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문학시모음 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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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가
허호석
어렴풋 꿈결인 양 새벽 빗소리
불빛 새던 창가에
살며시 찾아온 뉘 발소린가
들릴 듯 발소리를 낮추어
내 곁에 나란히 눕는 새벽 빗소리
꿈길로 찾아오는 아련한 사람아
나의 빈 뜨락을 적시는 정겨움이여
돌돌돌 어릿한 물소리
꿈의 이랑에 넘치네
흥건히 그리움의 이랑에 넘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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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집
허호석
멀리 보이는 게 더 아름답듯
산기슭에 그림 같은 집 한 채
삶의 이정표 없어도
사는 게 이만하면 되는 것을
산천에 풀어 놓은 낭만이 넉넉하다
세상사 다 그런 거 헛것이란 듯
처마 끝에 티 없는 하늘 걸어두고
울타리 없는 마당 햇살 가득하니
뭐가 부러울 게 있겠난다
집 앞개울에 징검다리 몇 개 놓았다
맑은 물소리 나와 놀게
물소리와 햇살이 오순도순 사는 집
물소리가 집 비우면 햇살이 집을 보고
햇살이 집 비우면 물소리가 집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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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
허호석
언뜻 눈이 내린다
하늘의 은혜로운 축복을
산은 어깨로 받고 나무들은 팔로 받는다
몽당비도 헌신짝도
하늘의 따스한 말씀을 받들며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마른 풀잎이나 작은 가지도 그 겨드랑이에
아늑한 생각들을 들여놓는다
동구 밖 미루나무에 걸어두었던 하늘에
먼 기억의 고향 눈이듯
잊을 뻔 했던 옛 생각이 피어 날린다
그리운 사람이 올 듯
눈 오는 동구 밖이
자꾸 내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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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물줄기
강정숙
과꽃이 피어 있는 꽃밭 둑에 앉아
그 가을 강한 정취를 받아내고 있었다
먼 이국땅이지만 그다지 낯설지 않았던
그곳은 분명 다른 곳이지만
우리와 같은 言語를 주고받던 곳
참으로 이상하였다
한국도 아닌것이 중국도 아닌듯하여
어린 서희가 길상이와 같이
그곳으로 도피해서 生을 추스르며
마음을 움켜 잡았던
늘 돌아갈 날을 꿈꾸었던 북간도
한 장의 사진이 나를 그곳으로 데려간다.
어디선가 끝없이 솟아나던 그 물줄기
끝없이 흘러가는 줄기에 앉아
한 호흡을 멈추었던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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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강정숙
학교 뒷마당 후미지고 습한 곳
연륜이 쌓인 모감주나무 몇 그루
황금색의 꽃을 피우고
천둥번개 쏘내기를 기다린다
모감주가 꽃이 피면 장마가 시작된다나
장마가 시작되면 모감주가 꽃이 핀다나
그렇게 칠월의 장마는
으슥한 밤에만 퍼붓는 야행성
이 밤 뒤척이며 들어야하는
저 장대비 소리 마음조차 눅눅해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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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깅
강정숙
우유 마지막 한방울까지 쪼옥 마시고
곽은 물로 씻고 햇볕에 잠깐
묶어서 읍사무소에 가면
하얀 화장지로 탈바꿈 되지요
물 마시고 난 플라스틱병 라벨 떼내면
네프론 기계가 꿀꺽꿀꺽 삼켜버리고
푸른빛 옷 청년 한 트럭 싣고 공장으로 갑니다
문학기행 목포를 찾았는데
잔잔한 바다에 고기들이 펄쩍펄쩍 뛰놀고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은 귓가에 맴도는데
젊은 청년들 집게와 봉지 들고
플로깅 하며 기후위기와 지구를 위해
문화활동을 하네요.
*플로깅 : 조깅을 하면서 길가의 쓰레기를 수거하는,
체육활동과 자연보호 활동이 합쳐진 개념을 의미하는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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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마
구연배
마른 낙엽을 밟아도
소리 내지 않는 발목이
눈밭을 지나갔다
얼마나 시렸을까
흔들림 없이 걸어간
노루 발자국
짐승도 저리 반듯하거늘
똑바로 따라갈 수 없는
어지러운 걸음걸이
눈발자국 겹쳐 걸으며
마음 되잡는다
온종일 다시 서는 걸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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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울음
구연배
비 내리니 좋다.
뒤집어진 항아리 뚜껑이 넘치고
옴팡진 연꽃 배꼽이 넘치고
앙증맞은 달개비 잎줄기가 넘치고
논배미 물꼬가 넘치고
강둑이 넘치고
편들어 주기 힘든 슬픔도 넘친다.
수런대던 잡담들 떠내려가고
쓸쓸한 빈터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차오른다.
흐리다 만 하늘도 한바탕 울음
깨끗이 비워지니 가볍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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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로를 찾아서
구연배
나사는 곳 하늘 위
항로가 있는지
비행기가 지나간다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신작로 버스처럼
흰 연기를 내뿜으며 날아가는 비행기
조용한 동네가 들썩이고
그 설렘으로
마음의 버스를 훔쳐 타고 떠났듯이
저 비행기 타고
맑고 가난한 오지
그대 사는 곳으로 날아가고 싶다
항로를 찾아서
하늘로 껑충 뛰어올라
가뭇없이 사라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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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등
김강호
내소사 꽃살 무늬 온몸에 둘러 입고
변산반도 파도 소리 큰 귀에 담으면서
긴 날개 접은 당신이
우울하게 서 있습니다
상처 깊은 인생 내력 깊은 몸에 가둔 채
행여 눈물 보일까 봐 등 돌리고 있지만
처마 끝 그믐 달빛도
당신 마음 읽습니다
두견새 울음소리 소복하게 쌓일 때
견뎌온 슬픔 둑이 터질 것만 같아서
당신을 소리쳐 부르자
야윈 등이 무너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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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트와 너트
김강호
출생이 서로 다른 너와 내가 만나서
살아온 나선형의 내력들을 말했어
은밀한 내면과 외면 각지고 둥근 모습을
깊고 험한 나날들 길을 내며 오는 동안
수많은 상처들이 산맥으로 자리 잡고
그렁한 눈물 줄기는 골짜기가 되었어
때로는 이탈해서 달아나고 싶었지만
맞물린 가슴팍을 더 뜨겁게 조였어
금속성 언약을 품고 내일로 가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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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이면
김강호
당신 생각 지평선만큼 끝 모르게 길어서
수시로 둘둘 말아 가슴 깊이 묻어두고
남몰래 숨을 죽이며 보석이듯 꺼내 봤다
당신 생각 아파서 깊은 상처 동여맬 때
작설차는 연둣빛 울음소리로 끓고 있고
뒷산 숲 오솔길쯤엔 싸라기별 쏟아졌다
당신 생각 끊임없이 잔물결로 밀려와
갯돌 같은 이야기를 자그르르 쏟으면
내 귀는 자루가 되어 넘치도록 받았다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이면
슬픔 깊은 이별 강 목을 늘린 새가 되어
강물이 붉어지도록 피 토하며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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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항구
김영화
엄마는 목청이 고왔다
봄날 고추밭을 매면서
여름날 열무김치를 담그면서
가을 날 고추를 따면서
겨울날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목포의 눈물을 구슬프게 부르면
죽은 이난영이 살아온 듯 하다며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셨었다
홀시아버지 부양에
한량같은 남편 시집살이에
정신줄 놓은 친정엄마 간병에
엄마의 뇌졸중은 예견되어 있었다
수술을 하고
엄마의 시계는 그렇게 쉰 살에서
세 살 어린아이로 돌려놓았다
직장에 다니느라
주말에나 오는 딸을 기다리는지
바지춤이 흘러내리는지도 모르고
뙤약볕 여름 한낮에
동네 어귀에 나와 매일 같이 서성인다고
이웃집 할머니가 일러주셔서야
엄마의 까매진 얼굴
그 이유를 알았다
오늘
문인협회회원들과 길다란 목포항 해안선을 걷는다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목포의 눈물은
그리운 엄마의 항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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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의 웃음
r
김영화
와, 오늘은 정말 즐겁다
어머니는 2년째 요양원에 계신다
오늘은 93번째 어머니 생신 날
서울에서 온 시누이 둘과 어머니를 뵈러 요양원엘 갔다
나지막한 산밑으로 커다란 냇물이
굽이마다 세월을 싣고 흐르고 있다
낮을 밤 삼아 침상에서 주무시는 어머니 어깨를 흔드니
반가움인지 서러움인지 큰소리로 흐느끼신다
아이고 우리 김영화 장로님 오셨네?
