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몇권의 책을 샀다. 그것도 자주 찾는 교양서나 시집이나 인문서가 아닌 공부하기위한 사전류의 책들이다. 사면서 생각했다 언제까지 볼수 있을른지...
이사를 다니며 제일 무겁고 큰 짐은 냉장고나 세탁기가 아니고 아까워서 마음이 무거워 처리하기가 어려운 책과 화분이라는 것을 여러 번 느꼈다. 그러면서 철학자가 되어갔다.
책과 꽃은 생명이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보면서 자랐던 일이라서 아무 것도 아닌 그저 지나치는 일상이었는데 이사를 다니면서 점점 생명이 무엇인지 그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버리면서 다시 사면서. 꼭 버려 버리는 것만이 아니면서.
신학기가되면 새책을 살수없는 애들은 책들을 물려받는다. 그러나 나는 물려받을 책이 없었다. 물려줄 책을 형이나 누나가 가지고 있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아리랑고개에 가서 헌책들을 샀었다. 그것도 처음에는 새책 한권 값이면 헌책 너댓권은 샀는데 갈수록 비슷해지더니 이제는 인터넷으로 찾아야 겨우 찾을수 있는 고양이가 오줌을 누어 얼룩진 헌책이 전문점에서나 찾을 수 있다고 해서 더 비싸졌다. 경제적 논리에 의한 희소가치를 말하자면 일부러 고양이를 놀라게 해서 오줌지리게 만들었는지의 상술적 진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 세월도 이제 골동품이 되어간다는 이야기이다. 이제 내게도 고양이가 오줌을 누면 어쩌지? 예전에는 가난의 상징이었던 헌책들이 지금은 고가의 보물들로 대접받는 경우들도 많아 격세지감을 느낀다.
물론 내가 구하는 그런 책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사서 또 준다 필요할 때는 사서 보고 물려줄 때는 필요해하는 사람을 찾는다. 그때마다 내 서가가있는 이사를 가지않아도 되는 집이 필요하다고 소원했지만 현실은 반대로 점점 좁아져갔다.
그러면서 가식의 합리적 철학자가 되어간다. 비우고 사는거야 내려두고 사는 거야 내 속에 있으면 되는거지 외형의 소유는 무겁고 힘 드는거야. 누군가에게 양분이 된다면 그 분을 키우는데 나도 밑거름이 되는거야… 하고 자기위안을 하며. 그렇게 하다보니 그것은 나의 위안이 아닌 당연한 것이라고 일상사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네번이나 이사를 다녔다. 나는 내 평생에 네번의 이사를 할 일이 있었다는 것이 참 희안하다. 나는 사람이나 물건이 진정하다고 생각되어 정을주면 여간해서 바꾸는 성격이 아니다. 진보적이지 않은 보수적이라 그럴까? ㅎㅎ 글쎄? 그래서 발전이 없나? 늘 그 타령일까? 글쎄? ㅎㅎ
이사를 다니면서 책이나 화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기도 어렵다. 마구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먼저 생활 정보지에 광고를 의뢰한다.
집나가는 마누라를 지켜 보아야하는 무능한 서방처럼 한구석에서 우두커니 바라보는 애들을 죽은 쥐새끼들 처럼 쓰레기장에 마구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임자가 나타나지않는 아이들은 도서관에 기증한다. 물론 도서관도 와서 자기들 측도에 의한 가치로 선별한다. 간택되지 못한 쭈그렁이 나인들은 묶여 순장당한다.
여러번 보아서 이제 책도 사지않고 화분을 비롯한 살아있는 것들에게 정을 주지 않으리라고 결심도 이사한 횟수만큼 최소한 세번은 했을 것이고 어떤 때는 콧끝이 찡해었겄지만… 그런데 지금도 또 가져가야 할 것들이 생겼다. 이제는 옮겨 갈데가 없으니 간수해줄 사람도 없을텐데 또 책을 주문하였다. 물론 새채 가격을 보고 헌책방을 뒤져 찾았지만, 그것도 사전인데 韓漢사전이다.
늦게 이제야 공부의 맛을 알게한 漢詩를 짓기위해 네권의 책을 샀다. 예전에 혹시나 밥이라도 먹여줄까 하고 잠깐 보았던 인정머리없고 정나미 떨어지는 송장같은 法書들보다 훨씬 귀하고 맛이 있고 살아있다. 한권은 예전에 아버지가 사주셨던 무애 양주동선생의 저서인데 버린지 오래인데 이제 또 찾게되었다. 이 영감님도 자기는 대한민국 국보라고 자위하시며 살아계실 때는 큰소리 빵빵치셨는데 지금은 완전 꼰대 구식일텐데…ㅎㅎ
아버지가 왜 책을 밟고 선반의 꽃감을 내리면 혼을 내셨는지를 나는 이제는 안다. 내가 쓰는 것을 그렇게도 싫어하셨던 글을 내가 쓰면서 그 뜻을 알았다. 책은 그 사람의 생명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말씀으로 내게 설명을 못하셨지만 내 글에 내 생명이 들어갈까 봐 그 생명이 서러울까 봐 글을 못쓰게 하셨나 보다. 글쓰면 배고프니 송장같은 법서를 보고 장례사나 되어 죽은 이에게 봉사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