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밤 뉴스에 '전북-전주 세월호 분향소' 이야기가 나왔다. 아아- 내일이 10주기로구나? 그런데 전북-전주 사람들도 대단하다. 풍남문 옆에 분향소<사진>를 차려놓고 10년 동안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상주喪主' 노릇을 하고 있다니? 시내 전봇대에는 지금도 가슴 아픈 문구로 쓰인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다. 시민운동은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거늘. 10년 세월, 잊지 않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그동안 전주에서는 분향소 자진철거를 꾸준히 요구하고, 강제철거를 하겠다며 윽박질러 왔다고 한다. 그런 시점에 이태원참사가 발생하여, 분향소에 얼굴없는 이태원참사의 주인공들을 함께 모셔왔다고 한다. 조선 천지에 어찌 이런 참사가 한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일어났을까? 그러고도 책임지는 사람 한 명이 없다니? 가슴이 터지고 뛰다 죽을 일이다. 이게 나라냐?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뉴스를 보다가, 2014년 4월말쯤 세월호 참사로 꽃도 피워보지 못한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며 울며불며 썼던 졸문을 찾을 수 없는 대신, 아래의 글(2017년 5월 14일)을 발견하여 부기한다. 그때와 지금 무엇 하나 달라진 게 있는가 싶으니, 한숨이 절로 난다.
---------------------------------------------------------------------------------------- [新너더리통신 22/170514]아, 세월호 3년……
연전에 김탁환의 <거짓말이다>는 소설을 읽으며, 오래도록 가슴이 먹먹했었다. 저절로 흐르는 눈물도 여러 번이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자들의 시신을 거두던 민간 잠수사들의 이야기이다. 김관홍 잠수사의 죽음이 계기가 됐다한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세월호는 단순한 해난사고인데, 규모가 좀 큰 것일 뿐인가?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광화문광장에 천막을 친 유족들, 1년도 안되어 식자(識者)들을 비롯한 거개의 사람들이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 ‘짜증’까지 내기 시작했다. 그게 정말 진짜 짜증을 내며 스트레스를 받을 일인가?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그렇게 죽어갔어도 그랬을 것인가? 유족들을 ‘종북 좌파’라고까지 매도도 했다. 이것 말고 무엇이 청천벽력(靑天霹靂)인가? 심지어, 단식하는 현장 옆에서 그들을 한껏 비웃으며 ‘폭식(暴食) 시위’를 하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일까지 벌어졌다. 프란체스코 교황도 직접 그분의 손을 잡고 진심으로 위로해 주었는데. 그것이 과연 할 일이었던가? 인간(人間)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도 망각한 그들이 진정코 대한민국의 국민인가? 그들은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을 ‘홍어’로 비유하기도 했다.
나의 지인 몇 명의 얘기를 고백한다. 한 친구는 ‘흔히 발생하는 해난사고인데 그들의 요구가 너무 지나칠 뿐 아니라 말도 안된다’고 했다. 또 한 친구는 1년쯤 되자 세월호 상징인 '노란 리본'을 카톡에 자기 이미지로 쓰는 사람들 명단을 지우기 시작한다고 했는가 하면, 또다른 지식인은 ‘그들은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어가지 않았다. 물 서너 번 꼴깍꼴깍 들이마신 후 그냥 죽어간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부끄럽게도 언론인 출신이다. 한 여성은 ‘산 사람은 살기 마련이고, 죽은 애들이 결국 부모들에게 몇 억씩 안겨준 효녀효자다. 세월이 약이다’라는 막말을 내 앞에서 서슴지 않고 내뱉았다. 그것도 입이라고? 그래서였다. 내가 그들에게 얼굴 붉히며 들이대지 않고 그들과의 우정(友情)을 서서히 접었던 것은. 나는 팽목항커녕 안산의 합동분향소에도 가보지 못했다. 시청 광장 앞 분향소에서 잠깐 동안 목례(目禮)만 한 후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문구를 리본에 써 달아놓은 게 벌써 3년이다. 우리로서야 ‘벌써’이지만, 유족들에게는 ‘멈춰진 세월 3년’이었을 터. ‘지못미’는 노무현 대통령 노제(路祭) 때에도 썼던 아픈 기억이 있다. 하기사 엊그제 어느 대학교수는 강의를 하면서 ‘그들은 스마트폰으로 문자하면서 죽어갔다’며 ‘큰일’이 아닌 듯 말했다하여 물의를 빚었다.