어? 우리 딸도 왔네?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딸아. 네가 고집이 세서 내가 힘들었던 거 아냐?
너 학교보내느라 내가 쌀을 머리에 이고 십리를 걸어갔었지?
살아온 날이 그러하듯이
손등의 주름살마다 사연이 숨어있다
밥 먹으면 하루종일 사람이 그리워
갈 데도 없고 할 일도 없는데
오늘은 기쁜 날
오늘은 행복한 날
내 볼을 만지시고 내 팔다리를 주무르시며
박수를 하시는 어머니
요양보호사가 웃는다
요양원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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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3
김영화
오후 네시에 춤추기로 한 날
아침부터 비가 세차게 내린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은 추어야한다는 약속아닌 명령이다
광야에서!
빗줄기는 전혀 잦아들지 않고
어디선가 우산을 받은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든다
이 빗속에 무슨 먹잇감이 있나?
명령처럼 음악이 흘러나온다
아, 이것은 차라리 선전포고다
지체없이 하얀 날개옷을 무기처럼 치켜들고
빗속을 뚫고 광야로 전진하는 저 무리들
물이 흥건히 고인 바닥에 꿇어 엎드려 절한다
일어나 빙글빙글 돈다
꽃이 되었다가 새가 되기도 하고
산이 되었다가 골짜기가 되기도 한다
대낮부터 술에 취한 한 남자
춤꾼들 속으로 파고 들어
나름대로 음악에 맞춰 비틀비틀 춤을 춘다
그 누구도 정제되지 않은 저 츔사위를 제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찬 빗줄기 사이로
흑백이 하나 되어 살랑거린다
누가 저들을 이 장대빗속에 광야로 내보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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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둥이 탄생
김영화
온누리에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새해,
그리고
그 설레임으로 아직도 들썩거리는 초여드레 날
가난한 부부의 손을 꼭 잡고
우리곁에 온 어화둥둥 꽃둥아!
너는 이역만리 머나먼 타국에서
엄마의 용기라는 배를 타고
꽃잎처럼 둥둥 떠내려 왔지
도톰한 이마는 사랑스런 에미를 닮았구나
오똑한 코는 씩씩한 애비를 닮았구나
그렇게 지혜롭게
그렇게 씩씩하게 자라서
축복의 통로가 되고
인류의 등불이 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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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은 알까
김예성
꽃으로 물든 가슴을
사월은 알까
푸르게 색칠한 입술을 느낄까
잎으로 두근거리는 향기를
다가서는 발걸음을
반겨 맞이해 줄까
너를 위해 나를 놓아버린다
뜨거운 반쪽 가슴까지
어느새 꽃잎 지고 열매로 물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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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호에서
김예성
강가에 서서
설렌 가슴을 두드린다
보랏빛 청춘을 일으켜 세웠던
논밭 들어 올리고 싶은데
물속에 숨어있으니
갈보리 갈보리야 이름만 부른다
고향은 잠들지 않는다
향수로 물든 물결은 꿈 물결
세 보고 넘겨봐도
밤 낮이 뛰어다닌 동쪽과 서쪽하늘 가슴 한 페이지는
해와 달의 이야기 흐르는 물소리 맑아
별 나비로 살고 싶었던 유년의 동산 잊혀질까봐
산야의 사계절을 퍼 올리고 있는 용담호
새벽 일찍 일어나 물안개 피워보고
한나절 미소로 깨끗하다
영원한 고향의 가슴길
햇살 넘치는 강물결은
추억을 맑게, 푸르게
물을 밟고 물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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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은 마당발로 오래 서 있고
김예성
마당을 쓸면서
청춘이 익으면 낙엽이 되겠지
이왕이면 곱고 화려했으면 좋겠구나
머리카락은 거꾸로 희어져도 변함없이
머리를 떠나지 않고 춤추고 노래 부르고
오랫동안 즐겁게 시간을 물들이고
내 곁을 지켜주면 더 바랄게 없겠구나
이런 생각을 다듬을 때
옆집 사내 아이가 어른으로 다가와
소리없이 살다간
바람을 빗줄기를 세월의 사연을
건네 준다면 고맙겠구나
마당은 마당발로 오래 서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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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길
김현태
갈대숲 사이사이 스산한 바람길이며
정자나무 밑 맞바람
선선함이야 송글송글 땀방울도 씻어내리네.
하얀 억새 물결도 파도를 타니
눈으론 장관인데 뭉클한 가슴은 콩닥콩닥
자연의 위대함에 경외스럽네.
태풍 불 때 비바람은 노여움 그 자체지만
준령 타고 넘나드는 자연 바람은
지구의 폐활량을 드높여주네.
가다가 서다가 막다른 골목길에 서러워서 또 우네
내 갈 길은 어느멘지 내 마음 나도 몰라
오늘따라 뒤숭숭하니 서글퍼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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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바람 추억
김현태
삼복더위 막바지
왕 발악인가?
불볕더위 위세는 꺾일 기미도 아니 보이고
유난히도 맹위를 떨치고 있네.
불가마 솥
해 떨어지고 나니
끈적끈적 열대야가
날밤을 지새우네.
카바이트로 불 밝히고
낚싯대 드리운 채
강바람에 세월 낚던
소싯적 아련한 추억이
새삼 아른거리네.
음식 맛의 절반은
옛 추억을 소환하는 거라 했던가?
