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원룸 뒤에서 철계단을 오르면 바로 발한동사무소 앞 마당이다.
걸어서 10미터면 투표소이다.
119를 찍었다. 국회의원, 시의원은 1번, 비례 대표는 9번.
나는 선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꽃이라고 불리는 선거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도무지 석연치 않는 구석이 너무나 많다.
선거는 민주주의 ‘악어의 눈물’이라는 생각이다.
이제 한국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고 독제도 사라지고 경제 발전도 어느 정도 이루어 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회의원이 되든, 시의원이 되든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선거 대신에 시험으로 뽑는 것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근대 민주주의의 시작은 미국입니다.
영국에 대항한 전적, 인권과 자연법을 주장한 건국의 아버지들의 성향 등이 맞물리며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처음의 미국은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민주주의 국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달랐습니다.
삼권분립과 헌법 그리고 정교분리가 있었지만 일정 재산을 보유한 성인 백인 남성만이 투표권을 가졌고 노예제가 존재하는 등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고 그 중 가장 특이한 면은 '대통령' 이라는 직책에 대한 관점으로 지금이야 공화정 원수의 직함으로 취급되지만 당시로서는 '선거로 뽑는 왕'(선거군주제) 개념이었고 실제로도 당시까지 존속하던 신성로마제국은 이렇게 국가원수를 선출했으니(물론 말이 그렇고 이 당시는 실질적으로 합스부르크 가문이 세습했습니다.)
멀리 있는 개념도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이런 대통령을 투표할 권한도 선거권을 가진 이들에 의해 선출된 선거인단이라는 소수의 집단에 의해 이뤄졌으니 공화정의 원수보다는 선거로 뽑는 왕이라는 개념에 가까운 선출 시스템으로 볼 수 있습니다.(흥미롭게도 이후 한국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때도 비슷하게 재현되어 이승만은 '전하'라는 말을 좋아했고 '~이옵니다' 식의 말투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1714년, 앤 여왕이 사망합니다. 앤 여왕은 스튜어트 왕조 최후의 왕으로 자식들이 모두 일찍 죽어 직계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서거했습니다. 앤 여왕이 죽자 영국은 새 왕을 구해야 했고 윌리엄 3세때 만든 왕위계승법에 따라 조지 1세가 영국의 새 왕으로 세워지게 됩니다.
새 왕인 조지 1세에게는 몇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조지 1세는 당시까지 하노버, 그러니까 현 독일에서만 살았고 단지 할머니가 영국 공주라는 이유로 왕위를 받은 사람인지라 영국에 대해서는 아는게 거의 없어서 영어조차 못하는 형국이었고 더 큰 문제는 하노버와 영국의 정치적 상황 차이였습니다.
영국 통치에 별 매력을 못 느낀 그는 원래 다스리던 하노버 통치에만 전념하고 영국 통치는 신하들에게 맡기게 되었고 이렇게 사실상 신하들끼리 통치를 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이 때 '수상'이라는 직책이 생기고 수상을 중심으로 한 내각에 의한 통치가 시작되게 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조지 1세는 1721년 재정 전문가인 로버트 월폴을 수상에 임명했고, 월폴은 1742년까지 수상직을 이어나갔고 현대에 월폴은 영국 최초의 수상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내각제이고, 상하원 국회의원이 생겨나고 선거가 시작된 것입니다.
오래 전에 썼던 글을 올립니다.
/////////////////////////
“동네 양아치들이 찍어 달라고 노래 부르고 춤 추고 난리다.
평일 날에는 가끔씩 지나가는 군대 차나 부식 팔러다니는 봉고트럭 할아버지가 전부 일 정도로 한가했는데, 요즘은 선거 막바지라서 그런지 헌화로가 매일 시끌벅쩍 하다. 언제 지랄발광이 끝날지..휴...
