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종시모음 5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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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0년 지기
박희종
눈이 엄청 와
갈길
온길 끊어진
어젯밤 새벽녘
잠시 눈떠져
잠시 쉬다가
옆에서 자고 있는
마누라의 손을 잡았다
따스하고 포동포동한 것이
옛날처럼 나를 반겨주었다
함께 있다는 생각
든든하다는 믿음
사랑스럽다는 느낌
잠결에 차낸 이불 덮어 주다보니
끓어올라
얼굴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쉬었던 잠 다시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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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쎄
박희종
내가 누굴 사랑하는지
누가 나를 사랑하는지
귓가에 스치는 바람처럼
속 내 감추고 흐르는 물처럼
느낌으로 알지요
그러나 알 수가 없네요.
내가나를 사랑하는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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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꼬꼬堂
박희종
해가 뜰락말락
어스름한 새벽녘이면
“꼬끼~요”하며
어서 일어나라고 울던 꼬꼬닭
요즘엔,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댄다.
마을회관 평상에 앉아
할머니 시집올 적 얘기
호랭이 담배 먹던 얘기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할머니! 왜 저놈의 닭은 한낮에 울어댜?”
“점심 먹으라고 울지!”
“저녁나절엔 왜 울어?”
“궁딩이 근질근질해도
코로나 생각해서, 집 안에 콕 박혀
막걸리나 먹으라고 울지, 왜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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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낙엽
박희종
내 젊음을 바친
땀을 위하여
썩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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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남 말하지 마
박희종
남 말
.
.
.
.
.
.
!
?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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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농사는 하늘이
박희종
올 여름엔
웬 비가 그리 내리는지
김장할 배추는 겉멋만 들었지
속은 안 차고
콩이랑 깨랑 고추
가을걷이 해보니
뚝 잘라 절반
농사는 하늘이 굽어살펴야 되고
농부는 그냥 기다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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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단풍
박희종
봄꽃이 아름답다 해도
가을꽃을 따를 수 없다는 말이 붉다
2040따로
5060따로
7080따로
좌 따로
우 따로
할 말이 많네
정열을 불태우다가
봄꽃을 위하여
몸 바치는 단풍처럼
서로 얼싸안고
두둥실 춤추는 날은
내일일까
모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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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도루묵
박희종
흙이
모래가 되고
모래가
자갈이 되고
자갈이
바위가 되더니
그 바위는 거대함을 자랑한다
그러나
바위는
자갈이 되더니
모래가 되고
흙이 되어
바람에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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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독도
박희종
조선 해의 기운을 받아
홀로 거룩하게
우뚝 솟은 그 곳은
울 어머니의 탯줄을 받은
나의 고향이다
어뚱한 사람들이
어뚱한 말로
엉뚱거릴 때
나는 참고
또 참았다.
옛날에 한 모녀가 있어
그곳에서 농사짓고 살며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울다 지쳐
지쳐 울다 한 바위가 되어
오늘도 그곳을 지킨다
우리는 그 바위를
모녀 봉이라 부른다
어느 날 모녀는
나의 핏줄을 타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였다
뱃속의 아이한테 이야기한다
"얘야!
우리가 애써 씨를 부리면
그 씨는 뿌리를 내고
그 뿌리는
언젠가 좋은 열매를 맺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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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동갑내기
박희종
어둠 걷힌 꼭두새벽이면
콩밭 메는 동갑내기 부부
해장 일이 반나절 몫이란다
늙은 총각 지게 메고 나무하려 갈 때 부르던
노래에 반해
정분이 났다는 부부
내가 못하는 일은 그가 하고
그가 못하는 일은 내가 하며
오순도순 산다
가끔 저녁 술을 안주 삼아 거나하게 술 몇 잔 걸치면
어김없이 부르는 그 친구의 18번
"개나리 우물가에 사랑 찾는 개나리 처녀∼"
젓가락 장단에 맞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노래를 부르다가
자기 마누라의 눈치를 신호 삼아 일어선다
"잘 가!" "잘 있어!"하고 헤어질 때
그 좁은 밭둑길을
히히덕 거리며 잘도 뛰어간다
입이 귀에 걸린 그들의 뒷모습에
40년 전의 처녀총각 얼굴이
겹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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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동거생활
박희종
헌집 줄게 새집 달라던
달팽이가
어느 날, 내 몸 속에 살며시 들어왔다
앉았다가 드러누우면 빙그르
누웠다가 일어나면 핑그르
천장이 돌고
벽기둥이 돌고 도니
나도 따라 돌았다
세상이야기 두루 듣다보니
못마땅하여 귀딱지가 굳었나?