요즘 같은 폭염에는 시원한 강바람 추억이
오늘따라 새록새록 그리워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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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의 자연
김현태
마당에 멍석 펴고
평상 위에 온 가족 둘러앉아
모깃불 피워놓고
강된장에 호박잎 상추쌈 싸던
그 옛날 저녁 밥상이 그리워지네.
7, 8월 무더위엔
아스팔트 콘크리트 빌딩숲보다
쫄쫄쫄 시냇물도 정자나무 맞바람
그늘도 원두막도 매미들의 합창 소리도
우리들을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네
오늘 밤하늘에
별똥별 쏟아지며 별빛이 내리거든
아름다운 옛 추억을 회상하며
여명의 새벽녘을 맞이해보세
알싸한 새벽공기는
온갖 풀벌레 소리와 어우러져
요즘 같은 폭염기엔
폐부며 마음속까지 맑아지는 청량제요
마디마디 이어주는 윤활유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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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혼舊婚 여행 놀이
남궁선순
나라에서는 조기를 내 거는 현충일에
시집, 장가를 간 별중난 부부
됐다고 됐다고 해도
가자고 가자고 졸라대는
남편 성화에 나선 구혼여행
촛불 하나, 스테이트 한 조각
와인 한 병
쨍 소리 나는 크리스탈 와인 잔 두 개 달랑들고
코앞에 있는 진안고원 치유의 숲으로…
잔잔한 음악이 깔린
산책길을 걸으며
있는 포즈, 없는 포즈 다 잡아가며
찰칵 찰칵
“결혼 해줘서 고마워”
“나두”
“후회 없지?”
“그럼”
“사랑해”
“나두”
이렇게 47년 차 노부부의
검은 머리는 파 뿌리가 되어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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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고원 명승지
박부산
·마이산
초등학교 미술시간 그리기 단골 소재
봄?가을 소풍 장소 일순위 점 찍다
부부봉, 평생 한 마음 죽도록 사랑하는
·용담댐
가도 가도 별천지 빼어난 경관 취해
청정수, 생명수 흠뻑 목 축이고
청룡의 기운 치솟아 굽이굽이 맴돌다
·구봉산
출렁다리 건너 암벽 타기 아슬아슬,
이윽고 주봉 올라 명산 품에 안다
나란히 의좋게 사는 너그러움 본받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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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릇, 습관
박부산
기성 세대가 보는 MZ세대 인상
버르장머리 없다
아주 건방지다
세대차, 시대가 주는 다변화 유행바람
신세대가 구세대 흠잡아 보는 견해
너무 고지식하다
연고주의 꼰대
신조어 곱씹어보는, 어른들은 몰라요
자신을 다 드러내는,
자신을 다 감추려는
자율과 규칙을 고수하기 보다
성숙한 인생은 상생, 미래 세대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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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잊어, 동창생들
-진안초교 41회
박부산
졸업 흑백사진 오랜만에 펼치면
팔순 넘긴 추억 감회가 새롭다
못 잊어
초들학교 때 모습 쿡 웃음부터
깨복쟁이 천진무구 선뜻 선심 쓰고
천하무적 개구쟁이 당차게 앞장서는
동창생
이름 불러본다 더러는 아물아물
일찌기 고향 떠나 친구 감감무소식
풍문에 떠도는 근황 사라지기 전
언제나
만날 수 있을까 어깨동무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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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박희종
나
그대 만나
산바람
물소리 들으며
자알 놀고 있네.
산다는 게
박희종
저녁 한 끼 때우고
앞산을 보니
흰 구름 뭉게뭉게
바쁘게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이
외로워 비를 찾아 나서는 듯
연초 한 대 꼬나물고
퍼질러 앉아 있으니
머릿속은 하얀해지고
이렇게 오늘 해지고
이렇게 내일 해뜨고
×30일 = 한 달
×열두 달 = 1년
언제까지 갈려나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네
참말로
사는 게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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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하다
서동안
가로등 불빛 희미하다
담장 위로 뻗어 내린 장미 넝쿨에
구월의 꽃 한 송이 피어나다
희미하다
호박꽃도 서리 맞은 뒤로
호박벌 날개 뒤로 숨는다, 희미하다
갈대가
강물에 누워 달을 보는 데 희미하다
슬금슬금 잠에서 깨어난
물고기좌의 별들이 퐁당퐁당 멱을 감듯
주머니 속 백 원짜리 동전이 오갈 데가 없어서
늘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다
희미하게 터진 바지가랑이 사이로 흘러나와
툭 떨어지는 들길에 들꽃이 피었다
산길에 산꽃이 피었다
모든 게 제자리에 있는데
보이는 것 모두 희미하다
꽃 같은 아내의 얼굴이 당신 땜에
주름살이 많이 늘었다고 푸념하는데
희미하다
이제는 돋보기를 쓸 시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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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나는 것을
서동안
하늘 높을수록
입맞춤이라도 할 듯이
바삐 달려오는 저 맨발의 별들이
마당에 서리서리 내리면
이별이 안타까워 애 터지게 바라보다
맞잡은 손 놓고
돌아서는 감나무 이파리들이
제 목숨 밟고 승천하는 가을밤
지상의 모든 경계를 허물어
속이라도 내보일 듯이
별빛 들여놓은 창을 열면
마당에 가부좌를 튼 어둠이
이렇게 정갈한지 몰랐다
정갈하다 못해
무채색으로 단장한 무대 위에
귀뚜리들의
마지막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펼쳐지는 밤
불청객으로 나직이 귀 기울이다 보면
숨이 멎는 듯
이 말라빠진 감성도
어쩌지 못해 눈물이 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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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온다고 했다
서동안
온다고 했다
쓸쓸함을 벗어나서 고독으로 무장한
칸나의 창문을 열고
나팔꽃이 반갑게 손 내미는
꿀벌의 카페에서 기다리면
그 사람이 온다고 했다
가을을 밟고 일어서는 철새들이
방향을 탐지하는 레이더를 작동시킬 때
잠깐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가 흘렀다
지금 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궁금했을 것이다
달빛이 직선의 형식에서 벗어나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꿀벌의 나이를 저울질하는 사이
드디어 꽃이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했다
동쪽이 깨어나기 전
아직 남아 있는 뿌리의 온기가
지표면으로 분출하기 전까지는 와야 할 것이다
지금 초침이 마악 12시를 지났다
분명 와야 할 것이다
새날에
새는 꿀벌을 사냥하기 위해 분명 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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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쓰는 편지
성민재
시현아, 사랑하는 내 딸아,
너의 작은 손을 처음 잡았을 때
내 가슴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었지,
하지만 그 기쁨 속에 미안함도 함께 있었단다.
내가 부족해서, 너에게 더 나은 세상을
줄 수 없을까 두려웠던 순간들이 있었어.
용서해다오, 아빠가 힘들 때,
너에게 상처를 준 그 모든 날들을.
너의 웃음을 지켜주지 못한 날들이
아빠에게도 깊은 흔적으로 남아 있단다.
