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因緣
<제10편 슬픈 사랑>
②해후(邂逅)-22
천복은 그대로 꼼짝 않고 앉아 대꾸하였다.
“그렇다면, 할 수 없군! 내가 당신을 쓰러뜨리고 여자를 차지하는 수밖에!”
“...?”
천복은 그가 자신을 쓰러뜨리고 혜영을 차지하겠다는데, 어떻게 할는지 지키어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아니하였다. 별 희한한 놈이 다 있다는 생각이 들자, 몸속에서 쇳물이 부글부글 끓었다.
“히-얏!”
순간, 사내가 힘찬 기압소리와 함께 몸을 허공으로 둥실 띄우더니만, 발길이 그의 머리를 향하여 날아들고 있었다. 그는 발이 머리를 차려는 찰라 재빨리 머리를 숙이면서 팔을 내뻗어 사내의 발목을 낚아채었다.
그러자 사내는 몇 발치 아래로 곤두박질을 치면서 잡목들 속으로 개구리주검처럼 퍼지고 말았다. 동시에 그가 불끈 일어서더니, 그리로 달리어들어 사내의 목을 거머쥐고 두어 번 뒤흔들어놓고선 다시 돌아와 천연스레 앉아있었다.
“오-빠!”
혜영이 겁먹은 소리로 그의 팔을 부여잡고 오빠를 부르며 치떠는 거였다.
잠시 후 등걸나무속에 처박혔던 사내가 꾸물거리기 시작하였으나, 얼른 일어서지 못하고 도로 주저앉는 거였다. 그런데, 사내의 뒤통수에 묶어 맨 머리채가 사뭇 풀어지어서 머릿발이 얼굴을 온통 뒤덮었다.
“초면에 함부로 까불다간 저승 간다!”
천복이 으름장을 놓자, 사내가 얼핏 눈을 돌리고는 머릿발사이로 스치어보더니, 이내 고개를 떨구고 마는 거였다.
“형님! 알아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사내는 고개를 한껏 숙인 채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알아보지 못하여 죄송하다고 사과하였다.
그러나 그는 사내의 말에 개의치 아니하고 천천이 몸을 일으키더니, 다시 혜영을 등에 업고 발길을 돌리려는 거였다.
그러자 사내가 서둘러 몸을 세우면서 쫓아오는 게 아닌가.
“형님! 잠깐 저랑 말씀이나 나누시죠?”
“싫소! 당신 같은 야만과는 말하기 싫소.”
그는 혜영을 업은 채 사내의 말을 단호히 거절하고 돌아서 발을 옮기어놓는 거였다. 그리고 몇 발을 떼어놓는데, 사내가 산발한 머릿채를 늘어뜨린 채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넙죽 업들이더니, 손바닥을 마구 비비었다.
“형님, 제 잘못을 용서하여주시구려. 앞으로 형님으로 깍듯이 모실 터이니, 잠깐 지체하셨다가 가시죠. 저는 절대로 나쁜 놈이 아닙니다.”
“...?”
천복은 그를 물끄러미 내리어다보고 있었으나, 대체 첫인상부터 들짐승처럼 보이었기에 언제 어떻게 해코지할는지 경계심만 자아내는 거였다.
더욱 앞길을 막아놓고, 무릎을 꿇고 앉아 궁상을 떠는 데에야 제치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기에, 하는 수 없이 혜영을 내리어놓고선 사내에게 입을 여는 거였다.
“어서 말해보오?”
“저는 경기도 수원 사는 김점룡 올시다. 제가 아까 형님께서 여기 오시자, 이 자리를 감탄하신 말씀 다 들었소이다. 과연 명당이 아니겠어요?”
천복이 그의 말을 듣고 보자니, 그는 다름 아닌 경산의 친정조카 김좌경의 아들인 듯싶었다. 세상에는 동명이인이 많은지라, 마음 같아선 그 자리에 마주앉아 조근이 캐묻고 싶었으나,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아야 하였다.
“좋은 자린 줄 당신이 어떻게 알았소?”
천복은 사내가 아까 와서 자신이 혼잣말로 감탄하고, 또는 혜영과 나눈 말을 그가 들었다는 건만도 풍수에 식견을 있다고 믿어지었다.
“형님, 저도 서울에서 유명한 학자한테 어깨너머로 좀 배웠습죠. 아직 멀었지만, 상식선에서 좀 알뿐이죠. 제가 형님께 배워야할 겁니다.”
그러고 보면, 김점룡이란 이 사람이 정녕 경산의 친정조카라면, 자신에게 형님이란 맞지 않을 거였다. 그는 한국전쟁 중 가족이 한강을 건너려고, 경산을 따라 서빙고 김세경의 집을 찾아들어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의 고향 수원 사는 맏형의 아들이 분명하였다.
하다면, 그는 외레 그보다 두어 살 위가 분명하였다.
“지금 사는 곳은 수원이오?”
“제가 상처한 뒤, 혼자 이곳에 내려와 살지만, 집은 수원 정남입니다. 오늘 시간이 허하시면, 요 바로 산 밑이니, 잠깐 들르셨다가 가시죠?”
“가봅시다!”
천복은 선뜻 대답하였다. 더욱 수원 정남면이라면 거의 확실하였다. 그래서 사내의 정체도 알아낼 호기심이 생기자 혜영을 다시 등에 업었다.
“형님, 어려우신데, 아가씨는 제가 업고 내려갈랍니다.”
첫댓글 접근 방법이 야만적인 이유 등 앞뒤가 맞지 않고 속셈을 알 수가 없습니다
초면에 무례하지요.
그는 그 명당자리를 제것인양 지키고 있었던 모양이네요.
풍수지리 공부에 눈이 떠져서 돌아다니다가 찾은 명당자리인가 봅니다.
그러기에 산밑에 정착하여 산을 관리하는가보네요. 그런데 마침 남녀가
그 자리에 와서 놀고 있으니까 혼구멍을 내려고 처음부터 벼른 것 같아요.
암튼 그 집에 가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는지 모르겠군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