나이 먹었으니 매사에 참견말고
못 들은 척 하라는 이야기인가?
알았어.
알았다구!
안 좋은 이야기에 귀 닫고
봐도 못 본 척, 눈감고
바람소리 물소리 들으며 살아갈 테니
기분 좋을 정도로만 돌게 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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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매미
박희종
시를 쓴다고
무심코 던진 한 마디
돌멩이 되어
예쁜 풀들, 벌레들 다칠지 몰라
낯선 단어들을
퍼즐처럼 맞추며
모양만 그럴듯하게
엮어내지는 않았는지
진정, 시인은
때론 말문을 닫고
가슴으로 새기며
이쁘게 살아가는 사람…
아무래도 자격을 반납해야 할까봐
허물벗고
내일을 기약하며
날아간 매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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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멍
박희종
요즈음
자주 찾아오는 멍
개는 멍하고 짖지만
내 멍은 소리가 없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가지도 않고
뒤로 가지도 않고 그 자리
그냥
진공 속의 멍이다
수 백 년 동안 말없이
그 자리에 앉아있는
앞마당의 대추나무가
날 보고 방긋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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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몸 부려
박희종
냇가 건너편 밭에 심은 콩
소독한번 하지 않아
풀반
콩반
추석 지나니 잎이 누럭누럭
사랑하는 아들과
밀짚모자 눌러 쓰고
콩을 뽑아 세웠다
아래엔 차광막 요 깔고
위엔 비닐 이불 곱게 씌우고
가을볕에 때깔나게 마르면
도리깨질하여
맛난 된장 담가
좋은 친구 오거들랑
보글보글 끓여 먹어야지
입가에는 미소가
뻐근한 허리에서는
분홍빛 엔돌핀이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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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못난이
박희종
죽자 사자 사는 일이
치거니 받거니 사는 일들이
기막힌 감동으로
와 닿는
아름다운 한 세상
아무도 탓 할 수 없다
내 잣대로
남을 싫어 할
권리도
자격도 없다
왜냐면
내가 못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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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뫔
박희종
곰방대야! 오랜만이다
너와는 50년지기인데
둬 달전에 갑자기 외면 당해서 서운했지?
지난 세월동안, 너는 나에게 크나큰 위로가 됐었지
비가오나 눈이오나
슬플때나 기쁠때를 가리지 않고
내가 답답해하면 따스한 너의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려 주었고
열받으면, 너의 몸을 태워 내 머리를 식혀 주었지
너에 대한 우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데
내몸이 이젠 너와 해어지라 하누나
젊을때는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더니만
나이들으니 몸둥아리의 말을 듣지 않을수가 없구나
헤어지면 만나고
만나면 헤어짐이 세상사 이치이듯이
서운하더라도 이별을 하자구나
비록 떨어져 있어도
너와 나누었던 은밀하고 짜릿했던
숱한 순간들
아직도 너와의 만남이 희미한 담배 연기 속에
그 기억이 새록하구나
나를 위로해주며 함께 하였던 너의 그 사랑을
잊지 않고 살아가마
나의 오랜 친구였던
곰방대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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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백골난망
박희종
남들은
마누라가
술 끊어라
담배끊어라 잔소릴 해댄다는데
우리 마누라는 밥 달라면 밥 주고
술 떨어지면 막걸리 사준다.
한 동안
멀고 험한 여행길 다녀오더니만
세상만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는지
웬만한 건 오케이를 준다
우리 마누라는
성모마누라다.
그래서 외출 할 때
난 반드시 마누라의 구두를 닦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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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사랑
박희종
사랑하는 사람이
아픔을 겪는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사랑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대신
차라리 내가 아플걸
절절이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사랑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아픔은 빼앗아 가는것이 아니고
돌아보고
돌아가는 자숙
아픔도 기쁨
기다림도 기쁨
사랑도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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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산다는 게
박희종
저녁 한 끼 때우고
앞산을 보니
흰 구름 뭉게뭉게
바쁘게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이
외로워 비를 찾아 나서는 듯
연초 한 대 꼬나물고
퍼질러 앉아 있으니
머릿속은 하얀해지고
이렇게 오늘 해지고
이렇게 내일 해뜨고
×30일 = 한 달
×열두 달 = 1년
언제까지 갈려나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네
참말로
사는 게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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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석고대죄
박희종
부부간 가장 치열한 사교전쟁이다.
