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통'님의 '마음의 집'은 부산 울산 간 국도의 삼분의 이쯤 되는 지점에 있다. 그 2/3 지점에서 우회전해 꺾어들어 하나의 잘 뻗은 다리를 지나고, 그 다리 아래로 흐르는 江을 닮은 하천을 건너면 거기 '웅촌마을'이란 소박한 동네가 기다리고 있다. '두루마리'와 나는 억새인지 갈대인지가 아직 피어 그 하천의 가장자리에서 우릴 반기는, 그 마을로 차를 달리며 늦가을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하늘이 낮게 내려앉고 있었다...
'밥통'님은 몇 년 전 첨 알게 됐을 때부터 '촌집'을 보러 다닌다고 했다. 지금 살고 계시는 곳도 시골이라 할 수 있는, 부산에선 꽤 변두리에 사시는데...더 시골로 들어가 살고 싶어서 '촌집'을 보러 다닌다고 했다. 나이가 쉰을 넘어가면 그런 생각 가질 수도 있겠다 싶었으나, 그녀의 '촌집'에 대한 열망은 강렬해서, 시간적 여유만 생기면 남해로, 어디로, 답사를 다니시더니 결국 지금의 '촌집'을 마련하셨다.
'밥통'님은 그 집에 몸으로부터의 이사를 하신 건 아니다. 그러니까 '밥통'님께선 몸은 가족들 곁에 두고, 마음만 그 집으로 이사를 시킨 것이다. 말하자면 그 집은 '밥통'님의 '마음의 집'인 것인데, 마련한 지 이 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남편은 그 집의 존재를 모른다고 한다. 주위 知人들은 '밥통'님께 대단하다고, 어찌 그런 음모(?)를 꾸밀 수 있는 거냐고 의아해들 했지만, '자기만의 집'을 갖고 싶었을 그녀의 마음을 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버지니아 울프가 그러지 않았던가...女子들에겐 '자기만의 房'이 필요하다고...
지난 여름의 초입, 나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먹을 수도 없었고, 잠들 수도 없었다. 나보다 먼저 그 집을 다녀온 '두루마리'가 "친구야, '밥통'님이 어찌나 집을 이쁘게 꾸며 놓으셨는지...너 거기 가보면 반할거야..."그랬을 때도 그다지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벼르고 벼르며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두루마리'의 권유로 그 집에 처음 갔을 때, 아~뭐라고 표현해야 하나...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아니 '슬픔'이 넘쳐흘러 난 '밥통'님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서러운 울음들을 토해냈었다. 나를 울게 한 집...'밥통'님의 마음이 사는 그 집은 그런 집이었다...
'두루마리'는 그 집의 명칭을 '별장'이라 부르지만, 나는 '촌집'이라 부른다. '별장'의 의미도 있겠으나, 그런 소박한 분에게 '별장'이란 어감은 왠지 화려해서 어울리지 않는다. 한 주에 두세 번 '촌집'에 들러 마음을 손질하시는 '밥통'님...시멘트 바닥이었던 마당에 잔디를 깔고, 사이사이 아름드리 나무들도 심고, 지하수까지 끌어와 시원한 수돗가도 만드셨다. 거기다 마당 입구와 한쪽 귀퉁이에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은 가로등까지 세우셨다. 해가 사라진 저녁에 이쁜 가로등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얼마나 운치가 있는지 모른다...
몇 시간 빨리 도착하셔서 우리에게 대접할 모든 일용할 양식들을 준비해 놓으시곤 우릴 기다리고 계시던 '밥통'님...그 분의 '마음의 집' 마루에 앉아 우린,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맥주를 마셨다. 청국장을 삼키며 밥을 먹었다. 음식솜씨가 워낙 훌륭하셔서 사람들을 불러다 먹이길 좋아하시는 '밥통'님...우리가 안 와 주었음 누구라도 부르려 했다는 '밥통'님...내색은 안해도 외로움을 못견디는 '밥통'님...
'밥통'님의 '촌집'은 일자(一字)형으로, 방 두 칸짜리 아담한 집이다. 방 하나는 보일러를, 나머지 하나는 군불을 땐다. 내 '허리병'에 대한 고마운 배려로 우리가 가기 전 미리 군불을 지펴논 황토房...거기 우리 세 여자는 나란히 누웠다. '밥통'님께서 라디오를 트셨다. 우리 집에도 잘 안나오는 KBS-FM이 너무나 잘 흘러나오던 그 집, 그 房...탤런트 김미숙이 진행하는 <세상의 모든 음악(월드 뮤직)>이 나오고 있었다...'밥통'님께서 즐겨 들으시는 프로그램이란다...
'두루마리'가 먼저 잠이 들고, '밥통'님께서 잠드신 뒤에도...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김미숙, 그녀가 들려주는 음악들에 취해 잠들지 못했다. 반젤리스를 들으며 잠들지 못했고...'번지점프를 하다'에 나왔던 쇼스타고비치의 왈츠곡을 들으며 잠들지 못했고...아~'화양연화'...장만옥이 국수 사러갈 때 흘렀던 그 음악에 취해 잠들지 못했다...인연을 끝낸 '그 사람'과 PIFF 때 노천에서 같이 보았던 그 영화...내게도 '화양연화'와 같은 시절들이 분명 있었던가...
비가 내리는 것일까...어떤 '소리'에게 이끌려 혼자 밖으로 나왔다. 그 소리를 따라가 봤다. 잔디가 깔린 마당을 지나...몇 개의 계단을 내려가...자그마한 마을의 골목, 그 밤길을 걸어 당도한 소리의 정체는 '물'이었다. 마을 어귀에 위치한 하천이 울어대는 소리였다. 아~이토록 조용한 마을에선 방에 누워서도, 마루에 앉아서도 물들의 아우성이 들리는구나...참으로 적막한 밤...
혼자서 밤길을, 그것도 시골의 밤길을 거니는 것...오랜만이었다. '밥통'님의 슬리퍼를 신고 호젓하게 동네를 산책하는데...내 몸에 와 부딪는 따스한 물기들...비였다. 피하지 않고 받아들여 주었다. 얼굴을, 하늘을 향해 내밀어 주었다. 더욱 따뜻하게 와닿는 빗물...오늘, '밥통'님의 '마음의 집'으로 피신온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선물받았다. 아름다운 늦가을이 무르익어 있던 그 마을, 그 집, 그 房...그리고 먹을거리와 음악과 비(雨)까지...그동안 도시에서, 현실에서, 오래 혹사당해야 했던 내 눈(眼)들이 편안해지던 그 곳...'밥통'님의 마음이 담긴 그 집으로부터 마음까지 편안해져 돌아올 수 있었다, 나의 집으로...
첫댓글 망중한........세글자를 느껴보는 시간 이었답니다. 아 그리운 그 촌집.....결국은 나라는 존재가 그곳에서 함성을 울리며 태어나지 않았었던가....?
고요와 적막이 물소리로 떨칠 수 있었고 후두둑 내리는 빗줄기로 내미는 손길처럼 따스한 위안을 얻었구려...촌집이라...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있는 내 어린 고향집인걸...늦가을의 아름다운 추억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