나는 지금도 일요일 초저녁 즐겨 보는 KBS1 ‘도전 골든벨’을 잘 보지 못한다. 참사 이후 2년여는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요즘은 가끔 보지만 여전히 속이 편치 못하다. 사랑하는 부모를 애타게 부르며 죽어갔을 딱 그 또래 애들이 아니었던가. 그들이 눈에 어른거리는데, 아무리 강심장(强心臟)이래도 어찌 보겠는가. 요즘도 출퇴근길 앳된 남녀 고등학생들을 보면 자주 고개를 돌리는 것은 역시 그 때문이다. 여드름투성이 남고생들의 거친 대화와 여고생들의 짧은 치맛자락와 종아리를 보면서 죄없이 수장(水葬)되어 '물고기 밥'이 된 그들의 육신들이 떠오른다. ‘지은 죄’ 없이 ‘죄인(罪人)’들이 되어버린 우리 보통사람,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아픔이 어디 아픔이랴. 유족들의 피눈물 세월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되지 않으련만, 우리도 아팠다. 지금도 아프고 앞으로도 아플 것이다. 왜 우리가 아파야 하는가? 대체 무엇이 잘못되어 벌어진 일이고, 과연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자, 세월호는 우리에게 어떤 화두(話頭)를 던져준 것인가? 사회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길래 ‘세월호 세대(世代)’라는 말까지 생겨났을까? 별라별 음모론도 많지만, 우리가 어떻게 그 사건의 진상을 알 수 있겠는가? ‘자로’의 ‘잠수함 침돌론’ 등을 ‘진보(進步)의 적폐(積幣)’라 몰아부치며 비난하기는 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디 ‘역사의 거짓말(historic lie)’을 한두 개 보았는가. 몇 가지 팩트만 보아도 석연치 않는 것들은 무수히 많다.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그날, 우리는 두 눈 버언히 뜨고 300여명이 ‘물귀신’이 되는 장면을 그냥 보고 있었다. 구조(救助)를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 왜 그따위로밖에 대처를 할 수 없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다. 천인공노(天人共怒)할 그 무책임한 죄(罪)를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해놓고 승무원들과 함께 살자고 나온 팬티 차림의 선장은 또 무엇인가? ‘청해진수산의 정체’와 ‘유병언의 변사체’ 미스터리는 언제나 드러날까?
년 2월인가, 나는 또다른 ‘오하바나’호를 타고 친구 10여명과 금요일 오후 인천 연안부두를 출발, 무박(無泊) 제주를 다녀온 ‘살 떨리는’ 기억이 있다. ‘쌍둥이 배’인 그 배가 그때 사고가 났더라면? 누구라도 총(銃)이라도 쏘아서 배의 창문을 깨트려, 우리의 아이들이 바다로 뛰어들게 헀어야 할 숨가쁜 시간(골든타임)을 놓쳐버린 것이다. 말하자면 의인(義人)은 배 속에서만 몇 명 있었지, 외부에서는 한 명도 없었다.당시 문광부차관은 사건 하루만에 ‘언제까지 세월호만 운운하며 징징 짤 것이냐. 승마 특기자를 챙겨라’라고 말했다. 지금은 탄핵된 여자대통령은 ‘악어의 눈물’ 한 방울만 비치고 3년 내내 ‘모르쇠’로 일관했다. 가정도 이뤄보지 못하고 엄마가 안되어 보면 사람조차 안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백 번을 양보해도, 이것은 사람으로서 도저히 할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 아니한가?