열일곱 꽃다운 나이. 고 2때
어느 책에서 읽은 이 말 한마디
사랑은 혀 끝에 닿으면
초콜럿처럼 달콤하고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솜사탕 같은데
치열한 사교 전쟁이라니
말도 안돼
와 닿지 않아
잊어버리고 살았던 그 말
해가 뜨고 지고
달이 뜨고 지고
꽃이 피고 지고
세월이 흐르고 흐른 어느 날
더듬더듬 기억을 되새겨보니
맞아!
옳아!
그건 그려
가까운 사이 일수록
함부로 하지말고
예의를 갖추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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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세월
박희종
예뻣지
근데
이젠, 고와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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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수울 술
박희종
마늘 캐고 놔둔 밭에
잡초가 삐죽삐죽 비집고 올라와
볼썽사납던 판에
옆집 최서방이
들깨 심고 모종이 남았으니
가져다 심으란다.
부랴부랴 잡초를 뽑고
마누라는 비닐 펴고
나는 삽으로 흙 퍼 덮고
한 고랑 두 고랑
해는 구름에 가려
바람은 솔솔 부는데도
땀은 비적비적
흙 묻은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을 수 있나
손발 맞춰 하던 중에 농땡이 부릴 수 있나
심는 것도 예술이라고
같은 간격으로 양쪽에서 따박따박
겨우 둬 고랑 심고 나니
“아이구 허리야!”
“아이구, 막걸리야!”
“깻잎 따서 삼겹살 싸 먹을까?”
“장아찌도 좀 담그고”
“들기름 짜서, 아들, 손자, 며느리한테도 보내야지”
이런 저런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여섯 고랑
해는 뉘엿뉘엿
다 심어가는 마당에 가랑비가 가랑가랑
“와우! 웬일이야, 대박이다”
물 따로 안 줘도 되니
꾸부정했던 허리가 절로 펴지고
힘이 부울끈
입가엔 웃음꽃이 함~박
아하! 그래서 예로부터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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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신체 검사 삑구
박희종
밥 먹을래?
삑구 할래? 하면
삑구 하던 내가
이제는
밥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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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신체 검사 눈알
박희종
들어 누워 눈자위속 뼈 만져보니
손에 잡히는 구멍두개
상하좌우로 손가락 돌리며 크기를 재본다
“아! 이것이 해골바가지 보면
뻥 뚫린 그 구멍이구나.”
지금이야 눈꺼풀로 덮여있지만
언젠가는
나도
휑하니 구멍 두개만 남겠지!
뻥뚫린 해골바가지
뻥뚫린 구멍이구나
언젠가는 나도
언젠가는 나도
휑하니 구멍 두 개만
휑하니 구멍 두 개만
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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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신체 검사 머리털
박희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째 낸다고
앞머리로 가린
5살 때의 이마 흉터
이젠 가리지 않는다.
좋아 빠지고
나빠 빠지다 보니
오랜만에 만난
엊그제 어느 친구
“다쳤어?”
“아녀! 어렸을 적 흉터야!”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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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신체 검사 모가지
박희종
거울 앞에 서면
내목은 칠면조
고개를 젖혀보고
내려도 본다.
“그래 동창이니 맞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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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신체 검사 손등
박희종
까아만 오돌개 따 먹을라구
뽕나무 300주
구덩이 파고
심고
잘크라구 비닐 씌우니
아이구 허리야!
귀찮아 대략 씻고
저녁상에 앉아
내 손등 살갗 땡겨보니
땡겨진체
한참을 그냥 있네.
“허기야!
너도 내 나이만큼은 먹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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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아직은
박희종
나
그대 만나
산바람
물소리 들으며
자알 놀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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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알 수 없어
박희종
아는 게 힘이면
모르는 게 약
알까
말까
그게 마음대로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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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얘야!