하지만 내 딸아,
너를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서
너는 축복이란 걸 아빠는 믿어.
매일 밤 너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한단다.
너의 앞길에 빛이 가득하길,
너의 마음에 평화가 넘치길,
너의 삶이 영원한 웃음으로 가득하길 말이야.
아빠는 너의 모든 꿈이
하나님 안에서 피어나기를 바란다.
시현아, 세상 그 무엇보다도
너의 행복을 위해, 너의 기쁨을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할게.
이제 내 손을 떠나 너의 길을 가더라도
항상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심을 기억하렴.
아빠의 사랑은 변치 않을 거야,
영원히 너를 위해 기도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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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숙인 코스모스
성민재
왜 넌 절벽 사이에 피어났니
내가 이 길을 지날 때마다
조용히 손짓하는 너
이제는 알겠어
너의 고개 숙임 속에 담긴 말,
“힘내라, 나보다 더 힘든가?”
너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사명을 띠고
그 척박한 땅에서 피어난
작은 용기의 꽃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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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
성민재
푸른 하늘 아래, 우리는 하나다
남북의 장벽을 넘어서, 손을 맞잡고
전쟁의 종식을 꿈꾸며, 평화의 길로
우리의 미래를 함께 열어간다
번영의 땅에서, 우리는 행복을 노래하며
모두의 웃음이 어우러진 삶을 누린다
갈라진 땅에서 손을 맞잡고
통일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리라
우리의 마음은 한결같이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길 바라고
그분의 본향에서 평화를 찾으며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리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남긴 흔적
조화롭고 평화로운 새날을 맞이하며
우리의 영혼은 그곳에서 함께
하나님의 품 안에서 다시 만나리라
☆★☆★☆★☆★☆★☆★☆★☆★☆★☆★☆★☆★
ㄹ
성진명
풀 깎는 소리에 놀라
달아나는 뱀을 보고 만들었을까?
밟으면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보고 만들었을까!
농부는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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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성진명
옛날 문종이를 바르던
방문에는
여러 가지 문틀이 있었는데
그 속에 많았다
매미가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여름이 오면
농부는 밀짚모자로 얼굴을 덮고
정자에서 오수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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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
성진명
지게를 놓고 보니
머리 부분이로구나
오학년 전에는
지겟다리가 길어서 지지 못했다
지게를 지고 나니
나뭇짐이 훨씬 가볍고
더 많은 다발을 짊어질 수 있었다
오학년 때부터
아버지가 도시로 이사 가시기 전까지
지게를 지다가
사십 년 공직생활 중
내려놓았던 지게를
퇴직 후 농림업경영인 되어 짊어진다
이젠
지게를 지고 나면 허리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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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눈물의 꽃망울에 님을 보내련다
송미숙
만물의 꽃이 새 생명으로 소생하는 아름다운
이 계절에
유난히 일찍 핀 벚꽃이 만발하게 웃으며 활짝
피었습니다
힘들었던 우리들에 간절한 소망의 빛을
아름다운 향기로 심어주기 위함인지
실낱같은 희망을 주기 위하는 것인지
부푼 마음에 일찍 핀 꽃을 보며 잠시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유난히 일찍 핀 벚꽃은
일찍 떠나갈 것이라는 암시를 주듯
당신의 환한 미소도 일찍 지는 벚꽃의 예견처럼
우리 곁을 이별의 꽃망울처럼
응어리진 한 맺힌 슬픈 눈물과 함께 떨어져 나갔습니다
고운 벚꽃이 바람결에 떨어진 꽃망울처럼
땅에 뒹구는 애처로운 모습을 회상하며
눈물 젖은 꽃잎처럼 고마운 당신께 실어 보내렵니다
아버지, 어머니처럼 늘 고운 따스한 눈빛으로
철부지 나를 희생의 눈물로 다독거리며
슬픔의 그리움 속에 내가 방황할 때
친구처럼 위로해 준 그대여!
천상의 부모님이 그렇게 보고 싶고 애타게 그리웠던가?
그분들과 행복한 해후가 그렇게도 사무치게 가슴을 태웠던가?
그래! 그렇다면 남아 있는 우리는 서운하지 않으리라
당신의 소원을 이루려고 했다면 우리는 위안 받으리~
이제 이승의 모든 상처 묻어버리고
아름다운 천상의 나라에서
고통과 아픔의 날개 다 던져 벗어버리고
자유롭게 훨훨 날아서
천상의 꽃처럼 예쁘게 태어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한다”는 미처 말 못 한 사연을 아쉬움으로 남긴 채
먼저 보낸 그대를 생각하며
그리움 속에 담은 눈물의 편지를 저 하늘로 보냅니다
그곳에서 남은 가족들에게 환한 미소로
꿈속에서라도 사랑의 향기를 바람결에 보내어 주길 바랍니다
‘사랑했고 고마웠습니다’
늘 영혼 속에 그대를 기억하며 살게요
부디! 고통 없는 그 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2024.3.29. 추모 1주기 때 막내 동생 MS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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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
송미숙
하늘이 검게 멍들고
장맛비는 쉼 없이 땅을 두드린다
온 몸이 다 젖고 아파할 정도로
내 가슴도
그대향한 그리움으로
흠뻑 젖었으면
빗물일까
눈물일까
흔들림 없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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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채송화
송미숙
바다 향기 날리는
해변 길을 걸으며
따가운 햇살 등에 지고 걷는 발걸음
땀으로 샤워하는 옷깃을 매만지며
동네 골목길에 들어설 때면
빨강 분홍 채송화가 곱디 고운 모습으로
화장을 하고 수줍은 소녀처럼 인사를 하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춘 채
어릴 적 소꼽친구들이
아담한 화단 속에서 볼그레한 얼굴로 손짓한다
붉게 물들어가는 8월
오늘도 그리움의 향수 속에
기억의 강 저편
채송화는 친구들의 꽃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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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격을 훼손하는 자들
우덕희
나라의 이름, 겨레의 숨결,
그 무게를 너희는 알고 있는가?
국민의 피와 땀으로 세운 이 땅 위에,
자신의 탐욕만을 쌓는 어리석음
어찌 감히 용서받을 수 있을까?
입으로는 정의를 외치면서,
아귀처럼 탐욕을 탐하네
국격을 팔아, 권력을 사고파는 자들아,
그 욕심에 눈먼 너희는
국민의 소리, 그 아픔을 못 듣는가?
초라한 영광에 취해 비틀거릴 때,
우리는 너희의 추악한 얼굴을 보네.
너희의 거짓말, 그 두꺼운 가면 뒤엔
부끄러움이 쌓여가고,
국민의 분노는 불처럼 타오르리
대한민국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들,
조만간 정의의 법정에 서리라.
국민들의 손가락은 너희를
아프게 뼈아프게 기록하리
온갖 탐욕에 취한 자들이여,
이제 그만 깨어나라.
국격을 처절하게 망치는 자들,
너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권력은 바람, 영원치 않으니,
그대들이 남긴 모든 것은
부끄러운 그림자로 영원히 남으리
국민은 기억하리라.
