다시 발생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항상 부족한 저를 사랑하는 동역자님들과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임마누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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