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 19:6-7
두 달을 머무르며 많은 전도의 열매가 생겼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열매 맺은 이 열두 명의 사람들이 보석처럼 귀하게 느껴집니다.
함께 성경을 읽다 보면 주님이 예로 들으셨던 4가지 마음 밭이 진짜 맞는 비유의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말씀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도 복되지만 가장 복을 받는 사람이 저인 것 같습니다. 어제처럼 비가 쏟아지는 밤에는 가기 싫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녀오는 길은 기쁨으로 가득 차곤 합니다.
말씀을 주거니 받거니 나누면 나눈 데로 기쁘고 말씀이 길 가에 떨어지는 느낌일 때는 주님 옷자락 만지는 느낌으로 기도하게 되니 복입니다.
그 마음 밭을 옥토되게 만드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제 마음도 점검하게 하시는 귀한 시간인 것 같습니다.
충심으로 복음 전했던 바울에게는 환난도 많았지만 그 환난의 골짜기를 은혜로 채워주신 주님이 늘 곁에 계셨음을 봅니다.
애쓰지만….
밤이 맞도록 수고하는 느낌이지만….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문제들 앞에서 주님이 먼저 일하시며 걸어가시는 것을 믿고 의지하렵니다.
바울의 믿음의 뚝심.
그 마음에 응답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
저도 그 맛을 맛보기 원합니다.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행 19:10)
바울은 2년 동안 날마다 두란노 서원에 나가 말씀을 강론하였다고 합니다.
구역식구들과 날마다 큐티인을 가지고 카톡으로 말씀을 나눈 지가 꽤 되었습니다.
하지만 거의 답이 없는 상태로 매일 나누다 보니 기운이 빠지는 것 같습니다.
같은 책을 보고 나누는 것이니 한 구절이라도 읽고 그 말씀이라도 올리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부족한 제 자신을 날마다 발견하기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매일매일 부족한 가운데에도 말씀 앞에 앉는 이 시간이 엄청난 은혜이고 은혜의 자리임을 깨닫습니다.
온갖 역경 속에서도 복음에 대한 열정이 죽지 않았던 바울 사도처럼
제게 맡겨진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구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행 19: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조선시대 때도 복음으로 인해 우상을 불살라다는 얘기가 생각납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믿고 생활했던 것들을 예수님으로 인해 부정하고 내던질 수 있는 것이 참 은혜인 것 같습니다
세상의 지혜와 지식으로도 사람을 일시에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으로만 가능함을 고백합니다
내 안에 있는 부정한 것들이 주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기어져 은혜로 가득 채워지기를 기도드립니다
에베소 사람들의 광기 어린 외침. "위대한 아데미여!" 그들은 두 시간이나 같은 구호를 외치며 소동을 일으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군중 소란처럼 보였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늘날 우리 사회와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이슈가 생길 때, 그것이 정치적인 것이든, 신앙적인 것이든, 나는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있지는 않는지.
에베소 사람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이 자신들의 신앙과 경제 구조를 무너뜨릴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이 말한 것이 무엇인지 깊이 듣지도 않고, 무작정 소리를 질렀지만 그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진리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소리는 크고 요란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조용하고 분명합니다. 나는 지금 어떤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묵상합니다.
매 순간 감정이 아니라 진리 위에 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소망합니다.
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사람이란 존재가 원래부터 악하고 어리석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악함과 어리석음은 이 땅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알지 못함과 깨닫지 못함에서 시작되고 변질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분이 우리의 주인 되시며 아버지이심을 깨닫고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죄를 깨닫고 우리의 악함을 고백하며 회개를 통해 눈먼 자 눈이 뜨게 되고 돌아선 마음 돌이키게 되며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음이 온전히 서지 않으면 우리는 죄가 죄인 줄 모르고 악이 악인줄도 모르고 살아가게
되겠지요.
나도 모르게 죄악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그만을 믿고 경외하며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선과 의를 따라 살며 성령의 열매를 맺고 거두는 귀하고 복된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
잠시 다른 길을 따라 갈지라도 내가 가야 할길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그의 길로 돌이켜 나아갈 때 다시 그의 백성으로 자녀로 받아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가 임재하시는 곳에서 주의 한없는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느끼며 주의 영광을 높이고 찬양함이 가장 큰 기쁨이 되길 소망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바울이 회당에서 석 달 동안 말씀을 전할 때 듣던 자들이 순종치 않고 비방하니 바울이 그들을 떠나 두란노에서 날마다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두해 동안 하니 아시아에 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두해 동안 가르쳤는데 아시아에 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다 주의 말씀을 들었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바울을 통해 일하셨던 성령님께서 우리 태국에도 동일하게 일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많은 선교사를 이 태국땅에 보내셨으니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 하여 세력을 얻게 하옵소서.
성령님~ 이 태국 땅이 주님께서 신나게 일하시는 축복의 땅 되게 하옵소서.
초대교회가 틀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성령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격적인 성령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영험한 신적인 힘이나 능력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교회의 부흥회 때마다 언급되는 성령충만 또는 성령을 받는다는 의미를 신앙적 성숙함보다는 뭔가 주술적이고 신적인 능력을 부여받는것으로 착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한국교회의 부흥과정에서 일어난 성령운동은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를 함께 경험하였습니다.
성령충만한 삶은 인격이신 주님과 매일 동행하는 삶입니다. 내 신앙이 추상적인 알지못하는 신이 아닌 매일 나와 동행하시는 주님을 붙들고 사는 삶입니다.
매일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나의 연약함을 성령과 동행하는 삶으로 극복하며 살아가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