누가 나라를 망치고
누가 국격을 훼손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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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 소망
우덕희
제정신으로 살기 어렵다.
단지 정권이 바뀐 거밖에 없는데.
멀쩡한 집 놔두고 엄청난 세금 낭비하며
단지 오 년 거처할 공간을 옮기다니.
온 국민의 청력 테스트도 모자라
바르게 보도한 메스컴 괴롭히고 괴롭히고
자칭 영업사원 1호라며 부부 해외 순방 열아홉 번째란다.
국가비상금 지출 순위 1위가
대통령실 이전 및 해외 순방이라고.
안
녕과 평화 대신,
민족 통일의 어깃장
자꾸만 자극하고 압박하며
선제타격 흡수통일 짖어댄다.
미국과 일본의 꼬붕 노릇 자처하며
독도는 분쟁지역이라고 나불대고
지도에서 독도를 삭제하는 만행도 버젓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이채양명공주 사건은 현재 진행형
국회의 입법을 계속 거부권으로 무력화
이 정권이 무속정권이다 여사정권이다
차라리 사치스런 호칭이다.
쥐박이와 닭그네 정권보다 형편없는 정권이
국격을 천길만길 떨궈놓고 희희낙낙 거릴때냐.
분노 폭발의 임계점이 넘은지 오래
온 나라에 민초들의 함성 차고 넘친다.
미, 일의 종속, 전쟁 불안,
하염없이 추락한 국격,
피폐해진 민생,
매국노들이 설치는,
모든 부역자들로 부터의 해방은
온 국민의 소망.
기필코 이루어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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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눈 -뽀얀 편지
유순예
늙고 병든 니들 오매 병시중하는 것도 힘들 틴디
헐벗은 경운기 목욕시키고 봄옷까지 입혀주다니
고맙다
거그서는 저 경운기로 농사지어서
니들 멕이고 공부시켰다만
여그서는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밥이 나오고 술이 나온다
그러니 내 생각 그만허고
니들이나 재미지게 살다 오니라
니들 오매도 나보다 십사 년 더 살았으면 되았다
나헌티 시집와서 고상만 시키고 못 멕인 거
니들이 챙겨주니
고맙다
밤새 끼적거린 편지
봄눈 편에 내려보낸 거
아침밥 짓기 전에 읽는 모습 다 내려다봤다
해 뜨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봄눈처럼
이 아비를 오래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다
니들 오매도 걱정 마라
만물은 찰나생멸(刹那生滅) 아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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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딨냐 애기야
유순예
어딨냐 애기야? , 우리 애기 어딨어!
어떤 애기요??
내가 방금 낳은 딸내미 말여?
아아 그 애기, 저기서 잘 놀고 있어요?
쬐깐한 것이 추워서 어찐다냐?
걱정 마세요 어르신?
거기는 지금 꽃 피는 봄이거든요
상하지 마비 상태로 요양원에 입소한 어머니
치매 행동이 심한 줄도 모르는 어머니
애기 아닌 애기가 되어버린 어머니
낳은 적 없는 딸아이 찾는다
나와라 애기야, 우리 애기 어딨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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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유혜재
당신은 나의 로또
오십 년 살아왔지만
어느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당신은 로또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아까 말한 것 어떠냐고 물어보면
무슨말 했느냐고 다시
물어보는 당신은 나의
로또
이것이 몸에 좋으니 드시라고 말하면 무조건
안 먹는다고 말하는 당신은
나의 영원한 로또
남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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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주의보
유혜재
그동안 좀
선선해서인가
점심 먹고
갑자기 여름의 한더위 보다
더욱 따끈한 햇살이었다
소나기 예보에,
오겠어?
반신반의 했다
그 시간이 가까워지자
갑자기 해가 먹구름 속에 들어가더니
우르렁쾅
천둥소리가 났다
비 오기전에
산책길에 나섰다
동네를 돌던 중에
갑자기 후드득
비가 내리고
세차졌다
장화에 가득
물이 고이고
논에도 물이 차고
동네 고추
숙였던 고개 들고,
바빠진 내 걸음 철퍽철퍽
장화소리에
장단 맞추며
집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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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
이경옥
번쩍, 우르릉 쾅
비가 내린다.
비 개인 하늘은 더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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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쓴다는 것은
이경옥
삼라만상 속 침묵의 언어에 귀 기울여
가슴 뛰노는 환희를 부끄럽지 않게 펼치고
감사에, 감사함에 두손 모으는 것
벌거벗은 지금을 가만히 들어다 봐
어긋난 눈빛의 간절함을 알아채는 것
깊이 숨겨놓은 핏빛 인내를 올올이 길어올려
따순 손길로 마알갛게 세수시키는 것
홀로됨의 두려움 속에서도
고독을 망또처럼 두르고 꿋꿋이 서 있는 것
가슴 벅찬 오늘을 있게 하는
또 하나의 간절한 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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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로 나를 찼다
이광형
길을 걷는 내가 길 위에 있는지
길이 나를 끄집어 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길에서
발부리에 깡통이 차였다
순간 당황했지만
미안하진 않았다
뭐라고, 저 깡통이
그리곤 뒤돌아선 발걸음
내 발부리에, 그동안
얼마나 많은 깡통들이 나뒹굴었을까
차여진 깡통
바로 나였는데
내 발로 나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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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지켜야
이광형
아침
그 찬란한 아침에
난 왜 출근을 하는 가
가도 가도 거기까지인 길
그 길에 서 있는 나를
내가 바라보는 참담함
나서는 길
그 일상의 반복에서
난 왜 두리번거리는 가
해도 해도 밀려오는 짐
그 짐에 눌려도 일어서는
짐스러운 나
하루를 지켜야 맞이하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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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꽃
이덕순
참 맑고 샛노란 귀한 모습
가을이 좋아서
달맞이꽃이 예뻐서
온 산야 친구삼아 헤매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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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덕순
아직 다가오지 않은
많은 시간
다시 오지 않는
스쳐 지난 과거의 시간
내 것이 아니었어라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들
그 모든 순간은 지금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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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집
이덕순
소녀 시절 꿈꾸던
언덕 위의 하얀 집
꿈 이룬 포근한 쉼터에서
여행길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노라
감사의 마음
설레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이곳에서
마무리하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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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문자가 왔다
이병율
글자의 감각이 콧등을 때린다
인연의 세월로 쓰여진 표정
이젠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형상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현재와 미래가 떠나는 이별 인사
