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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間은 죽으면 그만인가 13
광덕 큰스님
8. 에텔체와 심성관계
앞서 필자는 에텔체를 유체, 영체, 본체로 구별하고 이들은 육체와 함께 자아가 행사하는 기관으로서 각기의 작용을 분담한다고 하였다. 즉 육체는 주로 욕망을, 유체는 주로 감정을, 영체는 주로 이지를, 본체는 주로 예지를 맡고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위에서 유체가 가지는 여러 층의 구성을 살피면서 그의 정추에 따라 유체 내지 본체가 구별되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에 여기서 에텔체와 심성과의 관계를 잠간 살피고 지나갈 필요가 있다.
예지, 이성, 감정, 욕망, 이 4종의 인간 심성은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일까? 경험적 관찰로는 욕망은 육체적 욕구를 충족 보전, 확대시키고자 하는 본능적 욕망으로서 그의 발동 형태는 극히 조잡하다. 강한 자극과 격렬한 충동을 상반한다.
다음에 감정은 개아의 안정 상황의 표정이다. 결핍에서 공허를, 위험에서 공포를, 조화에서 안정을, 활동에서 환희를, 충족에서 안락을, 향상에서 긍지를..... 불안의 제거와 욕망의 충족과 이상의 달성에서 생명이 느끼는 상태를 나타낸다.
다음에 이지는 감정과 욕망에 물들지 않은 깊은 심성의 빛이다. 이는 자타 분별 없는 자아에서 비치는 분별이며 자기 분석력이다. 이에는 대립이 없다. 일체평등 無私의 자아가 발하는 본연의 照破力이다.
다음에 예지는 무엇인가? 이는 근본생명의 자기 확인이며 자기 결단이다. 그는 자기 존재의 확인으로 참된 자기 위치를 정립하고 일체 존재의 존재적 당위를 결정한다. 그러기 때문에 예지가 근본지며 생명으로 하여금 본래의 방향을 유지케 하는 근본질서의 유지자다.
9. 에텔체와 심성관계가 주는 교훈
이상 네 가지 심성을 마음의 파장으로 비유하면, 예지는 극히 미세하고 정밀한 파장이고 욕망은 가장 거칠고 긴 파장이며 중간에 있는 감정은 욕망에 가깝고, 이지는 예지에 가까운 파장이다. 그래서 가장 정교한 에텔체인 본체에 예지가, 그리고 가장 거칠은 육체에 욕망이, 그리고 영체에 이지가 유체에 감정이 주로 작용하는 이유를 알만하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번 기억해 둘 것은 심성의 精皎와 깊은 안정이야말로 인격의 중추라는 사실이다. 거기에는 깊은 예지가 안장되어 있으며 생사를 초월하고 생사를 구사하는 자재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의 반대인 본능의 추구와 감각적 충동에의 예속화는 인격의 타락이며 자성공능의 음폐이며 지존한 자기 본성의 모독이며 지혜와 능력의 말살이다.
또한 감정에의 맹종도 자성에의 배반이며 지혜의 오용을 부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성을 확인하고 참된 자아를 확립하여 자성 왕국을 회복하는 데 노력하고 그의 실현에 가치의 중심을 두어야 한다. 따라서 이지는 자성 예지에 종속하고 그의 빛이어야 하며 결코 감정이나 욕망의 도구가 될수 없는 것이다. 감정도 욕망도 이성의 비춤에 따라 조절되고 행사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인간지성은 동물적 욕구충족에 동원되어 금수계에도 볼 수 없는 잔인무도, 추악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예지의 조명아래 비로소 생명은 본래적인 정상을 시현한다. 이지도 감정도 구김없이 그 모든 성능을 발휘한다. 육체도 정상적인 생명발전을 이룩한다. 욕망이 제자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간가치가 무엇이며 인격이란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한 일단의 해답도 나올 만하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동물적 욕망의 조절방법은 억제만으로 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그것은 높은 이상과 자성도야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인간의식의 촛점이 깊은 자아에 맞추어지고 그에 접근할수록 인간의 감정적 육체적 충동과 욕구는 저절로 조절된다. 말초감각의 자극과 강렬한 충격적 감각으로 자기의 불안과 공허를 달래거나 도피코자 하는, 퇴폐적이며 세기말적인 인간방황과 광란상에 대한 근본적 치유법이 여기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10. 유체표층부의 종말과 유령
육체에서 벗어난 에텔체는 그 표면이 우선 조잡한 유체임을 멸할 수 없다. 그래서 죽음을 거쳐 유체가 육체에서 이탈한 다음에는 유체의 조잡한 층이 또한 벗겨진다. 이것은 영의 의식정도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영의 발달 정도가 높을수록 즉시 이탈하는 것이다.
이 유체의 표층부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은 극히 정교 미세한, 감득하기 어려운 물질이다. 그래서 그를 통제하고 있던 주체적인 靈我와 분리된 다음에는 이물질은 점차 분해된다. 그리고는 앞에서 말한 푸라나의 경우처럼 또다른 유체에 이용될 소재로써 지상에 흩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 유체 표층부가 즉시 분해되지 않고 잠시동안 그 형태를 유지하고서 죽은 자의 집이나 혹은 묘지 근처에 머무는 때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유령도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생전의 의식정도의 동차성에 이끌려 분해하기 이전에 잠시 그 형체를 유진한 것뿐인 것이다. 여기에는 영적 자아가 없는 것이므로 사람에게 영향 줄 아무런 힘도 없다. 겁낼 것도 없다. 곧 분해되어 없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유의해 둘 것은 이 유체의 껍질을 이용할 때가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영매적 소질이 있는 사람이 자신의 푸라나의 활력을 이 유체에 작용시키는 때인데 영혼의 물질화 형상화 실험에 이를 사용한다. 이 밖의 유령현상은 다른 기회에 언급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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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점점 흥미로와 집니다. 감사합니다.
예지,이지,감정 ,욕망 4종세트에 관한 설명 잘 읽었습니다. '예지의 조명아래 ~'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을 그냥 외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
재미있습니다.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