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으로 개소되어 1945년 해방까지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된 식민지 근대 감옥이다. 당시 조선 팔도의 감옥은 모두 합해 300평 정도 되었으나, 경성 감옥의 크기는 480평이나 되었다. 1920년 17살의 유관순은 경성감옥에서 눈을 감는다. 강우규, 김동삼 등 100여 명의 애국지사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고, 김구, 이승만, 손병희, 안창호, 여운형, 한용운, 김마리아 등도 한때 갇혀 있었다.
을사늑약문. 1905.11.17.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장악하고 보호국화시키기 위해 강제로 체결하였던 문서.
이강년 의병장 옥중 편지(1908년).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서대문형무소 고문실.
서대문형무소 고문 도구 - 상자 고문.
서대문형무소 취조실.
서대문형무소.
서대문형무소 초기 사형장 터.
서대문형무소 한센병사.
서대문형무소 옥사.
서대문형무소 "통곡의 미루나무(통한의 미루나무)". 1950년대 후반 심은 이 미루나무는 사형수가 이 나무를 잡고 통곡했다고 하여 교도관들이 붙인 이름이다. 2020년 태풍으로 쓰러졌으나 2016년 새싹이 나고 있다.
시구문. 일제강점기 사형 집행 후 시신을 바깥의 공동묘지로 내보내기 위해 밖으로 연결한 통로로 붕괴되었던 것을 1992년 독립공원을 만들때 발굴하여 40m를 복원하였는데 원래는 200m라고 한다. 일제는 시신에 구타나 고문의 흔적이 많은 경우, 사형 사실이 알려져 사회적으로 문제가 생길 경우, 시신을 받아갈 유족이 없는 경우 시신을 이 문을 통해 내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