호수의 물결로 철석대는 허무를 읽는다
기억으로 만날 수 있는 마침표
영정사진으로 나를 바라보고 웃는 너
무언가 손짓하며 알려 주는 듯
슬퍼하며 슬퍼하지 않는
아름다운 나를 남기고 싶어 배운다
나도 죽는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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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으로 안겨준 길
이병율
여름과 가을이 함께한 시간의 공간을 걸었다
계곡물 울어대는 숲길에
외롭지 않은 고독의 소리를 들었다
나뭇잎 사이사이 바람에 손짓하는 햇살의 환영
맑고 고은 산새들의 울림으로 스미는 자유
바람 소리 들을 수 있는 고요가 지배하는 땅
준령에 펼쳐지는 영혼의 고요함이 나를 본다
시절의 소임을 다한 여름은 떠날 준비를 하고
색감으로 교감하는 나뭇잎과 풀들의 꽃
뙤약볕으로 영그는 열매는 섭리를 기록하고
얼굴을 감싸주는 고산의 신선한 바람
감각이 안겨주는 그 촉감으로 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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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피는 사랑
이병율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산길을 걷는다
휘날리며 소리치는 거센 바람이 나뭇가지 사이를 오가며
두려움으로 머뭇거리는 희열의 세상
오래된 약속처럼
나뭇가지 바위에 아직도 떨어지지 않은 낙엽 위에
하얀 꽃으로 핀 동화의 나라
설래임의 찬란한 꿈을 꾸는 궁전
새하얀 날개옷 입고 춤추는 준령의 아련함이 소년의 마음에 머
무는 풍경
매서울수록 차분한 설원을 흔들며 시를 쓰고 지운다
떠난 시절이 있어 다시 와야 하는 시절을 알고
입김마저 하얗게 얼어버린 땅
기억이 뒤뚱거리며 멈춘 마음에 아롱져 피는 그 얼굴
꽃피고 새순 돋는 그리움의 새싹처럼
빙하의 외침은 따스한 온기가 스며드는 첫사랑 설래임으로
하얀 사랑을 꽉 붙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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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두고 떠난 슬픔이
이비단모래
유리알처럼 얼어 터지는
겨울을 보내면
오월에도 폭설이 내린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움 조각들 접어 하늘에 띄워두고
하나씩 못다한 말들을 읽어내리면
오월에도 수만마리 흰 나비떼 부화한다는걸 알았습니다
당신 눈길이 허둥대며 잃은 집터에 닿은 자리마다
소복히 내린
흰 날개꽃
당신이 없이도 당신은 거기 오래된 이름을 남겨 놓습니다
무더기 무더기 퍼낼 수 없이 눈물로
넘치는 낡은 사진 속
고향 두고 떠난 사람들 뒷걸음마다 남긴 이야기들이 용담호로
달려와
꽃이 되어
산딸나무에 꽃이 되고 가을이면 붉은 눈물로 익어
물가에 서서 손끝으로 고향을 짚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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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바다 경전
이비단모래
병원 간이침대
쪽잠으로 보름을 지내다
어깨 결리고 마음 담 걸린 여자
훌쩍 떠나와 바다가 쓴 문장 읽는다
소금 두어 줌
비린내 나는 비늘 벗겨진 활어 접시 위
배 드러낸 회 한 점
초장 찍어 입에 넣듯
풍랑 지나간 헐거운 눈동자
쿨럭이는 바다는
해소 기침에 뜨거운 해장국 끓이는 부두의
선술집
이난영이
부르는 그 곡조 파도로 달려와 끓어 넘치고
바다는 사람살이를 눈물처럼
뒤척이며 경전을 쓴다
언덕 위 바다를 바라보며 섰는
목울대 울리는 단어 단어들
다 아는 유행가 가사지만 목포는 바다고
항구고
문학관이다
바다의 경전을 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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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날개
수항리 연가
이 비단모래
기억해
무참히 쓸쓸할 때
오로라 빛
날개 같은 고향이 있다는 것
돌아가면 상처받은 마음
다친 몸이 낫는다는 것
두 팔 벌려
안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타향 길 걷는 사람들
아프지 말라고
기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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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나무꽃
이재명
해필 오월에
보릿고개서 만난 너는 참 야속했다.
숙분이었다
동생 업은 어머니는 차라리 눈을 감으셨다.
어머니는 소매를 감추고
먼 산을 바라본다.
새하얗게 탱탱한 너는 헛것이었고
안 보니만 못했다.
너는 쌀이고 밥이었다.
너는 어머니가 흘린 하얀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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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
이재명
헤매던 갈바람
풍경에 길을 묻고
은은한 풍경소리
산사에 머무는데
모퉁이 국화는
무심히 난발하고
기척 없는 마당에
노을빛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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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이재명
기약 없이 오신 님
아침에 가신다네.
보름째 막아선 길
잿빛 구름 사이로
물 세수로 씻은 햇살
젖은 길 재촉하고,
자줏빛 수국화는
방울 맺힌 얼굴로
가는 님 배웅하네.
눅눅한 채
휘뚜루마뚜루
여민 머리
무거운 발걸음
고갯길을 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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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문
이종천
전화가 걸려왔다
낮선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왔다
상대는 내가 사업가냐고 물었다 그리고 올해
는 꼭 노벨상을 타라고 했다
또는 대뜸 욕부터 해대곤 했다 아주 찐한 한반도 동남쪽 사투
리이든가 아주 찐한 한반도 서남쪽 사투리이든가
녹슨 철길을 달리는 소리로 죽어지면 기관을 어디에다 쓸 것인
가 하며 새로운 탄생을 상기시키며 가락과 후렴으로 담고 있는
다양한 소나기처럼 시원했다
사래에 걸려 캑캑거리는 어떤 잘못을 했기에 방송인지 어느 일
간지인지 출생지가 동해 어느 지역 바닷가 서해 어느 지역 아니
냐고 하지만 우박처럼 쏟아지는 절규의 아픔을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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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지피며
이종찬
검은 입을 벌리고
아무 말 없이 하품하는
잔가지를 밀어 넣고 성냥을 당기고 유황의 향기가 간질이고
붉은 혀가 날름거리고
붉게 충혈된 눈동자가 더 충혈되는
나는 빨려 들어가고
커피잔 속의 쓰디쓴 너는
검게 축을 내는
감미롭다는 혀는 주변을 핧으며 날름거리는
꼬옥 감싸 쥔 감정은 감칠맛
나는 빨려 들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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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이쁘다
이종찬
천리포에는 꽃이 많다
수많은 별이 되어 태어난 그들
그들만큼 인파가 북적이고 있지만
이쁨을 받는 만큼 시달리고 있는 그
하지만 봐주니 꽃이다
봐주지 않는다면 슬퍼할 것이다
이름도 알 것도 없다
알 필요도 없지만
표정을 찍는 무리 속에 바람으로 하늘을 본다
별이 보이지 않는다
문득 꽃보다 예쁜 젊음을 본다
그래 꽃보다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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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생각하면
이호율
너를 생각하면
미소 머금은 포근함이
안아달라 보고프다 보채는
어린아이가 되는 것 같다
너를 생각하면
짜증 가득한 하루의 일상도
질풍노도의 순간순간도
눈 놓듯이 사라져
너를 생각하면
마냥 웃음이 나고
너를 생각하면
즐거워하는 내 모습에 놀라고
너를 생각하면
하기 싫은 일도 하는 것 같아
마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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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이호율
잿빛 하늘과 시멘트 건물
혼자 살기엔
세상이 너무 혼탁해
둘이라는 인연으로 다다를 때
난 잿빛 하늘사이로 가슴내민
태양이었다.