박희종
따스한 가을녘
갓 돌 지난 손주 녀석을 안고
앞뜰에 나와
“얘야! 이것은 대나무이고
저것은 소나무란다“
평상에 말리고있는 대추를
한입 으깨어 물려주며
“이것은 대추란다”
하고 이야기 해주었다
내려다보고 있던 햇님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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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여의도
박희종
이래야 하는데 이럴 수도 없고
저래야 하는데 저럴 수도 없고
끊어야 하는데 끊을 수도 없고
끊지 말아야 되는데 끊어야 되고
따라 다니면 안 되는데 안 따라 갈 수 없고
안 따라 가야되는데 따라가게 되고
해야 될 일은 안하고
안 해야 되는 일은 하고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이 눈치보고 저 눈치보고
세월은 배타고 망망대해로 가는구나
세상은 요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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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왜
박희종
백년이 지나고
천년이 되어도
저 해와
이 달은
똑같이 뜨고 지는데
왜
우리들은
조석이 다르고
입장따라 바뀌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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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외상값 청구서
박희종
어제 아침도
오늘 점심도
내일 저녁도
세끼를
꼬박
꼬박
꼬박 챙겨 먹었습니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고
먹기 위해 사다보니
이젠
사료에 중독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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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용담댐
박희종
우리 옆 동네
용담에는
댐이 들어서지요
수몰 민들은
오늘도
슬피 웁니다
어디로 가서 살까
무얼 하고 살까
눈에 익었던
뒷마루 집 모퉁이 성황당고개
그 정을 어디 가서 찾을까?
편히 주무실 자리 하나
지켜드리지 못했으니
조상님 얼굴은 어찌 뵈울까?
먼 훗날
아이들에게
네 고향은 물 아래 있다고
말해야 하나?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져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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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우리 동네
박희종
우리 동네는
여덟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아요
그래서 누구 네는 엊저녁에 뭘 먹었고
숟가락 젓가락이 몇 개인지도
훤히 알지요
동네 아래 깨는
운일암 반일암이라는 관광지가 있어
올해는
수박농사를 잘 지어서 내다팔면
돈 될 거라고 수박들을 심었어요
그 중 한 집은
부지런하기로 손문 난 집이고
또 한 집은
느긋하기로 일등 가라면 서러워하거든요
부지런한 집이
서둘러 밭을 갈고 수박모를 냈어요
그런데 5월 중순 어느 날
난데없이 간밤에 된서리가 왔지 뭡니까?
수박모들은 시들시들
피죽 한 그릇 못 먹은 양 주저 앉고 말았지요
그 때 느긋하기로 소문난 영감님께서
막걸리 한잔 드시고 목소리 높여 하시는 말씀
"그렁께 부지런 더는 것도 한 몫이고
게으릉 것도 한 몫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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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우리 집 마당의 대추나무
박희종
올 들어 나이가 육백 살이라니
할아버지 중의 큰할아버지
집의 임자가 바뀌고
도 바뀌어도
늘 그 자리에 서서
겨울에는 눈꽃 매달고
여름에는 잎사귀 흔들어
바람을 부른다.
옛날 옛날
시어머니 등쌀에
눈물짓던 며느리
농사일 힘들어
허리 꼬부라지던
농부의 한숨
동네 처녀 총각
정분이 나서 밤이슬 맞던 일
다 보고 살았지만
대추나무는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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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우리를 보고
박희종
천년을 하루같이
자리 지키는 저 산은
우리를 보고 뭐라고 할까
감성을 핑계 삼아
하루아침에 마음 변하는
우리를 보고 뭐라고 할까
천년을 하루같이
꼼짝 않는 저 바위는
우리를 보고 뭐라고 할까
철 지나면 어디론가 가버리는
철새 같은 우리
울고 웃고 성내는
우리를 보고
저 산은 저 바위는 뭐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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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이나 저나
박희종
절 싫으면 중 떠나듯
교회 좋으면 신부오고
절 좋으면 목사오고
성당 좋으면 떠난 중 다시 오고
오고 가고
가고오고
☆★☆★☆★☆★☆★☆★☆★☆★☆★☆★☆★☆★
