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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하이젠베르크
<김상욱의 양자 공부>를 읽고
그 책에 나왔던 과학자들이 대거 출현하는 소설 <클링조르를 찾아서>를 읽고,
그 소설에 비중 있는 역할로 나온 과학자 하이젠베르크의 책을 펼쳐 보았단다.
앞선 두 책을 읽지 않고 하이젠베르크의 책을 읽었다면
정말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앞선 두 책을 읽고 나서 하이젠베르크의 책을 읽으니
그나마 읽을 만했고 ‘정말’은 떼어내고 어려웠단다.
아빠가 올해는 양자역학에 대한 책들을 좀더 자주 읽겠다고 했잖아.
양자역학을 처음으로 수식으로 설명한 하이젠베르크.
그의 자서전이라고 해도 좋을 책 <부분과 전체>
아빠가 양자역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 즈음 사두었던 책인데
어려울 것 같아서 책장에만 고이 모셔 두었다가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김상욱의 양자 공부>와 <클링조르를 찾아서>를 읽고 나서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겨서 집어 들었던 것이란다.
이 책의 구성은 하이젠베르크가 주변 사람들과 나누었던
과학과 철학과 정치 그리고 기타 등등에 관한 대화를 모아 놓은 책이란다.
그 대화의 깊이가 너무 깊어 읽다 보면 그 깊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었단다.
….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과 여행을 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도대체 이들이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는 사람들이 맞나 싶었어.
그 이야기들이 전문적인 내용들이었어.
하이젠베르크는 그 옛날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어찌 기억해서 쓰고 있는 것인지…
대단한 사람이로구나.
물론 오래 전에 일은 기억이 잘못된 것일 수 있어
그 부분은 하이젠베르크의 본인이 채울 테니
이 책은 그의 사상을 정리해 놓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어.
이 정도의 분량을 적는다는 것은 그는 과학뿐만 아니라
문학적인 소질도 있는 것 같았어.
아참 그는 음악적 재질도 있었단다.
피아노도 수준급이었어.
1. 보어와 만남
이 책에서 하이젠베르크가 나눈 대화와 토론들을 정리해서
아빠가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줄 능력은 없단다.
분명 좋은 글들, 귀담아들을 글들이 많은데, 잘 정리하기가 쉽지 않구나.
옮겨 적은 발췌록이 있으니 그것도 참고해주길 바란다.
....
그가 태어난 시대는 불안함이 가득한 세계였어.
다행히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은 유복하게 보냈대.
피아노도 수준급으로 쳤단다.
그는 수학 전공을 하려고 했는데,
대학 초년생 때 만난 조머펠트의 교수의 자상한 지도로 물리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어.
당시 물리학의 대세는 원자론이었단다.
그전까지 모든 물체의 운동은 뉴턴의 운동방정식으로 설명이 가능했는데,
원자의 운동으로 그것으로 불가능했고,
새로운 운동 법칙이 필요했어.
그 시작은 플랑크의 양자론이었고, 보어 등이 연구를 하고 있었단다.
조머펠트 교수의 도움으로 괴팅겐에 가서 보어의 강연을 듣고
토론도 같이 하면서 그와 교류를 하게 되었어.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아인슈타인의 강의도 들었지만,
하이젠베르크는 보어에게 끌렸어.
조머펠트 교수의 도움으로 보어가 연구하고 있는
덴마크의 코펜하겐 연구소에서 정식으로 연구하게 되었단다.
이때부터 보어와 함께 양자론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단다.
그들이 그렇게 양자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지만,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상당히 불안한 시기였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서 연구만은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단다.
당시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보어와 하이젠베르크는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어.
그러면서 더욱 친분을 쌓게 되었지.
물론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원자물리학이었어.
수많은 대화와 토론을 통해 그들은 양자론과 원자물리학에 대한 레벨을 쌓아갔어.