언제나 그 자리 그곳에서
보일 듯 말 듯 사람 애간장 태우며
말없이 지켜봐 주는
밉지 아니한 아내가 있다
국 끊이고 밥 해 잘 차려놓고
나를 기다리는 밉지 아니한
사랑스런 아내가 있다
난
오늘도 길을 걷는다.
구불구불한 옛 고갯길을…
이런 나를
지켜보는 아내의 시선이 밉상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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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전성규
가을비 내리는 밤에는
마음이 쓸쓸하고 처량하다
마음속에 정든 임이 그리울 때
벽장에 있는 사진 한 장을 꺼내보고
먼저 떠난 임을 그리워한다
가을비와 귀뚜라미 우는 소리에
떠난 정든 임 생각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떠난 정든 임
가을비와 귀뚜라미 소리 멈추어다오
☆★☆★☆★☆★☆★☆★☆★☆★☆★☆★☆★☆★
봄
전성규
봄이 오면 산에 자연에
생명이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네
사람들 마음에도 다가오는
봄에 자연에 아름다움을
기다리고 있구나
진달래꽃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면
모습을 꽃피우고
산을 찾는 이들에게
화사한 아름을 뽐내면서
반갑게 맞이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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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고개
전성규
한 걸음 한 걸음
산 고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몸은 고달프다
저 고개를 넘어서
내 안식처에 도달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도중에 잠시 휴식
여름의 더위와 땀
온몸에 짜증과 불쾌감이
이루 말할 수 없구나
산 고개는 해 넘어가기 전에
빨리 오라고 하는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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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사철나무
조준열
마이산 절벽에 붙어 자라는 줄사철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조동관 아버님은 1973년 3월경
진안군 마령면 원동촌마을
쌈터에서 줄사철나무 어린싹 두 그루
마이산 표고 농장에 심었네
50여 년의 나이테가 있는 줄사철나무는
표고 농장의 나무에 붙어서
마이산 부부봉같이 두 그루의 부부가
푸르고 사계절 노랑꽃 붉은 열매
아름답게 생장하면서 관광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네
두 그루 줄사철나무는 소중한 인연이 되어
아버님 생애에 함께 동반하고 있네
93세 아버님께서 줄사철나무 노래의 시를
시비에 새겨 영원히 보존 관리하고 싶다네
아버님이 줄사철나무의 관심과 사랑한 만큼
저도 영원히 사랑하고 잘 보호하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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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부지깽이
조준열
우리 어머니는 초등학교 문턱도 밟지 못하셨다
17세 결혼하여 부엌에서 부지깽이로
기역 니은 쓰면서 한글을 익혔다네
8남매 결혼시키고 예순여섯 살에
주민 자치학교 한글반에서 한글을 배워
20여 년 동안 72권의 일기장이 쌓였다
일기책에는 어머니 삶의 애환이 담겨 있었다
늦깎이로 배워 눌러쓴 봉순 할매 일기책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라는 제목으로
2023년 6월 30일 출판으로 작가가 되었다네
어머니의 끈기와 배움의 열정, 성실함을
자녀인 우리들도 배워야겠다
어머니의 일기책은
우리 집안의 가보 자녀들의 보물
지역사회 배움의 평생학습 도서로
영원히 남기를 소원해 본다
죽은 날까지 열심히 배우시겠다며 지금도
공부하고 계시는 어머니,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
시골 우체국
조준열
시골 우체국은 정보 통신이 발달하기 전부터
편지, 전보, 전화 등 지역사회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전화가 매우 신기하게 보였다
지금도 우편집배원들을 보면 반갑고 기다려진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아버지께서는
성수면 외궁우체국장으로 근무하셨다
우체국에 근무할 때 나의 아내도 만났고
큰며느리도 우체국에 근무하여 우체국과의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시골 우체국은
주민들의 쉼터 소통의 창구
우체국에 방문해 보라 얼마나 편안하게 느껴지는지
주민들을 위하여 택배와 우편물 배달 등의 써비스
앞으로도 기쁜 소식이 넘치고
정 깊은 택배만 배달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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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線에 대한 고찰
정미경
나의 너는 나인 줄 모른다.
평행은 평등한가.
나란한 것들은 마주인지 알 리 없고
마주한 선들은 나란한 질주를 눈치 못 챈 채
멀쩡한 척 직진하는가.
이웃하지 않은 각 변은 서로 평행하지 말 것.
너의 나는 일찍부터 너인 줄 알았다.
수평은 수직에 반하는가.
교차하는 것들은 서로라는 관계를 갖는다.
더 이상 모를 수 없는 접촉이므로
나의 너는 이제 나임을 안다.
수직은 평안한가.
두 선은 서로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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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정미경
길을 걷다 모퉁이에 반쯤 접힌 하루를 줍는다.
반절 짜리 하루를 주머니에 욱여넣고
가는 내내 주머니 속의 습득물을 주물럭거린다.
누군가 이 하루를 잃고 속절없이 애만 태우고 있을까.
동동거리는 발걸음이 내 것 같지 않다.
내가 머물던 곳이 한낮의 짧은 그림자 속이었나.
결국 분실물 센터로 발을 옮긴다.
주물럭거린 탓에 아직 온기가 있는 접힌 하루가 번호를 달고
선반에 놓인다.
나의 남은 하루는 꾸역꾸역 뒤로 물러날 테지.
저 접힌 하루는 주인을 만나기 전까지 멈춰있으리.
흐르는 건 내 것뿐인가.
빠르게 넘겨지는 페이지처럼 나 또한 빠르게 소모되는가.
멈춤을 배우지 못한 나의 하루가 속절없이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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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 날다
정미경
공중을 향하여 무수한 손 인사가 날아갔다.