《39》
장땡
박희종
세상 살음은
사람 좋아하고
사람 싫어하는 살음
사람한테 태어나
사람낳고
사람끼리 어울려 사는 것이 살음이라하지만
결국 우리는
좋아도 죽고
싫어도 죽는다
세상 살음은
그냥 조용히
다녀간 줄 모르듯
살아가는 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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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제갈공명
박희종
아는 체 해도
남은 모르고
잘난 척 해도
나만 알뿐
모르는 척
못난 척 사는 것이
아는 사람
잘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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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타령
박희종
빵꾸 난 하늘에서
연일 비가 내리니
“아이구! 지겨워 죽겄네”
오늘따라
해가 반짝하니
“아이구! 좋아 죽겄네”
“좋아 죽겄네”
“싫어 죽겄네”
“이뻐 죽겄네”
“미워 죽겄네”
“추워 죽겄네”
“더워 죽겄네”
살겄네 살겄네
해도 죽을 판에
죽겄네 죽겄네 하고
타령을 하니
아니 죽을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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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한 一字
박희종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손이 있어도 쓸 줄 몰라
나이 70에 들어간
어느 서당
붓끝을 세워라
허리를 써라
평상심을 가지라
곧은 마음을 가지라
훈장선생 눈치 아래
설 달 열흘 동안
한 一字만 쓰고 있네
이 안에 시작과 끝이 있고
하늘과 땅이 있고
살아가는 재미가 있다나
아 언제쯤에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화선지 삼아
사랑하는 이에게 내 마음을 띄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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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할 일 없으니
박희종
비온 뒤 산자락을 휘감으며 흐르는 저 구름 따라
끝없는 방황을 해볼까
좋은 노래 몇 곡 틀어놓고 반복해들으며
흘러가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볼까
장독대에 앉아있는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
어머니의 탯줄 냄새를 맡아볼까
마루에 벌렁 드러누워 대들보를 쳐다보며
시공을 초월한 상념풀이를 해볼까
신문을 펼쳐놓고 요지경속을 들여다보며
사람이 돌고 세상이 도는 꼬락서니나 볼까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빗물을 바라보며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볼까
해우소에 앉아 아무생각 없이
가는 세월이나 낚아채볼까
기울었다 찼다하는 달 속으로 들어가
토끼랑 쿵닥쿵 떡방아나 찧어볼까
☆★☆★☆★☆★☆★☆★☆★☆★☆★☆★☆★☆★
《44》
합환목(合歡木)
박희종
저게 무슨 나무라구?
침실 앞에 있으면 부부사이가 좋아진다는
합환목이잖아!
꽃이 이쁘더라구
맞아! 보라빛깔 띄운 연분홍색이지
그래서 그런가?
뭐가?
우리 부부사이 말여
안 맞는 것 보단 맞는 게 많은 편이지
더 좋을람 어떻게 해야되야?
거름 주고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봐야겠지
그건 그려!
☆★☆★☆★☆★☆★☆★☆★☆★☆★☆★☆★☆★
《45》
허수아비
박희종
된장 담가 먹을라구
쟁기질하고 고랑 내어
구부렸다
폈다하며 심은 콩밭
한이레 지나니
메마른 땅 밀치고
하나 둘 고개를 내미는 떡잎
맛집 찾아다니는 식객들처럼
온 동네 비둘기 다 모여
무공해 식사를 하네
바람 불면
윙윙거리며
요동치는 빤짝이를
예서 저리로
제서 이리로
말목박고 줄을 멘다
윙~윙 빤짝 빤짝
이골 난 비둘기
눈 하나 깜짝 않고
삼삼오오
반상회를 계속하네
워이 워~이
워~이 워이
소리 지르다 지쳐
밀짚모자 눌러쓰고
아예
콩밭에 주저앉는다
☆★☆★☆★☆★☆★☆★☆★☆★☆★☆★☆★☆★
《46》
허튼짓
박희종
一) 내 놀이터 흑염소 농장에
왕초란 놈이
가끔 철조망을 뛰어 넘어
애써 가꾼 콩밭에
침을 흘린다는 첩보가 있어
살금살금 숨소리 발소리 죽이며
벌건 대낮에 잠복근무하며 콜롬보형사 노릇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 큰 몸집이 여우처럼 훌쩍! 홀딱!
아-니 제가 무슨 기계체조선수인가
저런 허튼 짓 하라고,
푸른 초원에 자유롭게 풀어먹였나
二) 이것 저것 연장 챙겨 양손과 어깨에 걸머지고
막걸리 한 병 멸치 몇 마리
물 한 병과 종이컵 둬 개
배낭에 넣고
현장에 도착하여 수색작업을 한다
DMZ처럼 구부구부 비탈길에 세워진 철조망(L=5km)을
주시하며 한 발짝 두 발짝
三) 옳지! 여기로구나
별중맞은 염소들이 허름한 곳을 찾아
밖으로 탈출한 것이다
四) 쇠파이프를 망치로 때려 박고
펜치로 철사줄을 끊어 땡기고 조이고
혼탁한 바깥세상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까아만 차광막 둘러치며
산허리 돌다가 바위에 걸터앉아
지고 온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 한 번 쳐다보니
허벅지는 땡기고
허리는 아이구!