1925년 고초열병으로 헬골란트 섬에서 휴양을 하게 된 하이젠베르크.
이미 앞서 읽은 책에서 이야기했지만,
이 섬에서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약학을 수학적으로 풀어서 설명하게 돼.
비록 어려운 행렬역학을 이용했지만 세계 최초였어.
이것을 베를린대학에서 발표했는데
이 자리에는 플랑크, 아인슈타인 등 당대 유명한 과학자들이 모두 모였어.
이것을 발표한 다음에 아인슈타인이 하이젠베르크를 초대해서 같이 토론하기도 했단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하이젠베르크의 의견에 반대의견을 내면서 비판했단다.
앞서 읽은 책들에서 이야기했지만,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믿지 않았다고 했잖아.
....
그리고 또 한 명이 과학자가 등장하는데,
누군인지 예상하겠지?
그래, 바람둥이 슈뢰딩거야...
이 책에서는 시뢰딩거로 적었는데,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부르는 슈뢰딩거로 이야기할게.
슈뢰딩거는 행렬역학보다 쉬운 수식인 파동역학으로 양자역학을 설명했어.
그것이 양자 도약을 설명하기는 어려웠지만, 전자의 움직임을 정확히 설명했단다.
보어와 하이젠베르트는 슈뢰딩거에게 초대장을 보내 코펜하겐 연구소로 초대를 했단다.
슈뢰딩거와 보어의 토론이 시작되었어.
파동역학에 관한 것인데, 그것이 양자 도약에 맞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어.
그러니까 보어가 파동역학에 대한 비판을 했다고 보면 돼.
보어와 슈뢰딩거는 그것에 대해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토론은 끝이 났단다.
2. 떠나야 하나? 머물러야 하나?
그리고 그 유명한 제5차 솔베이회의를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구나.
아인슈타인이 작정을 하고 양자역학에 대한 맹비난을 했던 토론의 장.
보어와 하이젠베르크 등 코펜하겐 학파는 아인슈타인의 공격을 보다 받아내어 설명을 했었던...
제5차 솔베이회의.
누군가 이 제5차 솔베이회의를 영화로 한번 만들어봤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드는구나.
그들이 나눈 이야기가 비록 어렵지만,
유능한 감독이 일반인들도 좀 이해하기 쉽게 영화로 만들어주면 좋을 텐데..
아무튼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양자역학에 대해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은
바로 언어의 제약도 한 몫을 하는 것은 사실이란다.
거시적 세계에서 만들어진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일들이
미시적 세계, 그러니까 원자 내의 세계에서는 일어나고 있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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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현재까지 우리들은 어떠한 언어로 원자 안의 사건을 설명할 수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확실히 수학적 언어, 즉 수학적 도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의 도움을 빌려서 원자의 정상상태나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이행하는 확률을 계산할 수 있지만 이 언어가 우리의 통상적인 언어와 일반적으로 어떻게 연관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의 도움을 빌려서 원자의 정상상태나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이행하는 확률을 계산할 수 있지만 이 언어가 우리의 통상적인 언어와 일반적으로 어떻게 연관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론을 실험에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이 연관성이 무엇인가를 알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실험결과에 관해서는 아직도 항상 일반적인 언어, 즉 고전물리학에서 지금까지 사용되어 온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직은 양자역학을 이해하였고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닙니다. 수학적인 도식은 이미 형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언어와 맺는 연관성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일단 이것이 형성되기만 하면 사람들은 안개상자 안의 전자 궤도에 대해서도 아무런 내부모순이 없이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난점을 해결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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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말도 안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과학자라고 하면 편견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사고 내용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해.
비단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유연한 사고 방식을 가지는 게 좋을 것 같구나.
회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자기의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관념 속에 콱 박혀 사는 분들이 있는데,
그들을 보면서 아빠는 저러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지만 간혹 아빠도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단다.
