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아메리카 경영
1) 콜럼버스의 원주민 착취와 학대가 심했다.
스페인의 왕들, 이사벨 여왕, 칼 5세, 그 외의 스페인 중신들은 원주민 학 대를 금지했고 카톨릭 선교사들도 원 주민 학대를 한 목소리로 비난했다.
2) 정복자가 내건 슬로건은 황금, 명예, 복음이었다.
결과는 무지막지한 학대와 착쥐 행위였다.(그들이 한 일은 탐욕과 만행 이었다.)
3) 가장 인기 있는 수입 상품은 담배였다.
신대륙에 말이 처음으로 들어갔다.
4) 신대륙 여행서(자국어로 출판)가 인기를 끌었다.
5) 주력 전투병이 기병에서 보병으로(보병은 산악전에 유리하다.)
6) 야포 등의 화기를 사용 – 성벽 파괴가 가능
새로운 성벽을 쌓을 기술자가 필요했다.- 레오나르드 다 빈치가 밀라노에 간 것은 화가로서가 아니고 성벽을
쌓는 토목기사로 갔다.
7) 무어인을 몰아냄 -- 하급귀족(자영 농업인 등)이 중심이 되어 몰아냈다.
(이달고—하위 귀족이라고 한다. 기사 계급에 가깝다.)
이달고 — 뼈대 있는 자 라는 뜻이다.
농민 - 뼈대가 없는 자이다.
8) 부르주아지는 부를 계층하는 자로, 형성이 늦었다.
양모 수출로 돈을 번 자가 나타났으나 신대륙에서 들어오는 어머어마한 금, 은 때문에 양모로 돈을 번 부르주아지가 힘이 약했다. 금, 은의 유입 - 고 물가 형성되다.
===> 프랑스 인 장 보댕 – 물가는 홮폐의 양과 물품의 양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
카톨릭의 혁신 운동
--> 종교재판(마녀재판)이 나타나다.(펠리페 2세 때)
8) 펠리페 2세(1556-1598)
(1) 팍스 에스파냐 시대
남미의 착취와 인도오 학대가 있다.(스페인 본국에서는 인다오 학대를 반대)
(2) 무역권이 네델란드로 분산 – 경제위기가 서서히 오다.
네델런드 독립전쟁 , 신교권 국가 탄생
(3) 레판토 해전(1571—셀반테스 참전)
(4) 무적함대 패배(1588) - 해상 지배권이 영국으로 이동
*1574 – 엘 그레코가 스페인으로 가다.
8) 펠리페 3세(1598-1621)
9) 펠리페 4세는 여동생의 딸과 결혼하여 — 열성인자가 폭발한다.
펠리페 4세 ---> 카를로스 2세(1665-1700)
*벨라사크스가 활동했다.
10) 카를로스 2세는 열성인자가 총집합 하여 신체적 불구, 생산불능,
저능아 였다. 후손 없이 죽다.
12) 부로봉 왕가의 필리페 5세(1700-1746)가 이었다.
펠리페 5세는 카를로스 2세의 조카이고,루이14세의 손자이다.
1702-1715 왕위계승 전쟁이 있었다.
13) 펠리페 5세
국가를 프랑스 체제로 바꾸었다.
*1775년에 고야가 마드리드에 정착하다.
오스트리아 쪽의 합스부르크 가는 왕위를 쭈욱 이어오다가
칼 6세가 아들이 없자 딸 마리아 테레자를 상속녀로 정한다.
여자의 왕국 상속을 반대하는 전쟁(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전)에서 승리.
마리아 테레자(1717–1780)
합수부르크 가의 마지막 통치자이다.
1736년에 노트링겐의 프란츠 스테판과 결혼하여 로렌 공작 부인이 되고, 16명의 자녀를 둔다.
자녀는 아들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요제프 2세와, 레오폴드 2세 이고
딸은 유럽의 여러 왕국이 왕비가 되고, 루이 16세의 마리 안트와네트가
유명하다.
합스부르크 가는 전략적으로 프랑스 왕가와 결혼하여
루이 13, 14, 16세의 왕비가 되고, 나폴레옹의 둘 째 왕비도 된다.
***1600년대의 유럽
이슬람에 의해서 동방 무역의 길이 막히자 바다로 활로를 찾으려 했다.
콜럼버스, 바스코 다 가마, 마젤란 등의 항해 모험을 하다(중심 나라는 스페인)
남미 대륙 발견 – 식민지 화
스페인의 황금시대
이스람을 몰아낼 때 ‘카톨릭의 이름으로’ 전쟁을 하면서 카톨릭 중심국가가 되었다.
30년 종교 전쟁에 카톨릭 중심 국가로 참전하다.
남미의 황금 유입으로 전성시대 맞이 – 국내 산업이 없이 이룬 부자여서
모래탑처럼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