어떤 때는 허락도 없이 마당에 들이닥쳐 찍어 달라고 애원(?)하는 눈빛으로 개소리 하다가 사라지곤 한다. 하여간, 한가하던 심곡항이 난장판이 되었다.
매년 선거철이 되어 온 동네가 개판이 될 때마다,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내가 아무리 양아치라고 우습게 알아도 저들 중에 누군가가 우리들의 삶을 좌지우지 할 것이 아닌가. 나아간다면 저들이 우리들의 역사를 규정짓고 만들어가지 않는가.
가치와 진실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저들의 가치에 의해 저들의 천박한 역사관에 의해 이 사회의 보편적인 사람들의 삶이 만들어지지 않는가.
도대체 누굴 찍어야 하는가.
나와 연관된 직간접적인 인간들도 수 없이 많고 내가 속해 있는 정당도 있지만 나는 선뜻 누구 하나 찍을 수 없다. 아무리 찍고 싶어도 손이 벌벌 떨려서, 잘못 찍을 것이 뻔한 것이고, 그래서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 처럼 그렇게 엉터리 역사가 만들어 질 것이고. 우리들의 보편적인 사람들의 삶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말이다.
도대체 역사란 무엇인가. 게다가 우리가 배우는 한국사라는 것은. 그리고 민족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난 도무지 이런 것들이 도대체 왜 존재해야 하는 지 모르겠다.
그것은 내가 양아치 들 중에서 누군가를 찍어야 하고 그래야만 민주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다해야 ㅎ하는 것이고. 그것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이라는 개소리와 같은 것이다.
자고로 민족이라는 말을 지꺼린 인간들이 바로 저런 양아치들이 권력을 잡은 19 세기 이후다. 조선시대 까지 우리가 교육 받았고 거의 상식화 되어 있는 한국사와 민족의식을 규정 짓는 고려사 삼국유사 삼국사기는 서민들은 도저히 구경도 할 수도 없는, 선비들일지라도 거의 읽을 수도 없었던 희귀한 문서였다.
게다가 단군신화가 몇 줄 언급되어진 신화에 관한 이야기는 아마 만주 어느 부족 마을에서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 정도일 것이다.
물 건너 일본 사기 역시 19 세기가 한참을 지나서 극우파 일본 정치인들이 어디선가 발굴 해낸 것이다. 아니, 그 전에는 거의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것을 명치유신 이후로 세상에 등장을 시킨 것이다. 중국 서점에 가 보면 수없이 돌아다니는 통감절요 역시 그렇다.
발해를 한국사에 편입시킨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대조영이 고구려인인가 말갈인인가 대해서는 논쟁이 많지만, 대체적으로 학계에서는 말갈인으로서 고구려의 신하였다는데 동의를 하는 편이다.
대조영이 고구려의 신하였기 때문에 발해의 상층부는 고구려인이고 하층부는 말갈인이라는 논리는 기가 막히다. 우리의 위대한 한국사는 당연히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민족 한족은 만주 벌판을 장악하고 호령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잠시 강대국에 움추려 숨을 죽이고 있는 민족이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영토 만주 벌판을 되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에 대한 역사 왜곡과 무엇이 다른가.
아마, 국가주의 전쟁 때문에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말갈족이 있다면 기가 막혀 웃을 것이다.
게다가 명문화된 역사란 것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석연치 않는 구석이 너무나 많다.
후세에 남겨진 극소수 사료만으로 기술된 허구라는 것이다.
더구나 그 상상된 이야기 조차도 보편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혀 없고 권력을 가진 자와 또는 가지려고 하는 자와, 그래서 그런 자들이 쓸 수 밖에 없는 영웅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징기스칸이 그렇고 광개토왕이 그렇고 풍신수길이 그렇다.
얼마전, 방송에서 인기리 방영되어진 주몽의 이야기는 비록 무협지 같은 헛소리지만 그래서 봐 줄 만하다는 것이다.
어차피 역사라는 것은 그네들의 영웅 무협지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도대체 보편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사는 어디에 존재하는가.”