이 책에도 그런 내용에 대한 좋은 글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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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과학의 진보는 그 종사자들에게 새로운 사고 내용을 받아들여서 그것을 구체화하는 것을 요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를 위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그러나 실제로 신세계에 들어가려면 새로운 사고 내용을 받아들여야 할 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 사고구조를 바꾸어야 할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받아들일 위치에 놓여 있지 않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결정적인 한 발짝을 내딛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나는 라이프치히의 자연과학자대회에서 처음으로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양자론에서도 본질적으로 어려운 고비가 눈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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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젠베르크는 또 하나의 큰 성과 중에 하나가 불확정성 원리라는 것을 발표하게 된단다.
전자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인데,
아래 내용이 좀 어렵더라도 같이 읽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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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87)
우리들은 전자가 어느 방향에서 방출될 것인가를 알지 못 한다고 확인하였습니다. 당신으로 그러니까 이 방향 결정요소를 계속하여 찾아야 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러한 결정요소를 찾았다고 가정한다면 다음과 같은 어려운 고비에 부딪치게 됩니다. 즉 방출된 전자는 또한 원자핵으로부터 방사되는 물질파로써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파동은 간섭현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선 원자핵에서 반대방향으로 방사된 파동 부분은 그것에 맞추어 설치해 놓은 장치 안에서 간섭현상을 일으켜 –그 장치의 결과로 – 어떤 일정한 방향으로의 파동은 소멸하였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것은 전자가 이 방향으로는 결국 방출되지 않는다는 것을 예언할 수 있음을 뜻하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새로운 결정요소를 알고, 전자가 어떤 일정한 방향으로 방출된다는 것이 완전히 결론지어졌다면 간섭현상이라는 것은 절대로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즉 간섭에 따른 소멸은 없을 것이며, 따라서 우리가 이끌어낸 결론은 더 이상 유지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소멸현상은 실험적으로 관찰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서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결정요소는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지식은 더 이상의 새로운 결정요소가 없이도 이미 완전하다는 것을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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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젠베르크는 1927년 코펜하겐을 떠나 라이프치히 대학 교수로 가게 돼.
하지만 휴가 때마다 코펜하겐에 와서 보어의 연구소에서 보냈단다.
대단한 사람이구나. 휴가 때 다른 연구소에 와서 연구를 하다니...
하이젠베르크가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물리학이 많지만
그것으로 국한된 것은 아니야.
생물학과 물리학에 대한 관계도 이야기하고,
여성 철학자 크레테 헤르만과 만나서는
양자역학과 칸트 철학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어.
또 유명한 사람이 아닌,
우연히 만난 젊은이와 나눈 대화도 나와 있단다.
우연히 하이젠베르크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있던 젊은이를 만나게 되는데,
그 젊은이는 민족적 사회주의자였어.
그 젊은이를 집에 들어오라고 해서 둘은 혁명에 대한 이야기도 나눠.
당시 독일은 나치가 정권을 잡고 있었고,
독일 내에서도 반나치에 대한 움직임이 있었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지식인들의 행동에 대한 의미 있는 질문도 던져 보았단다.
당시 지식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독을 떠나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갔어.
그것에 대해 하이젠베르크도 많은 고민을 했어.
이민을 가야 하나? 국내에 머물러야 하나.
그는 이렇게 생각해 봤어.