五) 너 이놈!
다시 한 번 무단외출하면 혼쭐이 날 테니 그리 알거라
너는 원래 초식동물
자고 나면 돋아나는 풀 뜯어먹고
진시황제 부럽지 않게, 수십 명의 처를 거느리고
줄줄이 알사탕처럼 낳은 네 자식 돌보며
늘어진 팔자에 감사하며 살 일이지
어디 감히 이도 부족하여 외유를 일삼느냐
六) 산다는 것이
하고 싶어도 해서는 아니 되고
하기 싫어도 해야 되는 일이 있는 법
七) 너보다도 세상을 더 살아온 나도
마음만은, 타임머신을 타고
하루에 열두 번
옛날과 미래를 왔다리 갔다리 한다만
내 분수를 알고 이 산속에서
조무락 조무락
어슬렁 어슬렁
딩구렁 댕구렁
앞 산 바라보고 숨 한번 쉬고
밭에 나가 땀 한 방울 흘리고 밥 한 술 뜨고
이렇게 조용히 살고 있지 않느냐?
八) 허기야, 말은 못해도
산목숨이 철조망 안에서 오죽 답답하고 짜증이 나겠느냐
허나, 울타리는 너를 가두어 두는 듯 하지만,
모든 유혹과 위험으로부터
너를 보호한다고 생각하려므나.
사실, 짐승도 인간한테 먼 일가라는데…
九) 하루에 한 번
너와 눈 맞추느라 산책삼아 걸어 다니다 보니
내 건강 지킴이구나 싶어
기특한 생각이 들기도 한단다.
十) 옛날에 한 아이가 있어
내일은
오늘과 다르리라
기대하며 살았듯이
주어진 네 팔자도
내 팔자와 마찬가지
그냥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달래가며 물 흐르듯
사브작 사브작 살아가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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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나 그리고 너
박희종
그냥 편하게 살지그랴
살면서
부대끼느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세상에나 쯔쯧~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럼 어쩌자는거여
이리기웃 저리기웃
주워 모은 짧은 말들로
나불거려 봐야
나만 피곤하지
그냥
귀머거리 입벙어리되어
앞만 보며 살아가 보드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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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마냥
박희종
슬픔을 머금은
깊은 물은
만남과 헤어짐을 묻지 않고
눈부시지 않는
깊은 빛은
사랑과 미움을 따지지도 않는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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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코로나
박희종
사람이
사람 만나
어우렁
거드렁거리며 사는 것이
공부중에 큰 공부라는데
사람피해
살으라니
나, 원~참!
산 넘고 물 건너
이제나 했더니만
다시 오르고 건너야만 되는
안개 낀 큰~산과 긴~강
이게 누구 탓인가?
이 모두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살아온
내 탓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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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좋고 타령
박희종
평소 앞산은 분명 한 봉우리로 보이나, 안개가 골짜기 타고 오르는 날
겹쳐 보이지 않던 또 하나의 봉우리 있으니
두 손 번쩍 들어 하늘 받치고 있는 모습이 한 폭 동양화 같아 보기 좋고
하는 일 없이 이삼 일 동안 빈둥거리다 좀이 쑤셔
집 안팎과 전답을 돌고 돌아 이 일 저 일 찾아놓으면
내가 이내 필요한 존재가 되어 살아야 할 가치를 느끼니 또한 좋고
흙집 수리하느라 황토 반죽하여 맨손으로 맥질하다 보면
거칠었던 손, 마치 아이 속살인 양 보들보들해져서 좋고
개밥, 닭밥, 고양이밥 주고 산책로 따라 농장에 올라가 염소와 눈맞추고
발걸음 총총 잣나무 숲 한 바퀴 돌다보니 땅 기운 저절로 몸을 적시고
피톤치드 향기로운 기운 시나브로 어지러운 머리에 스미니 또한 좋고
잡초는 관심도 없고 비료도 안 주는데 왜 이리 무럭무럭 자라는지
예초기 둘러메고 구석구석 깎노라면 서로 다른 풀 내음 코끝을 간질이고
일 끝나 돌아보면 사우나에서 땀 빼고 머리손질 한 듯 개운하여 좋고
안 보면 보고 싶고 보면 헤어지기 싫은 친구가 보내온 책 한 권
<기적의 채소>
"옳다구나" 하고 비료 주지 않고 산에서 긁어온 썩은 나뭇잎으로
거름하는 고전압 텃밭에 물주며 입맛 다시다 보니 어느덧 갈증 난
내 목이 촉촉해지는 것 같아 좋고
20년 전 용담댐 수몰지에서 주워온 초등학교 책상과 의자가 삐걱거려
이리저리 손보다 새로 만들고 싶어 시행착오 거듭하며
대패질 못질 또닥거리노라면
은은히 풍기는 나무 냄새 어디에도 비할 데 없이 향긋해 좋고
좋아하는 노래 크게 틀어놓고 겨우내 땔 나무 쾅쾅 도끼질하여
하늘 높이 쌓아 놓은 장작을 보면 올 겨울에도
등 따숩겠다 뿌듯해서 좋고
장작 타는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탁탁, 톡톡 말 건네는
불꽃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몰래 태고의 신비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아 좋고
때때로 밤하늘별을 보며 “여보! 북두칠성이 우리 머리 위에 있어!”
