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비아 개인전
꿈 꾸는 집들
유화물감과 오일파스텔이 뒤섞여 알록달록한 동화책 속의 삽화 같은 집들을 안겨준다.
오일파스텔의 부드러운 질감이 화면을 정감 있게 문질러준다면 화려하고 다양한 색들, 색 면들은
추상적인 화면을 만들고 그 사이로 흰색 라인이 선묘의 맛을 강화하면서 윤곽을 그려낸다.
글 :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
[2013. 9. 6 - 9. 13 서울아산병원갤러리 (T.02-3010-6492, 풍납동)]
실제의 자연 공간에 집 하나가 놓이면서 그 풍경은 인간적인, 인문적인 풍경이 된다. 산수화에서 점경으로 위치한 작은 집과 그만큼 작은 인간의 위치는 광활하고 드센 자연의 자리에 버겁게, 그러나 절실한 인간의 한 공간이 비로소 펼쳐져 있음을 보여준다. 저 작은 서옥書屋에 앉아 집 밖의 자연을 응시하는 인간의 몸이 모든 풍경의 핵심이 되는 순간 그는 우주의 옴파로스(배꼽)가 되어 모든 것을 주재한다. 시선과 의식, 정신의 활기찬 유동 안으로 바깥세상은 수렴되어 떠돈다. 그래서 나는 동양화, 산수화는 결국 집을 그린 그림이었음을 깨닫는다. 그 집의 의미를 새삼 생각해보는 것이다. 유목적인 서구인들에 비해 동양인들은 집에 대한 애착이 유별났다. 아마도 농경사회의 소산일 것이다. 사실 인간의 역사는 헐벗은 자연 안에 자신의 몸, 살이 기거할 작은 집, 영역을 확보하고 마련하는 일로부터 비롯되었다. 집의 안과 밖은 극단적인 세계다. 직립의 인간이 비로소 몸을 누이는 곳은 초지가 아니라 이제 집의 내부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자신의 몸이 거주할 집 하나를 꿈꾼다. 집의 외부에 인접해 있는 길과 야생의 자연을 두려워하고 안락한 집 안을 희구한다. 삶은, 생의 욕망은 그렇게 집 안을 향한 강한 시선에 의해 유지된다. 그러니 모든 집은 그 안에서 본질적인 생의 욕망을 추구하는 이들의 목숨으로 어질하다. 따라서 지상에 존재하는 저 무수한 집들, 그리고 그 집마다 들어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는 일은 흥미롭고 한편으로는 착잡하다.
김비아의 근작에는 집들이 가득 들어서 있다. 구체적인 장소나 특정 건물을 재현한 것은 아니다. 집에 대한 개념적 접근으로 작가가 상상해서 그려낸 그림이다. 그것은 보편적인 집이라는 상징에 가깝다. 유화물감과 오일파스텔이 뒤섞여 알록달록한 동화책 속의 삽화 같은 집들을 안겨준다. 오일파스텔의 부드러운 질감이 화면을 정감 있게 문질러준다면 화려하고 다양한 색들, 색 면들은 추상적인 화면을 만들고 그 사이로 흰색 라인이 선묘의 맛을 강화하면서 윤곽을 그려낸다. 비교적 뾰족하게 부풀어 오른 색색의 지붕과 벽, 그리고 작은 창문이 몇 개씩 나 있는 풍경이다. 집의 형상을 빌어 순수한 색채의 향연을 선사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여러 색들이 지붕과 벽을 대신하고 흰 윤곽선이 예민하게 파고들어 선의 맛을 살려주면서 동시에 집의 외관을 선명하게 감지시킨 그림이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잠시 휴지기를 가졌던 작가의 눈에 새삼 들어온 풍경이었던 것 같다. 다시 생의 공간으로, 일상의 삶으로 귀환한 자의 눈과 마음에 우선적으로 들어온 것이 집이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그것은 아름다고 경이적이면서도 신비스러운 풍경이 되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미 그렇게 자리하고 있지만 그것을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의 차이가 그것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그러니 미술에서 핵심적인 것은 다르게 보는 눈과 마음이다. 그 사람만의 주체적인 시각에서, 개인적인 시각점에서 만나는 세계여야 한다. 그렇게 바라본 풍경은 이제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시선에 의해 포착된 세계상이다. 작가는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모습에서 그 집들이 꿈을 꾸고 있다고 보았다. 집은 그 집의 사람과 동일시되니 집도 꿈을 꾼다고 말해볼 수 있다. 여기서 꿈이란 유한한 생을 살면서 저마다 삶을 지속하고 보다 더 나은 안락한 생을 욕망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거주공간인 집에서 꿈을 꾸고 그 꿈을 꾸는 집들은 저렇게 한 곳에 모여 산을 이루고 하늘을 향해 식물처럼 자란다. 그래서인지 집들 사이로 흰 자작나무 같은 커다란 나무가 연기처럼 하늘로 올라간다. 그 자태는 또한 집에 있는 사람들의 숨결 같고 각자 그들의 집 안에서 곡식을 끓여먹고 음식을 데우는 불꽃들이 줄지어 피어오르는 장면 같기도 하다. 동시에 인간의 보금자리인 집은 자연과 함께 해야 이상적이다. 나무와 풀이 집과 대등한 차원에서 공존하며 서로 자라나는 풍경이야말로 지극히 이상적인 풍경이 된다. 그런 면에서 이 그림은 무척 감상적이다. 어딘지 쓸쓸한 센티멘탈리즘과 덧없는 인생을 관조하는 헛헛한 마음의 결과 주어진 공간과 제약 속에서 지칠 줄 모르게 생장하면서 보다 더 나은 생을 꿈꾸는 이들의 늠름하고 활기찬 모습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시선이 동시에 겹쳐지는 그림이다. 그것이 김비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그늘이고 깊이다.
가을동화 60 x 60cm oil on canvas 2013
산마을162.0 x 130.3 cm oil on canvas 2013
눈 내리는 마을 116.7 x 91.0 cm oil on canvas 2013
달이뜨는마을 72.7x53.0cm oil on canvas 2013
부엉이 33 x 77 cm oil on canvas 2013
첫댓글 좋은그림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