돋움하는 내내 여름이 성큼히 내달렸고 이른 계절이 낯가림하
듯 흘깃 훔쳐봄에도 너의 붉은 꼬리는 하늘에 짙은 선을 남기고
있었다. 하늘한 날개 선으로 그리는 군무는 벌써 2막에 들어서
고, 바이올린의 네 줄 위로 바람이 선을 켜고 있었다. 나의 인사
는 네게 닿지 못할 것이다. 무대 위 무희들은 이제 커튼콜을 준
비하고 있었다. 앙코르 앙코르 앙코르
맴맴 공중 회전하는 너를 따라 나의 무도회도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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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림 순두부 집
최옥경
우리 고장
순두부집 중에
가장 잘 되는 대물림 순두부집
저녁에 허기를 느껴 들렸다
식당 안에 가득한 식사 손님들
왁자지껄 거침없이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며 맛있게 식사를 한다
잠시 벽에 걸린 영상 매체를 바라보니
‘맛의 달인’이란 주제로
먹음직한 두부 요리 세트를 선보인다
바지락 순두부, 치즈 순두부 만두 순두부,
들깨 순두부, 버섯
순두부 콩비지 해물파전, 도토리묵, 두부빈대떡, 매콤돈가스,
해물순두부
대물림 순두부집의 가족 사진도 소개한다
그 중에 제일로 돋보인 것은
부친과 함께 찍은 어린 시절 소년 사장의 흑백 가족사진 한 장
나는 대물림 순두부집의 전통이 듬뿍 담긴 순두부
백탕을 주문했다
뚝배기 안에서 보글보글 끓는 순두부 국물
한 입 맛을 보니 아주 시원했다
아득한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끓여주신 콩비지찌개가 그립다
지금은 죽으로 연명하는 구순 어머니
날마다 병중에도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지극한 자식 사랑
어머니의 한결같은 자식 사랑 나도 대물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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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D 센서등
최옥경
우리 집 출입문
센서 등이 꺼진지
한 달이 넘었다
날마다 출입구가 어두워
언제쯤 밝은 빛을 볼 수 있을지 답답했다
남편이 주문한 센서 등은 소식이 없고
아들이 주문한 LED 페블 직부등은
이미 도착했다
반가운 마음에 천정에 부착해 보았지만
그것은 LED 센서 등이 아니란다
다시 주문하고 하루
우리 곁으로 달려온 LED 센서 등
그를 반겨 맞으니 해맑은 웃음
가득한 우리 집 우리 가족
우리의 앞길 환히 비추어 주는
LED 센서 등처럼
누군가의 등불로
맑고 밝게 살고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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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차가 셀러드에게
최옥경
한 조각 한 조각
먹을 때마다
즐겁고 맛있는
뿌리채소 셀러드
세상에서 가장
경건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음미하는 이 맛
감동하는 우리에게
끓여 내온 노오란 빛깔의
목련꽃차
한쪽한쪽 한모금한모금
본래의 맛을 느끼게 되는 생채식의 묘미
이렇게 마주하는
꽃차와 뿌리채소 셀러드
목련꽃차가 셀러드에게
셀러드는 내게 뿌리채소 예찬론자가 되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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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엘레지
최규영
서산에 걸려 불타는 노을.
처소로 돌아가는 황혼객은
노을마저 과분하다.
싱그러운 아침녘
넉넉한 하룻낮을
부질없이 날려버리고,
오늘이 저물어 가는데,
올해도 저물었다는 듯
찬바람에 낙엽이 뒹군다.
하루가 쌓여, 해가 가는가.
내일의 태양을 기다릴까
내년 신록을 기약할까.
마침 휴대용 MP3에선
추억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황혼의 엘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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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추억(1)
추원호
구름이 길게 걸치는
운장산 계곡에서 흐르는 물과
멀리 장수군에서 흐르는 물이
반갑게 만나는 그곳
굽이굽이 요동치며 합쳐지는
에덴동산 삼각지의 고향 땅
산 아래 봄 들판은
연분홍 카펫 깔아놓은 듯
자운영꽃들의 춤사위 놀이터
무더운 여름철
푸른 벼 이삭 고랑사이로
뚬북새 울며 풀 매던 곳
가을 되면 드넓은 들판
황금색 물결이 출렁이며
농부들의 바쁜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그 곳
팔월의 장마철 되면
온 동네 삼킬 듯 넘실거리는 홍수물
조그만 족대잡이로
물고기 훑어내던 그 시절
이제는 용담댐에 잠겨
깊은 물 바닥에서
잠자고 있는 고향 마을
잔잔히 흐르는 용담호 물결이
잊혀진 옛 추억의 마을을
보여줄 듯 말 듯 한다.
*성경속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삼각지 에덴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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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의 향기(2)
추원호
높고 푸르른 산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전라도의 품에 안겨
용이 잠잠히 숨을 쉬는
용담호에서 나는 자라났네
유서 깊은 온고을
전통 한옥의 발자취
날렵한 지붕 아래
따스한 추억이 흐르고
밥상 위의 맛깔스런 음식
은은한 향기에 그리워
비빔밥에 마음을 채우고
한자리에 고향의 친구들 모아
웃음꽃 피우며
함께 나누는 소중한 시간
바람 불 때면 전라도의 노래
자연과 사람의 조화
어디서든 그리움이 피어나는
사랑하는 전라도여~~
너는 나의 뿌리이자 희망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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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아침의 기도(3)
추원호
아침에 눈을 뜨면
생각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하는 말 한마디가
은은한 향기를 남기게 하소서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따스한 말을 하게 하시고
타인의 부정적인 모습보다는
좋은 모습을 먼저 보는
사랑스러운 말을 하게 하소서
무더운 날 목마른 나무
갈증을 풀어주는 물 주듯이
정성스러운 물을 주어
쓰러져가는 목초를 살리 듯
깊은 우물 샘에서 길어 올린
생수의 맑은 물로
나의 생각을 가다듬게 하소서
만물이 익어 가는 가을
고개 숙인 나락처럼
자연에 수긍하는 겸손의 향기가
내 맘속에 스며들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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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황오남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게 있다.
불러도 불러도
대답은 없다
허공의 메아리만
찢어진 가슴에
시퍼런 멍이 되어
꽃잎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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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의 콩깍지
황오남
나는 보았네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모습을
나는 보았네
당신의 입가의 해맑은 미소를
나는 보았네
당신의 눈에서 사랑이 뚝뚝 떨어지던
모습을
나는 들었네
당신의 입에서 사랑이 듬뿍 담은 소리를
나는 느꼈네
당신의 따뜻한 넓은 가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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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골드를 사랑한 호랑나비
황오남
맑고 푸른 가을햇살 아래
황금빛 메리골드
꽃잎을 나풀거리며 사랑을 부르네.
호랑나비 왕자님
살포시 날개깃을 접고
메리골드 어깨위에 내려 앉아
네 발 공손히 모으고 사랑을 속삭이네.
메리골드 향기에 취해버린 왕자님
메리골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네.
지나가던 대추벌 한 마리 쌩하며
바람을 불러일으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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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작
황현화
밥 몇 술 뜨고
출근 반복했던 그대
비우고 새 시작
자연 속 식량 생산
보람 느끼는
흥미로운 선택
들판이 자라기 시작하고
새들이 날아가고
나무들이 환영합니다
적응력 싹틔우고
농부들과 꿈을 심는 그대
참 괜찮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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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밥
황현화
어린 시절 밥그릇 속에
감자 한 알 들어있었지
쌀밥 한 번 배불리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던 식구들
넘쳐나는 먹거리에
소원은 사라지고
칼로리를 세고 있는 나
풍요로운 삶 속에
귀함을 깨닫게 해주는
어릴 적 감자밥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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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호의 조용한 마음
황현화
밤을 비추며 춤추는 번개
어둠 속에 울리는 북소리
콩잎 깻잎 찢는 폭풍의 손가락
둥지에서 몸을 낮추는
깃털 젖은 새
굴속에 몸을 숨기는 들짐승
아침이 오면
고요한 하늘 펼쳐지리라
다시금 평온 찾아오리라
폭풍우 속에서도
깊은 곳에 숨겨놓은
용담호의 조용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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