소리 지르는 소녀 같은 마누라가 있어 또한 좋고
가끔 혼자 있고 싶을 때
황토방 툇마루에 앉아 연기에 그을린 시커먼 서까래 올려다보노라면
석유냄새 물씬 풍기던 후지카곤로, 밥 담아먹던 놋주발, 하얀 고무신,
빨간 우체통 등
새록새록 어렸을 적 고향집 생각나 빙그레 미소지으니 좋고
뒤뜰 항아리들보고 있자니 내 무릎 다치면 빨간약 발라주고
심술 난 내 심사 달래주던 어머니 넓고 깊은 품속처럼 푸근해서 좋고
해우소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명상에 잠기다 보면
하염없이 가는 시간 붙잡을 수 있어 좋고
오일장에 마누라 따라가 비닐 봉다리 들고 다니며
타일 박힌 그 옛날 선술집에서 잔술 두어 잔 걸치니 또한 좋고
깊은 밤, 요염한 초승달 바라보면
좋아했으나 말 한 마디 못하고 헤어진 옛 여인 생각나 좋고
둥근 보름달 보면 뱃속에 아기 품은 듯 든든하여 좋고
묵은 판때기 놓고 마음 모아 좋은 말과 글을 새기다 보면
이 길이 내 길이구나 싶어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좋고
저녁 밥상에서 반주삼아 곁들인 두어 잔 막걸리가 아쉬워
술 한 병, 멸치 한 주먹 쥐고 황토방 건너가 꼴짝꼴짝하다보니
지난 일들 파노라마처럼 흐르며 옛 일, 옛 사람 생각나 또한 좋고
농사짓느라 지친 동네 사람들 모셔
차 한 잔, 술 한 잔 대접하면 서로 흐뭇해 좋고
거꾸로 식사 초대받아 이웃집 가면
산에서 따온 귀한 나물밥상에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니 또한 좋고
봄이면 설레는 연초록빛, 한여름엔 쏟아지는 소나기,
가을엔 타오르는 단풍, 겨울엔 함박눈 펑펑 가지마다
눈꽃을 볼 수 있어 좋고
때가 되어 좋은 며느리 들어와 편안해 하는 아들 보니 좋고
해마다 삐악삐악 손자손녀 늘어나 재롱 볼 수 있으니 더욱 좋고
저 홀로 싹 틔우는 머위, 쑥, 민들레 지천에 피어
원하는 이들에게 한 보퉁이씩 싸주고 고맙다는 인사 받으니 좋고
까치가 울면 좋은 친구들 찾아와 차 한 잔 놓고 눈으로 말하고
뜻밖에 말 길어지면 밤새 속내 털어놓을 수 있으니 더욱 좋고
몸 부려 일하고 기분 좋게 뻐근할 때
막걸리 한 잔이면 뭉침과 풀림이 저절로 조화로워
피곤했던 몸 슬슬 살아나고 머리 또한 맑아지니 역시 좋고
씨 뿌리고 물 주어 애써 가꾼 제철 음식 먹으니
황제의 식탁이 부럽지 않고
우리 땅 우리 음식이 우리 가족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 같으니
또한 좋고
낮과 밤이 만나는 황혼녘이면 산 자와 죽은 자들이
밥 잘 먹었어?
요즘 어때?
난, 잘 있어.
그럼 잘 가.
다음에 보자고.
오순도순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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