자신의 집에 전염병 환자가 있다고 해서 그 집을 떠나야 하느냐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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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나는 무엇이 옳은지를 판단하기 위하여 문제를 여러 가지를 새로운 형태로 설정해 보았다. 만약 자기 집에서 가족 한 사람이 전염병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그 전염병의 감염을 더 이상 확대시키지 않기 위해서 집을 떠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희망은 없을지라도 그 병자를 끝까지 간호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 도대체 하나의 혁명을 질병과 견주는 것이 옳은 것인가, 도덕적인 규준을 뒤엎는다는 것은 너무 지나친, 안이한 사고방식이 아닌가, 그렇다면 플랑크가 이야기한 타협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강의가 시작될 때마다 나치당이 요구하는 형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나는 손을 높이 들어야 했는데(손을 어깨 높이로 들어서 ‘히틀러 만세’라고 말해야 했던 것이 당시의 형식이었다-역주), 지금까지 얼마나 자주 그들의 요구대로 사람을 만났을 때 손을 들고 그 손끝을 움직이면서 인사를 하였던가. 이런 행동이야말로 하나의 수치스러운 타협이 아니었던가? 공식적인 편지에는 ‘하일 히틀러’(히틀러 만세)라고 서명해야만 했는데, 이거야말로 불유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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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고민 끝에 그는 국내에 남기로 했어.
그것이 나중에 하이젠베르크를 평가할 때 친나치였을지도 모른다고 물음표를 붙이기는 했지만,
당시 하이젠베르크는 국내에 남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언젠가 전쟁이 끝난 뒤에 국가 재건에도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억지비약일지 모르지만, 우리나라도 지난 정권 때
나라는 사랑하지만 대통령이 꼴 보기 싫을 때 우리의 자세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다행인 것은 우리는 선거로 대통령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나라를 떠나는 이보다 그냥 좀만 참자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게지.
다시 하이젠베르크의 마음 속에 들어가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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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실제로는 내가 이민을 갈 것인가, 독일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플랑크는 이와 같은 파국이 지나간 다음의 시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 말은 분명하게 잘 이해되는 말이었다. 이러한 재난의 시기를 통하여 불변의 고도를 구축하는 일, 그리고 젊은이들을 모으는 일, 그래서 되도록 이 재난을 꿋꿋하게 타개해 나가다가 재난이 끝나면 다시 새롭게 재건하는 일이 플랑크가 나에게 말한 과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타협을 맺게도 되고, 이로 말미암아 뒷날 지탄을 받게 될 경우도 생길 것이고, 때에 따라서는 더 악화된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하게 설정된 과제였다. 원래가 국외에서는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는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좀더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과제가 있을 뿐이다. 라이프치히로 돌아왔을 때는 적어도 당분간은 독일에, 그리고 라이프치히대학에 머물면서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는 길이 어디를 향하는지를 지켜보기로 한 결심이 차츰 굳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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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과학자의 양심
국내에 남은 결정으로 인해 그에게 다가온 운명.
이 부분은 지난번에 읽은 <클링조르를 찾아서>의 모티브를 따왔던 부분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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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탄 프로젝트의 참여.
과학자로써의 양심.
그러니까 과학의 발달이 재난과 연결될 수 있을 때 과학자의 선택에 대한 고민.
전쟁이 끝나기 전에 독일 원자폭탄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을 거야.
미국도 독일이 전쟁에서 졌을 때까지는 원자폭탄을 실전에 사용하지는 않았어.
미국의 물리학자들도 독일이 전쟁이 진 다음
원자폭탄을 사용하지 말라고 건의했을 것이라고 하이젠베르크는 이야기하고 있어.
하지만, 이미 물리학자들의 결정권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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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
아마도 전쟁 초기에 미국 물리학자들은 독일이 원자폭탄의 제조를 시도할 수 있다는 점을 몹시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우라늄 분열은 한에 의해서 독일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으며, 히틀러가 유능한 많은 물리학자들을 추방하기 전에는 우리나라의 원자물리학의 수준이 확실히 그들보다 높았던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따라서 그들은 원자폭탄에 따른 히틀러의 승리는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것으로 여겼을 것이며, 이 같은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도 자기들의 원자폭탄 제조연구를 정당한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면, 이와 같은 일에 대하여 무어라고 반론을 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독일과 전쟁이 끝난 뒤에는 아마도 미국의 많은 물리학들은 이 무기의 사용을 중지할 것을 건의하였겠지만, 그땐 이미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기에는 늦었을 거라고 본다. 이 점에 관해서도 우리는 무어라고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우리도 우리 정부가 저지른 무서운 일들을 조금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전도를 알 수 없었다는 것은 어떠한 변명도 될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좀더 노력하였더라면 그것을 좀더 확실하게 알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전체적인 사고과정에서 이 모든 일들이 얼마나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인식하게 될 때 우리는 참으로 몸서리를 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세계사에서 선을 위해서는 모든 수단이 허용될 수 있으나 악을 위해서는 허용될 수 없다는 대원칙, 좀더 나쁘게 말한다면, 목적은 수단을 신성화한다는 이 원칙이 항상 반복해서 실천에 옮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고과정을 막을 수 있는 무엇이 존재할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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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하이젠베르크는 미국의 물리학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이야기했어.