나는 단언(斷言)한다. 뭐니뭐니해도 정치(政治)는 백성(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해보라, 제 백성이 눈물짓고 있는데, 제 마음이 어찌 편할 것인가.옛날 임금들은 천재지변도 자신의 부덕(不德) 때문이라며 괴로워했다. 고대에도 그랬고 4차산업시대를 눈 앞에 둔 임박한 21세기에도, 정치의 근본은 마찬가지이다. 사람사는 이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똑같기 때문이다. 백성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그것이 정치다. 맹자(孟子)는 <대학(大學)>에서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인지단(仁之端)’이라고 했다. 즉, 어짊의 실마리(시초)는 ‘어여삐 여기는 마음’이다. 어린 아이가 볼볼볼 기어 금방이라도 우물에 빠지려는 찰나에 누군들 달려가 그 애를 구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측은지심이거늘. 부처의 자비(慈悲)가, 예수의 사랑이 그것이 아니겠는가.
어제 텔레비전 뉴스를 보았다.
<현철이, 영인이, 은화, 다윤이, 고창석, 양승진 선생님, 권재근씨와 아들 혁규, 이영숙씨/돌 때 새 명주실을 놓을 걸, 한 달이라도 더 품을 걸 후회하여/엄마가지옥을 갈테니/부디 천국에 가라는 절절한 엄마의 마음을 담은 이 글을 보니/마음이 너무 아픕니다/모두가 함께 기다리고 있습니다/세월호 참사 미수습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하루빨리 돌아오길 기원합니다>
‘문변(19대 대통령인 문재인 변호사의 약칭)’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온 댓글은 바로 엊그제 대통령으로 취임한 우리의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올린 것이라 한다. 댓글을 단 계기는 2014년 5월 안산 합동분향소 벽에 붙어 있던 ‘단원고 학생 어머니의 편지글’을 누군가가 SNS에 올렸는데, 그 편지글을 대통령이 본 것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문변’은 “나도 국민”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SNS에 올려진 한 엄마의 편지글의 전문은 이렇다.
<너는 돌 때 실을 잡았는데, 명주실을 새로 사서 놓을 것을/쓰던 걸 놓아서 이리 되었을까/엄마가 다 늙어 낳아서 오래 품지도 못하고 빨리 낳았어/한 달이라도 더 품었으면 사주가 바뀌어 살았을까/이 엄마는 모든 걸 잘못한 죄인이다/몇 푼 벌어보겠다고 일하느라/마지막 전화 못받아서 미안해/엄마가 부자가 아니라서 미안해./없는 집에 너같이 예쁜 애를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엄마가 지옥 갈 게/ 딸은 천국에 가>
자, 사랑하는 딸에게 보낼 수조차 없는 이 편지글을 읽고 눈물짓지 않는 자, 겁이 난다. ‘문변’이 이 편지글을 보았나 보다. 국민소통수석에게 ‘댓글을 달고 싶은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한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되랴? 웰컴. 이제 우리는 대통령의 댓글을 접하게 되었다. 악어의 눈물이 아니고, 진심으로 백성(국민)들을 위하여 울어주는 위정자(爲政者)가 되어야 하리라.
이 꼭두새벽, 저절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는 국가(國家)는 국가도 아니다. 지난해 10월말부터 이 나라의 화두는 “이게 나라냐?”였다. 이제는 “이게 나라다”라고 당당하고, 든든하게 말할 수 있는 우리나라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 세월호의 진실은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한다. 아, 세월호 3년. 한스러운 세월(歲月·달구름)이 아니고 ‘한 세대(世代)’를 뛰어넘을 수밖에 없어서 ‘세월호(世越號)’였던가?
1124일만에 조은화 양의 유해가 발견되었다는 속보가 나를 또 울린다. 세상에, 1000일이 넘었다니? 그동안 우리 정부는 대체 무엇을 했나? 이 유가족들의 눈물을 하루빨리 닦아주고, 우리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한다. 구천(九天)의 한(恨)이 되기 전에, 아니 이미 한이 된 지는 오래이지만. 그게 정치이고, 그게 대통령이고, 그게 나라이다. 대한민국이여, 영원하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자유가 들꽃처럼 피어나고, 통일의 꿈이 무지개처럼 솟아나는 그런 대한민국이여, 어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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