원자폭탄의 위력을 물리학자들이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말려야 했다는 이야기했어.
쉽지는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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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
과학적 그리고 기술적인 진보가 일반사회에 대하여 지니는 중요성에 비추어 그 진보를 직접 담당하는 자들의 공적인 영향력도 확대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물리학자나 기술자가 중요한 정치적인 결정을 정치가보다 더 잘 내릴 수 있다고 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학문적인 연구에서 객관적으로 그리고 사실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특히 커다란 연관성 안에서 사물을 생각하기를 배운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정치가들의 직업에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논리적인 정확성과 넓은 시야, 그리고 엄격한 청렴 등의 건설적인 요소들은 부여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렇게 생각한다면, 미국의 원자물리학자들은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너무 소극적이었다는, 즉 원자폭탄 사용의 결정권을 너무 손쉽게 손에서 놓아 버렸다는 비난을 모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원자탄 투하의 역효과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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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미국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인 맨하튼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오펜하이머에 관한 책을 본 적이 있단다.
아주 오래 전에 읽어서 잘 기억은 나질 않지만,
그가 트루먼 대통령을 만났을 때
"나의 손에는 피가 묻어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는 것은 기억이 있구나.
그만큼 그도 많이 괴로워했다는 거야.
과학의 진보가 악마의 손에 쥐어지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
마지막으로 아빠가 회사 동료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좋은 문구를 하나 발견했단다.
아빠가 하는 일이, 실수를 줄이는 게 중요해서
실수를 줄이는 것에 대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그렇다 보니 회사에서도 어떤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고 이야기들을 많이 해.
다들 전문가라고 하면 그 분야에 많이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하이젠베르크는 좀 다르게 생각하고 있더구나.
그런데 그 생각에 너무 공감이 가더구나.
오류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전문가라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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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전문가란 그가 관계하는 분야에 대해 매우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정의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원래 한 사람이 한 분야에 관해서 정말로 많은 것을 알 수는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오히려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싶습니다. 전문가란 그가 전문으로 하고 있는 분야에서 사람들이 범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몇몇의 오류를 알고 있는 사람이며, 따라서 그는 그 오류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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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련다.
휴...
읽기도 어려웠고, 독서편지 쓰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나중에 너희들도 커서 한번쯤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 1920년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은 독일 청년들을 불안과 동요의 상태로 몰아넣는 결과를 가져왔다..
책의 끝 문장 : 그 곡을 경청하는 동안 내 전신에는 보어가 “사람은 항상 커다란 드라마 속의 관객이면서도 공연자”라고 말한 것처럼, 인류의 시간이란 척도에서 본다면 우리들 자신의 협력은 매우 짧다고 할지 모르나 생활도 음악도 학문도 끊임없이 전진하리라는 확신이 차츰 깊이 파고드는 것이었다.
책제목 : 부분과 전체
지은이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옮긴이 : 김용준
펴낸곳 : 지식산업사
페이지 : 384 page
책무게 : 545 g
펴낸날 : 2013년 10월 08일
책정가 : 15,000 원
읽은날 : 2019.01.15~2019.01.20
글쓴날 : 2019.01.31,02.01,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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